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유산은 서울시가 2012년부터 보존정책을 펼치면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서울시는 미래유산 보존정책을 통해 소유자와 시민들이 문화유산이 갖고 있는 고유의 가치에 눈을 뜨고,
스스로 가꿔나가는 일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의 문화유산 보존정책에 시민들의 자발적 역량을 더하자는 취지다.
이런 취지를 앞세워 2013년 284건, 2014년 53건, 지난해 45건의 미래유산을 소유자(관리자)의 동의를 얻어 선정했다.
서울시는 미래유산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신문, 문화지평과 공동주관으로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매주 토요일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를 확인하고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어? 여기 뒀던 플래카드 가방 못 봤어요?”
여섯 번째 서울미래유산 탐방일인 지난 8월 20일 집결 장소인 3호선 안국역 근처 서울노인복지센터 간판 옆에 뒀던
행사 플래카드 가방이 통째로 없어졌다고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가 중얼거렸다.
모임에 대해 양해를 구하기 위해 시설관리팀에 잠시 다녀왔더니 그새 사라진 것이다.
시설관리과 직원이 난감해하면서 찾아보겠다며 안으로 들어갔다.
잃어버린 가방을 쉽게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센터는 넓었고 어르신도 많았다.
시계 초침은 야속하게 답사 시작 시간인 오전 10시를 향해 지체없이 째깍거리며 돌아갔다.
답사 시작 3분 전 시설과 직원이 플래카드 가방을 들고 뛰어왔다.
잃어버린 돈을 되찾은 것만큼 기뻤다.
‘10시 정시 시작’ 전통을 깨지 않아서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한 어르신이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가방을 들고 들어간 것으로 해프닝은 마무리됐다.
이날 행사는 배건욱(45) 서울미래유산 해설사의 해설로 진행됐다.
옛 통계청 건물 ‘노인복지센터’…격자 패턴 등 건축가 이희태식 모더니즘
시설관리팀 박충식씨는 “내부는 전면 리모델링해 옛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며
현대그룹 계동 사옥 앞에는 굴뚝처럼 생긴 석조물이 있다. 관상감 관천대다.
첫 양방병원 ‘제중원’ 표지석…백인제 가옥 등 근대의학 태동지 북촌
현대 계동 사옥 앞에는 ‘제중원’터 표지석이 있다.
헌법재판소 안에 있는 표지석 자리는 제중원이 처음 세워졌던 곳이고 훗날 이곳으로 옮겨졌다.
제중원은 고종이 1885년 미 공사관 공의(公醫)인 알렌의 건의를 받아 설립한 양방 병원이다.
알렌은 1884년 갑신정변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하면서 궁중의 전의(典醫)로 발탁됐다.
실록에는 고종이 혜민서와 활인서를 대신할 의료기관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정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설치를 허락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면에는 알렌이 고종에게 서양의학의 보급과 서양식 의료기관의 설립을 건의해 제중원 설립을 이끌었던 사연이 숨어있다.
그러고 보면 북촌 지역은 우리나라 근대의학의 태동지다.
이날 답사에 참가한 김치중 한국일보 의학전문기자는
“연대세브란스 병원의 모태인 제중원, 1900년대 초기 우리나라 콜레라 방역대책을 세워
근대의학 도입에 공헌한 독일인 의사 리하르트 뷘시의 병원,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 가옥 등
북촌 지역은 근대의학의 의향(醫香)이 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몽양 여운형은 우리나라 해방 정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민족주의 진영의 인물이다.
배 해설사는 “일장기 말소사건은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1936년 하계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배 해설사는 답사단을 대동세무고 교정으로 이끌었다.
배 해설사는 “대동학원 설립은 일제강점기에 경제·교육·문화 면에서 민족 역량을 배양하고
독립 투사들 모였던 인촌의 집…지금은 굳게 닫혀 ‘단절된 유산’ 느낌만
김성수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됐다.
3·1운동에도 참여했던 그가 1940년대에 학도지원병을 고무하고 징병제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매일신보 같은 매체에 실었다.
김성수는 이 집에서 1918년부터 1955년까지 살았다. 현재는 인촌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울시는 ‘2·8 독립선언 준비, 3·1운동의 초기 준비 단계 등에서
항일 독립투사들이 모인 밀회 장소이자 중앙고보, 보성전문, 동아일보 설립을 구상하는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배후 지원, 민족 교육, 민족문화의 보급을 위해 노력했던 장소로서
보존 가치가 있다’며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서울미래유산이면서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관리되고 있는 이 집 대문은 굳게 잠겨 있다.
재단법인 인촌기념회 명의로 대문 옆에 ‘이곳은 개방된 관광구역이 아닙니다’란 안내문을 커다랗게 써 붙여 놨다.
서울미래유산은 서울시민 공통의 기억이어야 하는데, 닫힌 대문은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굳게 닫힌 대문이 소통의 단절을 의미하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답사단은 만해 한용운이 불교잡지 ‘유심’을 발행한 유심사터를 지나 북촌 주민들의 용수원이었던
‘석정보름우물‘에 들러 이곳의 역사를 전해 들었다.
옆에 아주머니 세 분이 모여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살고 있는 우리가 이곳 역사를 가장 잘 알지. 우리한테 물어봐야지.” 맞는 말씀이다.
원래는 그 지역에 거주하는 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게 맞다.
문제는 그런 분을 찾아서 앞장세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북촌팔경 핵심 ‘한옥마을’…관광객들 ‘북적’ 에티켓 ‘기본’
본격적인 북촌 한옥마을로 들어서자 집집마다 대문에 ‘조용히 해 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가회동 31 일대는 북촌 한옥마을의 메인 골목인 데다 북촌팔경 중 한 곳이라서 관광객이 늘 북적인다.
특히 주말에 많이 몰리는 관광객들로 인해 주민들은 휴식에 방해를 받고 있다.
안내문은 관광객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려는 주민들의 고육지책인 것이다.
가회동 주민들의 성숙한 시민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안내문이 신기한 듯 사진을 연신 찍어대고 있다. 북촌 한옥마을 일대가 서울미래유산이다.
배 해설사는 “다양한 문화재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다채로운 공간과 전통가옥인 한옥들이
독특한 경관을 형성하고 있어서 보존 가치가 높은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답사단은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 가옥에 들러 땀을 식히고 서울미래유산인 돈미약국을 거쳐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헌법재판소는 1993년 지어져 건축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헌법수호의 최고기관으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 터는 조선말 좌의정을 지냈던 박규수 선생 저택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종합병원인 제중원이 있던 장소다.
최근에는 헌재 도서관 증축 부지에서 조선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1754∼1772) 집터가 발견됐다.
이곳은 구한말 개화파 민영익의 집, 일제강점기 군국기무를 총괄하는 통리기무아문 자리이기도 하다.
배 해설사는 “사대문 안은 조금만 파내려 가면 거의 모든 곳에서 유구가 발견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이를 인근으로 수평 이동해 보존하기로 했다.
답사에 참가한 박수현(39)씨는 “유물이 발견되면 공사를 중단하는 게 시민 눈높이”라며
“헌법기관이 법을 어기며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답사단은 탐방 시작 이후 처음으로 종로경찰서 옆 한식집 ‘금수저’에서 경후식(景後食)을 했다.
성준경(48)씨 부부가 막걸리를 샀다. 북촌답사가 운치 있게 마무리됐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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