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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후기☞/♣ 현충원·사육신묘

[20091107]대방역→사육신묘→국립현충원→용산가족공원→용산역 걷기 1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09.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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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1월 07일(토)  
대방역에서 사육신묘ㆍ국립현충원ㆍ용산가족공원 ㆍ국립중앙박물관 거쳐 용산역까지 걷기

 

 '대방역에서 사육신묘ㆍ국립현충원ㆍ용산가족공원ㆍ국립중앙박물관 거쳐 용산역까지 걷기' 코스

대방역→노량진역→사육신묘(공원)→극락정사→노량진 근린공원(고구동산)→중앙대 후문→서달산 자연관찰로 입구(만남의광장)

→잣나무숲길→초화원→암석원→수생학습원(생태연못)→생태육교→달마사 앞→덕수봉 쉼터→현충원(흑석동) 개방문→현충원 순환로

→박대통령 묘소 앞→낙엽의 거리→육탄10용사 현충비→현충관 광장→충혼승천비→현충지→국립서울현충원 정문→동작역8번 출입구

→동작역 5번 출입구→월남참전기념비→동작역 2번 출입구→동작대교 남단 진출입계단→동작대교 노을카페→동작대교 북단 진출입계단

→반도아파트→용산(가족)공원→제2광장→국립중앙박물관 출입문→미르폭포→석조유물 전시장→종각→나주 서문 석등→전통염료식물원

→거울못→국립중앙박물관 정문→이촌역 1번 출입구→서빙고 근린공원→시티파크1단지→중앙대학교 용산병원 앞→신용산역→용산역

 

▲ 함께 했던 야누님의 GPS트랙입니다.

 맥가이버의 '대방역에서 사육신묘ㆍ국립현충원ㆍ용산가족공원ㆍ국립중앙박물관 거쳐 용산역까지 걷기' 이야기

 

오늘은 '서울둘레길'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걷기 카페 '걷기를 즐기는 모임'에서 토요 오후 걷기로

대방역에서 사육신묘ㆍ국립현충원ㆍ용산가족공원 거쳐 용산역까지 걷기를 한다기에 '걷즐모'의 님들과 함께 걷는다.

 

'모든 만남은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오늘도 길 위에서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대방역에서 사육신묘ㆍ국립현충원ㆍ용산가족공원 거쳐 용산역까지 걷기'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기억력이 유한함을 알기에 훗날 그 당시의 풍광과 그리고 함께 했던 님들과의 추억을 되살리고자 함이고,

인간의 만남이 또한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대방역에서 사육신묘ㆍ국립현충원ㆍ용산가족공원ㆍ국립중앙박물관 거쳐 용산역까지 걷기' - 1부를 시작하며...

 

▼ 13시 56분 - 대방역 1번 출구

 

▼ '걷기를 즐기는 모임'의 님들과 첫 만남...

 

 

▼ 14시 08분 - 출발...

 

 

 

▼ 인동

 

인동 [Lonicera japonica]
인동과(忍冬科 Caprifoliaceae)에 속하는 반상록 덩굴성 관목.

 

인동덩굴, 인동넝쿨, 능박나무, 겨우살이덩굴, 금은화(金銀花)라고도 함.


한국 전역 산야의 숲가나 구릉지 또는 인가 주변에서 자란다.

줄기는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가 길이가 3m에 이르고, 어린가지는 적갈색으로 털이 있으며 속이 비어 있다.

잎은 넓은 피침형 또는 난형으로 마주나며, 끝은 둔하다. 잎은 길이 3~8㎝, 너비 1~3㎝이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꽃은 6~7월경 잎겨드랑이에 1, 2개씩 피며, 꽃잎은 길이 3~4㎝로 처음에는 흰색이지만 곧 노란색으로 변한다.

꽃잎의 끝은 5개로 갈라지며 그중 1개가 깊게 갈라져 뒤로 말린다.

꽃잎 안쪽에는 굽은 털이 있고, 수술은 5개,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9~10월에 익는데 지름은 7~8㎜이다.

 

인동과 겨우살이덩굴이란 이름은 겨울에도 줄기가 마르지 않고 겨울을 견디어내 봄에 다시 새순을 내기 때문에 붙여졌으며,

금은화란 이름은 흰꽃과 노란꽃이 한꺼번에 달리기 때문에 붙여졌다.

 

흔히 인동초(忍冬草)라고 불리는 것도 인동을 가르키는 것으로 곤경을 이겨내는 인내와 끈기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꽃을 따서 빨면 꿀이 나와 어린이들이 좋아한다.

어린가지와 잎에 갈색 털이 있는 것을 털인동(var. repens), 잎가장자리를 제외한 부분에 거의 털이 없고,

위 꽃잎이 반 이상 갈라지며 겉에 홍색이 도는 것을 잔털인동(for. chinensis)이라고 한다.

 

한방과 민간에서는 잎과 꽃을 이뇨제·해독제·건위제·해열제·소염제·지혈제로 쓰며 구토·감기·임질·관절통 등에 사용한다.

또한 인동주(忍冬酒)를 담그기도 하는데 이것은 각기병에 좋다고 하며,

목욕물에 풀어 목욕하면 습창·요통·관절통·타박상 치료에 적합하다고 하여 인삼에 버금가는 약초라고 한다.

주요성분으로 루테올린 이노시톨과 타닌 성분이 있다.

 

李相泰 글

 

 

 

▼ 산철쭉이 꽃을 피우고...

 

 

 

 

 

 

 

 

▼ 14시 24분 - 노량진역 앞 육교

 

 

▼ 이곳에서부터 함께 하는 님을 기다리며...

 

 

 

 

▼ 14시 31분 - 사육신묘(공원) 입구를 들어서며...

 

 

 

사육신 묘[死六臣墓]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호.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 있다.
사육신묘는 조선의 6대 임금인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1456년(세조 2) 목숨을 바친 6명의 신하인 사육신의 무덤이다.
1681년(숙종 7) 숙종이 이곳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곳에 민절서원(愍節書院)을 세웠고

정조 6년(1782)에는 신도비(神道碑)를 세웠으며 1955년 5월 육각의 사육신비(死六臣碑)를 세웠다.


후에 서원은 철폐되었으며, 1978년 묘역을 확장하고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의절사(義節祠),

불이문(不二門), 홍살문, 비각(碑閣)을 새로 지어 충효사상의 실천도량으로 정화하였다.

 

사육신묘에는 원래 이곳에 있던 성삼문·이개·박팽년·유응부의 묘와 하위지ㆍ유성원ㆍ김문기의 가묘(假墓)가 있다.
7개의 묘가 있는 이유는 〈조선왕조실록〉과 〈추강집〉 등 사료의 내용이 달라 육신에 대한 논란이 있은 후,

김문기를 현창(顯彰)하고 그의 가묘도 추가했기 때문이다.


의절사 안의 위패와 마찬가지로 그 뒷편의 묘소는 동쪽으로부터

김문기ㆍ박팽년ㆍ유응부ㆍ이개ㆍ유성원ㆍ성삼문ㆍ하위지 순서로 모셔져 있다.


- 다음 백과사전에서 -

 

 

사육신 묘[死六臣墓]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8호 (동작구) 


명 칭 : 사육신묘(死六臣墓) 
분 류 : 유적건조물
수량/면적 : 7기
지 정 일 : 1972년 05월 25일
소 재 지 : 서울 동작구  노량진1동 185-2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사유
관 리 자 : 동작구
상 세 문 의 : 서울특별시 동작구 문화공보과 02-820-1261

 

조선 세조 2년(1456) 조선의 6대 임금인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바친

박팽년·성삼문·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6명의 신하 즉 사육신(死六臣)을 모신 곳이다.

 

이들은 단종 3년(1455)에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뒤의 세조)이 왕위를 빼앗고 단종을 몰아내자

이에 분개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참혹한 최후를 맞았다.

 

사육신의 충성심과 장렬한 의기를 추모하기 위해 숙종 7년(1681)에 이곳에 서원을 세우고,

정조 6년(1782)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는 비)를 세워 두었다.

 

1955년에는 사육신비를 세우기도 하였고, 이후 묘역을 확장하여 새롭게 정비하여 충효사상을 기리고자 하였다.
원래의 묘역에는 박팽년·성삼문·유응부·이개의 묘만 있었으나 후에 하위지·유성원·김문기의 묘도 만들어 함께 모시고 있다.

 

 - 문화재청 홈에서 -

 

▼ 홍살문을 지나...

 

 

사육신묘 死六臣墓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호
지정연월일 : 1972년 5월 25일
시 대 : 조선 세조ㆍ숙종 시기
규모·양식 : 9,370평(7기)
소 유 자 : 서울특별시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185-2 
 
사육신묘는 조선의 6대 임금인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세조 2년(1456) 목숨을 바친 6명의 신하

즉 사육신의 무덤을 말하며, 현재 이곳은 사육신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들은 단종 3년(1455)에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뒤의 세조)이 왕위를 빼앗고 단종을 몰아내자

이에 분개하여 단종의 복위를 노리던 중, 1456년 6월 명나라 사신의 환송연에서

성삼문(成三問)의 아버지 성승(成勝)과 유응부(兪應孚)가 세조 일파를 처단하기로 계획하였으나,

이 사실이 사전에 누설되어 실패하였다.


이들의 계획이 좌절되자 거사 동지이며 집현전 출신인 김질(金礩) 등이

세조에게 단종복위 계획을 밀고하여 연루자들이 모두 붙잡혔다.


성삼문은 시뻘겋게 달군 쇠로 다리를 꿰고 팔을 잘라내는 잔혹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세조를 ‘전하’라 하지 않고 ‘나리’라 불렀으며, 나머지 사람들도 진상을 자백하면 용서한다는 말을 거부하고 형벌을 받았다.

 
성삼문․박팽년(朴彭年)․유응부․이개(李塏)는 단근질로 죽음을 당하였고, 하위지(河緯地)는 참살 당하였다.

유성원(柳誠源)은 잡히기 전에 자기 집에서 아내와 함께 자살하였고,

김문기(金文起)도 사지를 찢기는 참혹한 형벌을 받아 사망하였다.


이밖에 사육신의 가족으로 남자인 경우는 모두 죽음을 당하였고,

여자의 경우는 남의 노비로 끌려가는 등 70여명이 모반 혐의로 화를 입었다.


그후 사육신의 충성심과 장렬한 의기를 추모하고자 숙종 7년(1681) 이 산기슭에 민절서원(愍節書院)을 세웠고,

정조 6년(1782)에는 신도비(神道碑)를 세웠으며 1955년 5월에 육각의 사육신비(死六臣碑)를 세웠다.


1978년 서울특별시에서는 이들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영혼을 위로하고

그 정신을 널리 현창하고자 3,240평이었던 묘역을 9,370평으로 확장하고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의절사(義節祠),

불이문(不二門), 홍살문, 비각(碑閣)을 새로 지어 충효사상의 실천도량으로 정화하였다.


그런데 현재 이곳에 여섯이 아닌 일곱 분의 묘가 조성되어 있는 경위는 다음과 같다.

세조 2년 단종복위사건 가담자들의 참혹한 죽음 이후,

어느 스님이 성승ㆍ박팽년ㆍ유응부ㆍ성삼문ㆍ이개 다섯 분의 시신을 현재의 위치에 모셨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세조 2년 6월 병오(丙午)조에는

성삼문ㆍ하위지ㆍ이개ㆍ유성원ㆍ김문기ㆍ박팽년을 비롯한 성승ㆍ유응부 등의 이름이 보이고,

남효온(南孝溫)이 지은 ≪육신전(六臣傳)≫에는 성삼문ㆍ박팽년ㆍ이개ㆍ유성원ㆍ하위지ㆍ유응부를 사육신이라 하였다.


그후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성승의 묘를 찾을 수 없어 네 분의 묘만 있었으나, 여전히 사육신묘라 불려졌다.
이리하여 서울특별시가 사육신묘 일대를 성역화하면서 육신에 대한 논란을 조정하였는데,

결과적으로 사육신묘에는 일곱 분의 묘가 조성되게 되었던 것이다.
즉 본래 이곳에 있던 박팽년ㆍ성삼문ㆍ유응부ㆍ이개의 묘에, 하위지ㆍ유성원ㆍ김문기의 가묘(假墓)도 함께 만들었다.


의절사 내의 위패와 마찬가지로 그 뒷편의 묘소는 동쪽으로부터

김문기ㆍ박팽년ㆍ유응부ㆍ이개ㆍ유성원ㆍ성삼문ㆍ하위지 순서로 모셔져 있다.


-서울문화재 홈에서 -

 

 

 

 

▼ 14시 33 - 불이문을 들어서고...

 

 

 

▼ 의절사

 

▼ 좌측에 신도비와 신도비각

 

 

▼ 우측에 사육신비(육각비)

  

▼ 의절사 

 

 

 

 

 

 

 

 

 

 

 

 

 

▼ 14시 40분 - 불이문을 나서며...

  

▼ 14시 41분 - 홍살문을 지나...

 

▼ 14시 43분 - 사육신묘 앞 육교를 건너...

 

 

 

 

▼ 14시 51분 - 본동 래미안을 지나고...

 

 

 

▼ 14시 54분 - 본동 한신 休+아파트를 지나...

 

▼ 극락정사

 

 

 

 

 

 

 

 

 

 

▼ 14시 58분 - 고구동산 지하차도 입구를 지나...

  

 

 

  

 

 

 

▼ 15시 00분 - 상도게이트볼 동우회

 

▼ 조망명소에서...

  

 

 

 

▼ 15시 03분 - 다시 출발...

 

▼ 화살나무

 

 

 

  

 

 

 

 

 

 

▼ 15시 11분 - 중앙대 후문

 

 

 

 

▼ 15시 14분 - 서달산 자연관찰로  입구(만남의장소)

 

 

▼ 잣나무숲길로...

 

 

 

 

 

 

 

 

 

▼ 15시 22분 - 초화원으로...

 

 

 

▼ 산국

 

 

▼ 15시 24분 - 초화원에서 잠시 휴식...

 

 

 

☞ 여기서 '대방역에서 사육신묘ㆍ국립현충원ㆍ용산가족공원ㆍ국립중앙박물관 거쳐 용산역까지 걷기' - 1부를 마치고...

 

 

 

2009년 11월 07일(토)

'대방역에서 사육신묘ㆍ국립현충원ㆍ용산가족공원ㆍ국립중앙박물관 거쳐 용산역까지 걷기'

   

-▥☞ 1부[대방역→노량진역→사육신묘(공원)→고구동산→중앙대 후문→서달산 산책로→잣나무숲길→초화원]는 여기를 클릭.☜▥-

 

-▥☞ 2부[초화원→암석원→생태육교→달마사 앞→현충원 산책로→현충관 광장→현충원 정문→동작역→동작대교]는 여기를 클릭.☜▥-

  

-▥☞ 3부[동작대교→용산(가족)공원→국립중앙박물관→서빙고 근린공원→중앙대 용산병원 앞→신용산역→용산역]는 여기를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