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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후기☞/♣ 북한산성

[20070606]현충일에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를 다녀오다 - 4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07.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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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06일(수) 현충일에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를 다녀오다.

 

오늘은 지난 2005년 6월 6일에 '북한산성 16성문 순례'를 다녀왔던 코스 그대로 다녀왔다.

님들은 바뀌어 그때 함께 했던 님들은 아무도 없지만 새로운 님들과 또다른 느낌으로 또다른 풍광을 보면서 다녀온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날씨는 예상과 달리 하늘은 구름이 두텁게 드리웠고, 바람또한 시원하게 불어 하루종일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진행되다가 여정의 후반부에는 운무가 산자락을 넘어다니면서 산을 감싸고 풀어헤치고를 반복하여 감탄을 주더니, 또 말미에는 용출봉 너머로 아름다운 낙조를 선물하여 일행들을 기쁘게 하였다.

모든 여정을 행운 속에 진행하며 안전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기에 함께 한 님들께 감사를 전한다.

 

북한산성 16성문의 순례 순서는 산성 입구에서 시계방향으로

01수문→02서암문(시구문)→03북문→04위문(백운봉 암문)→05용암문(용암봉 암문)

→06대동문07보국문→08대성문→09대남문→10청수동 암문→11부왕동 암문

→12가사당 암문→13중성문→14중성 시구문→15중성 수문→16대서문 순이다.

 

 

※ 북한산성 16성문에 대하여 

 

북한산성 축성은 숙종 37년(1711) 4월 3일에 많은 논란 끝에 착수되었다.

 

축성은 놀라울 정도로 신속히 진행되어 불과 6개월만인 그해 10월 19일

백운봉, 만경봉, 용암봉, 문수봉, 의상봉, 원효봉, 영취봉(염초봉)등

북한산의 연봉을 연결하는 석성을 완료하였으며, 길이는 21리 60보에 이르렀다.

 

이렇게 단기간에 대규모의 축성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직전에 도성을 수축한 경험이 있었고,

농번기나 장마철에도 중단 없이 공사를 강행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당시 창궐했던 해적의 침략에 대비해서도 한시가 급했고,

 

드러내 놓고 도성 옆에 대규모 성곽을 쌓는 일도

청(淸)에 빌미를 잡힐 꼬리가 될지 몰라 지체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이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이 기간동안 도성의 백성들은 먹을 것을 갖고 집집마다 한두 명씩 축성에 참여하였으니,

북한산성은 한양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되었다.

 

한편 축성 현장을 보고 싶어하던 숙종은 성곽이 준공되고 행궁의 영건도 거의 마무리 된

숙종 38년(1712) 4월 10일 드디어 북한산성 시찰길에 나섰다.

 

전란 대피용인 북한산성은 이후 한번도 왕이 행차한 일이 없었다고 한다.


북한산의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어김없이 성문(城門)을 만나게 된다.
 

숙종 37년 축성 당시 수문(水門), 서암문(西暗門), 북문(北門),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 용암봉암문(龍巖峰暗門), 소동문(小東門), 동암문(東暗門), 대동문(大東門), 소남문(小南門),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 대서문(大西門) 등 13개의 성문을 만들었다.

 

그 후 숙종 40년에는 취약지점에 대한 보완공사 때 중성(重城)을 쌓으면서, 중성문(中城門), 시구문(尸柩門), 수문(水門)을 추가로 만들어 성문의 수는 모두 16개에 이르렀다.

 

현재 대서문, 북문, 중성문 정도만 본래의 이름대로 불려지고 있는 반면에

서암문은 시구문으로, 백운봉암문은 위문으로, 용암봉암문은 용암문으로,

소동문은 대동문으로, 동암문은 보국문으로, 대동문은 대성문으로,

소남문은 대남문으로, 부왕동암문은 원각문으로, 가사당암문은 국녕문으로

불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서암문이 시구문으로 불리는 이유는

성내에서 발생한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라 하여 그렇게 불렸고,

나머지 보국문, 원각문, 국녕문이라는 별칭은

가까이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문은 홍예 형식에 유축을 갖춘 채 문루가 있는 큰 문과,

문루도 없이 성벽 높이에 맞추어 조그맣게 맞춘 암문(暗門),

그리고 수문(水門)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문루가 있는 큰 성문에는 대서문, 북문, 대동문, 대성문, 대남문, 중성문이 있고,

암문(暗門)에는 서암문(산성 시구문), 위문, 용암문, 보국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 중성의 시구문이 있고, 

수문(水門)에는 산성 수문과 중성 수문이 있다. 

 

 

 ☞ 4부를 시작하며...

 
▼ 청수동암문에서 운무에 싸인 님들...

 

▼ 성곽을 따라 715.7봉으로 오르고...

 

▼ 짙은 운무가 님들을 감싸고...

 

▼ 하늘이 열리는 저곳은...

 

▼ 715.7봉

 

▼ 이제 나한봉을 향해 짙은 운무를 헤치고 715.7봉을 내려서는데...

 

▼ 갑자기 운무가 걷히더니 나한봉을 살짝 보여주고...

 

▼ 다시 운무에 싸였다가 다시 나타나고...

 

▼ 나월봉까지...

 

▼ 멀리 용출봉까지... 

 

▼ 나한봉에 올라...

 

▼ 이제 나월봉을 향해...

 

▼ 다시 운무가 걷히고 멋진 풍광이 드러나는 곳에서...

 

▼ 나월봉에서 용출봉까지...

 

 

 

▼ 모진 환경에서도 푸른 잎을 틔우고...

 

▼ 나월봉

 

 

▼ 나월봉 위험구간은 우회하여...

 

▼ 나월봉 바위골짜기로 오르고...

 

 

 

 

  

 

 

 ▼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이...

 

 

▼ 용출봉 위로는 붉은 구름이...

 

▼ 용출봉 위로...하늘은 뭔가를 보여줄 듯....

 

▼ 나월봉 북쪽 우회로에서...

 

▼ 잠시 간식을 먹으며...

 

▼ 운무가 살짝 걷힌 백운대 방향은...

 

▼ 나월봉을 내려서고...

 

▼ 급경사길을...

 

▼ 난간을 잡고...

 

▼ 성곽을 따라...

 

 

▼ 저기는... 

 

▼ NO.11 부왕동 암문에서...

 

▼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
나월봉(蘿月峯)과 증취봉(甑炊峯) 사이 산 능선 해발 521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7개 암문(暗門)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정식 홍예(虹霓)는 아니지만 위쪽 성돌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虹霓門)처럼 만든 아름다운 성문이다.

홍예에는 희미하게 '소남문'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 암문(暗門)은 처음에는 소남문(小南門)으로 불리웠던 것으로 추정되며, 근처에 원각사(圓覺寺)가 있었기 때문에 원각사암문(圓覺寺暗門)이라고도 불리우기도 했다. 

그리고 부왕동(扶旺洞)이란 이름은 성안 동쪽에 있는 부왕사(扶旺寺)로 내려가는 계곡 일대를 일컫던 이름으로 보인다.

암문중 제일 규모가 커서 폭은 16~54㎝, 높이는 53~81㎝ 차이를 보여 폭이 2.54m, 높이가 2.83m에 이르고 있다.

 

▼ 이제 증취봉으로...

 

▼ 증취봉 아래 바위식당...

 

▼ 또다시 손가락 하나로 바위를 드는 괴력을...

 

▼ 증취봉을 오르는 님들...

 

▼ 오르다가 백운대 방향을 보니...

 

▼ 비봉능선과 매봉능선이 만나는 곳에는 사모바위가...

 

▼ 지나온 나월봉이...

 

▼ 증취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가 이 바위로 인해... 

 

▼ 용출봉 위로 낙조와 노을이...

 

 

 

 

 

    

 

 

 

 

 

 

 

 ▼ 백운대 방향은...

 

 ▼ 좀더 진행하여 보니...

 

 

 ▼ 용혈봉에서...

 

 ▼ 낙조는 사그러지고...

 

 

 ▼ 다시 백운대를 바라보니...

 

 ▼ 용출봉과 의상봉

 

 ▼ 동자승바위

 

 ▼ 님들 옆에는...

 

 ▼ 자명해인대(紫明海印臺)

  

 ▼ 백운대 방향도 붉게 물들어...

 

 ▼ 용출봉 오르는 철계단

 

  ▼ 용출봉 정상

 

 ▼ 서쪽하늘은...

 

▼ 의상봉 너머로 산들이...

 

▼ 서쪽하늘은...

 

 ▼ 엄마코끼리바위

 

 ▼ 아기코끼리바위

 

 ▼ 간식을 먹고...

 

▼ 여기는...

 

▼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
의상봉(義相峯)과 용출봉(龍出峯) 사이 산능선 해발 488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서 부근 산성안에 국녕사(國寧寺)가 있다고 하여 국녕문(國寧門) 또는 국녕사암문(國靈寺暗門)으로도 불리웠다.

 

 ▼ NO.12 가사당 암문에서...

 

 

▼ 이제 국녕사로...

 

▼ 국녕사 대웅전

 

▼ 국녕사 좌불

 

▼ 국녕사 좌불 아래에서...

 

▼ 어둠으로 각도를 제대로 잡지 못해서...좌불을 떠받치는 모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 다시 했지만 마찬가지...밝을 때 와서 다시 해보기로...

 

▼ 법용사 앞에 도착하여... 

 

▼ 중성문을 향해 계곡을 따라 올라가서...

 

 중성문(中城門)
중성문은 서쪽의 비교적 낮은 지역에 위치한 대서문이 함락되었을 때, 제 2의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하여 의상봉(義相峯)과 원효봉(元曉峯)
사이의 협곡에 축조한 성문이다.

전면의 성곽은 북한산성 축성 다음해인 숙종 38년(1712년) 산성수비 봉한대책의 일환으로 축조한 중성이다.

당시 별도의 중성을 축조한 이유는 지형이 평탄하고 취약한 대서문 방면이 적에게 뚫리더라도 병목과 같은 이 일대 계곡을 차단하여 행궁, 유영, 창고 등 성내 시설물과 인명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성곽의 규모는 영취봉과 증취봉 방향으로 약 200m에 달하며 성문으로 홍예 형태의 중성문과 그 외에 시구문, 수문을 건립하였다.

중성문의 당층문루는 19세기 말, 수문은 1915년 8월의 홍수에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산성주차장 일대에서 산성안 중심부에 위치한 중흥동 계곡을 향하여 오르는 중간 지대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성문(中城門)은 1998년 문루를 올리고 성벽도 말끔히 복원했다.

 

▼ NO.13 중성문에서... 

 

▼ 중성 시구문으로...

 

▼ NO.14 중성 시구문에서...

 

▼ NO.15 중성 수문에서...

 

▼ 중성 수문이 있던 곳에서 탁족을...

 

▼ 큰 바위덩어리를 각지게 깍아서 중성 수문의 성돌을 올렸던 흔적...

 

▼ 탁족을 마치고 중성 시구문을 통과하면서...

 

▼ 다시 법용사 앞길을 지나...

 

▼ 무량사 앞을 지나...

 

▼ 가로등

 

 ▼ 대서문에 도착하여...

 

 ▼ 대서문(大西門)
의상봉(義相峯) 서북쪽 해발 150m 높이의 낮은 구릉지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성문 中 동서남북, 4개 방위 中 서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인 동시에 북한산성의 정문(正門)으로써
군사상 적(당시 청, 왜)의 목표가 되기 쉬운 취약지이기도 하였다.

대서문은 홍예식에 문루를 갖추고 있다. 현재 문루는 복원된 반면 문짝과 문루 양편의 협문 그리고 담은 아직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용마루와 추녀마루의 일부가 폭풍우로 떨어져 나가는 등 훼손되고 있어 최근 부분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또한 육축은 무사석(무사석)으로 정교하게 수축하였으나 전쟁의 상처로 보이는 흔적이 있으며, 내부에는 차량 진동으로 인하여 벽석이 균열되는 등 파손이 심화되고 있다.

육축위에는 몸을 숨기고 총포를 쏠 수 있는 문루여장 전면에 10개 두었는데, 일반 성벽의 여장과는 달리 한 덩어리의 화강암으로 된 평여장이며, 총구가 아래로 향한 근총안을 1개씩 둔 것이 독특하다.
이 문은 성내 북한리 주민들이 대대로 이용하던 애환이 깃들인 문으로 50년대까지만 해도 나무를 하여 달구지에 싣고 새벽같이 이 문을 통하여 서대문 영천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또한 이 일대는 살구나무가 많아 이른 봄철이면 화사한 살구꽃을 보기 위해 상춘객들로 붐비었으며 성곽을 배경으로 한 풍경이 아름다워 문인, 화가 등 예술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지금의 문루(門樓)는 1958년에 당시 경기도 지사였던 최헌길이라는 분의 주도로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 NO.16 대서문에서...

 

  

 ▼ 연신내역 부근 음식점에서 뒤풀이...

 

☞ 이것으로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를 마친다.

  

 

 '2007년 6월 06일(수)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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