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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짧은 글 긴 여운

어지간히 따로가 아름답겠습니다

by 맥가이버 Macgyver 2018. 4. 18.



어지간히 따로가 아름답겠습니다


더 이상 당신과 같이 지낼 수 없다고 말해야 할 때, 어떤 말이 좋을지.

그것은 물기를 막 닦은 유리잔처럼 빛나면서도

잘 다려진 와이셔츠처럼 단정해야 할 것이지만.

더 이상 같이 지낼 수 없을 것 같은 게

이렇다 할 이유가 없는 것이어서 충분히 고통스럽다면

그 고통을 고스란히 담은 말을 꺼내야 할지,

소극적인 말 몇 마디를 쏟아붓고 그쳐야 하는 건지.

살아보니 당신이 보였습니다, 라는 첫 문장으로 편지를 쓰면서

당신하고는 이토록 소박한 삶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라든가

어지간히 따로 지내는 게 아름답겠습니다, 라는 말을 적는 건 어떨지.

아무리 긴 시간을 꾸민다 해도 더이상 같이 지낼 수 없다는 것은

공기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것일 테니.

근사한 말들을 동원해 마술을 보여줄 것도 아니라면

게다가 장엄한 결말을 내기엔 주인공들이 지쳐 보이므로.


불확실한 것으로 연명하는 것은 어쩌면 죽음이기도 한 것이니

안녕, 안녕, 안녕이라고 백번을 말해줄게.

 
이병률의 '내 옆에 있는 사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