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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충청 도보후기☞/☆ 춘천 의암호 일주

[스크랩] 춘천 의암호 50km 도보일주 --맥가이버 대장님--

by 맥가이버 Macgyver 2006. 12. 10.


 

비가 온다

오늘은 울트라  한강 100km와 강화도 100km 도보 걷기 이후 세번째로 참가하는 춘천 마라톤 코스 의암호 걷기 50km에 나서는 날이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쉽게 걷힐 것 같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으나 걱정하지 않는다.

비단 오우에 갠다는 일기예보가 아니라도

확신은 날씨까지도 좌지우지한다? 라고 생각하는 내 편한 마음은 전혀 걱정 속에 있지 않다.

사람이 어떤 일에 강한 확신을 가지면 모든 일이 순조로울거란 예감속에 두려움이 사라진다. 

아뭏튼

청량리역에서 만난 12명의 표정은 밝았다.

두번의 걷기 경험을 해본 나로서는 이 무모해 보이는 일이 얼마나 지루함과의 싸움이고,

머리속을 사정없이 파고드는 격심한  갈등과의 사투인지,

어느 순간 머릿속은 아무 생각 없이 텅 비고 다리는 저절로 움직이는 공황 상태를 이겨 내야하는 끈기와 인내심이 필요한지 조금은 알고 있다. 

부디 저 모든 분들이 12시간의 걷기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과,

겸허한 마음으로 내 자신을 이겨내어 보는 소중한 시간으로 삼으시길 희망해볼 뿐이었다.

 

기차는 하얀 눈꽃을 소복히 쓰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파노라마로 보여주며 강촌역에 다다랐다.

이제 시작이다.

아! 또 내 두 다리는 얼마나 크게 견뎌야 할 것이며, 12시간 후에 이 곳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그러나 난 안다.

12시간후 내 자신은 좀 더 이겨내는 법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며

좀 더 단단해져 있을 것이라는 것을...

강촌역에서 의암댐까지 4km여 명랑한 담소들을 나누며 즐겁게 출발했다.

비는 개이고 호수는 아름다웠다.

물안개가 산 마루를 휘감아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 했고

잔잔한 호수에 비친 겨울나무들의 모습은 아름다운 영상이 되어 비갠 아침의 촉촉함을 더해 주었다.

맥가이버 대장님의 시간예정대로라면 점심으로 1시간여를 보내면 시간이 빠듯할 거라시며 그래서 행동식을 하여야 할 거라 하셨는데

모두들 점심을 먹기를 원하여 최소한의 시간을 할애하며 점심을 먹었다. 

출발 한지 2시간 30분쯤 지나서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두들 점심먹은 기운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뎓다.

이젠 호수가 보이지 않는 마을길로 간다.

세상 모든 것은 참 조화롭다.

호수만 바라보고 가는 아름다운 권태로움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준다.

춘천댐이 저 멀리 보인다.

하늘은 넘어가는 햇살이 터진 구름사이로 내비치며 황금빛 구름을 만든다.

다리 뒤쪽이 당기기 시작한다.

고작 5시간여에...

물집이 걱정되어 발은 밴드로 거의 미이라처럼 감쌌더니 끄덕 없다.

한번 두번 거듭됨에 내 관리법도 노하우가 생겨난다.

모두들 조금씩 힘든 기색이 보인다.

춘천댐 앞에서 잠깐 기념사진 후 다시 출발이다.

점점 어둠이 내리고 하나둘 불빛이 늘어난다.

이윽고 춘천시내에 들어서 소양강처녀 전망대앞에 다달았다.

출발한지 9시간여 지났다. 점심먹은 것 말고는 쉼없이 걸었다.

이 즈음엔 여기가 목적지였으면 하는 턱없는 소망이 생길 만큼 지쳐들 있다.

3시간여를 더 가야함이 까마득해진다.

대장님 시간이 빠듯하다고 하신다.

역시 점심 먹은 시간만큼이 촉박하다.

대장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고 누군가 말한다.

정확한 시간계산에 탄복한다.

모두들 불안함에 내다르기 시작한다.

다리가 돌덩이처럼 조여온다. 근육 군데군데가 서로엉켜드는 듯 발걸음 떼기가 힘들다.

걸어야 한다.내가 선택한 과제이기 때문에...

 

동화작가 정채봉님의 글이 떠 오른다.

 

'자신의 인생은 당신 자신의 것입니다.

아주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부터

자신의 잣대로 결정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결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또한 당신 자신이 온전히 책임져야합니다.'

 

내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기 위해

힘겹다는 생각들을 버리고 마음을 가볍게 했다.

마음이 가벼우니 다시 걷는 자세가 갖추어진다.

이젠 고정적인 발걸음으로 마음 속 리듬에 따라 집중하여 걷는다.

 

도선님이 말씀하신다.

누가 대신 걸어 주지 않는다고...어차피 내가 걸어야 하는 거라면 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이 즈음에는 모두 말을 잃는다.

묵묵히 걸을 뿐이다.

각각 생각에 빠진다.

어떤이는 '이 터무니 없는 일을 내가 왜 하고 있을까?' 라는 회의가 들지도 모른다

또 어떤이는 '다시는 이런 무모한 일은 하지 않으리' 라고 다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러했던 것 처럼.

그러나 난 알고 있다.

다음날 내가 한 이 의미 없어 보이는 단순한 행위가  얼마나 내 자신을 감동시키는지를...

강촌역이 빤이 보인다.

걸어도 걸어도 불빛은 그자리에 있는 듯 닥아 오지 않는다.

아예 발 끝을 보자

그러다 보면 저 곳에 다다르겠지.

상황은 항상 견딜 수 없을 만큼이 되면 끝난다.

주저 앉고 싶을 때 강촌역에 도착했다.

선두가 9시 45분 이었다.

10시 2분 열차에 환상적으로  맞추어 도착했다.

이젠 이런 아슬아슬함에 희열을 느끼는 법도 터득했다.

모두들 아름다운 완주를 이루어냈다.

지금은  비록 일으켰다 구부렸다가 자유롭지 못한 무거운 몸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해낸 이 행위가 소중한 가치가 되어 붙들고 싶은 기억이 될 것이라 믿는다.

함께하신 모든 분들 반가웠습니다.

다음에 또 뵙기를 희망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출처 : 4050아름다운산
글쓴이 : 노랑국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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