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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보여행 후기☞/☆ 한강&지천따라걷기

[20160725]여행야도 - '노량진역에서 서래섬-잠수교-세빛둥둥섬-이촌한강공원-마포역까지 걷기'를 다녀오다.

by 맥가이버 Macgyver 2016.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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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07월 25(월)  
여행야도 - '노량진역에서 서래섬-잠수교-세빛둥둥섬-이촌한강공원-마포역까지 걷기'를 다녀오다.
   

  

 여행야도 - '노량진역에서 서래섬-잠수교-세빛둥둥섬-이촌한강공원-마포역까지 걷기' 이야기 

 

  여행야도 - '노량진역에서 서래섬-잠수교-세빛둥둥섬-이촌한강공원-마포역까지 걷기' 코스 
 

노량진역→사육신공원→노들역→노량진교회→용양봉저정→학도의용군 현충비→효사정→흑석초등학교→이야기정거장→반포천교

→동작대교→서래섬→세빛둥둥섬→잠수교 도강→동작대교→이촌한강공원→한강대교→한강철교→원효대교→마포대교→마포역 

 

오늘은 여행야도 - '노량진역에서 서래섬-잠수교-세빛둥둥섬-이촌한강공원-마포역까지 걷기'를 나선다.
 
뜨거운 한낮의 열기를 피해 저녁무렵의 한강을 걸으며
시원한 강바람을 즐기고, 한강 낙조도 보고, 야경도 감상하며 걷기 위해서...
  
여행야도 - '노량진역에서 서래섬-잠수교-세빛둥둥섬-이촌한강공원-마포역까지 걷기'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풍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또한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여행야도 - '노량진역에서 서래섬-잠수교-세빛둥둥섬-이촌한강공원-마포역까지 걷기' - 1부를 시작하며...

 

 

▼ 17시 37분 - 노량진역 1번 출입구 밖에서...

 

 

▼ 17시 37분 - 동작충효길 3코스 한강나들길을 따라 사육신묘 방향으로......

 

▼ 아래 동작충효길 코스 종합안내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 17시 44분 - 사육신묘(사육신역사공원) 입구

 

▼ 17시 45분 - 홍살문을 지나 '불이문'이 닫혀 있어 의절사는 둘러보지 못하고......

 

▼ 17시 47분 - 사육신공원 전망데크에서...

 

▼ 까치 테러?

 

▼ 17시 50분 - 

 

 

▼ 17시 52분 - 

 

 

▼ 17시 54분 - 

 

 

 

▼ 17시 56분 - 배수지공원 바닥분수

 

 

 

 

▼ 17시 58분 - 노들역

 

 

 

▼ 18시 01분 - 용양봉저정 방향으로...

 

▼ 18시 02분 - 노량진교회

 

 

 

 

▼ 18시 01분 - 용양봉저정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

 

서울 동작구 본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정.

정면 6, 측면 2.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

 

이칭별칭 : 주정소(晝停所)

유형 : 유적

시대 : 조선/조선 후기

성격 : 누정

건립시기·연도 : 18세기 말(조선 정조 연간)

규모(면적) : 정면 6, 측면 2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 10-30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서울특별시 동작구

문화재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

문화재 지정일 : 1972525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정.

 

내용

정면 6, 측면 2.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 가운데에 온돌방을 두고 양쪽에 툇간을 두었고,

사방에는 띠살분합문을 달았고, 이중량(二重樑)을 둔 오량구조, 겹처마집으로 간소하면서도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현재 노량진 수원지 건너편 작은 언덕에 있다.

정조는 효심이 지극하여 아버지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묘가 있는 수원 화산(華山)의 현륭원(顯隆園)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그 때마다 노들강(지금의 한강)에 배다리舟橋를 가설하여 건넜는데,

시간이 걸렸으므로 잠시 어가(御駕)를 머물게 하고 쉴 자리가 필요하여 이 정자를 지었다 한다.

 

축조연대는 1789(정조 13) 이후로 보고 있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점심을 들었기 때문에 일명 주정소(晝停所)라 부르기도 하였다고 전하여진다.

처음에는 정문과 누정 등 두세 채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용양봉저정만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용양봉저정 [龍驤鳳翥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18시 04분 - 주교사 터

 

주교사 舟橋司

  조선 후기 임금이 거둥하여 강을 건널 때 경강에 배다리[舟橋]를 놓는 일과 호서·호남 양호의 조운(漕運) 등을 맡아보던 관청.

 

임금이 매년 봄·가을 연2회 정기적으로 한강을 건너 온양온천과 산릉으로 가곤 했는데,

한강에 영구적인 교량을 가설할 기술·능력·자재들이 부족했다.

따라서 왕의 산릉행사 때 각종 선박을 징수하고 이를 규모 있게 연결하여 교량을 가설했는데,

이를 주교라 하며 연산군 이후부터 가끔 가설되었다.

특히 정조가 온양온천과 선릉(宣陵정릉(靖陵장릉(章陵)으로 갈 때 노량진에,

헌릉·영릉(英陵영릉(寧陵)으로 갈 때 광나루에 각각 주교를 놓았다.

 

즉 훈국선과 경강의 사선(私船) 중 몸체가 큰 것 사이에 널빤지를 가로질러 다리를 만들게 했다.

1790(정조 14)에 정조는 주교의 제도를 창설하여 그 전담기구로 주교사를 준천사(濬川司)의 부설기관으로 설치했으며,

주교운영에 대한 세목(細目)으로 주교지남 舟橋指南을 새로이 정했다.

 

주교사에 속한 관직은 도제조 3, 제조 6, 낭청 3명이 있었는데 모두 준천사의 해당관직을 겸직했다.

또한 유사당상(有司堂上준천사의 유사가 겸임) 1명을 전관(專官) 거행하게 하며,

임금이 강을 건널 때에는 유도장신(留都將臣) 중에서 주사대장(舟師大將) 1명을 차출해서 영접하는 일을 맡게 했다.

1793년에는 주교사에 관한 여러 내용을 44개의 절목(節目)을 모아 주교사절목을 편찬했다.

 

주교선은 교배선 38, 좌우호위선 12, 난간선 240척이었다.

1882(고종 19)에 폐지되고 그 업무는 금위영이 담당하게 되었다.

 

출처 : 다음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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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사 舟橋司

1789(정조 13)에 설치한 준천사(濬川司)의 산하 관서.

 

시대 : 조선 후기

성격 : 관청

유형 : 제도

시행일 : 1789(정조 13)

폐지일 : 1882(고종 19)

 

선박·교량 및 호남·호서지방의 조운(漕運) 등에 관한 사무를 관할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한강은 강 폭이 넓고 수심이 깊어 강남과 강북을 내왕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하여 한강에는 일찍부터 한강진(漢江津노량진(露梁津송파진(松坡津광진(廣津) 등의 나루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국왕이나 국장(國葬)행렬이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없다는 문제 때문에 연산군 때 배다리舟橋를 놓았다.

조선 후기에도 간혹 배다리가 가설되었다.

특히 정조가 온양온천과 선릉(宣陵정릉(靖陵장릉(章陵)에 갈 때 노량진에,

그리고 헌릉(獻陵영릉(英陵영릉(寧陵)에 갈 때 광나루에 배다리를 놓았다.

 

1789(정조 13)에는 왕명에 따라 이를 전담하는 상설기구로 주교사를 설치했다.

이 때 왕은 친히 주교지남(舟橋指南)을 제정해 그 운영에 불편이 없도록 했다.

주교사의 관원은 도제조 3, 제조 6, 낭청 3인을 두었는데, 대개 준천사의 관원이 겸임하였다.

 

국왕이 강을 건널 때는 유도장신(留都將臣) 중에서 주사대장(舟師大將)을 임명하였다.

필요한 경비는 영남 별회곡(別會穀) 2,000석과 호남·호서 지방의 세곡을 운반하고 받는 비용으로 충당하였다.

 

배다리 가설에는 경강선(京江船) 수백 척과 격군(格軍) 1,000명이 동원되었다.

이를 단속하기 위하여 3()1(), 5종을 1()으로 삼아 각기 영장(領將)을 두어 지휘하게 하였다.

한편, 각 선박에는 두 개의 기를 꽂고, 한쪽에는 종선(䑸船)의 차례를, 다른 한쪽에는 물흐름의 형상을 그려서 표시하도록 했다.

 

주교사에서는 배다리를 원활하게 가설하기 위해 179336개조의 주교사절목( 舟橋司節目)을 제정하였다.

후에 조성된 주교선은 교배선(橋排船) 38, 좌우호위선 12, 난간선(欄干船) 240척이었다.

1882(고종 19)에 폐지하고 그 사무를 금위영(禁衛營)에 이관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18시 07분 - 

 

 

 

▼ 18시 10분 - 

 

 

▼ 18시 11분 - 

 

 

▼ 18시 13분 - 학도의용군 현충비

 

 

▼ 18시 13분 - 효사정 철문이 열려 있네...

 

 

 

▼ 18시 14분 - 효사정

 

 

효사정 [孝思亭]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의 한강변 언덕에 있는 정자이다.

 

효사정(孝思亭)은 조선 세종 때 한성부윤과 우의정을 지낸 공숙공(恭肅公) 노한(盧閈 1376~1443)의 별서(別墅)였다.

노한은 모친이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를 했던 자리(지금의 노량진 한강변)에 정자를 짓고 때때로 올라가 모친을 그리워했으며,

멀리 북쪽을 바라보면서 개성에 묘를 쓴 아버지를 추모했다 한다.

 

효사정이라는 이름은 노한과 동서지간이었던 이조판서 강석덕(姜碩德)이 붙였고,

그의 아들 강희맹(姜希孟)은 효사정기(孝思亭記)를 남겼는데

강희맹의 이 기문(記文)<신증동국여지승람> 10권 금천현 누정조에 기록되어 있다.

정인지(鄭麟趾), 서거정(徐居正), 신숙주(申叔舟), 김수온(金守溫)

조선 초기의 학자와 문신들도 효사정과 관련된 시문(詩文)을 남겼다.

 

옛 효사정은 사라졌으며, 지금의 효사정은 1993년 흑석동 한강변을 끼고 있는 낮은 산에 신축한 것으로,

일제강점기 때에 그 자리에는 한강신사(일본의 신사로, 웅진신사라고도 하였다)가 있었다.

효사정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러 시문을 참고하여 원래 효사정이 있었던 터를 찾았으나,

주변 환경의 변화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옛터와 가까운 자리를 택해 정자를 세웠다.

 

현재의 효사정은 넓이 46.98의 정면 3·측면 2칸 규모로, 온돌방 1칸을 들인 건물이다.

민도리집 구조의 5량집이며 난간을 두르고, 팔작지붕을 얹었다.

효사정은 예로부터 효도의 상징으로 유명했고, 한강을 끼고 있는 정자 중 경관이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현재의 효사정 역시 서울특별시 우수경관 조망명소 중 하나로 선정됐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정자에 오르면 탁 트인 한강의 경관과 함께 북한산, 남산, 응봉산, 동작대교, 한강시민공원이 한눈에 들어오고,

특히 야경이 아름다워 사진 출사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효사정 [孝思亭] (두산백과)

 

 

 

 

 

 

▼ 18시 17분 - 

 

▼ 18시 18분 - 

 

▼ 18시 19분 - 흑석역

 

 

▼ 18시 20분 - 흑석초등학교

 

▼ 18시 22분 - 이야기정거장에서부터는 한강자전거길을 따라...

 

 

 

 

 

 

 

▼ 18시 31분 - 

 

 

 

▼ 18시 35분 - 반포천교를 건너...

 

 

▼ 18시 37분 - 

 

 

 

▼ 18시 45분 - 서래섬으로...

 

 

 

 

 

 

 

 

 

▼ 18시 52분 - 서래섬을 나서며...

 

 

 

▼ 18시 57분 - 

 

 

 

▼ 18시 59분 - 

 

 

 

▼ 19시 00분 - 

 

▼ 19시 00분 - 반포대교/잠수교

 

 

▼ 낙조를 찍는 진사님들...

 

▼ 이촌동 래미안 첼리투스아파트 위로 저녁 해가 내려앉고 있다.

 

 

 

 

 

 

 

 

 

▼ 19시 03분 - 

 

 

 

▼ 19시 07분 - 이촌동 신동아아파트 글뚝에 걸린 저녁해.

 

 

 

 

▼ 19시 09분 - 

 

▼ 19시 10분 - 

 

▼ 19시 11분 - 잠수교를 도강하고...

 

▼ 강물은 멈추어 있는 듯 하지만 강을 따라 흐르고 있다.

 

▼ 나도 길을 따라 흐른다. 흐르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돌아서 갈 뿐이지..

 

▼ 19시 18분 - 

 

▼ 19시 23분 - 

 

▼ 19시 24분 - 

 

▼ 19시 25분 - 래미안첼리투스 아파트

 

 

▼ 19시 26분 - 

 

 

 

▼ 19시 27분 - 

 

 

▼ 19시 31분 - 

 

▼ 19시 32분 - 

 

▼ 19시 33분 - 이촌한강지구 '청보리밭축제'를 하던 곳

 

 

▼ 19시 37분 - 거북선나루터

 

 

 

 

 

▼ 19시 45분 - 한강대교

 

 

 

▼ 19시 51분 - 한강철교

 

▼ 19시 51분 - 

 

 

▼ 19시 53분 - 한강철교

 

 

▼ 19시 55분 - 

 

 

▼ 19시 59분 - 

 

▼ 20시 00분 - 원효대교

 

 

 

 

▼ 20시 03분 - 만초천교

 

 

 

 

▼ 20시 07분 - 너도 혼자 밤마실 나왔구나!*^&^*

 

▼ 20시 10분 - 수위관측소

 

 

 

 

 

▼ 20시 13분 - 마포종점나들목에서...

 

▼ 20시 16분 - 마포종점나들목에 걸린 시계와 카메라의 시간이 약간 차이가 나네...

 

▼ 20시 16분 - 마포대교로 올라가며...

 

▼ 20시 20분 - 마포대교에서 마포역 방향으로...

 

 

▼ 20시 00분 - 마포역에서 오늘의 여정을 마치고...

 

 

☞ 이것으로 '여행야도 - '노량진역에서 서래섬-잠수교-세빛둥둥섬-이촌한강공원-마포역까지 걷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