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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후기☞/♣ 서울한양도성

[길따라 삶따라]18.2㎞ 옛길 따라 자연과 문화·역사 공존-서울성곽 걷기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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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걷기

익숙한 풍경 속 숨어있어 걸음걸음 서울 재발견
4~5㎞씩 네 구간, 하루 한 코스씩 걸어야 ‘제맛’

 

 


서울은 성곽도시다.

정교하게 축조된 돌성으로 완전히 둘러싸인 도시였다.

18.2㎞에 이르는 성곽의 3분의2 가량이 지금도 산줄기에, 주택가에, 빌딩 숲 사이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성곽 일부였던 4대문·4소문 이름이나, 북한산과 북악산, 북악산과 인왕산을 혼동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전문가들은 “서울의 역사를 알려면 성곽을 따라 걸어보라”고 권한다.

서울성곽은 서울 도심에 남은 마지막 생태축이자 자연과 문화·역사가 공존하는 옛길이다.

성곽을 밟아 나가는 동안 한양의 역사·문화가 저절로 눈에 들어온다.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북악산, 두 차례 20만명 동원
 
서울성곽은 평소 익숙했던 풍경 속에 숨어 있다.

성곽을 따라 거니는 동안 남산 길이 다시 보이고 성북동도 다시 보이며 새문안길이 새롭게 다가온다.

성돌 하나하나에서 서울을 재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고 건강도 챙기는 성곽 산책을 즐겨보자.

아름다운 숲과 빼어난 전망, 정감어린 골목들이 함께 한다.
 
서울성곽(사적10호)은 1396년(태조 4년)에 처음 축조됐다.

당시 농한기인 1~2월과 8~9월 각 49일 동안 성곽을 쌓았다.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북악산을 잇는 5만9500자(18.2㎞)의 축성공사에

두 차례에 걸쳐 전국에서 약 20만명이 동원됐다고 한다.

4대문인 숭례문(남대문)·흥인지문(동대문)·돈의문(서대문)·숙정문(북대문)과

4소문인 창의문(북소문)·혜화문(동소문)·광희문(남소문)·소의문(서소문)도 이때 완성됐다.
 
당시 평지엔 토성을, 산엔 석성을 쌓았는데 27년 뒤인 세종 때(1422년) 모두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

성곽은 숙종 때(1704년) 이르러 다시 대대적으로 정비된다.

한말까지 거의 원형을 유지하던 서울성곽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평지쪽은 대부분 철거되고 현재는 산지쪽 10여㎞ 가량이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성곽의 성돌을 보면 축조 시기를 알 수 있다.

태조 때엔 주로 메주덩이 모양의 화강암과 편마암을 섞어 쌓았다.

세종 때는 성벽 하부엔 크고 긴 석재를 쓴 반면 위쪽은 메주 모양의 돌들을 쌓고 틈새에 잔돌들을 박아 넣었다.

숙종 때 것은 정방형의 큼직한 화강암(60×60㎝ 안팎)을 반듯하게 다듬어 써 이전 성벽과 뚜렷이 구분된다.
 
공사 실명제 흔적…97개 구간 천자문으로 표기

 

 성벽 안팎을 살펴보면 글자가 새겨진 성돌(각자석)들이 많이 보인다. 조선시대 ‘공사실명제’의 흔적이다.

 

태조 때 서울 성곽을 처음 쌓을 당시 천자문의 글자 순으로 공사구간을 정했다.

 

전체 공사구간을 600자(약 180m)씩 97개 구간으로 나눠 각 군·현에 할당했다.

 

북악산 정상에서 ‘하늘 천(天)’ 자로 시작해 낙산·남산·인왕산을 거쳐 다시 북악산에서 ‘불쌍할 조(弔)’ 자로 공사구간이 끝난다.
 
각자석엔 할당된 공사구간의 시작점과 끝 표시, 담당한 지역, 날짜, 책임자 등이 새겨져 있다.

 

 태조 때 각자석엔 구간과 지역명, 날짜를 주로 새겼으나, 조선 중기 이후 각자석엔 감독관·책임기술자 등의 이름까지 명기돼 있다.

 

숙종 이전 성축의 각자는 주로 성벽 바깥에, 이후의 각자는 주로 여장 부분 안쪽에 새겨져 있다.

서울성곽을 하루 이틀에 둘러보기는 어렵다.

최근 서울성곽 탐방로를 꼼꼼히 분석한 소책자 <서울성곽 순례길>을 펴낸 녹색연합 노상은 간사는 “서울성곽길은 되도록 천천히 걸으며 세월의 흔적들을 살피고 역사문화를 배우는 길”이라며 “4~5㎞씩 네 구간으로 나눠 하루에 한 코스씩 도는 일정이 바람직하다”고 권했다.

 



 


 


 

  ■ 성곽 간단 용어사전
 
◎ 여장 l 성벽(체성) 위쪽에 쌓은 담. 성가퀴라고도 부른다.

            이곳에 바깥을 내다보는 구멍을 내 적들을 살피고 공격했다. 위엔 옥개석을 덮는다.
 
◎ 총안 l 여장에 낸 구멍을 말한다. 한 여장엔 3개의 총안을 뚫었는데, 

            두 개는 멀리 보는 원총안, 가운데 한 개는 성 밑을 살필 수 있게 비스듬히 뚫은 근총안이다.
 
◎ 치성 l 적을 공격하기 쉽게 성곽의 일부를 돌출시켜 쌓은 부분.

            각이 지게 쌓은 것을 치성, 둥글게 쌓은 것을 곡성 또는 곡장이라 한다.
 
◎ 옹성 l 성문 앞에 둘러쳐 쌓은 성을 말한다. 흥인지문에 옹성이 있다.
 
◎ 암문 l 성곽에 설치된 작은 샛문. 비공식 문으로 비상구로 쓰였다.    

 
■ 서울성곽 나흘에 나눠 걸어보기
지지난해 숙정문~창의문 길 열려 순환로 온전히 뚫려
 
서울성곽을 따라 도는 성곽 순환로가 온전히 뚫린 것은 2007년이다.

1968년 간첩침투 사건 이후 북악산과 인왕산은 일반인 출입이 금지돼왔다.

1993년 인왕산이 먼저 일반에 개방됐고,

참여정부 때 북악산 숙정문~창의문 구간의 성곽길이 열리며 비로소 서울성곽을 따라 도는 걷기여행이 가능해졌다.

최근 녹색연합은 정상 정복형 산행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서울성곽 순환 탐방로를 찾아내 <서울성곽 순례길>이라는 소책자를 펴냈다.

이 책자가 제시한 기본 코스를 바탕으로 18.2㎞ 성곽길을 네 구간으로 나눠 나흘에 걸쳐 걸었다.

녹색연합 노상은 간사와 서울시 문화재관리팀 김용수 주임, 곽석권 주임이 각각 일부 코스 순례길에 함께 했다.
 
안타까움으로 시작해 쓰라림으로 끝나는 길
▣ 첫날. 1구간(숭례문~남산~국립극장~장충체육관)


서울성곽길은 아름답고도 슬픈 길이다.

숭례문에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성곽길 걷기는, 안타까움으로 시작해 쓰라림을 끝날 것이다.

사라진 숭례문. 가림막 안에선 복원공사와 발굴작업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숭례문 옆 선혜청 터 표지석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선혜청은 대동미와 포전을 세금으로 거둬들이던 관아다.

1608년(선조41년)부터 1894년(고종31년)까지 존재했다.
 
숭례문 앞으로 길 건너 남산육교 쪽으로 오른다.

1961년 놓인 남산육교 건너, 에스케이빌딩 앞에서 옛 성벽의 흔적을 일부 만날 수 있다.

이후 길 건너 무수한 계단을 밟아올라 남산 중턱에 이를 때까지 성벽은 사라진다.

백범 광장 지나 계단길 따라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에서 한숨 돌린다.

거대한 돌들에 새겨진 안 의사 글씨들 옆에 2010년 개관을 목표로 새 기념관 공사가 진행중이다.

다시 돌계단을 올라 숲길이 시작된 뒤에야 계단길 석축의 오른쪽 사면이 성곽이란 걸 알아채게 된다.

내려다보면 검은 성돌들이 박힌 성벽이 아까시나무 숲 사이로 뻗어 있다.
 
케이블카 종점 지나면 남산 엔타워와 팔각정·봉수대가 있는 남산(목멱산·인경산) 꼭대기다.

팔각정 앞엔 국사당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태조는 한양천도 뒤 이곳에 목멱산신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를 올렸다.

일제가 이곳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국사당은 인왕산 기슭으로 옮겨졌다.

봉수대에선 매일(월요일 제외) 오전 11시~12시30분 봉화의식을 거행한다.

봉수란 횃불과 연기를 뜻한다.

낮엔 연기를 피우고 밤엔 불을 피워 긴급한 상황을 알렸다.


순환버스 정류장 지나 녹음 우거진 찻길을 걸어내려간다.

남산 남쪽 순환로다.

길 오른쪽 축대가 성곽이다.

길이 성곽을 끊는 지점에서야 성곽의 면모가 드러난다.

세종때 쌓은 성벽이다.

이제 성곽은 산으로 올라가고,

길은 남산 고유소나무 숲(소나무숲 탐방로는 매주 목요일 오후 개방) 옆으로 이어진다.

소나무들이 아름드리는 아니어도 숲은 울창해 솔숲 내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국립극장 지나 자유총연맹 정문으로 들어간다.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엔 세종 때 세웠다가 폐쇄된 남소문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옆의 타워호텔 부지에서도 최근 성곽 흔적을 발견했다고 하나 공사중이어서 확인할 수 없다.

자유총연맹 축대 일부도 옛 성돌로 이뤄졌다.
 
뒤쪽 산길을 오르면 남동쪽 코스 중 가장 뚜렷한 서울성곽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여장을 따라 걷다 성곽이 끝나는 곳에서 성 바깥으로 나가 성벽을 따라 내려간다.

이끼 끼고 총탄 맞은 각양각색의 성돌들이 볼수록 아름답게 다가온다.

굽이쳐 흘러내린 성벽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진다.

땅에 조명시설을 설치해 밤 11시까지 성벽을 밝힌다.

세종 때 쌓은 성돌과 숙종 때 쌓은 돌들은 크기와 모양에서 뚜렷이 구분된다.

‘시면’(始面·할당된 공사 시작 지점)이나 지역명 등이 새겨진 각자석도 자주 눈에 띈다.

서울성곽의 남동쪽은 주로 경상지역 주민들이, 남서쪽은 전라지역 주민들이 쌓았다고 한다.
 
암문 부근 슈퍼에서 생수를 사 마시며 갈증을 풀고 땀을 씻었다.

암문은 주민들이 이용하던 비공식 출입구다.

휴대용 물통을 꺼내 마시던 녹색연합 노상은 간사가 말했다.

“조선 오백년 역사가 스민 이 아름다운 성곽을 두고 아직도 도시미관용 장식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서울성곽 자체를 모르는 분들도 아직 많고요.”
 
신라호텔 옆을 지나 장충체육관이 바라다 보이는 큰길에서 성벽은 끊긴다.

여기까지 약 6㎞, 4시간 정도 천천히 걸었다.
 
번화한 현재와 묻히고 드러난 옛 거리 동시에
▣ 둘쨋날. 2구간(장충체육관 뒤 GS편의점에서 광희문~동대문디자인파크(옛 동대문운동장)~흥인지문~낙산공원~혜화문)

 
2구간은 번화한 현재 거리와 묻히고 드러난 옛 거리를 동시에 밟아나가는 코스다.
 
88식당 앞에서 언덕 위 신당동천주교회 쪽으로 오른다.

이제 성곽은 끊기고 그 흔적만이 주택가 골목 곳곳에 남아 있다.

장충아트빌라 옆골목과 성방빌딩 맞은편 왼쪽 골목에 축대로 사용되는 성곽 흔적들이 보인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니 성돌을 보면 축조 시기는 대충 짐작이 간다.

노 간사가 성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세종 때 방식으로 보이네요. 저쪽 건 좀 숙종스럽죠?”
 
장충퍼시픽빌라 골목길을 돌아 내려와 길 건너 계단길(장수길)을 오른다.

오른쪽에 광희문으로 내려가는 ‘수구문길’ 표지가 보인다.

수구문(시구문)은 광희문의 별칭이다.

서소문(소의문)과 함께 도성 안의 시신을 내보내던 문을 가리킨다.

광희문은 길 가운데 있던 것을 현위치로 옮겼다.

한양공고 쪽으로 길 건너 서울메트로 동대문 별관 옆으로 간다.

별관 뒤 동대문운동장역 2번 출구에 작은 쉼터가 있다.

역 안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옛 동대문운동장 터에선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공사가 한창이다.

최근 운동장 땅 밑에서 서울성곽 터가 발견돼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중이다.

공사장 가림막을 따라 돌면 투명유리를 통해 발굴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다.

80여년 전 일제가 흥인지문~광희문을 잇는 성곽을 허물고 동궁 결혼기념으로 경성운동장을 만든 것이 동대문운동장의 시초다.

발굴 뒤 성곽 일부도 복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패션몰·쇼핑센터 즐비한 거리를 지나 포장집촌을 거쳐 흥인지문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청계선 물길 위엔 오간수교가 걸려 있다.

옛날 이곳 성곽 안쪽엔 물이 고이는 곳이어서 성벽에 홍예로 된 다섯 개의 물구멍을 냈었다고 한다.

다리 옆 물가에 이를 본뜬 다섯 개 홍예수문을 만들어 놓았다.

흥인지문 앞엔 1907년 헐린 오간수문 터임을 알리는 표석을 설치했다.

보물 1호 흥인지문을 보고 동대문역 6번 출구로 들어가 1번 출구로 나온다.

여기부터 성곽길이 다시 열린다.

이대병원 옆이다.

낙산지역 문화유산 해설 안내판 옆 위쪽 성벽에서 각자석들을 여럿 볼 수 있다.

 

성밖으로 이어진 골목길은 곧 나무들 우거진 산책로로 이어진다.

 정자와 성터교회 지나 암문을 만나 성 안으로 들어간다.

길 왼쪽은 다닥다닥 붙은 옛 주택가들이 이어진다.

이화동 산동네다.

일본식 가옥을 닮은 이층집도 자주 눈에 띈다.

화장실·낙산체육회 지나면 성곽이 길로 끊기고 길은 왼쪽 낙산공원으로 든다.

광장 옆 암문 밖, 한성대 서쪽 지역은 택지 조성공사 중이다.

성 안쪽 길로 걸어 내려가 나무계단으로 골목길로 들면 로봇박물관 거쳐 혜화역 앞으로 나서게 된다.

혜화동 네거리 오른쪽으로 길 건너 잠시 걸으면 혜화문이다.

4소문 중 동소문인데, 본디 찻길 가운데 있던 것을 옮겨지은 것이다.

소란하고 화려한 현재와 묵묵히 낡아가는 과거가 공존하는 성곽길 약 5.5㎞를 걸었다.

3시간 정도. 


 


 

  ⊙ 첫날·둘쨋날(1~2구간) 워킹 쪽지
 1구간 시작점 숭례문은 시청역 2호선 9번 출구나 1호선 7번 출구, 1호선 서울역 4번 출구, 4호선 회현역 5번 출구를 이용해 간다.

 2구간 시작점 장충체육관은 3호선 동대입구역 4, 5번 출구를 이용한다.

 2구간 출발점 건널목 좌우에 오만가지슈퍼·지에스편의점이 있고, 허름한 밥집들도 몰려 있다.

 88식당은 작은 식당이지만 찌개백반과 반찬들이 맛있다. 조밥이 나온다. 5천원.

 광희문에서 걸어서 7~8분거리의 경동교회 앞 평양냉면은 알아주는 냉면집. 육수도 육수거니와 면발이 아주 좋다.


 

숲길과 정상 부근의 전망 탁 트인 산행 코스
▣ 셋쨋날. 3구간(혜화문~와룡공원~말바위쉼터~숙정문~북악산 정상~창의문)


 

3~4구간은 산행 코스다.

성곽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과 정상 부근의 전망이 훌륭하다.

특히 3구간은 2007년 새로 개방된 북악산 코스로, 산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구간이다.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

혜화문은 4소문 중 동소문에 해당한다.

일제 때 철거된 것을 1992년 찻길 옆 언덕 위로 옮겨 복원했다.

성 밖 길 따라 북쪽으로 걷는다.

왼쪽 성곽 위로 주택가가 형성됐다.

말 그대로 축대가 된 성곽은 두산빌라 담벽을 끝으로 끊어진다.

성곽의 흔적은 잠시 뒤 혜성교회 입구 좌우에서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데,

교회 진입로 축대이자 주택가 뒷벽이 성곽임을 알아챌 수 있다.

골목 안 여기저기서 집들의 축대로 쓰인 성돌들이 눈에 띈다.
 
역시 성벽을 축대로 쓰는 경신중고교를 지나 서울과학고 오른쪽 숲길로 들어선다.

여기에서부터 본격적인 성곽 모습이 나타난다.

성 밖 쪽으로 난 길이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성 안쪽으로 계단과 숲길을 번갈아 걸어 한동안 오르면 성북동으로 빠지는 암문을 지나 와룡공원 쉼터에 닿는다.

흔히 북악산 탐방로의 출발점으로 삼는 곳이다.

트럭 매점인 ‘와룡 카페’가 있고, 운동시설과 나무의자들이 설치돼 있어 커피 한캔 따 마시며 잠시 쉬기 좋다.
 
북악산 성곽의 아름다운 자태는 여기서 암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산길을 오르면서 시작된다. 풀향기는 한결 짙어지고 바람은 걸어 오를수록 싱그럽다. 담쟁이 무성한 바깥쪽 성벽 옆으로 굽이굽이 이어진 흙길은 울창한 숲 안으로 스며든다.
 
성벽에선 태조 때 성돌들과 세종 때, 숙종 때 쌓은 돌들이 번갈아 나타난다.

계속 성밖 숲길을 따라 걷고 싶지만, 나무계단을 만난 지점에서 성 안쪽으로 들어서야 한다.

바깥 길은 울창한 숲길을 거쳐 숙정문 안내소(홍련사 쪽)로 빠진다.

다시 숙정문까지 올라가야 하므로 다소 돌아가는 길이다.

성 안쪽으로 들면 얼마 안가 말바위쉼터에 이른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인적사항을 적은 뒤 패찰을 받아 목에 걸고 숙정문을 향해 오른다.
 
숙정문은 북대문이다.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을 지닌 문이다.

본디 북대문은 출입을 위한 문이 아니라 풍수지리상 격식을 갖추기 위해 지어진 것이어서 평소엔 닫아뒀던 문이다.

가뭄 땐 문을 열어 음기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숙정문 주변에선 자유로운 사진촬영이 가능하다.
 
성곽 따라 소나무숲길을 오르면 화장실 거쳐 곡장 갈림길에 닿는다.

오른쪽 길로 올라 곡장에서 북악산 정상쪽을 바라볼 것을 권하고 싶다.

곡장이란 치성의 일종으로 높직한 지점에 튀어나오게 쌓은 성곽을 말한다.

둥글게 만들어진 성벽 곡장 안에서 내려다보면 북악산 정상과 인왕산 꼭대기로 줄달음쳐 오른 성곽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 너머 서울 도심의 빌딩 숲이 한눈에 잡힐 듯이 깔려 있는 건 물론이다.

북쪽으론 북한산이 지척이다.
 
사진 촬영을 막던 군인이 말했다.

“청명한 날엔, 남산 소나무 가지까지 낱낱이 보입니다. 광화문 거리 골목과 인파가 손에 잡힐 듯해요. 겨울 풍경은 말할 것도 없죠.”
 
곡장에서 내려와 북악산(백악산) 정상인 백악마루를 향해 걷는다.

암문을 드나든 뒤 계단을 오르면 청운대, 1·21사태 때 총탄 맞은 소나무를 지나 북악산 정상(백악마루)에 오른다.

가까이론 경복궁과 빌딩숲이, 멀리론 남산과 관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각자석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청운대 옆 여장 앞에 각자석의 내용을 설명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정상에서 창의문까지 내려가는 길은 매우 가파른 계단길이다.

내려가는 길에도 잠깐씩 쉬어가는 게 경치 감상에도 좋다.

올라오는 이들을 위해 곳곳에 쉼터가 마련돼 있다.

쉼터 주변을 제외하곤 군인들이 성벽 곳곳에서 사진촬영을 제지한다.

몰래 찍다가 걸리면 보여준 뒤 즉시 카메라의 삭제 버튼을 눌러야 한다.
 
창의문안내소에 닿는다. 패찰을 돌려주고 내려오면 아름다운 자태의 창의문(북소문·자하문)이 기다린다.

누에 올라 앉아 잠시 쉰다.

인조반정 때 반정군은 이 문을 열고 들어와 창덕궁을 장악했다고 한다.

출입문 홍예 위쪽엔 봉황무늬가 돋을새김돼 있고, 문 앞뒤 네 곳에 빗물이 흘러 떨어지도록 한 누조가 돌출돼 있다.

출입구 바닥돌은 짚신 나막신 고무신 운동화 군화들이 수시로 드나들어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다.
 
창의문 안쪽 들머리 길 옆엔 ‘청계천 발원지’ 표지석과 1·21사태로 순직한 경찰 추모비와 동상이 세워져 있다.

5.5㎞를 걷는 동안 500㎖짜리 생수 2통을 마셨다.

3시간. 
 
오름길보다 내려간 뒤 만나는 색다른 볼거리 재미
▣ 넷쨋날. 4구간(창의문~인왕산 정상~인왕약수터~사직터널~월암공원~돈의문터~숭례문)


오르는 구간보다는, 정상에서의 전망과 내려간 뒤 만나는 색다른 볼거리들이 흥미롭다.

창의문을 나가 굴다리 지나 왼쪽으로 나가 길을 건넌다.

다시 왼쪽으로 걸으면 인왕산 성곽길로 오르게 된다.

성곽은 곧 찻길로 끊긴다.

정자 거쳐 찻길 아래쪽으로 잠시 걷다가 찻길로 올라서면 곧 바위와 초소가 나타난다.

여기서 길을 건너 작은 철문을 통해 산으로 오른다.
 
오를수록 뒤쪽 전망은 좋으나 여장을 따라 걷는 성곽 안쪽 길이어서 높직한 성벽길을 걷는 맛은 없다.

돌계단을 한동안 오르면 비로소 성밖으로 나서게 된다.

200m 가량을 성곽 밖으로 걷는 동안 태조·세종·숙종 때 쌓은 것으로 보이는 다채로운 성돌들을 만날 수 있다.

 

 앞서 걷던 서울시 문화재관리팀 김용수 주임이 성벽 위 검은빛 여장 부분을 가리켰다.

“보세요. 총안 형태나 덮개돌 등이 처음 쌓았을 때 모습 그대롭니다. 최근 복원한 여장들은 저 모습을 그대로 따른 것이지요.”
 
묵은 이끼로 검은빛이 도는 성돌들에선 총탄자국도 여럿 눈에 띈다. 잠시 뒤 다시 성 안으로 들어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면 탁 트이는 전망과 함께 인왕산 정상이 눈앞에 보인다.

 
북쪽 능선으론 병자호란 뒤 북한산성과 연결해 새로 쌓은 탕춘대성의 흔적이 이어진다.

잠시 내려가 정상으로 오르는 동안 산밑에 흐드러진 등나무꽃 향기를 실어온 바람이 땀을 말려준다.

인왕산 정상에 서면 ‘빼어난 전망이란 바로 이것’이란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삿갓바위 주변에 서면 동서남북 좌우전후로, 조금 과장하자면 서울의 거의 모든 곳이 눈에 들어온다.

북한산·안산·남산·낙산·관악산과 한강 물줄기까지 그리고 그 사이에 솟은 빌딩들과 고궁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상에서 사직터널 쪽으로 내려가는 산능선의 성곽길은 복원의 손을 대지 않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등산로 흙길에 깔린 돌들은 성 안쪽에 채웠던 것들이다.

성벽의 모습을 보려면 길에서 오른쪽 비탈로 내려서야 한다.

‘숙종스럽고 세종스런 성돌들이 담쟁이 덩굴을 뒤집어쓰고 서 있다.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 바위계단길이다. 
 
성곽 옆엔 소나무들이 즐비한데 하나같이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가지마다 엄청난 솔방울을 달고, 촘촘히 새로 피운 무수한 꽃들에서 송홧가루를 분분히 날려보내고 있다.

소나무가 생존에 위기를 느끼고 있다는 표시다.

잠시 내려오면 출입통제 표시가 보이고 공사중 팻말이 나온다.

선바위·국사당 쪽으로 가는 쪽 성곽의 여장 복원공사가 올해말까지 진행중이다.

스님이 장삼을 입은 모습의 선바위와 그 밑에 있는 국사당을 만날 수 없는 점이 아쉽다.

국사당은 태조 때 남산 팔각정 자리에 세웠던 목멱신사를 일제 때 이 자리로 옮긴 것이다.
 
왼쪽 길로 한동안 내려가 인왕약수터에서 목을 축인다.

350m 쯤 숲길을 내려간 뒤 북악산길로 이어지는 순환로를 만나 길 건너 산책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걷는다.

초소 옆쪽에 찻길로 끊긴 성곽이 보인다.

군인관사 앞쪽에서 새로 만든 철계단을 이용해  성곽 옆으로 내려선다.

무악현대아파트 위쪽이다.
 
여기서부터 사직터널 부근까지 아름다운 성곽길이 이어진다.

각자석도 여럿 보이고, 암문도 만난다.

커다란 바위에 성돌을 쌓아올린 모습도 보인다.
 
서울시청 문화재관리팀 곽석권 주임이 말했다.

“자연암반에 쌓을 땐 이렇게 바위를 파서 돌을 맞춰넣는 방식으로 합니다. 이게 ‘그랭이질’이라는 거죠.”
성벽 아래쪽은 고색창연하고 위쪽은 새로 쌓은 돌들이다. 

희게 보이는 여장 부분은 1970년대 복원한 것이다.

 

 성곽이 끊기는 지점의 옥경이식품(슈퍼) 앞에서 성곽 오른쪽 전방 주택가 마당으로 내려서면 오른쪽에 작은 길이 있다.

이 길로 들어서면 400여년 된 은행나무가 기다린다.

이 동네 이름이 행촌동이다.

나무 앞엔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 장군의 집터임을 알리는 표석이 있다.
 
표석 앞쪽에 자리한 서양식 옛 건물이 눈길을 끈다.

1923년 앨버트 테일러라는 미국인이 지은 서양식 주택이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는 1919년 3·1 독립운동 때 유피아이통신을 통해 독립선언 사실을 전세계에 알린 사람이다.

건물 초석에 ‘딜쿠샤(DILKUSHA) 1923’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다시 나와 옥경이슈퍼 앞으로 난 성곽 안쪽 길을 걷는다.

성곽은 상록수어린이집에서 끊긴다.

오른쪽 길을 내려가 다시 왼쪽 골목으로 돌면 왼쪽에 빌라들이 이어진다.

빌라들의 아래층은 주차장인데, 주차장 안쪽 벽이 숙종 때의 성곽이다.
 
송월동(달바위) 월암근린공원으로 들어서 홍난파 가옥을 보고 공원 아래쪽으로 걷는다.

옛 기상청 밑 공원 끝부분에 볼만한 옛 성곽 모습이 펼쳐진다.

오래된 주택가였던 이곳이 정비되면서 숨어 있던 옛 성곽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태조·세종·숙종 때 쌓은 성벽 하단부가 서울복지재단 담으로 이어진다.

각자석들도 많이 보인다.
 
김용수 주임은 “오랫동안 숨겨져 있다 모습을 드러낸 성곽으로,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성곽 축성 방식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강북삼성병원 안의 경교장으로 간다.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뒤 임시정부 집무실 겸 숙소로 썼던 곳이자, 안두희의 총탄에 서거한 장소다.

2층에 집무실을 복원해 백범기념실을 만들었다.

무료. 일·공휴일 휴관.

삼성병원쪽은 병원 부속건물로 쓰던 경교장의 내부 전체를 2011년까지 옛 모습대로 복원할 계획이다.
 
돈의문(서대문) 터를 만난다. 태조 때 처음 사직단 쪽에 세웠던 문을 이곳으로 옮겨 새로 지었던 문이다.

‘새문안길·신문로’라는 지명이 여기에서 비롯했다.

문은 일제 때 철거됐다.

경향신문 앞 정동길로 들어 성곽의 교내 곳곳에 성곽 흔적이 남아 있는 창덕여중·이화여고를 지난다.

창덕여중 뒷문 주변에 성곽의 일부 모습이 남아 있다.

이화여고 안 정원석들도 성돌을 이용한 것이 많다.

 ‘유관순 열사가 빨래하던 우물’ 주변의 정원석들도 옛 성돌들이다. 


신아일보 별관과 ‘광화문 연가’ 노래비를 지나,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을 보고 내려가 길을 건넌다.

길 부근에 소의문(서소문)이 있었다.

중앙일보 옆길로 들면 명지빌딩과 상공회의소 건물 담에서 다시 성곽이 이어진다.

주로 숙종 이후 쌓여진 것으로 보이는 큼직큼직한 성돌들이다.
 
큰길로 나오면 성벽은 끊기고 숭례문은 보이지 않는다.

국보1호는 공사 가림막에 갇혀 있다.

 숭례문 쪽으로, 찻길을 가로질러 길바닥에 표시한 성곽 그림이 안쓰럽다.

창의문에서 여기까지 6㎞.

4시간 걸렸다.
 

  ⊙ 셋쨋날·넷쨋날(3~4구간) 워킹 쪽지
 혜화문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로 나와 200m쯤 가면 길 건너 오른쪽에 혜화문이 있다. 

 창의문 밖 부암동의 자하손만두집(02-379-2648)은 색색의 만두를 손으로 빚어내는 만두집이다. 조랭이떡만두국·만두국 각 1만원.

 숭례문 부근 옛 삼성본관 뒤 진주회관(02-753-5388)은 콩국수로 이름난 집.

 걸쭉한 콩물과 졸깃한 면발을 맛보며 성곽길 걷기를 시원하게 마무리할 만하다. 8천원.


◇ 순례 전에 알아두고 챙길 것
 
서울성곽길 18.2㎞를 걸어서 10여 차례 돌아봤다는 녹색연합 노상은 간사는

 “성곽길은 게으르게 두리번거리며 걸어야 역사의 향기를 느끼고 경치도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속 1.5㎞ 걷기를 권했다. 천천히 거니는 속도다.

성곽길 순례에 앞서 알아둘 점을 정리했다.

◎ 지도를 챙기자=걷기 전에 들르는 지점들을 미리 살피고 문화유적들에 대해 공부해 두면 유익하다.

녹색연합에서 낸 소책자 <서울성곽 순례길>은 상세한 지도와 유적 설명을 곁들이고 있어 편리하다.

서울시내 관광안내소에서 무료로 나눠준다.

처음 3천부만 찍어내 관광안내소에 배부된 소책자가 동이 났을 수 있다.

녹색연합 홈페이지( www.greenkorea.org) 자료실에서 ‘PDF 파일’로 다운받을 수도 있다.


◎ 물과 카메라 준비는 기본=작은 배낭에 물과 간식을 준비하도록 한다.

특히 물을 구하기 어려운 북악산 구간이나 인왕산 구간에선 필수적이다.

북악산·인왕산 구간은 군사시설 지역이어서 사진촬영은 정해진 지역에서만 가능하다.


◎ 시계 반대방향으로 걷자=서울성곽길은 대체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걷는 게 편하다.

특히 인왕산·북악산의 서남쪽 구간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전철역 등 출발점 잡기에도 편리하고 경치 감상에도 좋다.


◎ 문화유산 해설사를 찾아라=서울성곽 전체 구간 해설사는 없다.

북악산 구간의 경우 말바위안내소(02-765-0297)와 창의문안내소(02-730-9924)에서

매일(월요일 제외)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각각 해설사가 출발한다.


◎ 북악산 구간은 신분증 지참을=숙정문안내소·말바위안내소·창의문안내소에서 신분증을 보이고 인적사항을 적어야 한다.

구간 개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입장)까지다.

월요일 휴무. 

 

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