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광장에서...
▼ 서울광장 바닥분수
▼ 덕수궁(원래는 경운궁)의 현재 정문으로 불리는 대한문
▼ 대한문
대한문(大漢門)
대한문은 원래의 경운궁의 정문이 아니었으며 본래 이름 또한 대안문(大安門)이었다.
정문인 인화문이 있었으나 주위에 민가가 교통이 불편한 반면,
동쪽에 있는 대안문은 1900년대 고종의 근대적 도시개조사업의 일환으로 방사상 도로가 나
자연스레 자주 이용되면서 사실상의 정문이 되었다.
1904년 경운궁에 큰 화재가 일어나 대부분의 건물이 중건되는데 이때 대안문도 수리를 했다.
1906년 고종의 명에 의해서 이름이 지금의 대한문으로 바뀌었다.
바뀐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설에 의하면, 1900년대는 친일파들이 득세했다.
그 중에서도 '배정자'라는 여자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로서 사람들은 안(安)자를 빗대어 갓을 쓴 여자가 궁을 드나들면서
고종을 현혹해 나라가 망한다고하여 대한문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1914년 태평로가 뚫리면서, 1968년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두 번 뒤로 밀려났다.
- '우리궁궐길라잡이'에서 가져옴. -
▼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 예상보다 단풍이 덜 들었네...
▼ 정동교회 앞 음악분수대
▼ 덕수궁 돌담길이 굽어지는 저곳에...
▼ 문닫은 지 오래된 듯 한 음식점이...
▼ 구세군 대한본영 앞을 지나...
▼ 광화문 4거리에...
▼ 깨끗하게 몸단장을 마친 이순신장군 동상이 우뚝...
▼ 주변 광화문광장 조성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묵묵히 서 계시는 이순신장군
▼ 교보빌딩 앞에 있는 저것은...
▼ 만세문과 기념비전
아래 내용은 주간한국 '최창조의 자생풍수'에서 가졍온 글임.
‘비각(碑閣)’이 아닌 기념비전(記念碑殿)의 편액이 달린 고종즉위 40년 칭경기념비.
비전(碑殿)일까? 비각(碑閣)일까?…. 우리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광화문 네거리, 종로 1가에서 세종로와 만나는 길목, 바로 교보빌딩 서남쪽 모퉁이에 비각(碑閣)이 하나있다.
이 비는 ‘대한제국 대황제 보령 망육순 어극 사십년 칭경기념비
(大韓帝國大皇帝 寶齡 望六旬 御極 四十年 稱慶紀念碑)’라는 길고 긴 이름을 가지고 있다.
무슨 뜻인고 하니, 대한제국의 대황제(고종)의 연세가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
다시 말하면 51세가 되는 것과 보위에 오른 지 40년이 되는 경사를 기념해서 세운 비라는 뜻이다.
고종은 1852년생으로서 12살 되던 해인 1863년 왕위에 올랐다.
1902년은 그의 나이가 51세가 되고, 왕 보위에 오른 지 40년이 되므로
그 전해 12월 당시 황태자(뒷날의 순종)가 상소를 올려 이를 기념하는 존호(尊號)를 올리고,
잔치를 베풀 것을 청한다.
이 자리에서 기념사업이 논의 되어 1902년(광무 6년) 5월4일,
고종이 기로소(耆老所:조선조 태조에 설치된 정이품 이상의 관원으로
나이가 70이 넘는 사람들에게 경로(敬老)의 예우를 갖추는 기관)에 들었다.
나랏님도 나이가 많으면 특별히 기로소에 드는 경우가 있었다.
이를테면 태조가 60세, 숙종이 59세, 영조가 51세에 기로소에 든 전례가 있다.
1902년에도 영조의 예에 따라, 고종을 기로소에 들도록 배려한 것이다.
조선조 때 기로소는 육조거리(오늘날 세종로) 동쪽 끝자락에 있었다.
그 기로소 자리에 이런 사실을 알리고 기념하기 위해 비석을 세우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석조 보호각을 두른 것이 오늘날 남아 있는 비각이다.
왕이 아닌 황제로서 고종의 장수와 오랜 재위를 기념할 목적으로 세운 것이다.
땅에서 이중으로 쌓아 올린 기단이라든지, 그 위에 정면 3간, 측면 3간에 다포식 건물이 더욱 돋보인다.
주위에는 돌난간을 두르고 난간 기둥에는 상서로운 짐승을 조각한 석물을 얹혔다.
남쪽의 정면에는 홍예문(무지개문)을 세우고 그 가운데는 ‘만세문(萬世門)’이라는 이름을 새겼다.
문짝은 철 격자문에 태극문양을 넣었다.
비각의 지붕과 홍예문의 조화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그런데 일제가 우리 국토를 유린하면서 이 만세문도 온전치 못했다.
일제시기에 일본인이 만세문을 떼어다가 충무로에 있는 여염집의 대문으로 사용하였는데
그나마 한국 전쟁의 와중에 일부 파손되었다.
그것을 1954년 7월 ‘비전’을 보수하면서 다시 찾아다 세우고
1979년에는 해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는 수난의 문이다.
이 비석을 살펴보노라면, 주목할 것이 하나 있다.
흔히들 이 보호각을 일러 ‘비각(碑閣)’이라 부르는데
편액을 보면 비각이 아닌 ‘기념비전(記念碑殿)’으로 되어있다.
신분제가 분명했던 조선 시대에는 건물에도 그 주인의 신분에 따라 격이 달랐고,
그 명칭도 구분해서 붙였다.
건물에 ‘전(殿)’자가 붙는 것은 왕이나 왕에 버금가는 인물과 걸림이 있는 건물에만 붙었다.
그래서 왕을 보를 때 전하(殿)’자가 붙는 것은 왕이나 왕에 버금가는 인물과 걸림이 있는 건물에만 붙였다.
그래서 왕을 부를 때 전하(殿下)! 전하! 라고 한다.
가람 같으면 부처님의 공간인 건물에만 ‘전’자를 붙였다.
그래서 대웅전이니 극락전이니 적광전이라 부른다.
궁궐이나 일반 여염집에서는 아무리 높은 신분일지라도 왕이 아닌 이상,
‘당(堂)’자나 그 아래인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등 다른 글자를 붙여 격을 낮추었다.
그런 것을 일제가 우리 국토를 유린하면서
우리 국왕을 전하에서 합하(閤下), 각하(閣下)로 낮춰 불렀던 것.
따라서 이 비도 비각이 아닌 ‘비전(碑殿)’이라 불러야 옳다.
- '주간한국 / 2001년 11월 13일 18:32' 에서 가져옴. -
▼ 만세문에 놓인 서수(瑞獸)들...
▼ 난간에 놓인 서수들...
▼ 기념비전을 반대편에서 보니...
▼ 만세문과 기념비전 사이에 놓인 저 돌은 '도로원표(道路元標)'
도로원표(道路元標)
도로원표는 임금이 있는 궁궐문에서 시작되는 도로 이정표의 출발점이다.
그러니 왕이 기거하던 궁궐의 광화문은 우리나라 길을 재는 원점이 되는 곳이다.
원래는 지금 충무공 동상이 세워진 자리에 도로원표가 있었으나 1914년 4월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한다.
도로원표에는,
남쪽으로 향한 면에는 道路元標라 새겨져 있고,
동쪽을 향한 면은 春川 九二杆(92km), 해주 六九杆 식으로 평양, 진남포, 함흥, 원산 등의 이정표가 새겨져 있고,
서쪽 면에는 부산에서 인천에 이르는 대구, 광주, 목포, 대전 등의 이정표가 새겨져 있다.
▼ 교보빌딩 앞을 지나다가...
▼ '찬 가을 한자락이 은은히 내 안으로 스며든다. 고마운 일이다'
▼ 이곳이 '호조터'였다고...
▼ 세종문화회관을 바라보니...
▼ 저 은행나무들은 나무옷을 입었네...
▼ 광화문광장 조성으로 저 은행나무들은 어딘가로 �길 때 보호막인 듯...
▼ 광화문 열린시민광장에서는...
▼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알뜰시장이 열린다네...
▼ 저것은...
▼ 동궐대로 불리던 동십자각(東十字閣)
경복궁 동십자각
주간한국 / 2001년 11월 24일 20:30
궁(宮)과 궁궐(宮闕)의 차이는 무엇일까?
서울에는 대체로 조선왕조의 5대궁(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이 남아 있어,
그나마 서울이 600여년의 고도임을 대변하고 있다.
궁에는 보통 주위에 담벽이 쳐져 있고, 그 담벽에 4대문이 있게 마련.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慶福宮)을 한번 보자.
동쪽에는 건춘문(建春門), 서쪽에는 영추문(迎秋門), 남쪽에는 정문인 광화문(光化門),
그리고 북쪽에는 신무문(神武門)이 자리하고 있다.
그 4대문엔 수문장과 포졸들이 궁을 경비하게 되어 있었다.
또, 정문인 광화문 좌(동쪽), 우(서쪽)의 담벽 귀퉁이에 ‘궐대(闕臺)’라는 것이 있어,
그위에서 초병이 부릅뜬 눈으로 사주 경계를 했다.
그래서 궁의 ‘궁(宮)’자와 궐대의 ‘궐(闕)’자를 합해서 ‘궁궐’이라 불렀던 것이다.
그러니까 같은 궁이라 할지라도 ‘궐대’가 없는 것은 ‘궁궐’이라 부를 수 없다. 그냥 ‘궁’이라야 옳다.
5대궁 가운데 궁궐은 정궁인 경복궁만이 ‘궁궐’이라는 말이 가능하다.
다른 궁은 ‘궐대’가 없기 때문이다. ‘궐대’가 바로 오늘날 초병의 초소격, 옛 망루(望樓)인 것이다.
경복궁에는 동궐대(동십자각)와 서궐대(서십자각)가 경복궁 건립초기부터 함께 했다.
이 궐대를 일제가 우리국토를 유린하면서 민족정기 말살 차원에서
정궁인 경복궁의 근정전(勤政殿)앞에다 흥례문을 부수고 근정전 보다 더 크고 우람한 건물,
시멘트 더미의 총독부 청사를 지어 경복궁을 가렸던 것이다.
그것으로도 성이 덜 찼던지, 남의 궁궐 안에다 조선물산공진회(오늘날 산업박람회)라는 것을 개최한답시고
궁궐내의 수많은 전각을 뜯어내 저들 입맛대로 요정, 유각에 심지어는 일본으로 까지 밀반출,
그네들의 뜨락에 조경용 정자로 까지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부수어 여론이 비등하자 궁궐의 동쪽에다 방치했다.
도시계획을 한답시고 궁궐의 멀쩡한 돌담장을 모조리 헐어내고 그들 입맛대로
국적불명의 담장(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의 양쪽 돌담과 연결된 현재의 울타리)을 쌓았다.
또 경복궁의 앞뒤, 좌우로 큰길(신작로)을 뚫었다.
이런 와중에, 궁궐의 영역은 짜부러 들고 서궐대(서십자각)는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동궐대(동십자각)만이 모진 세월과 회오리 역사의 아픈 상처를 한몸에 지닌 채
600여년의 풍진속에 말없이 서 있다.
서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길에 포위된 어린이가 자동차의 굉음에 놀라 울부짖고 있는 것 같다.
동십자각(東十字閣)! 말없이 경복궁의 한많은 역사를 오늘도 지켜보고 있는 동궐대.
우리 서울시민들은 언제부터인가 이 ‘동궐대’를 두고,
동궐대라는 말보다는 그저 ‘동십자각’이라고 애칭처럼 불러왔다.
동십자각의 ‘동’을 빼고 나면 그냥 십(十)자각이다.
그래서 동십자각 좌우 앞뒤로 길이 뚫려, 십자(十字)길이 트였을까!
세월은 가고 역사는 말이 없다.
이홍환 국학연구소 이사장
주간한국 / 2001년 11월 13일 18:32
▼ 원래는 저 공사중인 광화문과 성곽이 이어져 이었는데 길을 내며 잘려나가 외로이 서 있는 형국이다.
▼ 경복궁 동쪽 담장길을 따라 오르려고...
▼ 경복궁 동쪽 입구
▼ 인왕산이 보이네...
▼ 경복궁 동쪽 담장길을 따라...
▼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건춘문(建春門)
경복궁의 동문(東門)이다.
동쪽은 방위로 볼 때 봄(春)에 해당하기 때문에 건춘문이라 지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쪽의 방위신인 청룡(靑龍)이 홍예의 천장에 그려져 있다.
이문은 왕실의 종친과 상궁들이 주로 드나들던 문이라고 한다.
건춘문을 들어와 왼편으로 들어가면 왕실 가족들을 위한 생활공간들이 밀집되어 있었으나
일제시기에 모두 헐리고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건춘문의 담장 남쪽 끝에는 동십자각(東十字閣)이 맞닿아 있었으나,
이 또한 일제시기에 잘려나가 현재는 동십자각만 도로 가운데에 떨어져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8년(1426) 10월 집현전으로 하여금
문의 이름을 짓게하여 지금의 건춘문으로 이름을 확정했다고 한다.
현재 건춘문은 고종 2년(1865)에 중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석축을 쌓고 가운데 홍예문을 냈으며 정면 2간 측면 2간의 규모이다.
이익공의 겹처마에 우진각 지붕을 하고 있다.
- '우리궁궐이야기'에서 가져옴. -
▼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에 따라 동문이 건춘문에는 청룡이...
▼ 건춘문에서 본 근정전
▼ 다시 담장을 따라...
▼ 은행이 떨어져서...
▼ 관광버스에서 내려 민속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외국인들...
▼ 학고재 앞에는...
▼ 아니 저 여자가 위험?하게...
▼ 삼청공원 갈림길에서...
▼ 계속 담장을 따라...
▼ 청와대 춘추관 앞에서...
▼ 청와대 춘추관
▼ 청와대 앞길을 따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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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 '남주작 북현무'에 따라 현무가 그려져 있고...
▼ 청와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외국관광객들...
▼ 저 은행들이 떨어져...
▼ 이렇게 발에 밟히니...
▼ 봉황분수대 앞에는...
▼ 경복궁 서쪽 담장길을 보니...
▼ 효자동사랑방 앞에서...
☞ 여기서 '서울도심 속 단풍유람을 다녀오다 - 1부'를 마치고...
-▥☞ 1부(서울광장-덕수궁 돌담길-경복궁 돌담길-청와대 앞길-효자동사랑방)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2부(효자동사랑방-창의문-환기미술관-우남관-하림각-신영교-전망바위)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3부(전망바위-백사실-백석동천-신영교-세검정-홍지문/오간수문)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서울 도보여행 후기☞ > ☆ 서울곳곳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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