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시조 시인 이은상이 고향 마산 앞바다를 떠올리며 지었다는 시 ‘가고파’다.
경남 마산시 무학산(舞鶴山)에 오르면 가고파의 이 애틋한 노랫말이 눈앞에 펼쳐진다.
학을 타고 산·바다·도시의 풍경을 한꺼번에 조망하는 산행 재미도 색다르다.
무학산은 마산의 진산이다. 항구도시 마산을 서북쪽에서 남북으로 길게 병풍처럼 둘러싸고 우뚝 솟아 있다.
해발 761.4m로 백두대간 낙남정맥(南正脈) 기둥 줄기의 최고봉이다.
시민들은 불의에 항거하는 마산 정신이 무학산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 날개를 펼친 학이 춤추는 형상을 한 경남 마산의 무학산. 정상을 향해 계단을 오르는 등산객들 뒤로 잔잔한 마산앞바다가 보인다. 마산 시민들은 무학산을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이 깃든 산으로 여기고 있다. 마산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 춤추는 학을 닮은 산
무학산의 옛 이름은 두척산(斗尺山)이었다. 학이 춤을 추는 모습과 같아 무학산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이 군사지도를 만들면서 붙였다는 설도 있다.
문헌 속에 무학산 표기는 조선시대 영남읍지를 발췌해 엮은 ‘영지요선’에 처음 나온다.
정상은 학 몸통의 중심에 해당한다. 서원골 동쪽에 바위로 이뤄진 학봉은 학의 정수리다.
정상 바로 아래 서마지기에서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줄기가 왼쪽 날개. 오른쪽 날개는 대곡산과 만날고개로 이어져 가포만 바다로 닿는다.
지역 산악인들은 “무학산은 높이에 비해 산세가 험하고 웅장하지만 곡선이 부드러워 편안하고 포근한 어머니 같은 산”이라고 말한다. 겨울 북서풍을 막아주는 무학산 덕분에 41만 마산 시민들은 따뜻하게 겨울을 지낸다.
신라시대 학자 최치원의 발자취가 무학산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산자락 합포만에는 최치원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유서깊은 월영대가 있고 그가 직접 쓴 ‘월영대’ 입석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최치원이 수도하던 고운대가 무학산 정상에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 산행객을 지키듯 우뚝 선 서마지기 장승. |
● 3 ·15 정신의 발원지
마산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성지이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해 4·19혁명을 촉발시킨 3·15의거와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에서 보듯 마산은 불의에 앞장서 분연히 일어났다.
시민들과 향토사학자 등은 “마산을 어머니처럼 감싸안은 무학산의 거침없는 기개와 정기가 자유·민주·정의를 사랑하는 마산 시민정신의 원류”라고 말한다.
무학산 정상의 표지석 뒤쪽에 새겨놓은 ‘삼월정신의 발원지’라는 글귀와 일년내내 내건 태극기는 무학산에 대한 시민들의 강한 자부심의 표시다.
호수처럼 잔잔한 마산 앞바다, 그 서정적인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무학산은 마산을 문학과 예술의 도시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지역 문인들은 “이은상을 비롯해 아동문학가 이원수, 작곡가 조두남, 무용가 김해랑, 조각가 문신, 시인 천상병, 소설가 이제하, 음악가 반야월, 만화가 방학기, 영화감독 강제규 등 뛰어난 문학·예술인이 마산에서 많이 배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마산문학인 일동이 노랫말을 지은 ‘마산의 노래’를 비롯해 지역 대부분의 학교 교가가 ‘무학산~’으로 시작된다.
대표적인 향토기업인 주류제조회사를 비롯해 ‘무학’이 들어가는 상호도 즐비하다.
국립 3·15민주묘지, 문신미술관 등이 무학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마산시립박물관 송성안(41) 박사는 “무학산은 마산의 상징으로 마산시민들에게는 정신적 지주이며 생활에 활력을 주는 청량제”라고 평가했다.
▲ 서원곡 입구 등산로 초입의 백운사. |
● 학을 타고 가고파를 감상한다
무학산의 이곳저곳을 오르내리며 웅장하고 부드러운 산세, 그 아래 펼쳐진 평온한 도시와 바다, 보석처럼 올망졸망 떠 있는 크고 작은 섬 등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봄의 무학산은 진달래꽃에 덮여 붉은 학으로 변한다.
학봉과 꼭대기, 대곡산 등의 진달래 군락이 절경을 연출해 전국에서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무학산에 오르는 길은 12가닥이 있다.
남북을 종주하는 코스로는 남쪽 만날고개~대곡산~무학산 정상~북쪽 봉화산으로 이어진다.
북능은 창원시 천주산으로 이어진다.
서원계곡에서 걱정바위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길이 거리가 짧으면서 경관도 빼어나다.
정상까지 1.9㎞로 1시간30분 남짓이면 오른다.
서원 계곡은 무학산이 동쪽으로 길게 뻗어내린 울창한 숲 사이에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서원계곡은 조선시대 회원서원이 있었던 데서 붙여졌다.
조선 중기 학자 정구 선생을 추모해 그의 문하생 장문재 선생이 지었다는 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
고종 23년(1885년) 중수한 정자인 관해정(觀海亭)이 남아 있다.
서원계곡을 지나 숲 속으로 7부능선쯤 오르면 우뚝 솟아 절벽을 이룬 걱정바위가 나타난다.
확 트인 바위에 서면 온갖 걱정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걱정바위를 지나 나무로 된 365개의 사랑계단을 오르면 정상 바로 아래 널찍한 ‘서마지기’ 광장이 나온다.
서마지기에서 다시 365개의 건강계단을 오르면 무학산 정상이다.
마산만 앞바다에 거북이 모양으로 떠 있는 아담한 돝섬, 마산~창원을 잇는 마창대교, 진해 앞바다….
낙남정맥의 최고봉답게 마산·창원 시가지를 비롯해 서북쪽까지 사방이 발아래 시원하게 펼쳐진다.
정상에서 만난 등산객 이모(53·마산)씨 부부는 “맑은 날에는 지리산 천왕봉까지 보인다.”며 지리산 방향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마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이곳에도 가보세요] 만날고개 돝섬 전설따라 걸어요
경남 마산 무학산 남쪽 끝자락 만날고개(해발 180m)에는 모녀 상봉의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고려 말 마산포 바닷가에 가난한 양반 이씨 가문의 편모슬하 세 딸과 어머니에 얽힌 이야기다.
세 딸 가운데 맏딸은 동생들과 병을 앓고 있던 어머니가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하려고 돈을 받고 고개 너머 부잣집 윤진사댁의 반신불수에다 말 못하는 외아들에게 시집 간다.
혹독한 시집살이에다 3년 만에 남편까지 자살해 청상과부로 지내던 맏딸은 여러 해가 지난 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친정 소식이라도 들을까 해서 음력 8월17일 살그머니 만날고개로 나갔다.
때마침 친정어머니도 같은 생각에서 고개로 나왔다가 서로 만나게 돼 모녀는 얼싸안고 눈물을 쏟았다는 이야기다.
이 전설에 따라 만날고개로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음력 8월17일 이곳에 가면 만나게 된다는 새로운 전설이 더해져 해마다 만날고개에서는 만날제 축제가 열린다.
무학산은 마산 앞바다에 있는 돝섬과 얽힌 전설도 전해진다. 김해 가락왕이 좋아하던 후궁이 어느 날 사라져 왕은 수소문 끝에 마산 앞바다 조그만 섬에 사라진 후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람을 보내 돌아올 것을 간청했으나 후궁은 금빛 돼지로 변해 무학산 큰 바위틈으로 사라진 뒤 밤마다 여자들을 잡아갔다.
왕은 군사들을 동원해 무학산 바위를 공격했더니 후궁이 돼지로 변해 나타났다. 군사들은 칼로 돼지를 내리쳤다.
그 순간 한 줄기 빛이 섬으로 뻗었다가 사라졌다. 바위 속에서는 사람 유골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빛이 뻗었던 섬에서는 밤마다 돼지 우는 소리와 광채가 났다.
합포만 월영대에 머물던 최치원이 이를 보고 섬을 향해 활을 쏘았더니 광채가 없어졌다.
다음날 최치원이 섬으로 가 화살이 꽂힌 자리에 제를 지낸 뒤부터는 기이한 현상이 없어졌다고 한다.
마산항에서 1.5㎞쯤 떨어져 있는 이 섬이 돝섬으로 지금은 해상 유원지가 조성돼 있다.
마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그곳에 가고싶다☞ > ♤ 도시와 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시와 산] <26> 부산 황령산 (0) | 2011.02.06 |
---|---|
[도시와 산] (25) 전남 장성 백암산 (0) | 2011.02.06 |
[도시와 산] (23) 대구 비슬산 (0) | 2011.02.05 |
[도시와 산] (22) 청양 칠갑산 (0) | 2011.02.05 |
[도시와 산] (21) 강릉 제왕산 (0) | 2011.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