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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후기☞/♣ 북한산성

[20100606]현충일에 다녀온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 - 2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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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06월 06일(일)  
현충일에 다녀온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를 다녀오다
   
  맥가이버의 '현충일에 다녀온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 이야기 

 

  '현충일에 다녀온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 코스 
 
구파발역→북한산성 입구→북한산성 탐방안내소→1수문지→2서암문(시구문)→원효암→전망바위→원효봉→3북문→상운사
→대동사→약수암→4백운봉암문(위문)→노적봉안부→5용암봉암문(용암문)→북한산대피소→동장대→6대동문→칼바위 갈림길
→7보국문→8대성문→9대남문→문수봉→10청수동암문→715.7봉→나한봉→나월봉→11부왕동암문→증취봉→용혈봉→용출봉
→12가사당암문→국녕사→법용사→13중성문→14중성 수문→15중성 시구문→16대서문→북한산성 탐방안내소→구파발역

 

  

 

※ 북한산성 16성문에 대하여 

 

북한산성 축성은 숙종 37년(1711) 4월 3일에 많은 논란 끝에 착수되었다.

 

축성은 놀라울 정도로 신속히 진행되어 불과 6개월만인 그해 10월 19일 백운봉, 만경봉, 용암봉, 문수봉, 의상봉,

원효봉, 영취봉(염초봉) 등 북한산의 연봉을 연결하는 석성을 완료하였으며, 길이는 21리 60보에 이르렀다.

 

이렇게 단기간에 대규모의 축성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직전에 도성을 수축한 경험이 있었고,

농번기나 장마철에도 중단 없이 공사를 강행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당시 창궐했던 해적의 침략에 대비해서도 한시가 급했고,

드러내 놓고 도성 옆에 대규모 성곽을 쌓는 일도 청(淸)에 빌미를 잡힐 꼬리가 될지 몰라 지체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이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이 기간동안 도성의 백성들은 먹을 것을 갖고 집집마다 한두 명씩 축성에 참여하였으니,

북한산성은 한양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되었다.

 

한편 축성 현장을 보고 싶어하던 숙종은 성곽이 준공되고 행궁의 영건도 거의 마무리 된

숙종 38년(1712) 4월 10일 드디어 북한산성 시찰길에 나섰다. 

전란 대피용인 북한산성은 이후 한번도 왕이 행차한 일이 없었다고 한다.


북한산의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어김없이 성문(城門)을 만나게 된다.
 

숙종 37년 축성 당시 수문(水門), 서암문(西暗門), 북문(北門),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 용암봉암문(龍巖峰暗門),

소동문(小東門), 동암문(東暗門), 대동문(大東門), 소남문(小南門),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 대서문(大西門) 등 13개의 성문을 만들었다.

 

그 후 숙종 40년에는 취약지점에 대한 보완공사 때 중성(重城)을 쌓으면서,

중성문(中城門), 시구문(尸柩門), 수문(水門)을 추가로 만들어 성문의 수는 모두 16개에 이르렀다.

 

현재 대서문, 북문, 중성문 정도만 본래의 이름대로 불려지고 있는 반면에 서암문은 시구문으로, 백운봉암문은 위문으로,

용암봉암문은 용암문으로, 소동문은 대동문으로, 동암문은 보국문으로, 대동문은 대성문으로, 소남문은 대남문으로,

부왕동암문은 원각문으로, 가사당암문은 국녕문으로 불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서암문이 시구문으로 불리는 이유는 성내에서 발생한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라 하여 그렇게 불렸고,

나머지 보국문, 원각문, 국녕문이라는 별칭은 가까이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문은 홍예 형식에 유축을 갖춘 채 문루가 있는 큰 문과,

문루도 없이 성벽 높이에 맞추어 조그맣게 맞춘 암문(暗門),

그리고 수문(水門)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문루가 있는 큰 성문에는 대서문, 북문, 대동문, 대성문, 대남문, 중성문이 있고,

암문(暗門)에는 서암문(산성 시구문), 위문, 용암문, 보국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 중성의 시구문이 있고, 

수문(水門)에는 산성 수문과 중성 수문이 있다.  


바로 아래에 있는 작은 사진을 클릭하시면
2007년 6월 06일(수) 현충일에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를 다녀와서 작성한 산행후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2007년 6월 6일 현충일에 다녀온 이후 3년만에 다시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를 나선다.

구파발역 1번 출구에서 모여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입구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북한산성 탐방안내소를 지나 수문지로 향한다.
  
'현충일에 다녀온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풍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또한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현충일에 다녀온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 - 2부를 시작하며...








▼ 10시 14분 - 원효봉에서 주변 경관을 둘러보고...

 

 

▼ 10시 15분 - 북문을 향해 내려서고...

 

 

 

 

 

▼ 10시 19분 - 북문에 도착...

 

 

▼ 북문은 원래 문루가 있었으나 현재는...

 

▼ 북문(北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 中 북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원효봉(元曉峰)과 영취봉(靈鷲峰-현재 염초봉의 본래 이름) 사이의 해발 430m 지점 안부(鞍部)에 위치한 당초 홍예식에 문루를 갖춘 큰문으로 축조되었다.

문루는 오래 전에 소실된 채 육축상단을 마감한 장대석은 전부 무너져 내리고 홍예돌 윗부분이 완전 노출된 채 균열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상부의 초석도 절반은 없어지고 5개만 위험한 상태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1988년 큰비에 육축을 포함한 성벽이 15m가 무너져 성문 자체를 크게 위협하고 있는 바 대책이 절실하다.

 

 

▼ 잠시 휴식과 간식시간을 갖고...

 

▼ 10시 39분 - 이제 상운사를 향해...

 

 

▼ 10시 44분 - 바위 틈으로...

 

 

 

 

 

 

▼ ?

 

 

 

 

▼ 10시 54분 - 상운사에 도착...

 

▼ 상운사

 

▼ 상운사(祥雲寺)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를 이루는 북한산 원효봉(元曉峰) 남쪽 중턱에 있다.

신라 때 원효(元曉:617∼686)가 삼천사(三千寺)와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조선 중기 이후 승병들이 머물렀던 절이다.

1722년(조선 경종 2) 승병장 회수(懷秀)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노적사(露積寺)로 바꾼 것을 1813년(순조 13) 승병장 태월(太月)과 지청(智廳)이 중건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1864년(고종 1) 긍홍(亘弘)이 극락전을 중건하고, 1898년 한암(漢庵)이 큰방을 중건하였으며, 1912년 주지 법연(法延)과 덕산(德山)이 법당을 중수하였다.

이후 1980년대에 법당을 중건하고 요사채를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범종각·요사채 2동이 있고, 유물로는 고려 중기에 제작된 석탑과 석등 부재가 남아 있다.

그 중 석탑은 기단부와 1층 탑신만 전한다. 절 뒤에는 원효가 좌선하였다는 바위가 있다.

 

 

 

▼ 11시 11분 - 휴식과 물을 공급 받고 대동사로 가는 길...

 

 

 

▼ 11시 13분 - 대동사

 

 

 

 

 

▼ 11시 14분 - 백운대 1.4km를 지나면서 이후 한동안 계속되는 돌계단 오름길...

 

 

 

 

 

 

 

 

▼ 11시 30분 - 공터에 도착하여...

 

 

▼ 11시 34분 - 약수암을 향하여...

 

 

 

 

▼ 11시 40분 - 약수암 위 공터에서...

 

 

 

▼ 12시 38분 - 점심식사와 휴식을 마치고 위문을 향하여...

 

▼ 다시 위문까지 한동안 오름이 계속되고...

 

 

 

▼ 12시 54분 - 위문 아래 만경대 갈림길 데크에 도착...

 

▼ 12시 55분 - 위문으로...

 

 

 

 

▼ 12시 57분 - 위문(衛門) - 정확한 본래 이름은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으로 백운대와 만경대사이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는 위문(衛門)이라 일컫는데, 일제시대 때부터 그렇게 불리어 왔다고 한다.

 

 

▼ 스타바위

 

▼ 13시 00분 - 위문에서 용암문을 향하여...

 

▼ 13시 02분 - 만경대 갈림길 이정목에는...

 

 

 

▼ 백운대를 올려다보니...

 

 

 

 

 

 

 

 

▼ 노적봉 

 

▼ 의상봉과 원효봉

 

▼ 13시 15분 - 잠시 휴식과 조망을 위해...

 

▼ 13시 37분 - 용암문을 향해...

 

 

▼ 13시 52분 - 노적봉 안부

 

 

▼ 주먹바위

 

 

 

 

 

 

▼ 14시 06분 - 용암문에 도착...

 

▼ 龍岩門 - 원래명은 龍 岩 峰 暗 門인데...

무인대피소인 지금의 북한산대피소 부근 용암봉 기슭 해발 58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선사로 내려설 수도 있고, 옛날에는 중흥사, 태고사로 통하는 길목이기도 했다. 한편, 부근에는 과거 이 일대 수비를 담당하던 용암사(龍岩寺)가 있었으나, 지금은 폐사되어 무너진 탑과 석축이 남아 있으며, 현재 그곳에 북한산 무인대피소가 자리하여 많은 등산객들이 휴식하는 곳이다. 

 

▼ 14시 09분 - 북한산 대피소를 향해 출발...

 

 

▼ 14시 09분 - 북한산 대피소에 도착...  

 

 

▼ 14시 24분 - 휴식을 마치고... 

 


☞ 여기서 '현충일에 다녀온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 - 2부를 마치고...

 

 

 

2010년 06월 06일(일)
'현충일에 다녀온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를 다녀오다 

   

-▥☞ 1부[북한산성 탐방안내소→수문지→서암문(시구문)→원효암→전망바위→원효봉]는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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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부[북한산 대피소→동장대→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문수봉→청수동 암문→715.7봉]는 여기를 클릭.☜▥-

 

-▥☞ 4부[715.7봉→나한봉→나월봉→부왕동 암문→증취봉→용혈봉→동자승 바위→자명해인대→용출봉]는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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