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에게 잡히지 않는 사슴
메트로 신문 [아침햇살]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
사슴 한 마리가 사냥꾼을 피해 포도밭에 숨었다.
포도나무 잎이 무성했기 때문이었다.
사냥꾼이 사슴을 발견하지 못한 채 지나쳤다.
그러자 안심을 한 사슴이 아무 생각없이 포도나무 잎을 먹기 시작했다.
멀리 돌아가던 사냥꾼이 포도나무 잎이 바스락거리며 움직이고
그 틈새로 사슴을 목격하자 이내 총을 쏘았다.
총에 맞은 사슴이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구해준 포도나무 잎을 먹은 죗값이로구나."
사슴이 개울에 물을 마시러 왔다가 물속에 비친 자기 뿔을 보고 으쓱거렸다.
커다랗게 솟아오른 뿔은 마치 왕관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다리는 그에 비해 너무 가냘프게 보였고 뿔의 위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내 다리는 너무 약하고 못생겼어."
그때 갑자기 사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사슴은 들판 쪽으로 냅다 뛰어 도망쳤다.
얼마나 빠르게 달리는지 사자는 쫓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간신히 살아난 사슴은 정신을 수습하고 나서 숲 속으로 들어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는 언제 추격당했느냐는 듯 우쭐거리며 걸었다.
그러다 그만 주변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나무에 뿔이 걸려 꼼짝달싹할 수가 없게 되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사자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자신을 지켜준 존재에 대한 배은망덕의 결과가
정작 누구에게 피해로 돌아오는지 일깨우고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자신이 깔본 것이 도리어 자기를 살려내고,
자신이 잘났다고 내세운 것이 그의 목숨을 파멸시키는 역설을 짚고 있다.
인생은 때로 추격당하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힘겨운 시절에 우리는 포도밭이 우거진 곳에 들어서서
자기를 알아줄 벗을 찾고 도움을 줄 동지를 구한다.
그러나 처지가 바뀌어 위세도 생기고 세상의 대접도 달라지면
이전의 친구들을 언제 봤느냐는 듯 외면하고 돌아서는 이들이 생겨난다.
그러고나서는 머리위에 솟아오른 자기뿔을 과시하고
그에 비해 위엄이 떨어진다고 여겨지는 자기 다리를 내려다보며
"음, 이 뿔에 비해서 좀 초라하군"하고
그 다리처럼 지금까지 자기를 버텨준 사람들을 얕 잡아본다.
요즈음 안팎으로 공을 세우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민의 환호 소리도 높다.
하지만 승자보다는 패자로 돌아온 젊은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회가 되지못하면,
사자에게 잡히는 사슴들이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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