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06일(수) 현충일에 북한산성 16(14+2)성문 순례를 다녀오다.
오늘은 지난 2005년 6월 6일에 '북한산성 16성문 순례'를 다녀왔던 코스 그대로 다녀왔다.
님들은 바뀌어 그때 함께 했던 님들은 아무도 없지만 새로운 님들과 또다른 느낌으로 또다른 풍광을 보면서 다녀온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날씨는 예상과 달리 하늘은 구름이 두텁게 드리웠고, 바람또한 시원하게 불어 하루종일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진행되다가 여정의 후반부에는 운무가 산자락을 넘어다니면서 산을 감싸고 풀어헤치고를 반복하여 감탄을 주더니, 또 말미에는 용출봉 너머로 아름다운 낙조를 선물하여 일행들을 기쁘게 하였다.
모든 여정을 행운 속에 진행하며 안전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기에 함께 한 님들께 감사를 전한다.
북한산성 16성문의 순례 순서는 산성 입구에서 시계방향으로
01수문→02서암문(시구문)→03북문→04위문(백운봉 암문)→05용암문(용암봉 암문)
→06대동문→07보국문→08대성문→09대남문→10청수동 암문→11부왕동 암문
→12가사당 암문→13중성문→14중성 시구문→15중성 수문→16대서문 순이다.
※ 북한산성 16성문에 대하여
북한산성 축성은 숙종 37년(1711) 4월 3일에 많은 논란 끝에 착수되었다.
축성은 놀라울 정도로 신속히 진행되어 불과 6개월만인 그해 10월 19일
백운봉, 만경봉, 용암봉, 문수봉, 의상봉, 원효봉, 영취봉(염초봉)등
북한산의 연봉을 연결하는 석성을 완료하였으며, 길이는 21리 60보에 이르렀다.
이렇게 단기간에 대규모의 축성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직전에 도성을 수축한 경험이 있었고,
농번기나 장마철에도 중단 없이 공사를 강행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당시 창궐했던 해적의 침략에 대비해서도 한시가 급했고,
드러내 놓고 도성 옆에 대규모 성곽을 쌓는 일도
청(淸)에 빌미를 잡힐 꼬리가 될지 몰라 지체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이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이 기간동안 도성의 백성들은 먹을 것을 갖고 집집마다 한두 명씩 축성에 참여하였으니,
북한산성은 한양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되었다.
한편 축성 현장을 보고 싶어하던 숙종은 성곽이 준공되고 행궁의 영건도 거의 마무리 된
숙종 38년(1712) 4월 10일 드디어 북한산성 시찰길에 나섰다.
전란 대피용인 북한산성은 이후 한번도 왕이 행차한 일이 없었다고 한다.
북한산의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어김없이 성문(城門)을 만나게 된다.
숙종 37년 축성 당시 수문(水門), 서암문(西暗門), 북문(北門),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 용암봉암문(龍巖峰暗門), 소동문(小東門), 동암문(東暗門), 대동문(大東門), 소남문(小南門),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 대서문(大西門) 등 13개의 성문을 만들었다.
그 후 숙종 40년에는 취약지점에 대한 보완공사 때 중성(重城)을 쌓으면서, 중성문(中城門), 시구문(尸柩門), 수문(水門)을 추가로 만들어 성문의 수는 모두 16개에 이르렀다.
현재 대서문, 북문, 중성문 정도만 본래의 이름대로 불려지고 있는 반면에
서암문은 시구문으로, 백운봉암문은 위문으로, 용암봉암문은 용암문으로,
소동문은 대동문으로, 동암문은 보국문으로, 대동문은 대성문으로,
소남문은 대남문으로, 부왕동암문은 원각문으로, 가사당암문은 국녕문으로
불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서암문이 시구문으로 불리는 이유는
성내에서 발생한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라 하여 그렇게 불렸고,
나머지 보국문, 원각문, 국녕문이라는 별칭은
가까이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문은 홍예 형식에 유축을 갖춘 채 문루가 있는 큰 문과,
문루도 없이 성벽 높이에 맞추어 조그맣게 맞춘 암문(暗門),
그리고 수문(水門)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문루가 있는 큰 성문에는 대서문, 북문, 대동문, 대성문, 대남문, 중성문이 있고,
암문(暗門)에는 서암문(산성 시구문), 위문, 용암문, 보국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 중성의 시구문이 있고,
수문(水門)에는 산성 수문과 중성 수문이 있다.
☞ 3부를 시작하며...
▼ 대동문(大東門) 문루에는...
▼ 대동문(大東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 中 동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우이동의 소위 '진달래능선'이 시작되는 해발 540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서문과 같은 큰문이다. 지금의 문은 1993년에 문루(門樓)를 갖추는 등 화려하게 복원되었다.
대동문은 산성을 지키는 삼군의 하나인 금위영 본부 자리다. 대동문이 지키고 선 고갯마루 일대를 옛날에는 석가령이라고 했다고 한다.
대동문의 현판 글자는 북한산성을 쌓은 숙종왕의 어필을 집자한 것이라고한다.
▼ NO.06 대동문에서...
▼ 보국문을 향해...
▼ 성곽을 따라...
▼ 저기는 칼바위봉으로 가는 길목...
▼ 칼바위봉
▼ 여기는 산성의 방어를 위한 치(雉)
▼ 치(雉)란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성곽 시설물.
▼ 치에서 바라본 칼바위봉 위에는 어떤 이가...
▼ 송화를...
▼ 다시 성곽을 따라...
▼ 조금 내려서고 많이 오르기를...
▼ 앞에 보이는 구조물은 보국문...
▼ NO.07 보국문에서...
▼ 보국문(輔國門)
본래 이름은 동암문(東暗門)으로 대동문과 대성문 사이의 해발 567m의 높은 지점에 위치하여 정릉을 내려다보고 있다.
성문 아래에 보국사(輔國寺)가 있었다고 하여 현재 보국문(輔國門)이라 불리우고 있다.
▼ 다시 성곽을 따라 오르고...
▼ 또 오르고...
▼ 또 올라...
▼ 전망터에서...
▼ 백운대 방향을 바라보니...
▼ 지나온 성곽길
▼ 다시 오르니...
▼ 또다른 치(雉)가...
▼ 치에서 바라보니...
▼ 형제봉이...
▼ 가야할 능선
▼ 성곽을 따라 오르고...
▼ 올라서서...
▼ 뒤돌아 보니...
▼ 잠시 내려서고...
▼ 내려서다가...
▼ 다시 오르고...
▼ 라일락? 정향나무?
▼ 대성문 문루가 보이고...
▼ 대성문(大城門)
보현봉(普賢峯) 동북쪽 형제봉을 거쳐 보토현봉으로 이어지는 해발 625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성문으로는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서 가장 큰 문이다.
원래 처음에는 소동문(小東門)으로 불리우는 작은 암문(暗門)이었으나 성문 위치가 문 북쪽 기슭 행궁(行宮)이 있는 곳에서 이곳을 통과하여 형제봉과 보토현(輔土峴-현재 북악터널 위쪽)을 경유하여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편리한 코스에 위치하고 있어서 임금이 이문을 출입하게 됨으로써 뒤에 성문을 더욱 성대하게 개축하여 임금이 출입하는 성문으로 위용을 갖추고 이름도 대성문(大城門)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 잠시 휴식을 취하고...
▼ NO.08 대성문에서...
▼ 다시 성곽을 따라...
▼ 오르다가...
▼ 대성문 문루를 돌아보니...
▼ 그동안 보아오던 산딸나무는 아닌데...뭐지?
▼ 성곽을 따라 오르다가..
▼ 저기는...
▼ 보현봉 옆의 통천문?
▼ 짙은 운무로 분간이 어렵고...
▼ 님들이 보고 있는 곳에는...
▼ 대남문을 향하여...
▼ 운무속의 대남문이...
▼ 대남문 문루에 도착하여...
▼ 문 밖에는 구기계곡으로 가는 데크가...
▼ NO.09 대남문에서...
▼ 대남문(大南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 中 남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처음 축조 당시는 문수봉암문(文殊峯暗門)으로 불리웠던 성문이다.
해발 715m의 보현봉(普賢峯)과 해발 727m의 문수봉(文殊峯)이라는 두 거봉을 잇는 해발 663m 능선 한가운데 안부(鞍部)에 위치해 있다.
앞뒤로 넓은 터를 갖고 있어 마치 평창동 일대를 긴팔로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 정겹게 보인다.
대남문은 백운대쪽에서 바라보면 성문이 보일듯 말듯 아득하게 보이며, 보현봉에서 백운대를 뒷배경으로 내려다 보는 맛도 일품이다.
이문은 대동문과 구조가 흡사하다.
▼ 대남문 문루를 다시 보고...
▼ 구기계곡 방향을 내려다 보니...
▼ 문수봉으로 가는 성곽길...
▼ 문수봉을 향해 성곽을 따라...
▼ 운무가 가득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인 문수봉에 도착하여...
▼ 비상을 꿈꾸는 창조사업님
▼ 산자연님
▼ 꿈찾기님
▼ 노랑국화님
▼ 이제 청수동암문으로...
▼ 여기가...
▼ NO.10 청수동암문에서...
▼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
문수봉(文殊峯)과 나한봉(羅漢峯) 사이 해발 694m에 위치한 성문으로 승가사 뒷산 능선에 있는 비봉과 연결되며 대남문과 부왕동 암문 방향으로 갈라지는 요충지인데 이 문도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네모난 출입구를 갖추고 있으며 문짝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문에는 산성주능선과 의상능선, 그리고 비봉능선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있다.
▼ 이제 성곽을 따라 715.7봉을 향해...
☞ 여기서 3부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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