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상·전라 도보후기☞/☆ 남해 바래길

남해바래길-초록 ‘바래길’ 사부작 사부작…마늘 향·갯내음 귓불 스치다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12. 30.

초록 ‘바래길’ 사부작 사부작… 마늘 향·갯내음 귓불 스치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 남해 풍경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 게재 일자 : 2010-12-29 14:02
▲ 남해의 도보여행 코스인 ‘바래길’은 한겨울에도 해풍을 맞고 자라는 마늘과 시금치로 온통 초록빛이다. 평산항에서 유구마을로 향하는 길에 오르면 바다 건너로 여수 땅이 건너다보여 마치 강 하구를 연상케 한다.
▲ 금산 능선 끝자락의 암봉인 상사암. 이 바위에 오르면 270도의 전망이 펼쳐진다.
# 1500년의 시간을 건너 남해 금산 보리암에 해가 떠오르다

경남 남해군. 남해는 종종 ‘남쪽 바다’로 혼동된다. 그러나 이를 굳이 따로 구분할 이유는 없다. 남해군이 품고 있는 정취가 곧 남쪽 바다를 대표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남해군은 섬이다. 남해도와 창선도의 두 섬을 비롯해 유인도 3개와
무인도 65개로 이뤄졌다. 마치 나비가 활짝 날개를 편 모양새다. 왼쪽 날개가 남해도라면 오른쪽 날개는 바로 창선도다.

왼쪽 날개 남해도의 한복판에 솟아있는 산이 바로 금산(錦山)이다. 비단(錦)을 이름으로 삼았으되 그 이름처럼 부드럽지는 않다. 그 대신 기기묘묘한 암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절경을 빚어낸다. 애초에 금산은 ‘보광(普光)’이라 불렸다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금산으로 이름을 바꿔 붙였다. 그 연유는 이렇다. 보광산에 들어 조선 개국을 열망하며 기도를 하던 이성계가 ‘개국의 꿈을 이루면 비단으로 산을 감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산 하나를 어찌 다 비단으로 감을 수 있었을까. 조선 개국 후 이성계는 산에 비단을 두르는 대신 ‘비단 금(錦)’자를 이름으로 삼는 편법으로 공약을 지켰다. 비단의 본질적 의미를 부드러움이 아닌 화려함 쪽에 둔다면 금산이란 이름은 썩 잘 어울리는 것이다.

금산 정상 턱밑쯤에는 암자 보리암이 있다. 보리암이란 이름도 이성계가 붙인 것이라지만 일찍이 암자는 신라시대부터 해수관음도량으로 이름 높던 절집이었다. 줄잡아 15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의 저편에서부터 보리암이 지금의
명성에 못지않을 만큼 성지 중의 성지로 꼽혔던 것은 단연코 금산의 치솟은 암봉과 그 암봉이 뿜어내는 기운 때문이었을 터다. 지금이야 보리암의 어깨까지 차로 오를 수 있는 길이 새로 놓였고, 법당도 새로 지어져 말끔하게 단장됐지만, 암봉 아래 매달린 암자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광이야 어찌 달라졌을까.

보리암에 당도했다면 일출을 빼놓을 수 없는 일. 순백의 해수관음상을 등 뒤에 두고 난간에 기대서면 바다쪽에서 남해 미조항과 그 너머의 욕지도, 연화도 쪽에서 온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해가 막 돋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보리암에서 마주하는 일출의 장엄함에 어찌 시간이 있을까. 이렇듯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아침 해는 조선시대에도, 신라시대에도 떠올랐을 것이고, 이 암자에 기거하며 불법을 닦았다던 원효와 의상대사, 윤필거사도 도량석을 끝낸 뒤에 이렇듯 장엄한 해를 맞이했으리라.

# 금산의 서른여덟곳
경치를 구태여 헤아리지 않는 까닭

이른 새벽 어둠이 채 걷히기 전의 보리암은 적막했다. 절집에서 처음 만난 이는 아픈
무릎을 절룩거리며 온전히 두 발로 금산에 오른 아낙네였다. 느린 걸음의 속도로 보자면 아마도 오전 3시쯤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터였다. 차를 타고 절집 뒤쪽의 주차장까지 올라온다면 15분쯤만 걸으면 될 터인데, 굳이 겨울 산을 2시간이 넘도록 걸어 오른 까닭이 궁금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코끝이 새빨개진 그는 “이렇게 제 발로 올라야 ‘기도발’을 잘 받는다”고 했다. 무슨 소망이 그리도 간절했을까. 고행이 고통스럽다면 소망이 먼저 가닿을 수 있을까. 그는 해수관음상 앞에서 차가운 돌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두 손을 모은 채 하염없이 절을 했다.

두번째 보리암의 손님은 푸른 눈을 가진 이국의 젊은이였다. 명상수행인 위파사나에 심취했다는 그는 한달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고 했다. 남루한 차림. 그는 여행자라기보다는 순례자에 가까워 보였다. 그는 해가 떠오르는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일출 순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금산의 보리암에서 보는 경치를 두고 “너무 아름다워서 거의 울 뻔했다”고 했다.

금산이라면 보리암에서 내다보는 경치가 알려져 있지만, 실상 보리암은 금산의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보리암의 명성이 오히려 금산을 가린다는 얘기다. 금산을 찾은 이들은 대개 절집만 들렀다가 내려가곤 하지만, 보리암 종루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비로소 금산의 웅장한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금산에는 모두 38경(景)이 있다지만 하나하나 헤아릴 필요는 없다. 하나하나 매겨본다 해도 곧 그것이 쓸모없는 일임을 알게 된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풍광이 빼어나니 구태여 거기에 순서를 매길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그 암봉들의 형상을 어찌 일일이 설명할 수 있을까. 보리암 뒤쪽의 절하는 모양을 한 바위 형리암이며, 고승 대덕들이 앉아서 불법을 닦았다는 좌선대, 바위 모양이 ‘화엄(華嚴)’이란 한자의 모습을 닮았다는 화엄봉…. 그 중 빼어난 것이 바로 보리암에서 이어진 능선의 서남쪽 끝자락에 솟아있는 상사암이다. 금산을 통틀어 가장 웅장하고 큰 암봉인 상사암에는 조선 숙종때 전남 여수 사람이 남해로 이주해왔다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전설이 깃들어있다. 상사암에 서면 270도 전망이 펼쳐진다. 상사암에서 만난 젊은이는 “이 바위에서 일출 순간을
대하면 해의 기운이 몸안으로 들어오듯 온몸이 감전된 것처럼 찌릿해진다”고 했다.

# 남해바다의 절경을 내려다보며 맑은 청주 한잔을 앞에 놓다

금산의 산중 보리암 부근에는 민가 한 채가 숨은 듯 들어서 있다. 보리암에서는 암봉에 가려 집이 보이지 않지만, 암자 뒤쪽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도무지 집이 들어설 자리가 아닌 암봉 아래 좁은 터에 집이 들어서있다. 어찌 이런 곳에 집이 있을까. ‘금산산장’이란 이름을 달고 있지만, 해발 681m에 불과한데다 차로 주차장까지 오르면 정상까지 불과 20분 안쪽인데 난데없이 산장이라니….

금산산장은 한때 비구니가 거처하던 자그마한 암자였다. 그러던 것이 비구니가 떠난 뒤 비워져 있다가 100여년 전쯤 그 암자를 사들인 이가 집을 들였단다. 당시 ‘부산여관’이란
간판을 달고 보리암을 찾은 신도들이나 행락객들에게 방을 내주거나 밥을 해줬단다. 주인은 4대에 걸쳐 한 자리를 지키며 영업을 해오고 있다. 여전히 방을 내주고 있긴 하지만 시설이 허름한데다 보리암 입구까지 찻길이 나면서 구태여 숙박을 할 이유도 없어졌으니 방은 거의 비어있다. 그 대신 간간이 찾아드는 관광객들에게 부침개를 부쳐주거나 밥을 해주고 있다.

금산산장에서 가장 이름난 것이 청주와 막걸리다. 바위산의 정상 부근에 집이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바위 사이로 솟는 물이 있기에 가능했다. 신기하게도 산 정상 부근인데도 집 뒤의 코끼리바위와 돼지바위 사이에서는 물이 났다. 산장지기는 이렇게 솟는 물로 손수 누룩을 띄워서 막걸리와 청주를 빚어낸다. 막걸리를 담가서 맑은 윗술을 떠낸 쌉싸래한 맛에 청주의 향이 특히 짙다.

# 어촌의 아낙들이 갯것을 캐던 길을 따라가다

남해는 겨울에도 푸르다. 해안을 끼고 있는 밭마다 마늘과 시금치들이 초록의 기운을 뿜어낸다. 겨울에 만나는 초록은 따스하다. 남쪽 바다의 쪽빛 물빛과 어우러지면 그 따스한 느낌은 더하다. 11월 말에 남해에 걷는 길이 새로 놓였다. 이름하여 ‘바래길’이다. ‘바래’는 바닷가 마을의 아낙네들이 내다 팔 목적이 아니라, 제 가족이 먹기 위해 바다로 나가 갯것들을 캐는 일을 말한다. 그러니 ‘바래길’이란 호미 하나와 대바구니 하나를 들고 갯것을 캐러 가던 길을 뜻하는 이름이다.

바래길은 1코스부터 4코스까지 나있다. 물론 새로 낸 길은 아니고 마을과 마을을, 포구와 포구를 잇는 길이다. 흐려진 길들을 다듬기는 했으되 자연 그대로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그 중 겨울에 걷기로는 1코스가 최고다. 평산항에서 출발해 유구마을을 지나 사촌해수욕장을 거쳐 선구마을과 향촌을 지나 다랭이마을로 유명한 가천마을까지 이어지는 16㎞의 구간이다. 길은 줄곧 해안을 끼고 들고난다. 바다를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는 자그마한 언덕을 넘고 마늘밭의 둑을 지난다. 자갈밭을 지나기도 하고, 해수욕장의 백사장을 따라 걷기도 한다. 바닷바람은 제법 차갑지만, 그래도 남쪽 해안에 내리쬐는 겨울 햇살이 따스하다. 편도 5시간짜리 구간이니 제법 먼 길이지만, 길에 오르면 몸이 먼저 나간다.

그 길에서는 자주 뒤를 돌아다볼 일이다. 바래길은 다른 도보코스와는 달리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면 걸어온 길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남해군의 면적은 동서가 26㎞, 남북으로는 30㎞ 남짓하다. 하지만 들고나는 해안선이 복잡해 그 길이가 302㎞에 달할 정도다. 이런 해안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율동을 거듭하며 걸으니 지나와 뒤로 밀려난 길들을 돌아보면 바다쪽으로 들고나는 길들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오전과 오후의 햇살에 따라 달라지는 물빛도 아름답다.

남해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가는 길

대전통영선을 타고 진주갈림목에서 남해고속도로 순천 방면으로 갈아타서 하동나들목에서 내려 좌회전해 19번 국도를 타고 가는 길이 가장 편하다. 하동나들목에서 11㎞만 가면 남해대교다. 진교나들목에서 내려 1002번 지방도를 따라가도 남해대교에 이를 수 있다. 삼천포와 창선을 연결하는 창선·삼천포대교를 넘어가는 방법도 있다. 사천나들목에서 내려 3번 국도를 따라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넌 뒤 창선면을 지나면 창선교에 이른다. 섬 안에서는 19번, 77번, 3번 국도와 1024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주요 볼거리를 대부분 만날 수 있다.

묵을 곳·먹을 거리

남해의
숙소로는 힐튼 남해 골프&스파 리조트가 최고로 꼽힌다. 리조트 인근의 남해스포츠파크호텔(055-862-8811)이나 월포해수욕장 부근의 마린원더스호텔(055-862-8880)과 남해월포가족휴양촌(055-863-0548), 홍현황토휴양촌(019-524-6242) 등이 깨끗한 숙소로 권할 만하다. 겨울철 남해의 맛이라면 단연 물메기탕이다. 물메기가 이즈음 한창 제철이다. 물메기탕은 식당마다 비슷비슷한 맛을 낸다. 금산 부근에서는 상주해수욕장의 하나로횟집(055-862-2166)을 알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