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유적탐방후기☞/♣ 서울한양도성

[20090222]서울성곽일주 [인왕산ㆍ북악산ㆍ낙산ㆍ남산 연계산행] - 2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09. 2. 23.

 31487

 

2009년 02월 22일 일요일

'서울성곽일주'[인왕산ㆍ북악산ㆍ낙산ㆍ남산 연계산행]를 다녀오다.
 
 서울성곽일주 [인왕산ㆍ북악산ㆍ낙산ㆍ남산 연계산행] 코스
 
서울역→남대문(숭례문)→대한상공회의소→소의문터→중앙일보→배재공원→정동교회→이화여고→창덕여중→서대문터(돈의문)
→강북삼성병원(경교장)→서울시교육청→홍난파기념관→권율장군집터→옥경이슈퍼→인왕산 정상(삿갓바위:338m)→청운공원
→자하문고개→창의문(자하문)→창의문 쉼터→북악산 정상(백악마루:342m)→숙정문→말바위 쉼터→와룡공원→서울과학고 후문
→경신고 후문→서울시장공관→혜화문→舊혜화동로터리→동성고교→동숭아트센터→낙산 정상(타락산駝駱山:125m)→동대문교회
→동대문(흥인지문)→오간수문→舊동대문운동장→한양공업고→광희문→신당동 성당→장충체육관 뒤→신라호텔 담→舊타워호텔
→국립극장→남산산악회→N서울타워→남산 정상(팔각정:262m)→舊남산어린이회관→백범광장→힐튼호텔→남대문→시청역

 

 
 
첫 번째 '서울성곽일주'는 지난 2006년 3월 2일자 모 일간지에 [건축가 황두진의 서울성곽 하루에 돌기]를 보고...
2006년 3월 5일(일)에 그 신문을 들고서 '서울성곽일주'를 위한 답사(아래 움직이는 하트를 클릭!)를 하였고,
                                                                               
 
두 번째로 2006년 4월 30일(일)에 좋은 님들과 유람하듯 11시간 20분에 걸쳐 '서울성곽일주'를 하였으며,
세 번째는 2006년 9월 22일(금)~23일(토) 양일간에 걸쳐 '야간 서울성곽일주'를 한 적이 있었으며,
그외 '서울성곽'의 일부 구간별로는 좋은 님들과 이십 여차례 이런 저런 테마로 다녀왔었다.
 
이전의 '서울성곽일주'는 북악산 구간이 통제되었었고, 야간에 통행이 불가한 관계로 북악산 성곽 구간을 빼고
창의문(자하문)에서 청와대 앞을 지나 삼청동 감사원길을 따라 와룡공원으로 우회하여 북악산의 나머지 성곽을 걸었는데,
 
2006년 4월 1일에 북악산 지역 서울 성곽이 처음 개방된 '홍련사 코스'는 홍련사-숙정문-촛대바위 구간으로 1.1㎞이고,
그리고 2007년 4월 5일 2단계로 '말바위 쉼터 코스'가 와룡공원-숙정문-청운대-백악마루-창의문으로 4.3㎞가 개방되면서
이 두 지역이 개방됨으로써 북악산 구간의  서울성곽을 완전하게 답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는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한 팀당 100명씩만 입장(2시간30분 동안 관람)을 시키는 제한적 개방인지라

'인터넷 예약이나 현장에 선착순' 등을 하면서 '서울성곽일주'를 하기에는 곤란함이 있어

완전?한 서울성곽일주를 할 수 있는 '언젠가'를 기다리며 지내는데

 2007년 7월 1일을 기해 사전예약이나 선착순이 아닌 무제한 자유 탐방이 실시되었다.

 
해서 서울성곽일주를 하고자 날을 잡다가 2008년 3월 1일에 하려고 계획 중이었는데
남대문(숭례문)화재로 다시 차일피일하게 되었다가 오늘(2009년 2월 22일)에서야 하게 된다.
 
오늘 날씨를 알아보니 '흐리고 한때 비 또는 눈'이라고...하늘은 구름이 뒤덮었다.
전철 서울역 5번 출구 밖으로 나와 연세ㆍ세브란스재단 앞에 원뿔모양의 조형물이 있는 곳에서 모여
간단하게 몸풀기를 하고 나서 남대문(숭례문)을 향해 걸어가며 10시간 예정의 '서울성곽일주'를 위한 출발을 한다.
 
08시 30분 남대문(숭례문)에서 복원공사로 인한 가림막 안에 있는 남대문(숭례문)의 이전 모습을 상상하며 돌아본 후
'서울성곽'을 시계방향으로 일주를 시작하며 횡단보도를 건너 대한상공회의소 건물 옆으로 들어서고...
서울성곽의 성곽길과 성곽을 잇기 위한 우횟길을 드나들며 대문과 소문, 대문터와 소문터를 지나고,
인왕산과 북악산, 낙산을 거쳐 남산에 오르고, 다시 남대문(숭례문)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 18시 40분이다.
 
서울성곽을 널널하게 유람하듯 10시간 10분에 걸쳐 일주를 하고,
시청역부근 음식점에서 저녁식사겸 뒤풀이를 한 후 시청역에서 20시 30분에 해산한다.
 
'서울성곽일주(인왕산ㆍ북악산ㆍ낙산ㆍ남산 연계산행)'의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풍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서울성곽일주(인왕산ㆍ북악산ㆍ낙산ㆍ남산 연계산행)'를 다녀오다 - 1부를 시작하며...
 

 

▼ 10:00 - 바로 이어진 인왕산 성곽 아래에서...

 

▼ 인왕산 성곽

 

▼ 이곳도 나무계단으로 바뀌었네...

 

▼ 서울성곽 안내

 

 

▼ 성곽너머로 보이는 선바위와 얼굴바위, 범바위, 그리고 건너편 안산의 철탑도 보이고...

 

▼ 살짝 당기니...

 

▼ 선바위

 

☞ 禪바위

 

선바위는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이므로 '禪'자를 따서 이름하였다.

사람들은 석불님ㆍ관세음보살님, 또 이 두 개의 바위를 양주(兩主)라고 부르기도 한다.

 

임신을 원하는 부인들이 이 바위에 빌면 효험이 있다고 하여 정성을 드리는데

작은 돌을 붙이면 효험이 크다고 하여 돌을 문질러서 붙인 자국이 남아있다.

이를 붙임바위라고 한다.

   

선바위는 높이가 7∼8m, 가로 11m 내외, 앞뒤의 폭이 3m 내외로 두 개의 큰 바위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형상이다.

바위 아래에는 가로 약 10m, 높이 70∼80cm의 제단이 시멘트로 단장되어 있다.

   

이 바위는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상이라는 전설과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는 전설이 있다.

 

또 무학대사가 태조의 명을 받고 천도할 곳을 찾다가 현재의 서울을 찾아냈으나

국운이 500년밖에 유지 못할 것을 알게 되자 이 선바위에서 천일기도를 하였다고 하며

그 뒤부터 이 바위가 유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태조가 도성을 쌓을 때 왕사(王師)인 무학대사와 문신인 정도전(鄭道傳)이

이 바위를 성 안으로 하느냐 성밖으로 하느냐로 크게 의견이 대립되었다.

   

태조는 결정을 미루고 돌아와 잠을 자는데 꿈에 4월인데도 눈이 쌓이고 있었다.

밖을 내다보니 낮에 회의하던 곳이 보이고 안쪽으로 들여쌓은 쪽의 눈이 녹아 버렸다.

태조는 이것이 하늘의 계시임을 알고 정도전의 주장대로 선바위를 성밖으로 두게하자

무학대사는 크게 한숨을 쉬면서 "이제 중들은 선비 책보따리나 짊어지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탄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양도성(서울성곽)을 설성(雪城)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제일(祭日)은 개인별로 와서 치성을 드리기 때문에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불교 신자들은 4월 초파일, 7월 칠석날 같은 경우는 많은 사람이 다녀간다고 하며,

영산제(靈山祭) 때에는 여러 스님과 신도들이 이곳에 와서 제를 지낸다고 한다.

   

제의(祭儀)는 개인치성을 드리고 사람들이 정화수ㆍ백설기ㆍ메ㆍ과실 등

저마다 간단한 제물을 준비해 와서 제단에 차려 놓고 절을 하며 기원한다.

절은 보통 3번하고 반절하며 방향을 돌려가며 절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많이 할수록 좋다고 하며 108염주를 하나씩 돌려가며 절을 하기도 하고 3천번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인등(引燈)은 개인의 기복(祈福)을 위해 선바위 관리사무소에서 원하는 사람에게 액수에 따라 반년이나 일년씩 켜준다.

인등은 옛날 등잔불 모양이며 위의 심지 부분에 작은 전등이 달려 있다.

 

선바위는 암석숭배(岩石崇拜)의 일종으로 이것이 전설화되고 또 불교와 무속신앙(巫俗信仰)이 밀착되면서 무속신앙의 중요지가 되어 있다.

 

- 펀글 -

 

▼ 이 바위는 '얼굴바위'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면 마치 참선하는 모습으로 보이고.. 

 

▼ 보수 정비된 인왕산 성곽길을 따라...

 

 

 

▼ 저 바위는...

 

▼ 모자母子바위 - 혹자는 '달팽이바위'라고도 하고...

 

▼ 10:15 - 복원된 성곽은 여기까지...

 

 

▼ 범바위로 오르는 철계단

 

 

▼ 지나온 인왕산성곽 - 예전에는 남산까지 이어졌었겠지...

 

▼ 10:18 - 범바위 아래에서 잠시 조망하니...

 

▼ 경복궁이 보이네...

 

▼ 남산

 

▼ 범바위를 지나...

 

 

 

▼ 이 바위는 선바위(입석바위)?

 

 

 

▼ 그 옛날의 성곽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

 

 

 

▼ 헬기장을 지나...

 

 

▼ 10:38 - 인왕산 정상 삿갓바위에 올라...바위가 점점 패여서 계단이 되어가네...

 

 

▼ 인왕산 정상(338m) 삼각점

 

▼ 주변을 조망하니...

 

 

 

 

▼ 기차바위와 멀리 북한산이...

 

▼ 기차바위

 

▼ 기차바위를 살짝 당기니...

 

▼ 10:53 - 인왕산을 내려서고...

 

 

 

▼ 10:57 - 기차바위능선 갈림길에서...

 

▼ 기차바위능선

 

▼ 인왕산 정상 아래 병풍바위(치마바위로 불리기도...) - 그 어딘가에 치마바위가 있다는데 아직 어느 바위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 치마바위 전설

 

치마바위에는 중종의 첫 번째 부인인 단경왕후 신씨와 관련된 애달픈 사부곡이 전해져 오고 있다.

1506년 실정을 거듭한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등극시킨 사건을 중종반정이라고 한다.

이 때 중종 비가 신수근의 딸 신씨였다.

국구였던 신수근은 중종반정에 찬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약을 받아야 했다.

그 직후 반정 공신들은 죄인 신수근의 딸을 왕비 자리에 그냥 둘 수 없다고 주청하였다.

왕비를 폐위시켜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치자 중종으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중종은 마침내 결딴을 내려 왕비를 폐위시킨 다음 사가(私家)로 돌려보내고 말았다.


중종과 폐비 신씨는 사이가 매우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첫정을 주고받은 사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십여 년이나 화락하게 지내며 쌓은 지극한 정분을 잊을 수 없었던 중종은

가끔 경회루에 올 인왕산 기슭에 있던 신 씨 집을 바라보았다.


중종에 대한 그리움이 갈수록 깊어져 가던 폐비 신씨는

상감께서 경회루에 올라 자기 집을 바라본다는 소문을 듣고

지난날 대궐에 머물 때 입던 자기의 치마를 경회루에서 바라보실 때 눈에 잘 뜨이도록

인왕산 높은 바위 위에다 내다 걸었다.

아침에 걸고, 저녁에 거둬들이고는 하였다.

 

그러나 중종은 폐비 신씨를 다시는 궁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리움의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 채 이승을 하직한 신씨의 한이 서린 바위가 치마바위다.

 

-펀글-

 ▼ 인왕산 성곽길을 따라 내려서서...

 

 

 

 

 

 

▼ 북한산 능선이 낮은구름에 묻혀서...

 

 

 

▼ 11:05 - 여기서 성곽 밖으로 나가...

 

▼ 내려선 성곽을 올려다보니...

 

▼ 기차바위능선의 바위덩어리

 

▼ 철계단을 내려서서...

 

 

 

 

 

▼ 이 철계단에서 다시 성곽 안으로...

 

 

 

▼ 성곽을 따라 더이상 갈 수 없는 곳에서 인왕산길로 내려서는 계단

 

▼ 11:17 - 인왕산길(인왕스카이웨이)에 내려서서...

 

▼ 잠시 '인왕스카이웨이'를 따라가다가...

 

▼ 청운공원으로 들어서서...

 

 

▼ 11:21 - 청운공원 정자 앞 이정목에는...

 

▼ 인왕산에서 굴러온 바위?

 

▼ 저 조형물이...

 

 

▼ 자하문고개를 내려다보는 소나무

 

 

▼ 11:24 - 잠시 조망하니...

 

 

▼ 석파정

 

석파정(石坡亭)

 시도유형문화재  제26호

서울 종로구 부암동 산16-1

 

한국전쟁 후 고아원·병원 등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개인소유 건물이다.
이 정자는 조선(朝鮮) 제25대 철종(哲宗)(1849∼1863, 재위)과 제26대 고종(高宗)(1863∼1907, 재위)

대(代)의 중신(重臣) 김흥근(金興根)이 지은 별서(別墅)를 흥선대원군(興宣大阮君)이 집권 후 별장으로 사용하였던 곳이다.

정자 앞산이 모두 바위여서 대원군(大阮君)이 석파(石坡)라 이름지었으며 일명 삼계동정자(三溪洞亭子)라 한다.

이곳은 세검정(洗劍亭) 자하문(紫霞門) 밖으로 통칭되던 한양도성(漢陽都城)의 승경지(勝景地)로,

소계류(小溪流)와 거암(巨岩) 장송(長松)을 배경으로 지은 이 정자는 국내 원유정자(園유亭子)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

사랑채는 1958년 홍지동(弘智洞)으로 이전되었으나, 본정 등 나머지는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 펀 글 -

▼ 창의문을 향해 내려서고...

 

▼ 소나무를 올려다보고...

 

▼ 창의문(자하문)이...

 

다산 정약용은 여름 나절 창의문을 넘어 세검정 가로 피서를 가서 지은 시(칠언율시 중 앞의 4행)

 

창의문 앞에는 돌길이 뚫려 있고               彰義門前石逕通

삼각산 봉우리가 중천에 꽂혀 있지.           華峯三角揷天中

시냇물 돌아 흘러 마음까지 시원하고         回溪不斷澄心水

버드나무 위로 부는 바람 얼굴을 씻어주네. 高柳長吹拂面風

                                          [<다산시문집> 제4권]에서

 

 

▼ 서울도성을 그린 수선전도에서 창의문 위치                                                ▼ 겸재 정선이 그린 창의문              

 

▼ 11:27 - 창의문길 위로 놓인 인왕스카이웨이와 북악스카이웨이를 잇는 육교

 

▼ 11:29 - 창의문으로 들어서는 길에...

 

 

▼ 창의문(자하문)

 

▼ 문루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고...

 

▼ 창의문 안내

 

▼ 서울성곽 안내

 

▼ 창의문의 안쪽 모습 - 홍예 위쪽으로 물받이에 해당하는 연꽃 모양의 누혈(漏穴) 장식이 대칭을 이루고...홍예의 상단부 한 가운데는 새가 지네를 잡아먹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새를 봉황이라고도 하고 닭이라고도 하는데, 창의문 주변 산에 지네가 많기 때문에 새겨 넣었다고도 하고, 창의문 밖 지형이 지네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새겨 넣었다고도 한다.

 

▼ 11:31 - 북악산 성곽 탐방을 위해 창의문 쉼터로 오르며...

  

 

▼ 창의문 문루 안에는...

 

▼  광해군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반정에 참여한 사람들 명단을 적은 ‘계해거의 정사공신(癸亥擧義 靖社功臣)’ 현판이 걸려 있다.

 

 

☞ 여기서 '서울성곽일주(인왕산ㆍ북악산ㆍ낙산ㆍ남산 연계산행)'를 다녀오다 - 2부를 마치고...

 

 

 
2009년 02월 22일 일요일
['서울성곽일주(인왕산ㆍ북악산ㆍ낙산ㆍ남산 연계산행)'를 다녀오다]

 

-▥☞ 1부[서울역→남대문→소의문터→서대문터(경교장)→홍난파기념관→옥경이슈퍼→초소앞]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2부[초소앞→범바위→인왕산 정상(338m)→청운공원→자하문고개→창의문→창의문 쉼터]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3부[창의문 쉼터→북악산 정상(341m)→숙정문→말바위 쉼터→와룡공원→혜화문→동성고교]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4부[동성고교→동숭아트센터→낙산 정상(125m)→동대문→광희문→신라호텔→舊타워호텔]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5부[국립극장→남산산악회→N서울타워→남산 팔각정(262m)→백범광장→남대문→시청역]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