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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등산지도] 월출산 등산코스 월출산 산행코스 월출산 산행지도 월출산 등산안내도 모음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11. 19.

[월출산 등산지도] 월출산 등산코스 월출산 산행코스 월출산 산행지도 월출산 등산안내도 모음

 

월출산국립공원 탐방을 위한 등산지도/등산코스 및 준비자료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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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국립공원탐방(도갑사에서 천황사까지)

▲ 월출산 등산지도(등산코스) 및 개념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

 

아래 운동화를 '클릭'하시면 

맥가이버가 지난 2010년 11월 21일(일)에 다녀온

'월출산 종주(도갑사에서 천왕봉 넘고 구름다리 건너 천황사까지)산행'의 사진 후기를 볼 수 있습니다.
 

↓ ↓ ↓ ↓

늘 언제나 항상 변함없이

 

 

 

영암 월출산(月出山)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강진군 성전면 경계에 있는 산.


높이 809m. 소백산맥 여맥의 말단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도갑산(道岬山:376m)·월각산(月角山:456m)·장군봉(將軍峰) 등이 있다.
남원의 지리산, 장흥의 천관산, 부안의 능가산, 정주의 내장산과 더불어 호남 5대 명산으로 꼽힌다.
호남의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백제·신라 때에는 월나산(月奈山),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 조선시대부터 월출산(月出山)이라 불렸다.
기반암은 석영반암·분암이다. 주봉은 천황봉이며, 장군봉·사자봉·구정봉·향로봉 등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천황봉 동쪽의 바람골 일대는 경사가 매우 급하며, 그밖의 사면은 비교적 완만하다.
이곳에서 영산강과 탐진강의 지류들이 발원해 사방으로 흘러내리며, 곳곳에 깊은 계곡과 폭포를 형성했다.
산세가 매우 크고 수려하며, 기암괴봉과 비폭(飛瀑)·벽담(碧潭), 많은 유물·유적 등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월출산의 자연경관과 많은 문화유적을 보호하고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1973년 3월 월출산 일대를 도립공원으로 지정했고,

총면적 41.88㎢가 1988년 6월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주봉인 천황봉에는 평평한 바위, 풀밭, 기묘한 모양의 사자봉, 벼랑길, 동굴 등이 장관을 이루며,

바람골에는 천황사(天皇寺)가 있다.

특히 정상 가까이에는 월출산마애불좌상(月出山磨崖佛坐像:국보 제144호)이 큰 암벽 위에 조각되어 있다.

 

소금강이라고 부르는 동쪽 사면에 위치한 구절계곡은 공원내 최고의 풍치지구이며,

천태만상의 기암괴석 사이로 7단계의 폭포와 바위가 있는 칠치폭포, 구절폭포 등이 있다.

남서쪽으로 내려가는 길목 미왕재 일대에는 억새가 우거진 갈대밭이 있다.

 

천황봉에서 서쪽으로 능선을 따라 약 1㎞ 지점에 있는 구정봉(九井峰:743m)은 월출산의 제2봉으로 금수굴을 지나 올라간다.

산정은 평탄한 암반으로 되어 있으며, 9개의 웅덩이가 있어 구정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9마리의 용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높이 4m, 폭 2m, 길이 8m의 암굴은 캠프장으로 이용된다.

 

월출산계곡은 구정봉 남쪽에 있으며, 이곳에 명소인 금릉경포대가 있다.

그밖에도 북쪽 사면의 용추폭포를 비롯해 황치폭포·대동폭포·은천폭포·용수폭포 등이 있다.

 

월출산 서남쪽 산록의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 위치한 도갑사(道岬寺)는 신라 문무왕 때에 도선국사가 창건했으며,

도갑사해탈문(道岬寺解脫門:국보 제50호)·도갑사석조여래좌상(道岬寺石造如來坐像:보물 제89호)

·도갑사도선수미비(道岬寺道詵守眉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8호) 등이 있다.

 

월출산 서쪽의 군서면 동구림리의 구림마을은 백제의 왕인 박사가 출생한 곳으로 책굴·돌정고개·상대포 등의 유적이 산재해 있다.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무위사(無爲寺)는 구정봉 남쪽 산록에 해당하는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있다.

이곳에는 무위사극락전(無爲寺極樂殿:국보 제13호)·무위사선각대사편광탑비(無爲寺禪覺大師遍光塔碑:보물 제507호) 등이 있으며,

극락전내의 아미타삼존불과 관음보살상을 그린 벽화가 유명하다.

 

무위사 북동쪽 월남리에는 월남사지(月南寺址)가 있으며,

월남사지모전석탑(月南寺址模塼石塔:보물 제298호)·월남사지석비(月南寺址石碑:보물 제313호) 등이 있다.

 

월출산의 첩첩 산줄기 위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일출과 진홍빛으로 서해를 물들이는 일몰광경은 호남 제일의 장관으로 손꼽힌다.

도갑사-정상-천황사, 금릉경포대-정상-천황사, 금릉경포대-정상도갑사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세발낙지 등이 유명하며, 주변에 영산호·유달산 등이 있다.

영암-도갑사-간, 강진-무위사간 버스가 운행되며 월출산의 동쪽으로 영암에서 해남과 강진을 연결하는 국도가 지난다.

 

[출처] 브리태니커

 


영암 월출산 [靈岩月出山]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강진군 성전면의 경계에 있는 산.
 
지정종목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전남기념물 제3호 
지정연도  1972년 1월 29일 
소장  영암군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강진군 일원  
종류  경승지 
크기  해발 809m, 면적 36,694,215㎡ 
 

1972년 1월 29일 전라남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다.
소백산계(小白山系)의 무등산 줄기에 속한다.
해발 809m로 높지는 않지만 산체(山體)가 매우 크고 수려하다.
1973년 3월 남서쪽으로 3.5km 떨어진 도갑산(道岬山:376m) 지역을 합하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6월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달이 난다 하여 월라산(月奈山)이라 하고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이라 불러왔다.


천황봉(天皇峯)을 주봉으로 구정봉(九井峯), 사자봉(獅子峯), 도갑봉(道岬峯), 주지봉(朱芝峯) 등이

동에서 서로 하나의 작은 산맥을 형성하는데,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많아 예로부터 영산(靈山)이라 불러왔다.

동쪽으로 장흥, 서쪽으로 해남, 남쪽으로는 강진만을 가로막고 있는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를 바라보고 있다.


도갑사(道岬寺)·무위사(無爲寺) 등의 사찰과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144) 등을 비롯해,

뾰족한 암봉(岩峰)과 골짜기를 따라 폭포와 유적들이 산재해 있으며, 곳곳에 얽힌 수많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신라 말기에는 99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하며,

북쪽의 용추폭포(龍湫瀑布), 동쪽의 구절폭포(九折瀑布), 남쪽의 금릉경포대(金陵鏡布臺) 등이 절경을 이룬다.

1978년에 천황봉으로 오르는 산 중턱에 길이 51m, 너비 0.6m의 구름다리를 놓았는데, 절벽 높이가 무려 120m나 된다.

예로부터 월출산 산자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경외감을 가져왔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암에 관한 것이다.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動石) 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 바위가 바로 영암인데, 이 동석 때문에 큰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하여 고을 이름도 영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월출산 마애불좌상[月出山磨崖佛坐像]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월출산 서쪽 봉우리인 구정봉 정상 가까이에 있는 암벽에 새겨진 고려시대 마애불좌상.


국보 제144호. 총높이 860㎝, 상높이 600㎝, 선재동자상 87㎝.

암벽을 감형(龕形)으로 파고 그 안에 상을 고부조로 새겼다.

소발(素髮)의 머리 위에 높은 육계(肉髻)가 있고, 네모진 얼굴은 불신(佛身)에 비해 큰 편이다.

약간 치켜올라간 눈꼬리와 꽉 다문 입 등에서 엄숙한 분위기가 풍긴다.

어깨는 각이 져 당당한 느낌을 주는 반면에 팔은 가늘고 가슴은 빈약하며,

하체로 내려올수록 평면성이 강해져 전체적으로 신체 각부분의 비례가 잘 맞지 않는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입었는데 얇아서 몸체의 굴곡선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왼팔 위에는 촘촘하게 주름이 잡혀 있으며 가슴 부분과 다리 위에는 가는 선으로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고,

흘러내린 옷주름이 대좌를 덮어 상현좌(裳懸座)를 이루고 있다.

손 모양은 통일신라 후기부터 고려 초기에 유행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광배(光背)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음각선으로 표현하고 그 주위에 불꽃무늬를 새긴 거신광(擧身光)인데

두광 안에는 연꽃무늬와 당초무늬[唐草紋]를, 신광 안에는 당초무늬를 새겼다.

이 상의 오른쪽 무릎 옆에는 오른손에 지물(持物)을 든 선재동자상이 조그마하게 부조되어 있다.

이 마애불상은 얼굴이 불신에 비해 크고, 신체 각 부분의 불균형과 경직된 표현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브리태니커

 

국립공원 월출산

 

소백산계(小白山系)의 무등산 줄기에 속한다.
해발 809m로 높지는 않지만 산체(山體)가 매우 크고 수려하다.
1973년 3월 남서쪽으로 3.5km 떨어진 도갑산(道岬山:376m) 지역을 합하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6월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달이 난다 하여 월라산(月奈山)이라 하고 고려시대 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이라 불러왔다.

[월출산 국립공원 바로가기]

천황봉(天皇峯)을 주봉으로 구정봉(九井峯), 사자봉(獅子峯), 도갑봉(道岬峯), 주지봉(朱芝峯) 등이 동에서 서로 하나의 작은 산맥을 형성하는데,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많아 예로부터 영산(靈山)이라 불러왔다.
동쪽으로 장흥, 서쪽으로 해남, 남쪽으로는 강진만을 가로막고 있는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를 바라보고있다. 도갑사(道岬寺)무위사(無爲寺) 등의 사찰과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144호) 등을 비롯해, 뾰족한 암봉(岩峰)과 골짜기를 따라 폭포와 유적들이 산재해 있으며, 곳곳에 얽힌 수많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월출산 구름다리
신라 말기에는 99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하며, 북쪽의 용추폭포(龍湫瀑布), 동쪽의 구절폭포(九折瀑布),남쪽의 금경포대(金陵鏡布臺) 등이 절경을 이룬다. 1978년에 천황봉으로 오르는 산 중턱에 길이 51m,너 0.6m의 구름다리를 놓았는데, 절벽 높이가 무려 120m나 된다.

예로부터 월출산 산자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경외감을 가져왔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암에 관한 것이다.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動石) 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 바위가 바로 영암인데, 이 동석 때문에 큰 인물이많이 난다고 하여 고을 이름도 영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등산로 안내]
◆ 제 1 코 스
- 구간 : 도갑사→ 억새밭→ 구정봉→ 바람재→ 경포대
- 거리 : 7.82km  - 소요시간 : 5시간
- 볼거리 : 도갑사(해탈문,석조여래좌상,도선국사비),홍계계곡,억새밭(미왕재), 향로봉,구정봉,마애여래좌상,베틀굴,바람재,금릉경포대계곡/월남사지,녹차단지,무위사


◆ 제 2 코 스
- 구간 : 천황사→바람폭포→ 천황봉→구정봉→억새밭 → 도갑사 ↘ 구름다리 ↗
- 거리 : 8.9km   - 소요시간 : 6-7시간
- 볼거리 : 천황사,바람폭포,광암터,형제봉,통천문,천황봉,바람재,베틀굴,구정봉,마애여래좌상,향로봉,억새밭(미왕재),홍계계곡,도갑사


◆ 제 3 코 스
- 구간 : 천황사 → 구름다리 → 천황봉 → 바람폭포 → 천황사
- 거리 : 5.8km  - 소요시간 : 5시간
- 볼거리 : 천황사, 구름다리, 사자봉, 통천문, 천황봉, 광암터, 형제봉, 바람폭포


◆ 제 4 코 스
- 구간 : 천황사→구름다리→천황봉→ 바람재→ 경포대
- 거리 : 6.1km  - 소요시간 : 5시간
- 볼거리 : 무위사,녹차단지,월남사지모전석탑,금릉경포대계곡,바람재계곡,구정봉,천황봉,통천문,사자봉,구름다리,바람계곡,천황사

 

- 도갑사 홈에서 -
 

 

 

 

월출산 도갑사

ㅁ도갑사는...
대웅보전산세가 빼어나고 풍광이 아름다워 옛부터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이라는 산자락 아래 자리잡고 있다.

신라의 4대 고승 가운데 한 분이신 도선(道詵)국사께서 창건하신 대가람으로그 뒤를 이은 수미왕사와 연담선사, 허주선사, 초의선사 등 역대 고승대덕들이 주석 하시면서 깨달음의 참다운 이치를 널리 펼치셨다.

해탈문(국보 제50호)과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 문수 보현보살 사자코끼리상(보물 제1134호), 5층석탑(보물 제1433호),대형석조, 그리고 도선수미비 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ㅁ도갑사의 역사...

월출산 남쪽 도갑산(해발 376m)을 등지고 주지봉을 바라보는 넓은 산자락에 자리잡은 도량5층석으로 신라말 헌강왕 6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현재 고려시대의 기록은 자료 유실로 알려진 것이 없고 조선 이후의 발자취는 소상히 남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원의 중창은 1456년(세조2년) 수미(守眉)왕사에 의해서였다.

수미왕사는 왕실의 어명을 받들어 국가적 지원으로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을 세웠고, 부속 암자만 해도 상동암, 하동암, 남암, 서부도암, 동부도암, 미륵암, 비전암, 봉선암, 대적암, 상견암, 중견암, 하견암 등 12개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사원중창은 그 후로도 계속 진행되었는데 '억불숭유'의 열악한 사회적 여건 속에서도 대규모의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도갑사가 불교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1653년(효종4년)에는 '도선수미비'와 '월출산도갑사석교 중창비'가 세워졌는데, 당시 영의정과 형조판서 등 국가의 지도급 인사들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것으로 보아 그 당시 도갑사의 위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 후로도 사원의 중수는 계속 이어져 1677년(숙종3년)에는 당간석주를 세웠고, 1682년에는 대형 석조(石槽)를 조성하였다.
18세기 중엽에는 연담 유일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당시 불교사전이라 할 수 있는 '석전유해'를 편찬하였다.

그런데 19세기 이후의 연혁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유실되었으며,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도 일제시대와 6.25전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다.대형석조
더구나 1977년 참배객들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 화려하고 아름다운 대웅보전과 안에 모셔져 있는 많은 성보들이 소실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81년 대웅보전 복원을 시작으로 차츰 옛 가람의 복원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2005년 주지로 부임한 月佑화상에 의해 "대웅보전"이중창되어 2009년 4월11일낙성식을 갖는 등 유관기관의 역사적 검증을 거친 복원불사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대가람에 걸맞게 눈푸른 납자을 양성하기 한 수행환경을 위해 選佛場(선불장)개창하려고 한다.

원컨데 상량을 한 후에는 선지식이 배출되고,온국민이 편안하고 모든백성들이 화복하며 풍족하고 국가는 태평성세 하고 남북이 통일되어 영원히 동북아의 중심 국가로 부상하기를 기원한다.

도갑사는 이제 서서히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앞으로 도선국사의 재 조명에 힘입어 새로운 불교문화의 성지로 자리 매김 할 것이다.

 

- 도갑사 홈에서 -


월출산 도갑사 [道岬寺]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도갑리(道岬里) 월출산(月出山)에 있는 사찰.
 
지정번호  전남문화재자료 제79호 
지정연도  1984년 2월 29일 
소재지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시대  신라 말기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79호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으며, 조선 전기 1456년(세조 2) 수미(守眉)가 중건하였다.

국보 제50호로 지정된 도갑사의 해탈문(解脫門)은 현존하고 있는 한국의 건물 중 보기드문 옛 건축물이며,

이 밖에 대웅보전(大雄寶殿:지방유형문화재 42)·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보물 89)·도선국사비(지방유형문화재 38)·

명부전(冥府殿)·팔각석등대석(八角石燈臺石)·3층석탑·5층석탑·석제(石製) 구유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도선 및 수미대사의 영정(影幀)이 봉안되어 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도갑사 석조여래좌상 [道岬寺石造如來坐像]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도갑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화강암 불상.
 
지정종목  보물 
지정번호  보물 제89호 
지정연도  1963년 1월 21일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  
시대  고려 
종류  불상 
크기  높이 3m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89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3m. 같은 돌에다 불상과 광배(光背)를 조각하였다.

나발(螺髮)에 육계(肉髻)가 크며 타원형 얼굴이다.

도톰한 눈두덩, 넓적한 코, 덤덤한 입에는 미소를 띠고 있다.

투박한 귀는 짧고, 목은 길지만 삼도(三道)는 형식화되었다.

어깨는 넓지만 부자연스러우며 몸의 굴곡도 단순하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팔도 생동감이 없고 조각기법도 둔하다.

우견편단(右肩偏袒)의 법의는 옷주름 몇 가닥을 투박한 선으로 표현하였을 뿐이다.

광배는 주형(舟形)이고 신라의 양식과 달리 곡선미를 찾아볼 수 없다.

두광(頭光)도 홑잎 연화(蓮華)무늬를 표현하였고, 꼭

대기와 양옆에 각각 화불(化佛)이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화염(火焰)무늬가 표현되었다.

대좌는 연화대좌(蓮華臺座)로 짐작되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얼굴의 세부표현이 예리하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평면성을 강조하였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영암 도갑사 해탈문 [靈巖 道岬寺 解脫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도갑사에 있는 문.
 
지정종목  국보 
지정번호  국보 제50호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소장  도갑사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시대  조선 
종류  사찰건축 
크기  정면 3칸, 옆면 2칸, 단층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옆면 2칸, 단층 맞배지붕의 주심포(柱心包) 형식이다.

석조기단(石造基壇) 위에 선 규모가 작은 문으로, 중앙 칸은 통로로 되어 있다.

원래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을 안치하였다고 하나 없어지고, 뒷쪽 좌우 칸에 보물 제1134호인 2구의 목조동자상이 봉안되어 있다.

구조는 약한 배흘림을 지닌 둥근 기둥 위에 이출목(二出目)의 공포(栱  包)를 올렸고, 그 위에 대들보를 올렸다.

보 끝은 외목(外目)도리를 받고, 대들보의 양단(兩端) 근처에

마루보 끝을 받치는 포대공(包臺工)의 첨차(檐遮)가 바로 우미량(牛眉樑)이 되어,

앞으로 나오는 것을 기둥 위의 대들보에서 받아, 이것이 주심(柱心)도리를 받친다.

마루보 중앙에는 포대공으로 된 마루대공을 두어 마루도리를 받으며,

마루도리 앞뒤에서 약한 반곡(反曲)을 지닌 소슬합장(合掌)이 역시 마루도리를 떠받치고 있다.

 

이 문의 건축양식의 특이한 점은 공포가 구조적으로는 고출목 같으나 형태는 출목으로 보이고,

또 대들보나 마루보 위에서 마루도리나 대들보를 지탱하는 포대공의 양식이 기둥머리에 있는 공포와 전혀 달라

마치 다포집 양식의 공포와 같은 형태로 된 점이다.

따라서 이 건물은 주심포집 양식에서 가장 많이,

또 구체적으로 다포집 양식의 수법을 혼용한 가장 뚜렷한 유구(遺構)로서 흥미 있으며,

한국에서 보기 드문 산문(山門) 건축으로 매우 중요하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 [道岬寺道詵守眉碑]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 있는 도갑사를 창건한 도선국사와 중창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
 
지정종목  보물 
지정번호  보물 제1395호 
지정연도  2004년 1월 26일 
소장  도갑사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시대  조선 
종류  석비 
크기  전체 높이 약 4.8m, 폭 1.42m 

 

2004년 1월 26일 보물 제1395호로 지정되었다.

이 석비는 귀부(龜跌)와 비신(碑身), 이수를 모두 갖춘 전형적인 것으로, 도선국사와 수미선사를 추모하는 비이다.

 

도선국사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걸쳐 활동한 승려로,

속성은 김(金), 호는 옥룡자(玉龍子)이며 전라남도 영암 출생이다.

15세에 지리산 화엄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중국에 가서 풍수지리를 공부하고 돌아와서 문수사 터에 도갑사를 세웠다.

그후 전국 명산대찰을 두루 섭렵하고 나서 백계산 옥룡사에서 평생을 마쳤다.

그의 음양지리설·풍수사상은 고려 ·조선 시대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수미선사는 조선 전기의 승려로 속성은 최(崔), 본관은 고랑주(古朗州), 호는 묘각(妙覺)이다.

13세에 출가하여 영암 월출산의 도갑사에서 수행하고 20세 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그 후 속리산 법주사에서 신미(信眉)와 함께 수도에 정진하였으며, 선교(禪敎)를 부흥시키는 데 힘썼고,

1457년(세조 3)에 도갑사로 들어가 절을 중수하였으며, 1458년 왕사(王師)가 되었다.

비신의 옆면에 새겨진 구룡문(龜龍文)이 정교한 조법을 보여준다.

17년이 걸려 1653년(효종 4)에 세운 것인데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서 새로 지은 것처럼 말끔하다.

전체 높이가 약 4.8m, 폭은 1.42m이며 표면에는 약 1,500자가 음각되어 있다.

 

비의 이수는 두 마리의 용이 동·서를 향하여 머리를 쳐들고 있고

비신 측면의 조각 역시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향하고 있으며

크고 미끈한 거북이가 비석을 지고 고개를 틀어 절 있는 쪽을 보고 있다.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두툼한 등껍질 위에 가장자리가 말린 넓은 연잎이 조각되어 비신을 받치고 있다.

이처럼 구름이나 연꽃무늬가 아니고 연잎으로 비신을 받친 것은 조선시대의 비에서만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몸통이나 머리에 비하면 발 부분은 빈약하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도갑사 석조 [道岬寺石槽]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도갑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돌그릇.
 
지정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지정번호  전남유형문화재 제150호 
지정연도  1987년 6월 1일 
소장  도갑사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6  
시대  조선 
종류  석조 
크기  길이 467cm, 폭 116cm, 높이 85cm 

 

1987년 6월 1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석조란 큰 돌의 내부를 파서 물을 담아 쓰거나 곡물을 씻는 데 쓰는 돌그릇을 말한다.

 

도갑사의 대웅전 앞뜰에 있는 300년 된 초대형의 고풍스런 석조는

화강암으로 만든 기다란 네모 모양의 통나무배 모양으로

네 귀의 모서리를 죽였으며 거죽의 밑바닥도 반원형으로 돌려 처리하였다.

승려들이 마실 물을 담아 두는 석조의 안쪽 밑바닥에는 물을 뺄 수 있는 작은 배수구가 있다.

 

‘강희(康熙) 21년 임술(壬戌)’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인 1682년(숙종 8)에 제작된 석조임을 알 수 있다.

크기는 길이 467cm, 폭 116cm, 높이 85cm에 이르는 17세기 말의 거대한 석조이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월출산 천황사 [天皇寺]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 월출산(月出山) 사자봉에 있는 사찰.
 
종파  대한불교법화종 
창건시기  신라 말 
소재지  전남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 

 

대한불교법화종에 소속된 사찰이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597년(조선 선조 30)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46년(인조 24) 중창된 뒤 소규모 절로 명맥을 유지해 왔다.

1947년 영암군 청년단체에서 수련장으로 쓰던 건물을 시주하여 법당을 삼았다.

1953년 주지 정업(正業)이 인법당을 건립하였으며, 1959년 칠성각을 조성하였다.

1976년 이종철이 주지로 부임한 후 불사를 진행해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 인법당과 칠성각이 있다.

인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해

아미타극락회상도·관세음보살입상도· 지장탱화·독성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법당에 붙여 지은 칠성각에는 산신과 칠성·독성을 탱화로 모시고 있다.

 

유물로 탑재와 부도 대좌, 석조(石槽) 등이 남아 있다.

이중 탑재는 모두 3조각이 전해지고 있으며, 석조는 가로 261cm, 세로 157cm 크기로 최근까지도 사용된 것이다.

경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60년대 후반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았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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