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대한민국 ‘올레’길 10선
시사INLive | 글·사진/박성용 | 입력 2011.04.06 11:49 |
겨우내 관절 마디에 쌓인 묵은 기운을 털어내고 신선한 바람을 쐬러 나서보자.
봄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비발디의 봄이 경쾌하고 화사하다면, 슈만의 봄은 들끓는 격정이다.
길도 마찬가지다.
초식 동물처럼 유순한 길이 있는가 하면, 어금니 꽉 깨물게 하는 험한 길도 나온다.
또 유장한 길은 도도한 물결 같아서 나그네에게 깊은 사유를 안겨주고, 여울처럼 자글자글 끓는 길은 한소끔 땀을 흘리게 한다.
ⓒ시사IN 백승기 강릉 대관령 옛길은 강릉 바우길로 이어진다. 봄이 오면 그 길에는 꽃나무(위)와 소나무가 지천이고, 몇 굽이 돌아서면 푸르른 바다가 펼쳐진다. |
최근 불고 있는 걷기 열풍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의 유전인자 깊숙이
'길'에 대한 일종의 본능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 생활체육활동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하는 운동 가운데 1위가 걷기(30.9%)였고, 2위는 등산이었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산길·둘레길·올레길 등 명품 걷기 코스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생겨나고 있다.
산, 계곡, 바다 어디건 좋다.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봄맞이 길 10곳을 소개한다.
❶ 금강소나무 울창한 강릉 대관령 옛길
높고 험하기로 악명 높은 대관령(832m) 옛길을 새롭게 정비했다.
강릉시가 산길을 넓고 평탄하게 닦아놓고 주막까지 복원해 제법 운치가 난다.
이 길은 신사임당이 친정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걸었던 길로,
송강 정철의 < 관동별곡 > 과 김홍도의 그림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울창한 금강소나무 숲과 수려한 계곡을 끼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다.
오르막 경사도 강원도답지 않게 완만해 반나절 산책길로 알맞다.
대관령 옛길은 최근에 새롭게 열린 바우길과 연결된다.
산길과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다채로운 꽃나무와 쭉쭉 뻗은 소나무,
그리고 옥빛 바다와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대관령박물관~하제민원~상제민원~반정~국사성황당~대관령휴게소(옛 영동고속도로)까지 약 15㎞ 거리로,
어른 걸음으로 6시간 정도 걸린다. 아이들을 동행했거나 도중에 힘들면 반정에서 멈춰도 된다.
박물관에서 반정까지는 약 6㎞. 걷는 데 2시간30분쯤 걸린다.
반정에서 접하는 동해와 강릉 시내 조망이 훌륭하다. 반정에서 강릉을 오가는 버스가 있다.
❷ '동양의 나폴리' 굽어보는 통영 미륵산길
미륵산(461m)은 경남 통영시 미륵도 중앙에 우뚝 솟아 있다.
'키'는 작지만 산림청이 지정한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려놓을 만큼 풍모가 좋다.
정상에서 한려해상과 항구를 내려다보면 통영을 왜 '동양의 나폴리'라 부르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북쪽 용화사, 남쪽 미래사, 서쪽 천음사 코스 중 어느 길에 들어서더라도 미륵산 정상까지 1시간이 채 안 걸린다.
최근에는 케이블카를 운행해 더 많은 관광객이 찾지만, 용화사와 미래사를 이어 걷는 '걷기파'도 많이 눈에 띈다.
미륵산길의 백미는 정상이다.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두멍 물 같은 다도해가 펼쳐진다.
낙조로 붉게 물든 저녁 바다도 환상적이다.
날씨가 좋으면 정상에서 대마도와 지리산 천왕봉을 볼 수 있다.
고려 말에 설치된 것으로 전해지는 봉수대 터도 있다.
❸ 대게 먹고 '빛의 거리' 지나는 영덕 블루로드
경북 영덕군 강구항을 출발해 축산항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까지 약 50㎞에 달하는 해안길이다.
이름 그대로 봄이 되면 푸른 바다를 보고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산책과 등산을 즐길 수 있다.
강구항~고불봉~풍력발전소~빛의거리~해맞이공원으로 이어지는 A코스(약 17.5㎞, 6시간)와,
해맞이공원~석리~대게원조마을~축산항으로 이어지는 B코스(약 15㎞, 5시간),
축산항~봉수대~목은이색 산책로~괴시 전통마을~대진해수욕장~고래불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C코스(약 17.5㎞, 6시간)가 있다.
세 코스를 모두 걷자면 17시간 정도 걸린다.
블루로드는 각자 입맛에 맞는 코스를 선택할 수 있어 좋다.
영덕 대게 집산지인 강구항과 풍력발전단지, 전통가옥이 잘 보존되어 있는 괴시마을 등 명소들이 걷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영덕 대게는 3~4월에 가장 맛이 좋아 미식가들이 많이 찾는다.
블루로드는 각자 입맛에 맞는 코스를 선택할 수 있어 좋다. |
❹ '할미바위 낙조' 황홀한 안면도 해안길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충남 태안 안면도는 서쪽 해안에 늘씬하고 아름다운 해변들이 몰려 있다.
백사장·삼봉·기지포·안면·두여·밧개·방포·꽃지 등 이름난 해수욕장이 줄지어 있다.
출발은 백사장항이나 꽃지해수욕장 어느 곳에서 해도 좋지만,
할미·할아비 바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황금빛 낙조를 감상하고 싶다면
백사장항에서 시작해 꽃지로 내려오는 코스가 제격이다.
백사장항~삼봉해수욕장~기지포해수욕장~안면해수욕장~두여해수욕장~밧개해수욕장~방포해수욕장~꽃지해수욕장 코스는
약 13㎞로, 3시간30분 정도 걸을 수 있다.
백사장항에서 방포항으로는 해안도로가 이어져 있는데, 차도 옆으로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포장도로가 싫으면 삼봉해수욕장~기지포해수욕장 구간, 안면해수욕장~두여해수욕장 구간,
꽃지해수욕장 구간 등에서는 해안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코스로 방향을 틀면 된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문경새재 길에는 조령원터와 사극 세트장 등 볼거리가 넘친다. |
❺ 옛 선비를 추억하는 문경새재 흙길
조령산을 넘는 새재(경북 문경시 문경읍)는 영남대로에서 가장 높고 험한 고개였다.
그 옛날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에서 과거를 보려면 꼭 넘어야 하는 고개였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고 해서 새재로 불렸지만, 지금은 어린아이도 갈 수 있을 만큼 길이 완만하다.
문경새재 길은 주흘관(1관문)에서 출발해 조곡관(2관문), 조령관(3관문)까지 약 6.5㎞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시간은 보폭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2시간30분 걸린다.
길 곳곳에 사극 세트장, 조령원터, 교귀정, 책바위 같은 볼거리가 많아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접할 수 있다.
조곡관과 조령관 사이에는 상처 난 소나무들이 눈에 띈다. 일제가 송진을 채취한 흔적들이다.
3관문에서 다시 1관문으로 내려가는 원점 회귀형 코스도 좋고, 조령산 자연휴양림으로 넘어가는 코스도 상쾌하다.
자연휴양림에서 문경으로 가는 코스가 완만한 내리막길이라 걷기에는 더 편하다.
이 봄 보길도에 가면 후드득 떨어진 동백꽃과 함께 윤선도의 옛 자취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
❻ 빨간 동백꽃이 뚝뚝…완도 보길도 트레킹
보길도(전남 완도군 보길면)는 '동백 섬'이다.
섬 어디를 가도 후드득 떨어진 빨간 동백꽃을 볼 수 있다. 때로는 붉은 주단을 깔아놓은 듯 선홍빛이다.
여기에 겨우내 자란 보리와 상록활엽수까지 섞이면 봄의 향연이 따로 없다.
잠시 섬에 들른 윤선도가 아예 눌러앉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이다.
섬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려면 당일치기는 무리이다. 하룻밤을 묵어야 제대로 보길도를 볼 수 있다.
정 당일로 보길도를 돌아보고 싶다면,
보길면소재지에서 출발해 세연정~부용동~큰길재~예송리해수욕장을 거쳐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약 10㎞에 4시간 정도가 걸린다.
섬 서쪽에 있는 망끝전망대를 오가는 코스도 있다.
보길면소재지~세연정~부용동~큰길재~수리봉~격자봉~뽀래기재~망월봉~망끝전망대~보길면소재지까지 약 19.7㎞로,
걷는 데 7시간 정도 걸린다.
왕복하기가 힘들면 망끝전망대에서 면소재지로 돌아올 때에는 택시를 이용해도 된다.
< 태백산맥 > 문학길에 들어서면 소설 속 풍경들이 오롯이 나타난다. |
❼ 노을과 초저녁 달빛이 어우러진 등구재…지리산 둘레길
현재 약 70㎞까지 개장된 지리산 둘레길 다섯 개 구간 중
인월~금계 코스는 전북 남원 인월면과 경남 함양 마천면을 잇는 가장 긴 구간이다.
지리산 주능선을 보며 걷는 둘레길의 매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둘레길 시범 구간으로 열렸던 고즈넉한 매동마을의 산골 풍경을 비롯해
전북과 경남의 경계마을인 상황마을과 창원마을의 다랑이논 등
제방길·농로·차도·임도·숲길이 골고루 섞여 있어 지루하지 않다.
이 구간의 백미는 등구재.
거북 등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노을과 초저녁 달빛이 어우러지는 고갯길이라는 의미도 있다.
인월면~중군마을~수성대~배너미재~장항마을~장항교~삼신암 삼거리~등구재~창원마을~금계마을까지
19.3㎞ 거리이고, 8시간 정도 걸린다.
❽ '소화다리' 건너 꼬막집, 보성 태백산맥 문학길
조정래 대하소설 < 태백산맥 > 의 무대가 있는 곳이다.
출발은 진트재나 태백산맥문학관에서 시작하면 좋다.
두 곳 모두 벌교 외곽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소설 속 무대들을 둘러볼 수 있다.
벌교 읍내는 그다지 크지 않아 작품에 등장하는 무대들의 정확한 위치만 알면 한 바퀴 둘러보는 데 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나 위치를 잘 모를 때는 시간을 더 넉넉히 잡는 편이 좋다.
세월이 흐른 만큼 옛 모습들을 찾아가며 이동하려면 네댓 시간이 훌쩍 흐를 수도 있다.
지주 김범우의 집, 소화다리, 중도방죽, 철다리, 벌교역 등에서 < 태백산맥 > 의 기억이 생생히 살아난다.
걷기 코스는 진트재~중도방죽~벌교역~농민상담소~벌교공원~홍교~김범우의 집~소화다리
~조정래 고택~회정리교회~태백산맥문학관으로 잡으면 무난하다.
정확한 위치와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문화관광 해설사와 동행하는 것이 좋다.
퇴계 이황이 만년에 자주 사색에 잠겨 걸었다는 예던길. 청량산과 낙동강으로 이어진다. |
❾ '그림 속을 걷는 듯한' 안동ㆍ봉화 예던길
안동 도산서원(경북 안동군 도산면)에서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 입구까지
약 15㎞에 이르는 이 길은 옛 선비들의 산수유(山水遊)길이었다고 한다.
'예던길'은 '가다'의 옛말인 '예던'에서 따왔다.
이 길은 만년의 퇴계 이황이 사색에 잠기며 즐겨 걷던 오솔길이기도 하다.
청량산을 지극히 사랑한 퇴계는 나이 예순이 넘어서도 이 길을 걸으며 숱한 시를 썼다.
퇴계는 청량산으로 가는 길을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표현했다.
낙동강을 따라 걷는 이 길에는 기암절벽과 수려한 강변 풍경뿐만 아니라
도산서원, 퇴계 종택, 농암 종택, 고산정, 청량사 등 영남 유림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유적이 많다.
예던길 답사는 해가 한창인 오후보다는 오전이 좋다.
❿ '가파르고 미끄러운' 제주올레 제7 코스
제주올레 제7 코스 외돌개~월평 구간은 서귀포 바다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해안 올레길이다.
걸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감탄사가 나온다.
시간이 없어서 한 코스만 맛보기를 원하는 초보 올레꾼에게 추천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 구간에는 올레지기 김수봉씨가 2007년 염소만 다니던 길을 삽과 곡괭이로 깎고 다듬어놓은 '수봉로'가 있다.
또 해안가 돌을 손으로 일일이 골라 길을 놓는 고된 작업 끝에 탄생한 '일강정 바당올레'(두머니물∼서건도 해안 구간)도 있다.
수봉로는 가파른 언덕길이고, 일강정 바당올레는 미끄러운 갯바위길이어서 주의를 요한다.
코스 중간에 바닷가 우체국이 있어서 엽서 한 장 쓸 수도 있다.
외돌개~돔베낭길~펜션단지길~수봉로~법환포구~두머니물~서건도~풍림리조트~강정포구~월평포구~월평마을까지
약 13.8㎞ 거리로, 걷는 데 네댓 시간이 걸린다.
바다 한가운데 외롭게 솟은 외돌개와 작은 그림 같은 월평포구도 인상적이다.
글·사진/박성용 (월간 < 아웃도어 >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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