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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동양고전

논어(論語) 명언 ㄷ ㄹ ㅁ ㅂ

by 맥가이버 Macgyver 2005. 2. 21.
 

논어(論語) 명언 ㄷ ㄹ ㅁ ㅂ  

 

닭을 잡는 데 어째 소를 잡는 큰 칼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 일의 대소, 나라의 대소에 따라서 처리하는 인재도 적당하고 부적당한 자가 있다. -논어


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훌륭한 말을 한다. 그러나 입으로 훌륭한 말을 하는 자가 반드시 덕이 있는 자는 아니다. -논어


덕(德)이 있으면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는 법이다. 반드시 공명하는 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만일 외롭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다. -논어


도(道)가 없는 나라에서 부하고 귀하게 되는 것은 사람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논어


도(道)가 행해지고 있는 사회라면 나와서 활동하겠지만 도가 없는 사회라면 오히려 숨어서 사는 것만 못하다. -논어


도리에 맞는 말을 한다면 혹은 군자를 속일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도리에 벗어난 것으로 군자를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논어


도리에 어긋나는 약속은 해서 안 된다. 그것은 이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자(有子)가 한 말. -논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가르침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입에서 낼 때에는 참으로 납득한 것만으로 하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것은 입 밖으로 내는 것을 삼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난을 적게 받게 되는 것이다. -논어


마음은 얼굴에 나타나는 것이다. 얼굴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서 신의의 사람, 성실한 사람에게 가까이 할 수가 있는 것이고, 거짓인 사람은 멀리 떠나게 되고 진실한 사람이 내게 가까이 오게 된다. 증자(曾子)가 한 말. -논어


만일 나를 등용해 써 주는 자가 있다면, 문왕(文王)이나 무왕(武王)처럼 성군이 있던 서주(西周)에 비길 만한 훌륭한 정치를 동주(東周)에도 실현시켜 보겠다. -논어


만일 천하 만민이 곤궁에 빠지게 된다면 모처럼 하늘이 주신 왕위(王位)도 영구히 잃고 말 것이다. 요(堯) 임금이 순(舜) 임금에게 해준 말. -논어


말보다는 실행이 중요하다. 실행은 민첩하게 하고 말은 신중하게 하라. -논어


말을 입 밖에 내는 데에는 비루하고 사리에 어긋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야비하고 비도(非道)한 자는 스스로 멀리 갈 것이다. 증자(曾子)가 한 말. -논어


말이라는 것은 그것이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논어


말이라는 것은 의사가 정확하게 상대에게 전달만 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쓸데없이 수식하거나 중언부언하고 길게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논어


말이 성실하고 믿을 수가 있고 행동이 진실하고 조심스러우면 야만 미개인의 나라에서라 할지라도 행해질 것이다. -논어


매일 자기를 반성하여 자기의 부족한 점, 알지 못한 점을 발견하여 배우도록 힘쓴다. 이것이 호학(好學)하는 사람이다. -논어


맨손으로 범에게 달려들고 황하를 맨발로 건너며 죽어도 뉘우침이 없는 사람과 나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어려운 일을 당해서 두려워하고 미리 계획해서 성공하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행동을 함께 할 것이다. 자로(子路)가 선생께서 삼군(三軍)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느냐고 물은 데 대한 공자가 답한 말. -논어


먼 앞길, 넓게, 깊은 헤아림이 없으면 반드시 몸 가까운 일에 근심할 일이 생기는 법이다. -논어


먼저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다음 그 사람의 행동의 동기를 관찰하고 다시 그 사람이 그 행위에 안정하고 있는가를 살핀다. 이 세 가지를 보면 반드시 그 사람의 정체를 밝힐 수가 있는 것이다. -논어


먼저 널리 배우는 것이 좋다. 그러나 박식(博識)으로 만족해 있어서는 안 된다. 예(禮), 즉 실행으로써 그 지식을 요약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예(禮)는 이(履)이다. 사람이 밟고 가야 하는 행동. -논어


멀리 있는 공겅는 친구가 생각지도 않게 찾아왔다. 이 또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있을 수 있겠는가. -논어


모두가 물질적으로 평등한 생활을 하고 있으면 가난하다는 생각은 없는 것이다. -논어


모든 사람이 미워하고 있어도 반드시 자기 자신이 직접 확인한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있어도 반드시 자기 자신이 직접 확인한다. 세상의 평판만으로 인물을 평가하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논어


몸을 움직이는 데 있어서는 난폭하거나 교만한 티를 없애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난폭한 자나 교만한 자도 나에게 가까이 올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증자(曾子)가 군자가 도를 실천하는 데 있어 세 가지를 들어 말한 것. -논어


몸을 지니는 데 공손한 것은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적절한 예절이 없으면 심신이 피로해진다. 용기가 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예(禮)가 없으면 난폭한 자가 된다. -논어


문(文)은 닦아서 몸에다 수식한 후천적인 것이고 질(質)은 천성적으로 실질적인 것이다. 문과 질이 섞여서 조화를 이룬 연후에라야 군자라 할 수 있다. 수식적인 면과 실질적인 면이 반반으로 섞여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고 그 어느 쪽에 치우쳐도 군자라고 불리울 수는 없다. -논어


물욕에 동하지 않고 과단성있게 행동하고 꾸밈없이 소박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은 인자 그 자체는 아니지만 인자(仁者)에 가까운 사람이다. -논어


발분하면 열중해서 식사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러한 것을 즐거워하여 근심을 잊어 늙음이 닥쳐오리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 섭공(葉公)이 공자가 어떤 분인가를 물은 데 대해 자로(子路)가 대답한 말. -논어


배운 것을 항상 복습하고 연습하면 그 참 뜻을 알게 된다. 즉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 터득의 즐거움이야말로 배우는 것의 진정한 즐거움이다. -논어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에는 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골라서 일을 시키면 된다. 그렇게 하면 힘껏 노력하면서 원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논어


백성은 충분히 늘어 있고 또 부(富)해서 생활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이 위에 무엇을 할 것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다음은 백성을 교육하는 일이다. 염유(염有)의 물음에 공자가 답한 말. -논어


백성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이 걱정거리다. 그러나 위정자는 그런 걱정보다는 백성들이 안심하고 걱정없이 살고 있는가 어떤가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논어


백성이란 잘 이끌어서 당연한 이치에 따라서 행하도록 할 수는 있으나 그 이치를 다 이해시킬 수는 없다. -논어


백이(百夷)와 숙제(叔齊) 형제는 서산에 들어가서 굶어 죽었다. 그러나 모두 인(仁)의 도(道)를 구해서 인(仁)을 얻은 것인데 인간으로서 후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무엇을 원망하리오. -논어


법률 제일주의 하에서는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만다. 백성은 법에 저촉되지만 않으면 어떤 짓을 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법망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어떤 악한 짓을 범해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논어


봉황이여, 어떻게 해서 이처럼 덕이 쇠퇴했는가. 봉황은 세상에 도(道)가 행해지면 나타나고 그렇지 않으면 숨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도(道)를 잃어버린 이 때에 나타났다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봉황의 덕도 쇠한 것이구나. 세상을 구하고자 동분서주하는 봉황에 비유해서 그 태도를 풍자한 초(楚) 나라 은자(隱者) 접여(接與)가 한 말. -논어

 

부모를 섬길 때에는 기색(氣色)을 삼가지 않으면 효도를 할 수 없게 된다. 색(色)은 단지 얼굴색만이 아니고 태도, 언행 등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 -논어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 그것이 효도이다. 세상에서 부친이나 모친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내 자식의 질병이다. 자기의 부주의로 병에 걸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기질(其疾)을 부모의 질환으로 해석하고 부모의 병환에는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것이 효도라는 설도 있다. -논어


부친이 죽자 곧 부친이 하던 주의나 일상 생활을 변경해 버리는 것은 인정의 경박함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삼 년간 부친이 하던 그대로를 지킨다면 그것이야말로 효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


분수에 지나친다. 이런 것은 모두 예의가 아닌 것이다. 관혼상제 모두 사치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검소하게 하는 것이 예에 맞는 일이다. -논어


비록 가난하다고 해서 걱정할 것도 비관할 것도 없다. 목적을 가지고 살고, 믿음을 가지고 살고, 수양에 힘쓰고 하면 저절로 적극적인 인생의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논어


비록 이단(異端)의 설이나 쓸데없는 속설이라도 반드시 얻을 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설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결국은 진흙탕에 빠져서 꼼짝 못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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