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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싶다☞/♤ 도시와 산

[도시와 산] (23) 대구 비슬산

by 맥가이버 Macgyver 2011. 2. 5.

 

[도시와 산] (23) 대구 비슬산
고승 일연 환생한 듯… 고뇌 잠긴 듯

대구의 명산을 꼽으라면 팔공산과 비슬산이다.

비슬산이 팔공산의 그늘에 가려 늘 2인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해발도 1083.6m로 팔공산(1192.9m)과 차이가 없고 산세도 비슷하다.

계절별로 독특한 풍광을 자아내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봄이면 정상 부근에 들어선 참꽃 군락지에서 일제히 붉은빛을 뿜어내고 여름에는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더위를 식혀 준다.

가을이면 억새 군락이 장관을 연출하고 겨울에는 얼음 동산이 눈길을 끈다.

‘삼국유사’를 편찬한 고승 일연이 37년을 머물며 수도할 정도로 불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 색다른 산세를 자랑하는 대구 비슬산. 대견사터 근처에 우뚝한 부처바위가 속세의 번뇌를 떨치지 못한 듯 산자락을 굽어보고 있다. 대구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비슬산 정상은 신선이 앉아 비파 켜는 형상

 

대구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에 걸쳐 있는 비슬산은 정상인 대견봉을 중심으로 청룡산(794.1m)과 산성산(653m)을 거느리며 대구 앞산(660.3m)까지 뻗친다.

‘비슬’이란 이름은 비파 비(琵), 큰 거문고 슬(瑟)자에서 보듯 정상 바위의 생김새가 신선이 앉아 비파를 켜는 형상이라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비슬산이 포산(葡山)으로 기록돼 있고 비슬이 범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달성지’에는 비슬이란 말은 범어의 발음을 그대로 음으로 표기한 것이고 비슬의 한자의 뜻이 포라고 해서 포산이라고도 하는데 포산이란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란 뜻을 갖는다고 기록돼 있다.

채수목 전 달성문화원장은 “신라 때 유가사에 온 인도의 스님이 비파 모양이라는 의미로 비슬산이라 했고 조선 때에는 비슬산의 한자가 포를 의미하기 때문에 포산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비슬산이 있는 현풍면은 예전에 포산으로 불렸다.”고 했다.

또 이 바위의 형상이 비둘기처럼 생겨 ‘비들산’으로 불리다가 비슬산으로 됐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옛날 천지개벽 때 온통 물바다가 됐는데 비슬산만 높아 남은 바위에 배를 매었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 일연 비슬산에서 37년 머물러

 

다른 명산처럼 비슬산도 불교와의 인연이 각별하다.

신라 흥덕왕 2년에 도성국사가 창건한 유가사와 용연사, 소재사, 대견사지 등이 있다.

수도암, 도성암 등 암자도 많으며 한때는 1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신라 사찰인 대견사는 지금은 주춧돌과 석탑 1기만 남았지만 주변 흔적을 보면 당시의 규모와 위용이 만만치 않았음을 읽을 수 있다. 대견사에 얽힌 전설도 있다.

중국 당나라 황제가 어느날 세수를 하려는데 대야 물속에서 험한 지형에 웅장한 절이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황제는 이 절을 찾기 위해 중국 곳곳을 뒤졌으나 찾지 못하자 신라에 사람을 보내 찾은 게 대견사지였다.

황제가 신라에 돈을 보내 절을 짓게 하고 중국에서 보았던 절이라고 해 대견사라고 했다 한다.

삼국유사를 지은 보각국사 일연도 비슬산에 머물렀다. 교사이자 향토사학가인 차성호씨는 ‘달구벌 문화 그 원류를 찾아서’라는 책에서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일연은 9세 때 출가해 20세 때 승과시험 장원을 했다.

그런 다음 곧바로 비슬산 보당암에 들어가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고 기술했다.

달성군 학예연구사 김제근씨는 “일연은 비슬산 일대 많은 사찰과 암자를 옮겨 다니며 머물렀다.

그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해 준 곳이다.

일연이 군위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편찬했지만 자료수집 등 집필 준비는 37년간 비슬산에 머물면서 했다.”고 밝혔다.

비슬산 남서 기슭, 낙동강이 맞닿은 구지면 도동리에는 잘 정비된 서원이 있다.

조선 초 성리학자인 사옹 한훤당 김굉필을 모신 도동서원이다.

 

●등산객 사로잡는 매혹적인 풍광

 

비슬산 등산로는 경사가 심하다. 그러나 능선에 올라선 이후로는 그리 험하지 않다.

산행은 계곡과 능선으로 뻗은 다양한 등산로 덕분에 여러 갈래로 가능하지만 주로 달성 현풍과 청도 두 곳에서 시작한다.

 

가장 인기있는 코스는 유가사다. 경관이 수려해서다. 유가사 주차장~도성암~대견봉~대견사지를 거쳐 되돌아오는 코스로 4시간50분가량 걸린다.

정상인 대견봉에 올라서면 트인 조망이 탄성을 자아낸다.

대견사지 주변에는 참꽃 군락지가 산재해 있다. 4월이면 진달래꽃이 장관을 이룬다.

 

정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길은 조화봉으로 뻗은 주능선길이다. 도중에 석검봉이 오묘한 자태를 뽐낸다.

온갖 종류의 기암괴석이 곳곳에 있다. 소재사 방향으로 하산하다 보면 천연기념물 435호인 암괴류를 만나게 된다.

1만~8만년 전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 때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폭 80m, 길이 2㎞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비슬산 매력에 빠져 한달에 1~2번은 찾는다는 김정원(47·대구시 달성군 화원읍)씨는 ”한국의 명산으로 전혀 손색이 없지만 다른 산에 비해 덜 알려져 있어 사람의 손때가 많이 묻지 않은 게 오히려 비슬산 만의 장점이다.”고 말했다.

비슬산은 다양한 동식물이 분포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희귀 화초류인 솔나리가 자생하고 천연기념물 황조롱이를 비롯해 오색딱따구리 등이 서식하고 있다.

달성군과 경북대가 조사한 결과 80~120종의 철새 및 텃새와 723종의 식물이 있다.

김상준 달성부군수는 “비슬산 일대에는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식물 등이 서식하고 정상 부근 100만㎡에는 진달래 군락이 자리잡고 있다.”며 “곳곳에 있는 유적과 함께 비슬산은 생태계의 보고이자 역사·문화의 산 교육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서울신문 2009-09-07  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