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자락길]소백산 자락길 걷기를 준비하며...
소백산 자락길 지도
<1구간~7구간>
1구간 : 소수서원~삼가리
소백산 자락길 1코스의 시작은 영주이다.
소백산 그 넓은 품으로 감싸 안은 영주의 소수서원에서 시작, 약 3시간 40분 정도를 걷는 코스다.
소수서원은 조선의 명종(13대왕)이 직접 이름을 지어준 서원으로,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서원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적송. 100년은 넘게 이곳을 지켰을 적송이 가득한 길을 지나면 서원의 모습이 나타난다.
우리네 한옥의 단아함과 기품이 가득한 공간들로 구성된 이곳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선비의 높은 뜻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한 민속촌 등에서 보던 한옥과는 또 다른 서원이 갖고 있는 기품 있는 분위기가 여행자를 매료시킨다.
유생들이 시를 짓고 토론을 하던 경렴정에서 보이는 죽계천을 건너면 소수박물관에 도착한다.
한국 유교에 대한 역사자료를 모아놓은 이곳은 국내 유일의 유학박물관이다.
유학과 서원에 대한 자료들이 작지만 알차게 준비되어 있으며 선비촌과 연결되어 있다.
기와집, 초가집들이 모여 있는 선비촌은 아름다운 고택의 외경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선비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 하루정도 여유가 있다면 선비촌에 머무르며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도 추억이 될 것 같다. 선비가 된 마음으로 이곳을 걷다보면 청다리를 건너 죽계구곡 쪽으로 산기슭 사이에 호젓하게 서있는 순흥향교가 나타난다.
한때 대학자였던 안향의 영정을 모시던 향교였으나 지금은 비어 있는 곳으로, 소백산 자락에 몸을 낮추고 외로이 서 있는 상태.
그러나 소백산 계곡 중 가장 큰 계곡에 속하는 죽계구곡이 그 옆으로 흐르고 있어
순흥향교의 옛 모습이 얼마나 위용 있었으며 경건한 공간이었는지를 상상하게 한다.
우거진 숲과 하얀 바윗돌이 어우러져 퇴계 이황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그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했다는
죽계구곡은 여행자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죽계구곡에서 3km정도를 걸으면 초암사의 모습이 나타난다.
산자락 사이에 안겨있는 아늑한 사찰 초암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세운 사찰로,
부석사터를 살피러 다닐 때 초막을 짓고 임시로 기거하던 곳이다.
큰 축대와 주춧돌의 크기가 초암사의 옛 모습이 꽤나 웅장했음을 보여주고,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삼층석탑과 고려 때 세워진 부도탑도 여행자의 눈길을 끈다.
초암사 옆으로는 한여름에도 시리도록 차고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물소리에, 숲의 짙은 향에 취해 혼자 걷다보면 비로사에 도착한다.
의상대사의 문하에서 공부한 진정이 세운 사찰이며
고려시대 김부식이 부처의 치아사리를 봉안한 곳으로 유명한 이곳은 주변을 감싸고 있는 풀내음이 가득하다.
여행자의 몸에도 도시가 아닌 이곳의 숲향이, 풀내음이 스며든다. 이곳을 지나 조금 더 내려오면 소백산 자락길 1구간은 끝이 난다.
산자락 오솔길 밟는 선비의 발자국 소리. 솔향 가득한 숲길에서 시를 읊조리던 선비의 목소리.
그 흔적과 소리가 시간이 흘러 사라진 지금도 이곳은 여전히 까마득한 숲길이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곳을 지키고 있는 길 위의 시간들, 그 깊은 뿌리를 따라 걷는 길.
여행자의 몸에까지 스며든 숲의 짙은 풀내음이 뻐근한 다리를 다시 걷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2구간 : 삼가리~희방사역
소백산 자락의 단아한 듯 힘 있는 외경이 금계호 수면에 비친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잠시 넋을 놓고 보고 있게 되는 곳이 바로 삶의 지혜와 고뇌가 녹아 있는 십승지 과수원길,
소백산 자락길의 2구간이다. 4시간 30분정도가 소요되는 이 구간은 1구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금계호라 불리는 저수지의 깊은 곳에는 1979년 금계호가 생기면서 그 아래로 수몰된 욱금이라는 작은 마을이 존재한다.
잔잔한 수면 위 소백산 자락의 모습 어딘가에 그 작은 마을이 있지 않은가 싶어 한참을 바라본다.
금계호에서 눈을 돌려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금계호를 지나면 굵은 소나무 사이로 계곡이 흐르고
큰 바위가 절벽처럼 서있는 이곳에 계곡을 굽어보는 모양을 한 금선정이 자리하고 있다.
금선정은 금선계곡 중간 지점 물가 절벽 위에 자리한 정자로, 오래전 유생들이 여름 더위를 식히고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이제 나이 어린 유생들의 시를 읊조리는 소리 대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지금은 단지 아이들의 한여름 놀이터가 되었을 뿐이지만 그 절경만은 여전히 절묘하다.
다시 짐을 챙겨 걸음을 재촉하면 조선 중기 민간에 돌았던
예언서 ‘정감록’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만든 최고의 길지라는 ‘정감록촌’에 도착한다.
정감록에는 어떤 국가적 재앙 앞에서도 영향 받지 않을 10개의 지역이 적혀있었는데,
그 첫 번째가 정감록촌이 있는 ‘금계리’다.
땅의 기운이 충만한 이곳은 실제 일제 강점기와 광복 후 혼란기 당시 이곳을 찾아 들어온 사람들이 화전을 일구고 약초를 캐며 살았다. 그러한 뿌리가 지금은 인삼농사로 변모하여서 대한민국 최고의 인삼인 ‘풍기인삼’이 이곳에서 재배되고 있다.
땅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지친 다리에 다시금 힘이 들어간다.
끊일 듯 끊일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소백산 옛길을 따라가다 보면
눈앞으로 넓게 펼쳐진 논이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희여골이라 불리는 마을을 지난다.
여행자 걷는 그 길이 심심할까 소백산은 여러 가지의 풍경으로 길손을 배웅한다.
희여골을 지나면 작은 마을 샛터가 나타난다.
사과들이 꽃처럼 열려있는 이곳은 온통 달큼한 과수 향이 코를 찌르는 사과 과수원으로 감싸여 있는 마을이다.
한참을 걷다보면 유황, 불소, 중탄산 등이 녹아들어있어 만성관절염, 신경통, 동맥경화증에 탁월하다고 소문난 풍기온천에 도착한다.
잔뜩 굳어서 뻐근한 몸을 잠시 온천수에 담그고 굳은 몸을 풀어주는 것도 좋다.
온천에서 조금만 지나면 죽령이다.
그리고 죽령역과 풍기역 사이에 있는 기차역, ‘소백산역(희방사역)’이 보인다.
1942년 문을 연 이후로 지금까지도 수많은 손님들을 이곳으로 안내하는
소백산역은 역사 뒤편에 멋지게 뻗어있는 소백산 능선의 절경을 품고 있다.
끊일 듯 끊어지지 않는 소백산 자락으로 연결되는 길을 따라 다시 걷다보면 길옆에는 갈대, 누런 황금들판,
혹은 방금 모내기를 끝낸 논, 과수원 옆으로 풍겨오는 달콤한 향내까지, 그저 걷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수많은 행복이 기다린다.
3구간 : 희방사역~장림리(단양)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죽령과 문경새재를 큰 고개라 하고 나머지는 작은 고개라 했다.
소백산 국립공원, 높이 698m의 높지 않은 길이지만 아흔 아홉개의 크고 작은 ‘재’가 기다리는 이 길.
그 마지막 3구간은 ‘죽령’을 넘는 11.4km의 도보길이다.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시작하여 충청북도 단양으로 연결되던 ‘죽령옛길’의 시작점은 소백산역이다.
1910년까지 서울로 향하는 길이였던 이 길은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부터 장사꾼들, 관원들로 붐비던 오르막 삼십 리,
내리막 삼십 리의 길로, 서울로 향하는 길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려는 듯 아흔아홉 구비가 길손을 기다린다.
구름도 잠시 휴식을 취한다고 했을 만큼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뻐근해지는 쉽지 않은 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던 길답게 수많은 사연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신라시대 ‘죽죽’이라는 기인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죽령옛길’은 고구려 온달장군이 목숨을 바쳤으며,
퇴계 이황이 과거를 치르기 위해 넘었던 곳이다. 그리고 수많은 장사꾼들과 선비들이 각각의 애환과 꿈을 품고 넘은 길이다.
길손의 발에 ‘바스락’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낙엽소리가 전부일 정도로 인적이 드문 이 길 위에는
수많은 시간을 지켜낸 나무들이 파란 하늘을 빽빽하게 가려버릴 정도로 가득하다.
mp3의 음악으로 귀를 막기 보다는 자연이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꽤 근사하다.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감동 못지않게 자연이 연주하는 하모니도 도보꾼의 가슴을 울린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오르막길을 눈으로, 귀로, 발로, 마음으로 자연과 벗 삼아 걷다보면 어느새 옛길 정상, ‘죽령마루’에 도착한다.
통나무 계단으로 이어진 이 길은 하늘로 향하는지 빽빽하게 들어섰던 나무들이 사라지고 온통 하늘만 보이는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 아무도 알 수 없는 길고 긴 시간을 지키고 서있는 나무와 흙 사이에서 땀을 식히고
죽령휴게소에서만 맛볼 수 있는 ‘휴식’을 안주삼아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는 것도 꽤 괜찮다.
그러나 무엇보다 여행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호서와 영남을 갈라놓는 이 길목에 깊게 드리운 운무다.
높지는 않으나 길게 뻗은 그 웅장한 능선을 끼고
그 자락 자락에 숨어있는 운무는 숨이 꼴깍 넘어갈 듯 힘겨웠던 오르막길이 여행객에게 주는 선물 같은 귀한 풍경이다.
이 죽령마루를 넘어서면 이제는 경상북도 영주가 아닌 충청북도 단양이다.
영주에서 시작된 오르막길처럼 단양으로 향하는 길 역시 그 시간을 알 수 없는 오래된 길이다.
길 양옆으로는 소백산 자락을 타고 소담하게 형성되어 있는 작은 마을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소담한 농가 옆으로 풍요롭게 열매 맺은 과수원의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주변의 농가들을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고개 끝에 도착한다.
고개 끝에는 보국사지의 4m가 넘는 석불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옛 신라 절터인 보국사지에는 머리와 오른손이 잘리고 몸도 네 토막이 난 상태로 발견되었던 석불이 서있다.
지금은 모두 이어 붙여 그 모습이 단아하면서도 힘이 있다.
옛 신라인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 옷의 주름하나 손짓 하나까지 정성으로, 불심으로,
지극한 믿음의 마음으로 정을 쪼아서 만든 이 석불은 신라인들의 믿음을 보여준다.
죽령천에서 땀으로 젖은 손과 얼굴을 씻고 돌아서면 방금 넘어온 죽령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3구간은 끝이 난다.
숨 가쁜 고갯길, 그러나 고갯길 감고 도는 옛이야기가 쉼 없이 이야기를 건네는 곳.
소백산의 맑고 힘찬 기운이 응원하는 이 길에서는 여행객의 발자국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로 새겨진다.
4구간 : 당동~금곡수련원
13.2㎞의 가리점마을 옛길. 단양 주민들이 장날이 되면 자신들의 물건을 지게에,
머리위에 바리바리 들고 이고 지고 죽령을 넘어 경북 영주까지 장을 보러 가던 바로 그 길이다.
꼬불꼬불, 굽이굽이 우리의 엄마, 할머니, 혹은 그 위의 할머니가 품은 추억이 남아있는 이야기길.
조그만 농가가, 왼쪽의 밭 위에 솟은 봄의 초록빛 새싹이, 왼편의 누렇게 익은 가을의 벼들이 소곤거리는 곳이다.
이 길은 자전거를 이용할 경우 가리점 마을에서 시작, 노동3거리, 클레이사격장을 거쳐
금곡 수련원에 도착하는 7.3km의 길로 걷기여행과는 또 다른 풍경을 선물한다.
장현리로 향하는 길, 하늘을 향해 곧게 솟은 소나무의 솔 향이 짙은 이 길은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단단하게 다져진 흙길이다. 그 흙길에는 짙은 솔내음의 흔적인 솔잎들이 길 양옆으로 가득하고
그 사이로 빼족하게 얼굴을 들어낸 봄기운의 흔적들이 인사를 건넨다.
이 길을 지나면 오랜 시간의 흔적이 보이는 지붕과 벽이 친근한 장현리 문안골 마을이 보인다.
소백산 자락에 있는 대부분의 마을이 그렇듯 옹기종기 인가가 모여 있다.
옆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옆집에는 무슨 농사를 짓는지,
또 그 옆집에는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알 수 있을 만큼 적은 수의 주민들이 모여 살지만 그만큼 가족처럼 따뜻하고 끈끈하다.
장현리에서 가리점마을로 가는 길은 장현리로 이동할대 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
같은 흙길이지만 솔향보다는 나지막한 오르막길위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그 자체로 충분한 풍경이다.
이 길의 이름인 가리점 마을은 산촌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마을로,
단양읍 마조리에 위치한 아담한 마을로 소백산의 넓은 품안에 숨어있다.
지금은 잘 보기 힘든 성황당이 마을을 지키며 외지인을 반긴다.
23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아직도 이웃과의 정겨운 소통이 가능한 이곳에서는 오미자따기,
옥수수따기 등 농작물을 수확하는 체험을 할 수 있고, 전통 밭갈이, 장 담그기 등 농촌생활과 관련된 체험이 가능하다.
또 전통 농기구 견학, 산나물 채취, 짚공예, 동굴체험, 눈썰매타기, 소여물주기, 조롱박피리 만들기 등
가리점 마을의 자연환경에 어울리는 계절별 체험등도 이색적인 경험과 추억을 남긴다.
지금은 잊혀지고 있는 옛 산길인 당이재를 넘는다. 소백산 자락을 향해 좁은 산길이 구불구불 뻗어있다.
여행자는 마치 동화속으로 이동하듯 멀리 아련하게 보이는 소백산을 향한다.
작은 시냇가를 건너면 정말 아스라한 안개 가득한 소백산이다. 한때는 이곳 사람들의 교통로였을 이곳을 지금은 여행자들만이 찾는다. 숲향기 짙은 길을 숨가쁘게 넘으면 소백산자락에 쌓여있는 아름다운 마을풍경이 잠깐의 휴식에 동반한다.
옹기종기 아담한 마을 풍경은 이웃집 사람 얼굴도 모르는 도시에서 온 여행자에게는 낯설고도 그리운 풍경이다.
아직도 훼손되지 않은 원시의 손길이 남아있는 옛길 풍경에 잠시 숨을 돌린다.
가리점마을 옛길을 걸으면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들을 자주 마주친다.
천연기념물 제256호로 지정된 고수동굴은 길이 1,700M에 이르는 자연동굴로
소백산에서만 마주칠 수 있는 선물같은 자연의 위대한 흔적이다.
그렇게 자연의 선물같은 흔적들을 지나 금곡 수련원에 도착하면 4구간은 끝이난다.
위풍당당한 소백산 자락은 품안으로 들어갈 수록 따뜻하고 정겹다.
그 겉모습에 지치지 않는것이 여행자의 가장 큰 준비. 안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 걱정은 사라진다.
넓고 푸른 소백산이 여행자를 따스하게 안아주기 때문이다.
5구간 : 금곡수련원~보발분교
전국적으로 유명한 농촌체험마을,
한드미 마을을 돌아오는 황금 구만량길은 구만동의 황금설화가 남아있는 길로써 소백산의 당당한 위엄을 보며 걸을 수 있는 옛길이다. 13KM의 이 길은 재미있는 설화가 여행자의 발자취를 따라오며 즐거운 여행길을 선물한다.
금곡수련원에서 출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농촌체험마을인 한드미마을과 연계된 대대리로 향한다.
소백산 자락길들이 그렇듯 폭신한 흙길이다.
딱딱한 아스팔트위를 구두만 신고 걸어다니던 도시에서 온 여행자들에게는 그 부드러운 길이 참 행복하다.
기분좋은 흙길을 지나 대대리 마을에 들어선다. 작은 저수지가 가장 먼저 보이고,
산비탈을 따라 주민들이 개간한 밭들이 초록빛 기운을 머금고 여행자를 반긴다.
옥수수 따기와 감자캐기 등 대표적인 농촌체험을 할 수 있다.
대대리 마을을 지나 한드미마을로 접어든다.
1년내내 산촌문화 체험이 가능한 한드미마을은 고로쇠 수액채취부터 물놀이, 고기잡이, 눈썰매타기, 전통놀이등
산촌문화체험이 가능하고, 계절에 맞춰 모내기, 씨앗파종, 경운기타기, 고추따기, 감자캐기, 메뚜기 잡기 등
도시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또한 이제는 들을 수 없는 개구리 소리 듣기라든지
청정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반딧불 체험, 야생화 관찰, 동굴탐사등 생태체험이 가능하다.
또한 직접 장을 담궈보거나 옥수수를 이용하여 전 만들기, 떡매치기, 두부만들기등
마트에서 구입하는게 익숙한 도시인에게 재미있는 전통 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다.
샛터를 거쳐 구만동, 보발분교로 향하는 길에서 가장 여행자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은 구만동 전설이다.
늙은 부모와 가족들을 부양하며 살아가는 착실한 농부가 있었다. 그런 그의 꿈에 나타난 산신령은 “집 뒤쪽의 늙은 소나무를 파보거라. 그 아래 무엇인가 있다. 너의 효성을 생각하여 주는 선물이니 소나무를 다치게는 하지마라”라고 말한다.
당장 소나무 아래를 파기 시작했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화가 난 그가 소나무에 상퍼를 낸다.
그 순간 소나무 아래서 번쩍하고 나타난 것은 황금.
꺼내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결국 나무 아래 묻히게 된 그는 황금을 얻었으나 지하에서 길을 잃는다.
그렇게 길을 찾아 헤매던 그가 간신히 입구를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가 지하에서 길을 찾는 동안 식구들은 모두 굶어죽고 말았다.
결국 가족들과 황금을 함께 소나무 밑에 묻어버린 그. 식구를 굶어 죽이고 금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농부가 얻었던 금은 돈으로 따져 구만량(九萬兩)정도가 되었다고 하며,
그래서 농부가 살았던 동네를 구만골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구만동 탐방로는 그 전설처럼 구불구불 여행자를 유혹한다.
양옆으로 논이 펼쳐지고 그 너머에는 소백산 자락의 푸르름이 펼쳐지는 길.
그 아름다운 흙길을 따라 타박거리며 걷다보면 구름에 능선을 숨긴 소백산의 굽이굽이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천동관광지에는 기괴한 풍경의 천동동굴이 있다.
소백산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과 울창하고 녹음 짙은 숲이 청정한 기운을 뿜어내며 여행자들의 다리에 힘을 실어준다.
천동계곡 주위에는 원두막, 오토캠핑장, 취사장등이 갖춰져 있어, 당일코스여행자뿐 아니라 캠핑객들에게도 인기있는 곳이다.
천동동굴과 천동관광지를 둘러본 뒤 보발분교에서 걸음을 멈춘다.
한때 지금보다는 많은 인가가 모여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 푸른 젊은이들이 살아갔을 이곳은 이제는 걷기여행을 위해 찾아온 외지인들이 젊은 열기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옹기종기 삶을 꾸려가는 흔적들은 젊음의 열기 못지않은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다.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갖고 서로가 의지하며 살아가는 마음 착한 사람들의 고장, 소백산 자락길 구만동에서 만난 풍경이다.
6구간 : 보발분교~온달관광지
길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보발재에서 시작해 온달성, 온달관광지로 향하는 길.
어릴때부터 들어오고, 읽었던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그 온달평강의 로맨스길이라니...
여행자는 로맨틱한 두근거림을 가지고 길을 나선다.
첫 시작은 보발분교.
이곳에서 길을 나서면 한참을 구불구불한 소백산 자락의 고개를 올라야 한다.
큰용이 골짜기를 휘감으며 승천하듯 보이는 이 끝없는 고갯길에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차오른다. 시작부터 쉽지 않다.
하긴 세기의 로맨스로 남은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사랑이
이 고갯길처럼 그리 쉽지않은 여정이였음을 생각할 때 어쩌면 당연한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보발재, 즉 고드너머재를 오른다. 그리고 재 정상에서면 뒤를 돌아본다.
올라올땐 그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오르막길이지만, 올라와서 보니 그 힘든 값을 한다.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에 한참을 서서 내려다본다. 구불구불 언덕 정상으로 오르는 길.
오를때는 그리 힘들더니 세상최고의 풍경이 뒤에서 여행자를 따라오고 있었다.
고개마루 정상의 전망대에서 경치를 카메라에 담는다. 4계절 서로 다른 풍경으로 여행자에게 휴식을 선물한다.
고개마루 정상에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여행자에게 길을 안내한다.
이 안내판에서 보이는 남한강 건너편이 군간나루. 고개를 넘기위해 올려다본 고개는 가파르고 쉬이 허락하지 않을 듯 하더니
고개마루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이곳의 삶이 그대로 펼쳐진다. 방터에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있다.
방터는 온달성 뒤편 마을로 화전 정리로 이주, 방처럼 아늑한 공간인 방터에서 고구려 군사들의 숙영지로 사용되었으며
온달성에서 신라장군과 격전을 벌인 역사를 가진 터이다.
소백산 화전체험 테마숲길은 계망산에 복원되어 있다.
서애 유성룡 선생의 형인 유운룡의 호를 따서 겸암산이라고도 하는 이곳
산중턱에는 그 옛날 산으로 올라와 밭을 만들고 터전을 일군 그들의 삶을 확인할 수 있다.
곧게 뻗은 송림들 사이로 펼쳐진 길은 오래된 솔잎들이 갈색으로 펼쳐져있다.
그 위로 따뜻한 햇볕이 들어오고, 아늑한 화전민들의 삶터가 보인다.
숲길을 지나면 성벽이 보인다. 멀리서도 꽤 거대한 풍채가 눈에 들어온다. 온달산성이다.
옛 석성인 이곳은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 온달장군이 신라 침입을 막기위해
이 성을 쌓고 신라군과 전투를 치르던 중 전사하였다. 오래된 석벽에서는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다.
날카롭게 적을 막아섰던 성벽은 바람과 비에 마모되었고 그 색도 바랬다.
그러나 그 위용은 이 성을 쌓을 당시 온달의 나라를 향한 충심을 확인할 수 있다. 온달산성에서는 소백산 자락이 병풍을 치듯 감싼다.
성벽의 한쪽은 깍아지르는 절벽으로 남한강을 향한다. 그가 이곳을 택했을때와 달라진것은 그가 이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자연은 그저 시간의 흔적을 안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행자의 발자국이 조심스럽다. 자신의 흔적이 평생 남을테니까.
온달산성을 내려오는 내내 남한강이 함께 한다. 소백산의 품이 함께한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타박타박 걸으며 둘러보다보면 어느사이에 벌써 온달관광지다. 끝이 났다.
평강을 위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던 온달. 그리고 온달을 고구려 최고의 장수로 바꾸기 위해 평생토록 보필했을 평강.
그들의 사랑이 남한강 깊고 맑은 물과 소백산의 너른 품에 새겨진다.
7구간 : 온달관광지~김삿갓 묘역
7구간 김삿갓의 의풍옛길은 온달관광지에서 출발한다.
영춘면사무소를 지나 소백산 수련원으로 향하는 아름다운 숲길을 지나 의풍옛길로 접어든다. 7구간의 하이라이트다.
충북과, 경북, 강원도의 3도 접경지 구간으로 봄이면 겨울내 얼었던 땅을 뚫고 초록잎들이 땅의 기운을 받으며 고개를 내밀고
길 옆으로는 짙은 분홍의 진달래와 철쭉등 화려한 봄이 여행자를 기다린다. 가을이면 소백산의 아름다운 풍경이 여행자를 반긴다.
특히 봄의 기운이 완연한 5월, 매년 봄마다 영주시와 단양군 일원에서 펼쳐지는
이 축제는 고수대교 밟기와 불꽃놀이로 장식한 전야제를 시작으로 철쭉요정선발대회, 철쭉여왕선발대회,
철쭉꽃길걷기등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흙길을 밟으며 조금은 가쁜듯 쉬어지는 숨이 기분좋은 의풍옛길을 오른다.
한참을 그렇게 오르다보면 어느사이엔가 시야를 가리고 있던 빽빽한 소나무 숲 대신 탁 틔윈 시야가 시원하다.
푸른 하늘아래 소백산 자락을 한폭의 그림처럼 담은 이곳은 베틀재.
그 정상에서 바라보는 소백산 자락은 신선이 그린듯 가슴을 지나간다.
베틀재 정상에는 커다란 베틀재 개통 기념비가 이곳이 베틀재임을, 그리고 그 정상임을 알린다.
백두대간에서 동으로 뻗은 형제봉과 마대산 사이 해발 651m의 베틀재는 오르막길 30리, 내리막길 30리의 고개다.
3도의 문물이 오갔던 역사 속 그 모습그대로 개통된 이 길은 의풍과 오사역을 연결하던 고갯길로 수많은 보부상들이 넘고 쉬어가며
이곳 성황당에서는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충북의 최북단 동부에 위치한 베틀재는 그 넘어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통해,
왜 이리 숨이 가쁘게 올라와야 했는지를 알게 해 준다.
잠시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면 삼풍정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올라, 잠시 앉아 한눈에 들어오는 소백산 자락을 둘러본다.
4계절 서로 다른 풍경을 선보이며 모습을 바꾸는 소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삿갓의 의풍옛길에는 재미난 전설이 있다. 단양군 영춘면 동대리 용소동에는 형제봉이 솟아 있다.
큰바위 두 개가 의좋은 형제처럼 보이는 이곳은 예전에 용이 되기를 기다리는 커다란 이무기가 살았다고 한다.
드디어 용이 되어 승천하는 날, 나무꾼이 목격하고, 결국 이무기는 용이 되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 죽게 된다.
이때 용이 떨어지며 오줌을 쌌는데 그것이 괴인 곳인 용소라고 한다.
또 한가지의 전설은 태어난지 삼일밖에 안된 아이가 재주를 넘고, 겨드랑이 밑에 날개가 돋자 겁을 먹은 아버지가 아이를 죽이기로 한다. 그러나 아이가 죽자 천둥이 치고 먹구름이 일더니 용마 한필이 늪에서 뛰어 나와 삼일간 마을을 헤매다 죽었다고 한다.
이때 용마가 튀어 나온 늪을 용소라 하게 됐다는 전설이다.
그 전설의 진실여부를 떠나 늪하나에도, 바위하나에도 이야기가 흐르는 길에는 자연을 아끼는 조상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늪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여 소중히 여긴 그들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남겨준 것에 감사하며 길을 걷는다.
20.8km의 길을 7시간에 걸쳐 이 길의 끝에 도착한다.
이 길의 끝인 영춘면 소재지에 도착하면 영춘면 상리 느티마을 앞을 흐르는 남한강가를 꼭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아가길 여행자에게 청한다. 7시간동안 걷느라 땡땡하게 굳은 종아리가 이곳의 풍경을 눈에 담는 순간 깨끗하게 풀어진다.
이곳은 깍아지르는 듯한 석벽이 병풍처럼 늘어 서있어 장관을 이룬다.
해외여행이 익숙한 요즘,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한국에 있음을 감사하며 국내 여행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 가져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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