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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논란] 가벼운 배낭, 가벼운 등산화, 언제나 좋은가

by 맥가이버 Macgyver 2025. 2. 13.

가벼운 배낭, 가벼운 등산화, 언제나 좋은가 [장비 논란]

 
미국 전설적 산악인이 주장한 BPL, 우리나라 환경에 최적은 아냐
 

가벼움에 반대한다.

장비 종류를 망라해 가벼운 것만을 진리로 여기는 이들이 있다.

당일 산행과 백패킹 모두 가벼운 것이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시대다.

하지만 무게를 줄이기 위해 타협해서는 안 되는 장비가 있다.

 

미국의 장거리 트레킹과 다른 국내 환경, 레벨이 다른 등반과 산행으로 다져진 서양인의 골격에 적합한 장비와 가끔 취미로 산에 가는 동양인의 체격에 맞는 장비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가벼움이 진리로 통하는 것은 아니다. 

 

가벼움의 유행은 BPLbackpackinglight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장거리 하이킹의 전설이자, 백패킹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레이 자딘Ray Jardine은 1970년대 말 세계 최초로 5.13급 암벽등반 루트를 자유등반으로 올랐고, 흔히 ‘프렌드’라고 부르는 확보장비인 캠을 개발했다.

 

수천 km에 이르는 미국의 종단 트레일인 PCTPacific Crest Trail와 CDTContinental Divide Trail, 애팔래치안 트레일Appalachian Trail을 수차례 혼자 종주했다. 

 

당시 세계 최고 난이도인 5.13급을 오르려면 깨어 있는 시간에는 거의 등반과 운동만 했다고 봐야 한다.

한 번 완주하기도 어려운 PCT 4,300km, CDT 5,000km, AT 3,500km를 비롯한 장거리 트레일을 여러 번 완주했다.

서양인 중에서도 타고난 강한 골격과 평생 다져진 근육으로 똘똘 뭉쳤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그가 제안한 것이 BPL이다.

 

배낭은 등판 프레임 없이 자루같이 된 것을 쓰고, 한 달 이상의 장기간 트레킹을 위해 텐트는 폴대 없이 치고, 침구류도 파격적으로 줄이고, 음식도 적게 먹으며 걸을 것을 제안했다. 

이것이 시대가 흘러 친환경 흐름을 타고 국내에도 번지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과연 미국처럼 수십 일을 걷는 초원이나 사막이 있으며, 비슷한 아웃도어 활동을 하는가?

국내 최장거리 트레일인 백두대간 종주 시 미국 태평양 연안처럼 눈비 없는 건조한 날씨에 전 구간 걷고 야영할 수 있는가?

30일 이상 연속으로 걷는 백두대간 일시종주의 수요가 있는가?

평생 트레킹과 등반으로 전신 근육이 단련된 서양인에게 최적화된 장비가 가끔 산을 찾는 동양인에게 적합한가?

 

우리나라 산은 미국이나 유럽과 다르다.

가파른 바윗길이 많고, 비가 많이 오고, 풀이 높고, 눈도 많이 온다.

적당한 온도에 건조한 날은 365일 중 많지 않다.

내구성 강한 장비가 필요하고, 내리막 돌길이 많아 관절·연골이 상하기 쉽다.

일주일간 치열하게 일한 후 취미로 1박2일 가는데, 가볍고 맛없는 음식을 먹을 당위성은 높지 않다.

물론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주 안에서 산행을 해야 하지만, 자연 환경이 다르다.

자연을 지키는 범주 안에서, 내 몸을 지키는 안전한 장비와 적당한 즐거움이 따르려면 어느 정도의 무게는 감수해야 한다.

 

스틱   

초경량 스틱이 유행이다.

체중 45kg 여성에게는 유용하고 실용적이다.

하지만 75kg 남성에게도 유용할까?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인 1~3단 모두 카본을 사용한 스틱은 어느 선 이상의 무게가 가해지면 부러진다.

휘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를 부러뜨린 것마냥 부러지는데, 가파른 내리막에서 체중을 실었을 때 발생한다면, 작게는 찰과상 크게는 추락으로 이어진다.

 

카본 스틱이 아니더라도, 알루미늄의 한 종류인 듀랄루민을 얇고 가벼운 것을 사용하면 부러지게 된다.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알프스 초원만 있지 않고, 너덜 같은 불규칙적인 바위 지형이 많다.

스틱이 바위틈에 끼었다가 휘어지거나 부러지는 일은 지극히 흔한 일이다. 

 

산행 시 스틱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체중을 스틱에 지탱하는 빈도가 높아진다.

70kg 이상 체중의 남성은 가벼움에 초점을 맞춘 제품보다는, 무게가 나가더라도 튼튼하고 길이가 충분한 것을 택해야 안전사고의 우려가 줄어든다.     

 

배낭  

가벼운 배낭이 정말 많아졌다.

40리터 이상의 대형 배낭도 간결한 배낭이 많다.

무게를 줄일 수 있는 기술력은 원단이다.

훨씬 얇고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신소재를 활용한 배낭들의 출현으로 획기적으로 무게를 줄였다.

대단한 발전이지만, 무거운 대형 배낭은 기술력이 떨어져서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다. 

 

배낭에는 일종의 작은 과학이 숨어 있다.

특히 10kg 이상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는 대형 배낭은 등판 안쪽에 뼈대가 되는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 소재의 심지가 있어, 등에 밀착되면서도 무게의 균형을 잡도록 했다.

등과 등판 사이에 다양한 소재와 설계로 여유 공간을 둬서 땀이 잘 마르도록 했다.

두껍고 견고한 허리벨트로 배낭 무게를 골반(몸 중심)에 싣게 해 이틀 이상 걸어도 피로를 최소화할 수 있다. 

 

경량 배낭의 특징은 등판과 허리벨트의 기능 생략이 과감하고 간결하다는 것이다.

달리 보면, 오래 걸을수록 피로도가 높고, 무게 분산이 되지 않아 척추가 눌려, 코어 운동을 평소에 충분히 하지 않았던 사람은 척추 디스크 질환이 10년 이내에 올 수 있다.

아마 그 증상이 왔을 때는 당시 백패킹이 주된 원인 중 하나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등산화   

가벼운 등산화가 유행이다.

등산은 발로 하는 것이라 신발의 중요성이 크다.

해외 고산 중에서는 눈길이나 흙길만 이어지는 곳이 많은데, 한국 산은 높이는 낮지만 그야말로 거칠고 다양한 바윗길의 연속이다. 가파른 돌길이 많아 산 높이에 비해 피로도가 높다. 

 

특히 내리막 돌길에서는 체중의 3배 이상 무게가 순간적으로 관절에 실린다.

산행 습관과 신발 선택에 따라 관절과 연골 질환이 생기기 쉽다.

미국 류머티즘학회 연구 결과, 일반 운동화 대비, 푹신한 쿠션화가 무릎에 충격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다리 근육별 압력 측정기 부착 후 여러 신발을 신고 실험한 결과, 쿠션화가 압력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을 진행한 이남규 정형외과 전문의는 “평소 무릎에 체중의 3~6배 하중이 실리는데, 푹신한 쿠션화를 신으면 15kg의 하중이 더 실린다”고 밝혔다.

유재욱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푹신한 신발은 디딜 때마다 무게 중심이 휘청거리고 무너진다”며 “이로 인해 발목 주변 근육이 수축하면서 중심을 바로잡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데, 항상 긴장하게 되어 발목을 삐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무겁고 딱딱한 밑창의 중등산화는 발목의 안정성이 좋아져서 피로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가벼운 걷기길이나 3시간 이하의 짧고 완만한 산행은 가볍고 통풍성 좋은 신발이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가파른 바윗길 4시간 이상 산행과 종주 산행에는 무거운 중등산화가 내 몸에 이로운 효율적인 선택이다.

가는 코스에 따라 신발을 달리하는 것이 좋지만, 80kg 이상 체중의 성인이라면 1시간만 다녀오더라도 오르내림 있는 코스라면 중등산화를 신는 것이 낫다.

 

코스와 개인 체격에 따라 최적의 신발은 다르다. 

모든 장비는 진입 장벽이 있는데, 등산화가 심하다.

발도 신발도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중등산화의 딱딱한 착화감은 처음에 누구나 불편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발등 높이가 너무 낮거나, 족형이 맞지 않아 발가락이 눌리는 것이 아니라면, 생소한 착화감이 익숙해질 때까지 3개월가량 신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관우의 청룡언월도를 누구나 무기로 쓸 수는 없다.

가볍게 들 수 있는 힘과 체력이 필요하고, 익숙하게 쓸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한다.

길들여진 청룡언월도는 내 발에 딱 맞는 중등산화다.

험산을 한 칼에 댕강 날려버리듯, 안정적으로 뚫고 간다. 

 

무거운 장비, 나쁜 장비 아냐

기자도 가벼운 등산장비를 좋아하고, 즐겨 쓰는 것도 있다.

그러나 산에서는 안전을 위해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더불어 무거운 장비를 써야 더 안전한 사람도 있고, 가벼운 장비를 쓰는 게 더 효율적인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러닝으로 근육이 다져진 표준 체중 이하의 사람이라면 요즘 유행하는 가벼운 등산화를 신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여러 장비를 두고 대상지와 몸 상태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당일인지 1박 이상인지, 산행 소요 시간과 산길이 얼마나 가파르고 돌길인지, 흙길인지는 중요한 장비 선택 기준이다.

날씨와 내 몸 상태도 중요하다.

무게를 떠나 최적의 장비를 선택해야 한다.

또한 귀가 너무 얇아선 안 된다.

타인이 입이 마르게 칭찬하는 최고의 브랜드, 최고의 장비가 내게는 최고가 아닐 수 있다. 

 

주머니 사정도 중요하다.

남들에게 보이는 걸 중요시 여겨 형편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로 인해 순수한 산이 얼마나 한국적인 과시의 경연장이 되었던가.

가벼운 만큼 가격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초경량이 아니라도 알뜰한 소비로 구입할 수 있는 장비는 얼마든지 있다.

 

무거운 장비는 나쁜 장비가 아니다.

이 정도는 무겁지 않게 느껴질 체력이 기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산을 오르는 주체는 장비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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