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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싶다☞/♤ 도시와 산

[도시와 산] (25) 전남 장성 백암산

by 맥가이버 Macgyver 2011. 2. 6.

 

[도시와 산] (25) 전남 장성 백암산
날개 편 白巖엔 날개 꺾인 전봉준 혁명의 기상 붉은 노을 되어 빛나고

운문일영무인지(雲門日永無人之·운문의 해는 긴데 찾아오는 이 없고)

유유잔춘반낙화(猶有殘春半花·아직 남은 봄에 꽃은 반쯤 떨어졌네)

일비백학천년적(一飛白鶴千年寂·백학이 한번 나니 천년 동안 고요하고)

세세송풍송자하(細細松風送紫霞·솔솔부는 솔바람이 붉은 노을을 보내는구나).

 

 전남 장성군 북하면 백양사 진입로에 들어서면 조그만 안내판에 조계종 5대 종정을 역임한 서옹(1912~2003년) 스님이 남긴 시구를 만날 수 있다.

이 사찰의 방장으로 지내다 2003년 12월13일 입적하기 며칠 전 지은 열반송(涅槃頌)이다.

고려 말~조선조엔 이색, 정몽주, 김인후, 송순 등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백암의 절경을 노래하기도 했다.

백암산은 깎아지른 듯한 병풍바위로 백양사를 품에 감싸고 있다. 해발 741.2m의 상왕봉을 정점으로 전남 장성군 북하면과 전북 순창군 복흥면, 정읍시 입암면에 걸쳐 있다.

봄·여름은 안개 낀 골짜기와 원시림을 선사하고, 가을은 곱디고운 단풍으로 물든다.

겨울과 이른 봄엔 고로쇠 물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매년 단풍철엔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진입로가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이다.

 

▲ 전남 장성의 백암산은 예부터 빼어난 산세에 감탄한 수많은 시인이 찬사를 보낸 산이다. 절경에 걸맞게 법력이 높아 사찰이 많다.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의 백학봉이 비친 천년고찰 백양사의 연못 물색이 번뇌의 얽매임마저 씻어낼 듯 시리도록 푸르다.
장성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북동쪽과 맞닿은 내장산, 북서쪽의 입암산과 더불어 ‘내장산국립공원’이라 불린다.

단풍의 유명세는 내장산에 밀리지만, 정작 산악인들은 백암산을 ‘으뜸’으로 친다.

산세와 풍광이 빼어나 예부터 사찰이 많고 골마다 천년 역사가 살아있다.

장성문화원 김진노(46) 사무국장은 “천년 고찰 백양사는 장성군의 얼굴이나 다름없다.”며 “사찰에 얽인 설화나 전설 등을 관광문화 콘텐츠로 개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학이 날개를 편 백학봉

 

산 이름은 중턱에 자리한 백학봉(白鶴峯·651m)에서 유래했다.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의 하얀 바위가 가파르게 솟아 있다.

늦은 오후 석양이 바위를 비추면 거대한 거울 병풍이 백양사 골짜기를 비추는 형상이다.

밑자락에 고불총림 백양사가 자리하고 있다.

많은 스님이 수행 정진하는 절이란 뜻의 총림이 붙을 정도로 법력이 높은 곳이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여환선사가 세웠다.

그때 이름은 산 이름과 똑같은 백암사(白巖寺)였다. 조선 선조 때(1574년) 백양사로 고쳤다.

 

환양선사가 백련암에서 7일간 백연경을 설법하는데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렸으며, 이 가운데 흰 양이 한마리 섞여 있었다.

법회가 끝나는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저는 본래 이 산에 사는 양인데 큰 스님의 설법을 듣고 사람으로 환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날 영천굴 아래서 죽어 있는 흰 양을 나무꾼이 발견해 화장해 주었다. 그 이후로 백양사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백양사 이외에도 서옹 등 큰스님들이 주로 머물던 운문암, 동학혁명 당시 전봉준이 관군에게 붙잡히기 전 3일간 머물렀던 청류암, 천연 동굴로 이뤄진 영천암, 약사암, 비구니승의 도량인 천진암 등 수많은 암자가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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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풍광·희귀 동식물의 보고(寶庫)

 

백암산은 빼어난 경관 못지않게 생태계의 보고로 통한다. 백암사무소~백양사에 이르는 1.5㎞ 남짓한 숲길은 가히 비할 데가 없다. 단풍철이면 더욱 그렇다. 하늘이 쳐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아기단풍과 수령 700년 된 갈참나무, 노송, 비자나무 등은 신비감을 자아낸다. 절문앞 쌍계루와 연못은 백학봉과 어울려 ‘대한 8경’으로 꼽힌다. 숲길 여기저기엔 개화철을 맞은 상사화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스님과 처녀의 ‘이룰 수 없는 사랑’ 전설을 담은 슬픈 꽃이다.

 

이영숙(28·여·광주 남구 봉선동)씨는 “단풍나무 길을 걸으면 내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며 “집에서 차량으로 40분쯤 거리여서 맘 내킬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백암산과 내장산 일대엔 1653종의 동물이 분포한다.

하늘다람쥐, 사향노루, 수달, 담비, 까막딱따구리 등 80여종의 포유류와 조류가 있다. 이에 따라 각종 동식물을 탐방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김모(13·광주 서초등학교 6년)군은 “사슴벌레 등 희귀한 곤충류 등을 직접 관찰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왔다.”고 말했다.

 

희귀 식물도 지천이다. 절 뒤쪽의 비자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153호이다. 이곳이 우리나라 비자나무의 북방한계선이다. 사자봉 동쪽의 운문암 주변에는 아열대성 상록활엽수인 굴거리나무 숲(천연기념물 제91호)이 자리한다.

 

●산행코스는 순탄

 

산세에 비해 등산로는 순탄한 편이다.

백양사~약사암~영천굴~백학봉~상왕봉~사자봉~가인마을에 이르는 8.5㎞ 구간을 많이 이용한다.

영천굴~백학봉은 급경사이지만 백학봉~정상 능선은 경사가 완만하다.

정상(상왕봉)~순창새재~소죽엄재~까치봉~ 신선봉~내장사에 이르는 횡단코스는 8시간 정도 걸린다.

어느 지점에서 출발하더라도 등산 거리는 10㎞ 안팎으로 당일 산행이 가능하다.

 

장성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장성주민들 백암산 이름 되찾기운동

 

전남 장성군은 몇년 전부터 ‘잃어버린 백암산 이름 되찾기’에 나서고 있으나 전북의 반발을 잠재우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2년 전 전북 정읍시와 명칭 개정 문제를 놓고 극심한 갈등을 빚기도 했으나 지금껏 해법을 찾지 못했다.

이 문제는 정부가 지난 1971년 내장산·백암산 등을 한데 묶어 ‘내장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내장산국립공원의 총 면적 81.715㎢ 중 백암산이 차지하는 공간은 42%인 34.211㎢이다.

나머지 38.045㎢와 9.459㎢는 각각 정읍시와 순창군에 속해 있다.

장성 주민들은 1970년 후반 지역 유림들을 중심으로 공원명칭 개정안을 국회와 건설부(국토해양부 전신) 등에 제출하는 등 백암산 이름 되찾기에 강한 의지를 표시해 왔다.

 

2007년 9~12월 주민 3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와 환경부 등에 제출한 뒤 국립공원 명칭을 ‘내장산·백암산 국립공원’으로 고쳐줄 것을 요구했다.

백양사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산문폐쇄’와 사찰소유지 국립공원 해지를 위한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며 한때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사찰 측은 백암산이란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고문헌 등에서 수백년간 사용돼온 만큼 하루빨리 이름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이에 대해 전남·전북도의 광역단체장 협의가 이뤄지면 현행 ‘자연공원법’을 변경해 이름을 고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지자체 간 첨예한 대립으로 협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성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서울신문

2009-09-21  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