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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 도보후기☞/☆ 강화도의 산&길

[도시와 산] (35) 강화도 마니산 - 마니산 등산코스&마니산 등산지도&마니산 등산안내도 모음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2. 22.

[도시와 산] (35) 강화도 마니산 - 마니산 등산코스&마니산 등산지도&마니산 등산안내도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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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니산 등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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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니산 등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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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니산 등산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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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니산 등산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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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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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산] (35) 강화도 마니산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마니산(469m)은 산세가 아기자기하고 주변에 문화유적지가 많아 수도권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한번쯤은 가봤을 만한 산이다.

하지만 단순한 등산보다는 과학적으로 실체가 입증되지 않은 ‘기(氣)’라는 존재에 끌려 마니산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기를 연구하는 사람과 풍수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마니산이 남한에서 가장 기가 쎈 산으로 알려져 있다.

 

▲ 강화도에 위치한 마니산은 그다지 높지 않아 수도권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하산하는 등산객의 발걸음이 마니산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가볍다.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한국정신과학학회가 전국적으로 기가 세다고 알려진 곳을 찾아 엘로드법(L-ROD:땅에서 나오는 전자에너지를 2개의 금속막대로 측정)으로 측정한 결과 마니산 정상이 65회전으로 가장 높게 나왔다.

그 다음이 합천 해인사 독성각 46회전, 청도 운문사 죽림현 20회전, 대구 팔공산 갓바위 16회전 순이었다.

기 연구가 이재석씨는 “기가 센 곳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활력이 생기고 건강해진다”면서 “마니산은 가장 좋은 기가 나오는 우리나라 제일의 생기처”라고 말했다.

이는 단군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니산 정상에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았다는 참성단(塹星壇·사적 136호)이 있다.

▲ 단군이 하늘에 제를 지냈다는 참성단에서 등산객들이 산세를 음미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이 가장 기가 세기 때문에 단군이 하늘과 소통하는 장소로 정했다고 믿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개천절이면 제례를 올리고 전국체육대회 성화(聖火)가 채화된다.

새해 첫날에는 이곳에서 기를 받아 산뜻한 출발을 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이종휘가 지은 ‘수산집(修山集)’에는 “참성단의 높이가 5m가 넘으며 상단이 사방 2m, 하단이 지름 4.5m인 상방하원형(上方下圓形)으로 이뤄졌다.”는 기록이 있다.

또 이 책에는 “단군이 혈구(穴口)의 바다와 마니산 언덕에 성을 쌓고 단을 만들어 제천단이라 이름하였고, 고려와 조선의 임금과 제관이 찾아가 하늘에 제사 지냈다.”고 적혀 있다.

조선 인조 17년(1639)에 개수축하였고 숙종 26년(1700)에 다시 개수축하고 비(碑)를 세웠다.

강화군은 참성단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2004년 8월부터 특별한 날이 아니면 개방하지 않고 있으며, 지금은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참성단을 둘러싼 펜스가 폐쇄형이 아니어서 가까이 가면 안을 볼 수 있다.

 

▲ 마니산 서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정수사는 도시생활의 찌든 때를 씻기에 제격이다

 

마니산 일대에는 참성단 말고도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다.

산 정상 동북쪽 5㎞ 지점에 있는 정족산 기슭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사적 130호)이 있고, 그 안에는 유명한 전등사가 있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81년에 아도(阿道)가 창건한 전등사는 현존하는 절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녔다.

이 절에는 보물 178호인 대웅전, 보물 179호인 약사전, 보물 393호인 범종 등 귀중한 유산이 즐비해 있다.

대웅전에는 중종 39년(1544) 정수사에서 개판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목판 104장이 보관돼 있다.

또 서남쪽 기슭에는 법당이 보물 161호인 정수사가 있고, 서북쪽 해안에는 장곶돈대(인천시기념물 29호)가 있다.

 

 

유중현(68) 강화향토사 연구소장은 “마니산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단군왕검과 관련된 유적이 있는 곳”이라며 “마니산은 강화 주민들의 정신적 지주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성지라는 상징성이 있다.”고 말했다.

마니산(摩尼山)의 본래 이름은 ‘마리산’이었다.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태종실록’ 등에는 마리산(摩利山) 또는 두악(頭嶽)으로 기록돼 있다.

‘마리’란 ‘머리’라는 뜻의 고어(古語)로 온 겨레, 전 국토의 머리 구실을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 마니산으로 명명되면서 현재까지 그렇게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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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수년 전 강화 주민들 사이에 ‘마리산 지명 되찾기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는데 국토해양부 중앙지명위원회가 지도 변경 등 각종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개명을 받아들이지 않아 무산됐다.

하지만 막상 마니산에 가보면 주변 음식점이나 숙박·문화시설 등은 ‘마리산’이라고 표기한 곳이 많다.

강화주민 자존심의 발로라고나 할까.

 

마니산은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데다 산세가 수려해 등산 목적으로도 효용성이 높다.

정상에 오르면 경기만과 영종도 주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등산코스는 대략 3가지로 분류된다. 정문 격인 상방리 매표소 방향에서 오르는 계단로·단군로, 산 뒤쪽인 정수사나 함허동천 쪽에서 오르는 코스, 선수리에서 시작되는 코스 등이다.

정수사 코스는 옆으로 바다를 조망하면서 주능선에 2㎞ 가까이 이어져 있는 바위군(群)을 타고 참성단으로 가는 재미가 일품이고, 선수리 코스는 서쪽 바닷가에서 측면 능선을 타고 오르기에 3∼4시간가량 소요돼 전문 산행코스로 분류된다.

 

마니산 정상에서의 일출은 동해안과 달리 산 너머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이 주변의 산과 바다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일몰 또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골짜기마다 종교단체 즐비 마니산은 神들의 고향?

 

마니산이 범상치 않은 산임을 방증이나 하듯 마니산 자락에는 종교단체들이 즐비해 있다.

한얼교는 마니산 북쪽 자락에 기도원을 두고 성지로 여기며 참성단을 정기적으로 순례한다.

한얼교는 대구에 종단 본부에 해당되는 본궁(本宮)이 있으나 1980년대 말 강화군 화도면 상방리 일대 9만 9000㎡에 기도원 성격인 ‘머리궁’을 세웠다.

명칭이 마니산의 옛 이름과 상통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신정일이 1967년 창시한 한얼교는 개교 역사를 단군 성조에 두고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지향하는, 불교군(佛敎群)과 그리스도교군 사이에 있는 독창적인 민족종교다.

한얼교 관계자는 “개교조(開敎祖)인 단군과 관련된 유적이 있는 마니산을 순례하는 데 따른 불편을 없애기 위해 이곳에 기도처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무속인들도 이 산을 자주 찾는다. 기(氣)가 강한 산인 만큼 신통력이 뛰어나다는 믿음 때문이다.

단군 할아버지를 신으로 모시는 무속인들이 많은 만큼 이들이 마니산을 찾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들은 등산객들의 눈에 잘 띄이지 않은 산기슭 등에서 며칠씩 기도한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단군신앙과는 거리가 먼 개신교와 천주교도 산중턱과 산밑에 각각 기도원과 성당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향토사학자 유중현씨는 “마니산이 한국인의 정신적 지주이고, 종교의 본질이 정신세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종파를 떠나 마니산에 기도원을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산사랑 산사람]강화도 마니산  - 갯벌`암릉코스 한꺼번에 즐긴다
 
 
 
북경의 만리장성은 달에서도 볼 수 있는 유일한 지구 건축물. 또 없을까? 있다.
그것도 한국에 있다면 그것은 지구를 넘어선 태양계 차원의 기념비적인 일일 것이다.
 
1974년 여의도 전도대회에 온 빌 그레이엄 목사는 “지구 중심부에 점이 하나 있고 주변에 실오라기 같은 흔적이 있다”고 말하고 “나사에서 판독을 해보니 실오라기는 만리장성이고 점은 마니산으로 밝혀졌다”고 말한 바 있다.
 
4342년 전 국조(國祖) 단군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제단을 찾아 대륙을 남하하다가 문득 마니산 참성단에 제단을 쌓고 건국의 웅지를 하늘에 알렸다.
개국의 성소로 랴오허강가의 높은 산맥들이나 백두산, 태백산 등 명산들을 물리치고 469m의 마니산을 택한 이유는 뭘까. 그 비밀을 찾아 강화도를 찾았다.

 

◇역사적 사건`유물 집중 ‘호국의 보루’

 

강화는 그 자체로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정도로 역사적 사건과 유물이 집중되어 있다.

섬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릴 만큼 경주 못지않은 유적 분포를 자랑한다.

지정문화재 105건을 포함하여 모두 539건이 강화도 전역에 퍼져있다.

강화도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고려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온갖 외세침탈의 수난을 홀로 견딘 호국의 보루였다.

고려 때 몽골군이 침략했을 때 왕실은 강화도로 천도해 내성(內城), 외성을 축조하며 장기 항전에 대비했다.

1270년 개경환도 때까지 39년 동안 고려의 임시수도로 기능했다.

조선시대에는 국난 때마다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피난처 역할을 했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 굴욕도 당시 최후의 보루였던 강화도가 무너지면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 타율적 개방의 첫 단추였던 운요호사건도, 조선이 제국주의들의 사냥터로 전락한 단초가 되었던 병인양요, 신미양요도 모두 강화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갯벌`계절 변화 뚜렷…1년내내 북적

 

강화도는 갯벌과 역사와 자연이 조화를 이룬 종합관광지.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데다 계절마다 변화가 뚜렷해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취재팀은 산정산악회 지홍석 대장의 안내로 마니산 산행에 나섰다.

오늘 산행코스는 정수사-참성단-단군로-마니산안내소로 내려오는 9km코스.

취재팀이 정수사 입구에 도착하니 가랑비가 일행을 반긴다.

겨울산과 비의 불협화음을 투정하며 일행은 산으로 오른다.

건조한 날씨 탓에 낙엽은 바짝 건조해 있다.

중턱 쯤 올랐을까.

“차르르르~ 차르르르~”

작은 떨림이 산중에 고요하게 울려 퍼진다.

소리의 출처를 찾아 일행은 걸음을 멈추었다.

아뿔싸! 산밑 가랑비가 어느 새 눈싸라기로 변해 낙엽을 때리면서 나는 소리였다.

낙엽과 눈의 앙상블? 자연의 아름다운 공명(共鳴) 앞에서 산꾼들은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정수사에서 참성단에 이르는 구간은 약 2.8km, 전 구간이 암릉코스로 되어 있다.

일행은 스틱을 접고 본격적인 암릉산행에 나섰다.

서해의 찬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눈발에 길은 질척이지만  수시로 펼쳐지는 발밑 경치에 피로를 씻는다.

성채처럼 쌓인 바윗길은 끝도 없이 계속된다.

한 시간을 걸었을까. 암릉사이로 마니산 정상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상에 서니 경기만(京畿灣)과 영종도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도면 쪽 갯벌이 해무 속에서 희미하게 펼쳐진다.

강화도 갯벌은 세계 5대 갯벌에 랭크될 정도로 이미 세계적인 명소.

그 자체로 천연기념물 415호로 지정된 생태계의 보고다.

 

◇해마다 천제, 전국체전 성화 채화

 

저어새와 갈매기가 이곳을 자양삼아 둥지를 틀고 철마다 잡히는 쭈꾸미, 바지락, 숭어, 밴댕이는 이곳의 명물들. 짙은 연무사이로 수많은 물줄기들이 모세혈관처럼 길을 내 갯벌은 온통 회색 파스텔톤을 뿌려 놓은 듯하다.

강화에서는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고 할 정도로 갯벌은 주민들의 삶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석모도와 장봉도를 품고 있는 서쪽의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일행은 참성단으로 향한다.

참성단은 북으로는 백두산, 남으로는 한라산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전국의 기가 모이는 혈자리로 알려져 있다.

1999년 한국정신과학학회에서 전국의 지기(地氣)를 측정한 결과 참성단이 65회전으로 가장 높은 곳으로 조사되었다.

해인사 독성각 46회전, 운문사 죽림현 20회전, 팔공산 갓바위 16회전 순으로 뒤를 이었다.

시조 단군이 아들 부루(夫婁)를 시켜 참성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린 것도 이곳이 홍익인간의 개국 터로 부족함이 없는 성소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해마다 개천절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전국체전 때는 성화 채화행사를 열고 있다.

취재팀은 참성단을 지나 선수등산로 쪽으로 진행한다. 다시 한 번 롤러코스터 같은 암릉에 몸을 맡긴다.

멀리 바위군(群)속으로 강화해협이 연무 속에서 아득하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는 정족산성에서 패한 후 이 해협을 따라 도주했다.

보고를 받던 나폴레옹 3세가 분을 못이겨 술잔을 던졌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신미양요 때 어재연 장군이 미국군대에게 빼앗긴 ‘수(帥)’자 깃발이 138년 만에 귀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제 취재팀은 단군등산로를 따라 하산 길로 접어든다.

 

◇한강`예성강`임진강 만나는 ‘삼합수’

 

강화바다는 한강, 예성강, 임진강이 만나는 삼합수(三合水). 세계적으로도 세 강이 동시에 만나는 지형은 드물다고 한다.

게다가 9m를 넘나드는 세계 최고 조수간만의 차가 강줄기의 기운과 합해지면서 이곳은 한반도의 기맥(氣脈)으로 자리 잡았다.

겨울에 찾은 마니산. 산행을 왔다기보다 역사순례를 다녀온 기분이었다.

불평하며 올랐던 암릉들도 알고 보면 몽골의 창검을 막아내던 성터들이 아닌가.

국조(國祖)가 지목한 성소답게 외형적 성장도 눈부시다.

동아시아의 허브 영종도 공항엔 국제선이 바삐 날고, 21km의 인천대교도 서해안고속도를 이으며 국토의 대동맥으로 뻗어가고 있다.

인근의 파주 신도시도 장차 통일에 대비한 계획도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의 건국에서부터 외세와 맞선 호국정신이 서려있는 강화도 마니산.

서해 북단의 조그만 산을 넘어서 통일한국의 중심지로 웅비하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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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2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