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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종주 후기☞/♧ 인천대간 종주

[20080115]인천/부천의 산 연계하기(호봉산-철마산-원적산-효성산) - 3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08.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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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15일 (화) '인천/부천의 산' 연계하기 - NO.1

[백운역-부평서여중-부평도서관-호봉산(126.29m)-구루지고개-장고개-

철마산(165m)-원적산(196m)-아나지고개-철마산(286m)-효성산(중구봉:276m)-장명이고개(경명현)]

 

인천/부천지역의 산들을 이어갈 수 있다고 하여 언제 해봐야지 하고 있다고 오늘 그 절반을 하고자 한다.

'진혁진의 백두대간 산행정보'에서 한남정맥 제3, 4구간이라는 지도 한장 들고

백운역에서부터 길찾기를 하며 계양산자락 아래 장명이고개(경명현)까지 이어갔다.

이 산행은 많은 산객들이 하는 '한남정맥'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저 '인천/부천의 산 연계하기'를 했던 것이다.

 

코스는 백운역에서 부평도서관 옆에 있는 '호봉산입구'로 올라 → 호봉산(산불탑:126.29m)  → 구루지고개

→ 장고개→ 철마산(165m) → 새사미아파트 → 도로횡단 → 세일고교 → 원적산(196m)  → 철마정(179m)

 → 돌탑삼거리 → 채마밭 → 갈월로 도로횡단 → 소공원 → 경인고속도로 위를 지나는 육교횡단 → 아나지고개

 → 군부대 철망 → 철마산(폐막사:226m) → 철마2, 3, 4, 5, 6헬기장을 거쳐 → 철마7(286m) → 안부(G-37)

→ 효성산(중구봉 돌탑:276m) → 장명이고개(경명현) → '지선사' 앞에서 여정을 마쳤다.

 

☞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 블로그 사진으로 대신한다.

 

▼ 전철역에서 찍은 인천/부천지역의 산 안내도?

  

▼ 오늘 진행구간(백운역에서 장명이고개까지)만 보니...  

 

 

☞ 3부를 시작하며...

 ▼ 아나지고개에서...

 

 ▼ 음식점으로 들어서지 않고...

 

 ▼ 표시기들이 있는 곳으로 오르니...

 

 ▼ 송전탑이...

 

 ▼ 송전탑을 따라...

 

 ▼ 음식점에서 오르는 길에는...

 

 ▼ 철책을 따라...

 

 

 ▼ 저 멀리 유기견 한마리가 맥가이버를 보고 도망치다가...

 

 ▼ 나중에 군인들을 만나더니 맥가이버쪽으로 도망쳐 내려온다.

 

 ▼ 이곳에는 잣나무를 심어...

 

 ▼ 철책이 끝나는 지점에서 올려다보니 우측에 막사가 보이고...

 

 ▼ 오름길이...

 

 ▼ 한동안 계속된다.

 

 

 

 ▼ 돌탑이 쌓여있는 저곳은...

 

 ▼ 능선길이...

 

 ▼ 배낭도 잠시 쉬고...

 

 ▼ 멀리 계양산이...

 

 ▼ 능선을 따라가니...

 

 ▼ 폐막사가 있고, '119위치표시'에 '철-1'이라고 - 아마 철마산의 첫번째 봉우리라는 표시인 듯...

이 봉우리(226m)에서 중구봉까기 전에 있는 폐초소가 있는 봉우리(286m)까지를 철마산이라고 부른다.

 

☞ 철마산(鐵馬山)/천마산(天馬山)/마제봉(馬蹄峰)에 대하여

 

서구 가정동(개경주), 심곡동(기피울)  계양구 효성동(새별이) 사이에 걸쳐 있는 높이 226.7m의 산을 「철마산」이라 부르고 있다.

이 철마산(鐵馬山)은 서쪽 골짜기에서 용마가 났기 때문에 용마골(龍馬谷)이라 불러왔고, 그 본디 이름은 천마산(天馬山)이다. 그리고 이 산 중턱의 바위에는 꼭 말발자국처럼 움푹 움푹 패인 흔적들이 남아 있어 이  바위를 마제석(馬蹄石)이라 하고 이 산을 마제봉(馬蹄峰)이라고도 부른다.

 

「천마산」이라 부르게 된 것은  산 밑 개경주(가정동) 마을에는 고려말 합천이씨(陜川李氏)가 많이 살고 있었다.  

조선조 초기에  명문이던 합천이씨  문중에서  뜻밖에도 장사  아기가 태어났다. 이 장사아기는 태어난 지 불과 한 이레  만에 걸음을 걸었고, 이상하게도 양어깨에 날개까지 달려 방안을 날아 다녔다 한다. 이를 본 이기장사의 부모는 후환이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이런 장사(壯士)나 이인(異人)이  나면 나라에서 후한을 염려하여 그 집안 일족을 모두 죽여 없앴기 때문에 그 부모는 그것이 두려워 비록 마음이 아팠지만 장사아기를 다듬이돌로 눌러서 죽이게 되었다.

그러자 이 아기장사는  휙 날아서 천장에  붙었다. 그 부모는 눈물을 흘리며 그 아기장사를 기어코 붙잡아 내려서 다듬이돌로 누르니 아기장사는 숨을 껌벅거리며 한사코 발버둥을 치는데, 이때 뜻밖에도 별안간 용마가 나타나서 그 집주위를 맴돌며 구슬프게 울어댔다.

그러다가 아기장사가 숨이 끊어지자 그 용마도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후로 이 산을 용마가 있던 산이라서「천마산(天馬山)」이라 부르게 되었고 신성시하였다.

 

이러한「천마산」이 1916년 조선총독부의 세부칙량(稅賦則量) 때 철마산(鐵馬山)으로 도면에 표기하므로써「천마산」이「철마산」으로 둔갑된 것이다.

옛 고지도를 보면 이 철마산에 이웃한 추곶산과 원적산은 표기되어 있어도 천마산으로 표기한 것이 없으니 다만 구전되어 온 산이름일 것이다. 이 때  측량기사는 마을사람들에게 산 이름을 물으니 「천마산」이라 한 것을 철마산으로 잘못 듣고 그대로 적어 넣어 오늘의  모든 지도에 철마산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발행한 인천시 도면에 부평구의 산곡·청천동과 서구의 가좌·석남동 사이에 있는 원적산을 철마산으로 표기하고 또, 부평구 일신동과 남동구 만수동 사이에 있는 금마산(錦馬山)을 철마산으로 표기하여 부평지역에 철마산을 3개나 만들어 놓아 이를 구별하기  위해 "북철마산", "중철마산", "남철마산"이란 산이름을 붙이게 된 것은 한참 모두 잘못된 것이다.

☞ 부평문화원에서 가져옴

 

 ▼ 철마산의 능선 - 우측 끝에 폐막사가 보인다.

 

 ▼ 좌측으로 이동하니...

 

 

 ▼ 영종대교와 강화 마니산, 고려산이...

 

 

  

 

 ▼ 다시 영종대교 방향을 보니...

 

 ▼ 영종대교를 살짝 당기니...

  

 ▼ 이제 능선을 따라...

 

 ▼ 가면서...

 

 

 ▼ '철-2'

 

▼ 계양산이...

 

 

 

 

 

 

▼ 여기는...

 

 ▼ '철-3'

 

 

 

▼ 여기는...

 

 ▼ '철-4'

 

 

 

 

 

 

  

▼ 저 꼭대기에는...

 

 ▼ '철-5'

 

▼ 지나온 능선을 돌아보니...

 

▼ 원적산과 호봉산을 돌아보니...

 

▼ '철-5'를 지나...

 

▼ 앞에는 계양산이...

 

▼ 뒤에는 영종대교가...

 

 

▼ 영종대교를 당기니...

 

 

▼ 저기는...

 

 ▼ '철-6'

 

 

▼ 철탑 안부와 폐막사가...

 

 

▼ 철망문 안으로...

 

▼ 286m봉에 있는 폐막사

 

▼ 주변을 조망하니...

 

 

 

 

 

 

 

 

▼ 내려서서...

 

▼ 중구봉(효성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에는...

 

▼ 안부 위에 선 철탑과 계양산의 철탑

 

▼ 안부에는...

 

▼ 현위치 G-37'이라고 - 여기서부터는 계양소방서 관할이라고 'G'를 붙이나?

 

▼ 효성산(중구봉)으로 오르며...

 

▼ 삼각점을 지나...

 

 

 

▼ 저기가...

 

▼ 효성산 정상 중구봉(276m)의 돌탑...

 

▼ 현위치는 'G-33'

 

▼ 중구봉 이정목 뒤로난 길로 하산...

 

▼ 이 열려진 철문을 지나 장명이고개를 내려가다가...

 

▼ 계양산을 바라보니...

 

▼ 중구봉 절개지 위에서 계양산쪽을 보니...

 

▼ 저 계양산길은 지난 1월 8일(화)에 올랐기에...

 

▼ 장명이고개(경명현/징매이고개)

 

☞ 장명이고개(경명현/징매이고개)

 - 징매이고개는 매를 징발해서 송도 서울 가는 큰 길목 - 

 

계양구 계산동에서 서구 공천동으로 넘어가는 계양산 주봉 서쪽의 고개를 "징매이고개(景明峴)"라 했는데 그 길이가 8㎞에 이르러 인천 지역에서는 가장 크고 높은 고개이다.

 

고려 충렬왕은 몽고의 원나라 황제의 딸 제국공주와 정략결혼을 해서 원나라에 자주 드나들었고 원래 기질이 호탕한데다 원나라의 수렵행각을 본받아 재임시 매사냥을 즐겨 부평고을에 다섯 번이나 행차했다고 한다.

 

송도서울에 있는 국영매방(鷹房)을 "징매이고개"로 이전했으니 그 매방이 있던 곳이  "징매이고개" 정상에서 서쪽 50m 지점에 있어 그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근래 6차선도로 확장공사로 흔적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매(鷹)가 사냥을 하는데도 우리나라산 "해동청 보라매"가 가장 뛰어났다고 하여 몽고인 원나라까지 소문이 퍼져 이 곳 매방에서 징매(徵鷹)을 해서 "징매고개"라 한 것이 "징매이고개"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충렬왕  34년(1308) 계양도호부를 93년 만에 없애고 한등급을 높여 참으로 길한 고을이라서 '길주(吉州)'란 목사고을로 승격시켰던 것이다.

 

이 징매이고개길은 지금의 검안동 바름이 마을인 옛날 유명했던 발아장(發阿場)으로 해서 가현산의 광인원(廣因院)을 거쳐 통진의 조강(祖江)나루터를 건너 송도서울로 갔던 국도였다.

이 바름이 마을 뒤의 계양산 낭맥이「허암산」에 이어지는 고개를 발아현(發阿峴)이라 했는데, 이를 일명 "작은 징매이"로 불러오고 있다.

 

이 "징메이고개" 정상에는 고종 20년(1883) 10월에 축조한「중심성」의 관문인 경명문루를 세워 그 이름 공해루(控海樓)라 현액(顯額)하였다.

이는 조정에서 연해의 관문인 이 고개에 성을 축조해서 인천과 부평의 외침의 방어를 튼튼히 하고자 함에서 였다.

 

현재 중심성은 완전히 없어져 성을 쌓았던 흔적도 찾을 수 없고, 성문인 공해루도 이미 없어진 지 오래되고 다만 주춧돌 4개만 남아 있더니 그나마 이제는 없어지고 지금은 높은 고개를 푹 낮추어서 6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완공되어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속담과 같이 옛날 의적「임꺽정」의 소굴이었다는 심산유곡에 이와 같은 큰 변화가 찾아 올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 부천문화원에서 가져옴

 

▼ '경명로'로 내려서서...

 

 

▼ 도로에 공사표시가 있어...

 

 

▼ 건너편을 보니 - '생태통로'를 만든다고...

 

▼ 도로를 따라 내려서서...

 

▼ '지선사' 앞에서 여정을 마친다.

  

☞ 이것으로 '인천/부천의 산' 연계하기 - NO.1를 마친다.

 

 

 

 2008년 1월 15일 (화) 

'인천/부천의 산' 연계하기 - NO.1

[백운역-부평서여중-부평도서관-호봉산(126.29m)-구루지고개-장고개-

철마산(165m)-원적산(196m)-아나지고개-철마산(286m)-효성산(중구봉:276m)-장명이고개(경명현)]

 

-▥☞ 1부[백운역-호봉산(126.29m)-장고개-철마산(165m)]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2부[철마산(165m)-원적산(196m)-돌탑삼거리-아나지고개]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3부(아나지고개-철마산(286m)-중구봉(276m)-장명이고개]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