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즐거움 20선]<17>걷는 행복
◇걷는 행복/이브 파칼레 지음/하태환 옮김
《“나는 움직이는 명상가이다. 사람들은 창문으로, 또는 책이나 텔레비전으로, 또는 인터넷으로 세상과 만난다. 나는 개인과 세계를 이어주는 이런 방식들을 이해한다. 그러나 나의 것은 더 역동적이다. 때로는 품위 있고, 때로는 게으르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운동에너지로 활기에 차 있다. 나는 사물을 추론하고, 간접적으로 알거나,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말해 준 것으로 상상하여 재구성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나는 보러 간다. 가능하다면, 만지러 간다. 나의 두 다리란 운송수단을 빌려서.”》
두 발로 세상을 탐구하는 생물학자
저자는 생물학자다. 동식물에 대해 박학다식하다. 그가 걸으면서 발견한 것들을 이야기해줄 때 대부분의 독자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캄차카 반도의 크로노츠키 호숫가를 걸으면서는 황화수소의 우물 속에서 사는 박테리아 군락을 발견하고 생명의 기원을 더듬는다. 40억 년 전 박테리아에서 출발해 진핵세포와 해면동물을 거쳐 비단 발을 지닌 완족류와 지느러미로 헤엄을 친 어류, 네 발로 걷기 시작한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를 거쳐 직립보행을 하게 된 호모 에렉투스까지. 스위스 알프스 습곡을 오르면서는 800만 년 전 고릴라와 갈라서고 500만 년 전 침팬지와 헤어진 유인원(인류)이 서서 걷게 되면서 두개골과 뇌가 폭발적으로 커지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그렇다. ‘우리의 지성이란 것은 우리의 걸음이 잉태한 자식이다.’
그는 또 프랑스 몽도르 산을 오르면서는 다리 하나당 30개의 골격과 29개의 근육으로 이뤄진 걷기의 해부학을 펼치며 우리가 어떻게 걸을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파리의 도심을 산책하면서는 걷기의 평균속도가 시속 4,5km이며 인간은 하루의 4분의 1을 걷기에 쓴다는 계산을 내놓는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하루 4만3200걸음, 30km를 걸으며 대략 80년의 일생 동안 지구를 22바퀴 돌 만큼의 거리를 주파한다.
윈난 성에서 티베트로 넘어가는 히말라야 산맥에서는 걷기의 육체적 고통이 어떻게 쾌락으로 전이되는지 설명한다. 몸이 고통을 받을 때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엔도르핀이 고통부호를 만드는 신경세포의 뉴런 회로 작동을 차단하고 숨겨진 쾌락센터를 자극하는 흥분제를 분출하는 쾌락의 화학이다. 그는 자신이 이 쾌락 때문에 걷기에 중독됐음을 자랑스럽게 고백한다. ‘이런 종류의 행복에 한번 맛을 들이면, 우리는 그것에 자꾸 빠지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재생하려고 한다. 우리는 약에 탐닉하는 마약중독자의 강박적인 행위를 따라한다. 더욱더 자주. 약의 양을 늘리면서.’
그는 자신이 여섯 살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조베 산 꼭대기까지 올라갔던 추억을 더듬으며 걷기에 대해서도 ‘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반복함’, 즉 한 생명이 모습을 갖춰나가는 것이 종(種)의 진화 과정과 유사함을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한 살 무렵 시작되는 아기의 첫걸음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에 비견될 수 있는 거대한 도약이다.
그는 자신이 명상가라고 주장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수다쟁이다. 걸음걸이의 호흡에 맞춰 짧은 단문을 쉼 없이 토해내는 스타카토의 수다쟁이. 그 수다가 때로 횡설수설처럼 들리는 것엔 정당한 이유가 있다. 저자가 효율성을 숭배하고 속도의 강박증에 걸려버린 고속도로의 여행보다는 주정뱅이의 걸음이나 시인의 방랑을 닮은 야생의 오솔길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목적지만 생각하고 걷기보다는 길가에서 희귀한 동식물들을 만나 옆길로 새는 자연스러운 걷기를 좋아한다. 덕분에 독자는 지네처럼 다리가 여럿인 다족류 중 최고기록이 375쌍의 다리를 지닌 일라큼 플레니프스의 것이고, 아마존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가 수루쿠쿠라는 방울 없는 방울뱀이라는 것들을 배울 수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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