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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보여행 후기☞/☆ 서울둘레길·두드림길

[20140122]'서울둘레길(안양천구간) 따라 구일역에서 만안교(萬安橋)까지 왕복 걷기' - 1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14.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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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1월 22일(수)

맥가이버의 낭만도보 - '서울둘레길(안양천구간) 따라 구일역에서 만안교(萬安橋)까지 왕복 걷기'를 다녀오다.
 
 

 

맥가이버의 낭만도보 - '서울둘레길(안양천구간) 따라 구일역에서 만안교(萬安橋)까지 왕복 걷기' 이야기

 

 맥가이버의 낭만도보 - '서울둘레길(안양천구간) 따라 구일역에서 만안교(萬安橋)까지 왕복 걷기' 코스

 

구일역→안양교→광명대교→철산대교→금천교→안양천교→독산교/금천구청역→시흥대교→기아대교→석수역→세월교→연현생태습지

→제2경인고속도로교각(안양천교)→화창교→안양천 생태이야기관/조류관찰대→충훈고등학교→충훈2교→충훈1교→박석교→안양대교

→삼성교(안양천ㆍ삼성천 합류점)→만안삼성교(삼성천ㆍ삼막천 합류점)→만안교→만안교에서는 역방향으로 구일역까지 되돌아옴

 

 
오늘은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있는 만안교(萬安橋)를 찾아가고자 길을 나선다.
 
만안교(萬安橋)는 안양대교 옆으로 흐르는 삼막천(삼성천)에 놓여 있는 다리로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묘인 현륭원(顯隆園)에 참배하러 갈 때 이용하고자 가설한 다리이다.
 
맥가이버의 낭만도보 - '서울둘레길(안양천구간) 따라 구일역에서 만안교(萬安橋)까지 왕복 걷기'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풍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또한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 맥가이버의 낭만도보 - '서울둘레길(안양천구간) 따라 구일역에서 만안교(萬安橋)까지 왕복 걷기' - 1부를 시작하며...

 

  

 

 

  

 

 

 

 

 

 

 

 

 

 

 

 

 

 

 

 

 

 

 

 

 

 

 

 

 

 

 

 

 

 

 

 

 

 

 

 

 

 

 

 

 

 

 

 

 

 

 

 

 

 

 

 

 

 

 

 

 

 

 

 

 

 

 

 

 

 

 

 

 

 

 

 

 

 

 

 

 

 

 

 

 

 

 

 

 

 

 

 

 

 

 

 

 

 

 

 

 

 

 

 

 

 

만안교[萬安橋]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다리.

길이 31.2m, 너비 8m.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8호.

1795년(정조 19)에 조성되었다.

 

현재 아랫부분은 모래 속에 묻혀서 확실한 상태를 알 수 없고,

7개의 수문은 매끄럽게 다듬은 장대석을 총총하게 잇대어 아치(arch)를 형성하였는데,

아치는 하단부부터 곡선을 그려 전체의 모양은 완전한 반원형을 이루고 있다.
7개의 아치 사이에는 크고 작은 선단석(扇單石)·장군형[缶形]

또는 잠자리형[蜻蜒形]으로 다듬은 무사석(武砂石)을 차곡차곡 쌓아 메꾸었다.

 아치 상단의 이맛돌은 중앙부를 둥글게 다듬은 장군형 무사석으로 연결하고,

그 윗면에 장대석을 쌓아 길바닥을 형성하였다.
지금은 그 위에 아스팔트를 포장하고 또 콘크리트 난간도 덧붙여놓아서 원형이 많이 손상되어 있다.

 

원래는 경부국도(京釜國道) 위에 있었으나 하천의 흐름을 변경하였기 때문에 물이 흐르지 않는 폐천에 걸려 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묘인 현륭원(顯隆園)에 참배할 때

건너기 편리하게 하고자 가설한 다리로 그 옆에는 만안교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에 의하면 이 다리의 가설은 당시 경기도관찰사를 위시하여

병마수군절도사와 수원·개성·강화 등의 유수(留守)까지 동원된 큰 공사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우리고장의 문화재총람(文化財總覽)』 -지정문화재편(指定文化財篇)-(경기도, 1978)

 

 

만안교[萬安橋]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교.


경기유형문화재 제38호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679(260) 
길이 약 30m, 폭 약 8m, 높이 약6m

 

조선시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1735~1762)의 능인

융릉(현륭원)을 참배하러 가기 위해 1795년(정조 19)에 축조한 홍예(虹霓) 양식의 석교이다.

 

당시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용산, 노량진, 동작, 과천을 통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으나 중간에 교량이 많고 남태령 고개 때문에 행차로를 닦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때까지 왕이 행차하는 길에는 임시로 나무다리를 가설했다가 끝난 뒤 바로 철거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행차 때마다 놓았다 헐었다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평상시에도 백성들이 편히 다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라는

정조의 명으로 영구적인 돌다리를 놓게 되었다.

 

만안교(萬安橋)라는 명칭은 만년동안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길이 15장(약 30m), 폭 4장(약 8m), 높이 3장(약 6m)이고 7개의 홍예문(무지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홍예문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장대석(長臺石)을 이용해 아치모양으로 만들었고

그 위에 화강암 판석(板石)과 장대석으로 상판을 깔았다.

전체적으로 축조 기법이 매우 정교하여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로 평가된다.

 

다리 남단에 건립 당시에 세운 ‘萬安橋(만안교)‘라고 새겨진 교비가 서 있는데

뒷면에는 이 다리의 축조가 경기도관찰사와 병마수군절도사, 수원·개성·강화 등의

유수(留守)까지 동원된 대규모 공사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원래는 현 위치에서 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만안로 입구에 있었으나

국도 확장을 위해 1980년 8월 이곳으로 옮겨 복원되었다.

안양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만안교 다리밟기’가 매년 이곳에서 행해진다.

1973년 7월 10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두산백과]

 

 

만안교[萬安橋]

조선 정조(正祖)의 현륭원(顯隆園) 참배 행차시 통행 편의를 위해 가설한 다리로 정조 19년(1795)에 건립하였다.

원래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는 길은 용산에서 노량진으로 한강을 건너고 동작을 거쳐 과천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이 길에는 교량이 많고 남태령이라는 고갯길이 있어서 길을 닦고 행차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으며,

또한 영조(英祖)를 부추겨서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죽음에 이르도록 한 김상노(金尙魯)와 관계되는 묘를 지나게 되므로

정조가 이를 불쾌히 여겨 시흥길로 바꾸도록 하였다.

원래 왕의 행차로에는 나무다리를 가설했다가 왕의 행차가 있은 뒤에는

바로 철거하고 행차가 있을 때에 다시 가설하는 것이 상례였다.

 

시흥로가 개설된 것은 정조 18년(1794)으로 첫해에는

이처럼 임시로 나무다리를 놓아 사용하였는데 다리를 놓았다 헐었다 하는 번거로움과

평상시 다리를 이용할 수 없는 백성들의 고통이 많았으므로 항구적인 돌다리를 놓게 되었던 것이다.

 

다리의 규모는 원래 길이 15장(약 30m), 폭 4장(약 8m), 높이 3장(약 6m)이고 홍예수문(虹蜺水門)이 5개라 하였는데,

현재는 홍예가 7개인 것으로 보아 시공 당시에 변경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홍예는 정교하게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을 써서 반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위에는 장대석을 깔아 노면을 형성했다.

전체적으로 축조 양식이 매우 정교하여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로 평가된다.

 

원래는 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만안로 입구에 있었는데,

1980년에 국도 확장 때 이 곳으로 옮겨 복원되었다.

다리 남쪽 측면에 축조 당시에 세운 비석이 있다.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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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1월 22일(수)

맥가이버의 낭만도보 - '서울둘레길(안양천구간) 따라 구일역에서 만안교(萬安橋)까지 왕복 걷기'를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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