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즐거움 20선]<20>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조지프 야마토 지음/작가정신
《“걷기는 발 그리고 땅과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세속적이고 평범하고 범속한 행동으로 간주된다. 심지어 더럽고 오염된 행위로 여겨질 때도 있다. 따라서 어느 모로 보나 그냥 무시하거나 경멸해 버려도 되는 행위로 취급된다.…걷기는 주위 환경 속에 묻혀버리며, 걷기를 변화시키는 옷차림, 탈것을 끄는 동물들의 힘, 기술, 산업, 교통수단 속으로 녹아들어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발자국에 기록한 인류문명
“태초에 발이 있었다.”(인류학자 마빈 해리스) 직립보행은 인간과 유인원을 나누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걷기에서 해방된 두 손은 도구를 만드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직립보행 덕분에 호흡과 성대를 더 많이 이용할 수 있게 돼서 말하기와 웃기가 가능해졌다는 주장도 있다. 문명의 전파 역시 걷기를 통해 이뤄졌다. 인간의 두 다리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해왔다.
저자는 ‘걷기’라는 소재를 통해 인류 문명의 변천사를 짚는다. 고대 로마인들은 걷기 편한 도로를 만들어 군대가 빨리 행군할 수 있도록 했다. 유사시에도 병력 파견이 빨랐던 로마는 이를 통해 제국을 건설했다. 중세시대에는 말을 탄 기사와 귀족계급이 출현하면서 이동에 차별이 생기기 시작한다. 기사계급이 등장하면서 일반 농민들은 말이라는 차원이 다른 기동력을 가진 기사에게 몸을 의탁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걸을 수밖에 없는’ 사람과 ‘걷고 싶을 때만 걷는’ 사람. 계급의 차이는 걷기에서도 드러난다. 14세기 무렵 유럽에선 시골에서의 가난한 생활을 피해 도시로 모여드는 농민들이 길거리에 들끓었다. ‘걸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영국의 리처드 2세가 방랑자들에 대한 법률을 공포해 이들을 막으려 했으나 도시로 유입되는 농민들의 물결을 막을 순 없었다. 이처럼 도시로 모여든 노동력은 18세기 산업혁명의 기반이 된다.
18세기 무렵부터 ‘산책’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귀족들은 자신이 선택한 장소로 말과 마차를 타고 가서 걷고 싶을 때 걸었다. 짐을 들거나 물건을 운반하는 일은 하인들에게 맡겼다. 맨발로 터벅터벅 걷는 평민들과 달리 화려하게 장식된 신발을 신고 우아하고 엄숙하게 걷는 모습은 우월한 지위에 대한 증명이었다.
철학자 칸트가 늘 같은 시간에 정확하게 산책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8세기 이후 걷기가 “정신을 고양하고 (세상과) 교감하게 해주는 없어서는 안 되는 ‘시적인’ 이동 방법”이라는 인식이 생겨난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영국의 레이크 지역과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도보여행을 하며 영감을 얻었다. 괴테 역시 마차를 타고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루소도 프랑스와 유럽을 도보여행하며 ‘고독한 보행자의 상념’(1778년) 등의 책을 쓰기도 했다. 도시 문명이 발달하면서부터는 바삐 서두르는 통근자, 자동차를 피해 걷는 사람들, 쇼핑을 위해 배회하는 손님 등 새로운 형태의 걷기가 도시에 등장했다.
인류사의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걷는 모습이 등장했다. 프랑스혁명 때는 분노한 군중이 파리 도심을 걸었고, 히틀러 등의 독재자들은 군인과 시민들의 행진을 사열하며 자신의 권위를 과시했다. 지금까지도 파업과 시위에서 ‘걷기’는 중요한 절차 중 하나다.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생활 속에서 걷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저자는 “발은 지금도 인간의 솜씨, 힘, 아름다움을 눈부시게 보여 준다”고 말한다. 속도의 시대, 그러나 걷기는 인간이 세상과 대화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으로, 지금도 여전히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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