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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등산사진후기☞/♤ 북한산·도봉산·사패산

[20180624]도봉산 산행(우이역-한일교-원통사-우이암-주봉-마당바위-금강암-도봉산역)을 다녀오다

by 맥가이버 Macgyver 2018.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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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06월 24일(일) 

도봉산 산행(우이역-한일교-원통사-우이암-주봉-마당바위-금강암-도봉산역)을 다녀오다

 

 

 '도봉산 산행(우이역-한일교-원통사-우이암-주봉-마당바위-금강암-도봉산역)' 코스


북한산우이역→한일교→송전탑→원통사 갈림길→원통사→우이암 전망대→보문능선 갈림길

→오봉샘 갈림길→오봉능선 갈림길→주봉→관음암 갈림길마당바위→천축사 갈림길

→성도원갈림길→금강암→도봉서원→고산앙지→명수대→광륜사→도봉분소→도봉산역




 

 
 '도봉산 산행(우이역-한일교-원통사-우이암-주봉-마당바위-금강암-도봉산역)' 이야기 
 
오늘은 도봉산을
북한산 우이역에서 시작하여 한일교를 건너 우이남능선을 타고
원통사를 거쳐 우이암 전망대에 올라 우이암을 바라보고
도봉주능선을 따라 풍광을 즐기며 걷다가
주봉에서 마당바위를 거쳐 금강암으로 내려서고
도봉산역에서 여정을 마친다.
'도봉산 산행(우이역-한일교-원통사-우이암-주봉-마당바위-금강암-도봉산역)'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도봉산 산행(우이역-한일교-원통사-우이암-주봉-마당바위-금강암-도봉산역)'을 시작하며...



▼ 북한산 우이역에서...


▼ 우이암 찾아가는 길이 이렇게 변했네...



▼ 한일교를 건너기 전에...











▼ 송전탑을 지나고...





▼ 전망이 트이는 곳에서 바라본 북한산은...



▼ 아련한 상장능선의 추억...








▼ 방학동 갈림길






▼ 우이암을 바라보고...







▼ 우이암능선/원통사 갈림길에서...




▼ 원통사 방향으로...








▼ 이곳에서 바라본 우이암은...









▼ 특별한 바위가 바위 위에 얹혀 잇어서...



▼ 올라와서 보니...


▼ 히프바위?




▼ 마치 원통사를 지키는 사천왕상처럼...




▼ 원통사 아래에서 바라본 우이암은...



원통사(圓通寺)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직할 전통사찰.


[개설]
원통사(圓通寺)는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던 조현명(趙顯命), 서명균(徐命均) 등이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며 심신을 닦았던 곳으로 당대 유학자들 사이에 명소로 이름 높았다.

 

현재 경내에는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기도하였다는 석굴이 있으며,

약사전 아래 큰 바위에는 태조가 기도를 마치던 날 천상의 상공(相公)[정승]이 되어

옥항상제를 배알하는 꿈을 꾸었다 하여 새겼다는 ‘상공암’이라는 글씨가 있다.

 

또한 절 뒤쪽에 있는 우이암으로 불리는 바위는

관음보살이 부처를 향해 기도하는 형상을 하고 있어 원래는 관음봉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주변의 자연 지세를 자세히 살펴보면 호랑이·코끼리·학 등

여러 동물 모습을 한 바위들이 이 바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형상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천혜의 관음 성지라고 믿고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신라 시대인 863년(경문왕 3)에 도선 국사가 도봉산에 절을 창건하여 원통사라 하였으며,

1053년(문종 7) 승려 관월 운개(觀月雲開)가 중창하였고, 1392년(태조 1)에 승려 천은 득일(天隱得一)이 삼창하였다.

 

그 후 조선 영조 때 승려 유인(宥牣)이 중수하고 절 이름을 보은사(報恩寺)라 바꾸었다.

 또 1810년(순조 10)에 승려 청화(淸和), 1887년(고종 24)에 승려 응허 한규(應虛漢奎)가 중창하였다.

 

1928년 비구니 자현(慈賢)이 주지로 부임하여 퇴락한 절의 중건을 발원하고

설악산의 승려 춘성(春城)을 청하여 천일 관음 기도를 올려 1929년에 불전을 중건하였다.

 

승려 보경 보현(寶鏡普賢)을 데려와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1931년에 천일기도가 끝나자 그해 겨울에 지리산의 승려 보응과 함께 다시 만일 염불회를 시작하여

1933년에 칠성각을 세우고 1936년에 법당 일부와 큰방을 중수하였으며,

이때에 절 이름을 잠시 보문사(普門寺)로 바꾸기도 하였다.

이후 1938년에 독성각이 세워졌다.


[활동 사항]
매달 1일[음력] 11시에 초하루 법회, 매달 18일[음력] 11시에 지장 재일 법회,

매달 24일[음력]에 관음 재일 법회, 매주 일요일 11시에 일요 법회를 연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가람은 관음 보전·약사전·삼성각·정해료·종각, 그리고 자연 동굴의 나한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전인 관음 보전은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29년에 건립되었다.

내부의 불단에는 아미타여래상, 관음보살상,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불화는 아미타 탱화가 봉안되어 있고, 신중탱화 1점과 소종 1점이 있는데 모두 근래에 제작된 것이다.

약사전은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 건물인데, 최근에 그려진 약사여래 탱화가 있다.

 

삼성각은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988년에 조성한 칠성 탱화·산신 탱화·독성 탱화와 독성상이 봉안되어 있다.

 약사전과 삼성각의 건물도 근래에 지어졌다.

 

나한전은 자연 동굴에 석가모니 삼존불 좌상과 지장보살 등 네 보살 입상, 십육 나한상 등이 각 층으로 구분되어 있고,

감실 안에는 10대 제자상이, 하단에는 인왕상 둘이 자리하고 있다.

 

종무소와 요사로 쓰이는 정혜료는 정면 여섯 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사각지붕의 종각에는 범종 한 구가 있다.

 

출처 : 디지털도봉구문화대전

 


 

보문사(普門寺)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도봉산 우이암(牛耳巖)에 있는 절.

보문사는 863년 도선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칭별칭 :  원통사(圓通寺),  보은사(報恩寺)

건립시기·연도 : 863년

 

내용

원통사(圓通寺)·보은사(報恩寺)라고도 한다.

863년(경문왕 3) 도선(道詵)이 창건하여 원통사라 하였고,

1053년(문종 7) 관월(觀月)이, 1392년(태조 1) 천은(天隱)이 중창하였다.

 

그 뒤 영조 때 유인(宥牣)이 퇴락한 불전과 승당을 중수하였고,

1810년(순조 10) 청화(淸和)가 중수하였으며,

1887년(고종 24) 응허(應虛)가 대법당을 중수하였다.

 

1928년 초여름에 이 절의 주지로 온 비구니 자현(慈賢)은 절의 중건을 발원하고

설악산에 있는 춘성(春城)을 청하여 천일관음기도를 시작하였고,

1929년 불전을 신축하는 한편, 보경(寶鏡)을 청하여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1931년에 천일기도가 끝나자 그해 겨울 지리산의 보응과 함께 만일회(萬日會)를 개설하였다.

그 뒤 1933년에 칠성각을, 1936년에는 법당 일부와 대방(大房)을 중수하였고

이때 절 이름을 원통사에서 보문사로 바꾸었으며, 1938년에는 독성각을 건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관음보전과 삼성각·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관음보전만이 1929년에 건립한 것이고 나머지는 근래에 지은 건물들이다.

 

이 밖에 고색이 깃들인 석물들과 축대, 요사채의 주춧돌, 수령 600여년의 느티나무 등이 있다.

이 절은 관음신앙의 중심사찰이며, 특히 만일회가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원통사 종각(종루)이 없어졌네...


▼ 이런 종각(종루)이 있었는데... 

 








▼ 풍경달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정호승 '풍경달다' 중에서...


▼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석굴전으로...















▼ 이제 우이암을 향해...




▼ 보문산장터


보문산장 관리인 고 배용복님의 추모동판(2014년 찍은 사진)

 





▼ 마치...


▼ 어미 악어가 새끼 악어를 등에 업고...








우이암[牛耳岩]

이칭/별칭 : 관음봉,사모봉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에 있는 암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


[개설]
도봉산에는 대보 조산 운동이 발생했을 때 대보 화강암이 관입하였다.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침식을 받아 산의 정상부는 대부분 기반암인 화강암이 노출된 채 바위산의 형태가 되었다.

화강암이 오랜 시일에 걸쳐 모암으로부터 일부분이 벗겨지거나 떨어져나갔다.

도봉산의 봉우리는 화강암의 차별 침식으로 인해 형성되었으며, 암석이 벗겨져나간 박리면과 잘라져 나간 절리면도 잘 발달해 있다.


[명칭 유래]
우이암(牛耳岩)의 명칭은 봉우리의 모습이 소의 귀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본래는 바위의 모습이 부처를 향해 기도하는 관음보살을 닮았다 하여 관음봉(觀音峰)이라고도 하고,

사모관대를 쓰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사모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도봉산에 분포하는 많은 바위들이 호랑이·코끼리·두꺼비·코뿔소·학 등 각종 동물의 형상을 하고

관음봉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는 듯하다고 하여 불교에서는 우이암을 관음성지(觀音聖地)라 여기기도 한다.


[자연 환경]
도봉산의 대표적인 암봉 가운데 하나로, 매우 급경사를 이루면서 형성되어 있는데 산 정상부 쪽은 거의 수직 절벽에 가깝다.

우이암은 전국 암벽 등반 대회가 열렸을 정도로 암벽 등반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현황]
해발 542m의 우이암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도봉산 탐방 지원 센터에서

도봉사를 지나 보문 능선을 따라 능원사와 구봉사, 성불사, 천진사, 원통사를 거쳐야 된다.

2.5㎞, 1시간 20분 코스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전망 좋고 바람 좋은 곳에서 잠시 휴식하고...



▼ 산나리(중나리?)를 만나고...












▼ 오봉 갈림길에서...




▼ 자운봉 방향으로...


▼ 오봉능선 갈림길에서....


▼ 자운봉 방향으로...








▼ 신선대쪽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 주봉 아래 갈림길에서...



▼ 마당바위를 향해 내려서고...








▼ 관음암 갈림길에서...


▼ 마당바위 방향으로...





▼ 전망이 트이는 곳에서...


▼ 우이암을 바라보니...




▼ 마당바위에서...




▼ 우이암을 바라보니...




▼ 성도원 방향으로...













▼ 도봉산 금강암






▼ 고산앙지






▼ 명수대





▼ 도봉산역에서 여정을 마치고...



☞ 이것으로 '도봉산 산행(우이역-한일교-원통사-우이암-주봉-마당바위-금강암-도봉산역)'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