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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2] 청와대 관람(정문-영빈관-대정원-청와대 본관-불로문-수궁터-인수문/관저-침류각-상춘재-녹지원-헬기장-춘추관-춘추문) - 1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25. 4. 2.

4월 02일(수) 

청와대 관람(정문-영빈관-대정원-청와대 본관-불로문-수궁터-인수문/관저-침류각-상춘재-녹지원-헬기장-춘추관-춘추문)을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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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청와대 관람(정문-영빈관-대정원-청와대 본관-불로문-수궁터-인수문/관저-침류각-상춘재-녹지원-헬기장-춘추관-춘추문)'을 위해 길을 나선다.

 

 

▼ 영빈관 정문에서...

청와대 靑瓦臺 / 경무대

 

요약

청와대는 202259일까지 사용한 대한민국의 대통령 관저이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에 위치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조선총독 관저로 사용하던 이 건물은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라는 이름을 붙여 관저로 사용하다가 1960년 윤보선 대통령이 청와대로 명칭을 바꾸었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관저를 용산으로 옮기고 청와대를 개방하였다.

주요시설로는 영빈관, 본관, 수궁터, 비서실별관 및 동별관, 상춘재, 녹지원, 대통령 관저, 춘추관이 있다.

 

내용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에 위치한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이 건물은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하여 회의실 · 접견실 · 주거실 등이 있는 2층 본관과 경호실 · 비서실 및 영빈관 등 부속건물이 있고, 정원과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후원 및 연못 등의 미관을 갖추고 있다.

 

19488월 정부수립 후, 19608월까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명명으로 제1공화국의 대통령 관저명 경무대(景武臺)’로 불려오다가, 그 해 813일 제2공화국 대통령으로 윤보선(尹潽善)이 선출되어 입주하면서 청와대로 개명하였다.

이 명칭은 대리석으로 된 본관 건물이 청기와로 이어져 있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청와대 터는 고려시대 남경(南京)의 이궁(離宮)이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26(세종 8)에 창건된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밖으로 후원에 해당하는 이 지대를 경무대라 하였다.

 

북악산 산록에 위치하여 서울 장안을 전망할 수 있는 이 경무대는 어영(御營: 조선시대, 인조반정 뒤에 조직한 군대의 하나)의 연무장(鍊武場)이나 과거장(科擧場)으로서, 또는 친경(親耕)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울안에는 원래 융무당(隆武堂)과 경농재(慶農齋: 조선 말엽 경복궁의 뒤뜰에 있던, 각 도의 그 해 농사가 잘 되고 못됨을 알아보던 집) 등이 있었으나, 일제강점 후 1927년 일제에 의하여 헐리고, 일본인이 조선총독 관저를 건립하였다.

 

이곳을 제7·8·9대 조선총독이 관저로 사용하였고, 광복이 되어서는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지(Hodge, J. R.)중장이 사용하다가 1948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한국정부로 이관되어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동시에 경무대라는 이름을 되찾아 대통령 관저명으로 사용하였다.

이승만(재임 19481960) 대통령은 6·25전쟁의 피난시절을 제외하고 19604월까지 초대 ·2·3대 대통령으로 보낸 12년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4·19혁명에 의한 하야와 함께 이화장(梨花莊)으로 옮겼다.

 

경무대라는 이름은 3·15대통령 부정선거 등 독재와 비정(秕政)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어 19608월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이 입주하면서 청와대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 뒤 19631979(59) 박정희(朴正熙), 19791980(10) 최규하(崔圭夏), 19801988(1112) 전두환(全斗煥), 19881993(13) 노태우(盧泰愚), 19931998(14) 김영삼(金泳三), 19982003(15) 김대중(金大中), 20032008(16) 노무현(盧武鉉), 20082013(17) 이명박(李明博), 2013~2017(18)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거쳐 갔다.

2017(19)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입주하였다.

2022510일 취임한 윤석열(尹錫悅) 20대 대통령이 관저를 용산 국방부 청사를 옮기고 기존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개방함에 따라 대통령 관저로서의 기능을 다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영빈관(迎賓館)

 

영빈관은 대규모 회의와 외국 국빈들을 위한 공식행사를 개최하는 건물로서 19781월에 착공하여 그 해 12월에 준공이 되었다.

 

이 곳 영빈관은 말 그대로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며, 외국의 대통령이나 수상이 방문했을 때 우리 나라를 알리는 민속공연과 만찬 등이 베풀어지는 공식행사장으로 이용되거나 100명 이상 대규모 회의 및 연회를 위한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2층에도 1층과 똑같은 홀이 있는데 1층은 접견장으로, 2층은 만찬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영빈관은 18개의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웅장한 건물이고, 특히 전면에 있는 4개의 돌기둥은 2층까지 뻗어 있는 높이가 13m에 둘레가 3m인 기둥이며 내부는 무궁화 · 월계수 · 태극무늬가 형상화되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본관本館

 

본관은 대통령의 집무와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되는 건물이며, 198922명의 전문가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많은 의견을 수렴한 뒤 199194일 신축되었다.

이 본관 건물 신축으로 외국의 국가원수나 외교사절이 방문했을 때 우리 전통의 건축양식을 통해 우리 문화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이 건물은 정부와 국가를 대표하는 우리의 얼굴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에 전통 목조 구조와 궁궐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하여 내부 구조는 현대적인 감각과 시설을 갖추도록 하였으며, 우리 나라 건축양식 중 가장 격조가 높고 아름답다는 팔작(八作)지붕을 올리고 한식 청기와를 이었다.

 

30만 장이나 되는 청기와는 일반 도자기를 굽듯이 한 개 한 개 구워 내어 1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는 강도를 지녔다고 한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1층에는 대통령부인의 집무실과 접견실, 연회장, 식당이 있으며,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회의실이 있다.

그리고 건물 앞의 넓은 잔디마당은 국빈환영행사와 육 · · 공군 의장대, 전통복식을 입은 전통의장대의 사열 등이 행해지는 곳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청와대 舊본관터(수궁터)

 

수궁(守宮)터인 지금 청와대가 위치한 지역은 옛날부터 풍수지리학상 길지(吉地)로 알려져 890년 전인 고려시대에 이곳에는 남경의 이궁이 있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이 곳은 경복궁의 후원이 되었으며, 그 뒤 1868(고종 5)에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융문당 · 융무당 · 오운각 등의 건물이 들어서고 과거시험이나 무술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또한 이곳은 농사가 · 국사의 근본임을 일깨우기 위해 왕이 손수 가꾸던 8배미의 논이 있던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1910년부터 경복궁을 조선총독부의 청사 건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후원에 있던 건물들을 다 허물고 이곳을 공원으로 조성하였고, 총독관사를 새로 지어 7·8·9대 총독이 사용했다.

 

일본인들이 여기에 관사를 지은 것은 조선 왕권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로막아 그 앞에 청사를 짓고 그 뒤편에는 총독관사를 지음으로써 조선왕실의 기를 누르고 풍수지리학상 용맥을 끊어 민족정기를 말살하여 이 나라를 영원히 지배하고자 했던 것이다.

 

높은 곳에서 보면 총독관사 건물은 ()자의 모양을, 총독부 청사건물은 ()자의 모양을, 서울시청 건물은 ()자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 세 글자를 이으면 대일본이 된다.

 

그 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이곳은 미군정 사령부 하지 중장의 거처로 사용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경무대, 청와대로 이름이 바뀌어 가며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역대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되던 구청와대 건물은 199311월 철거되었는데, 1989년에 집무실과 관사를 분리하면서 구 청와대 본관을 역대 대통령의 기념관 및 박물관으로 보존하자는 일부 의견도 있었으나,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국민의 자긍심을 되살린다는 의미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철거하게 된 것이다.

 

철거 뒤 그 자리를 옛 모습대로 복구시킨 뒤 옛날 경복궁을 지키던 수궁들이 있었다 하여 지금은 수궁터라 부르게 된 것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여기서 '청와대 관람(정문-영빈관-대정원-청와대 본관-불로문-수궁터-인수문/관저-침류각-상춘재-녹지원-헬기장-춘추관-춘추문) - 1부'를 마치고...

 

'청와대 관람(정문-영빈관-대정원-청와대 본관-불로문-수궁터-인수문/관저-침류각-상춘재-녹지원-헬기장-춘추관-춘추문)을 다녀오다'

 

▣ 1부[영빈관 정문청와대 정문영빈관대정원본관불로문본관터인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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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인수문관저침류각상춘재녹지원헬기장춘추관춘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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