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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이 길을 걸어요] 인왕산ㆍ부암동길 - 청정 산책로… 여기가 서울이라고?

by 맥가이버 Macgyver 2011. 9. 15.

[트레킹, 이 길을 걸어요] 인왕산ㆍ부암동길

  • 입력 : 2011.09.15 09:05

청정 산책로… 여기가 서울이라고?
인왕산 길 - 산 중턱에서 내려다보이는 청와대·남산… 서울 파노라마
부암동 길 - 멸종 위기 동물 사는 백사실 계곡… 주택가 사이사이에 예쁜 카페도

서울 한복판에서 30분도 안 걸었는데 별천지가 펼쳐졌다.
인왕산스카이웨이 옆으로 난 인왕산 길을 등산복 차림의 두 남녀가 걸어 내려가고 있다.
/ 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canyou@chosun.com
도심에서 멀리 차를 타고 가야만 트레킹하기 좋은 길을 만나는 건 아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살짝 물러나 돌아가기만 해도 아름다운 산길을 걸을 수 있다. 가을이 오는 문턱에 찾은 인왕산·부암동 길도 그런 곳이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인왕산 길

출발지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를 나와 큰길을 따라 5분 정도 걷다 보니 오른편에 사직공원이 나온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토지의 신(社)과 곡식의 신(稷)에게 제사를 올리기 위해 만든 사직단(社稷團)이 있는 곳이다.

사직공원 담장이 끝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5분 정도 올라가면 단군 영정이 있는 단군성전과 전통 활터 황학정(黃鶴亭)을 만난다. 황학정은 평범한 조선 후기 정자이지만 고종 황제가 열강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설움을 삼키며 활시위를 당기던 곳으로, 슬픈 역사가 전해온다. 노란 곤룡포를 입은 황제의 모습이 마치 학처럼 보인다 해서 황학(黃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황학정 옆으로 놓인 '인왕스카이웨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나지막한 산길로 접어든다. 찻길이지만 달리는 차가 많지 않고 오른편으로 산책로를 잘 정비해놓아 트레킹 코스로 제격이다. 나무가 우거져 있어 한낮에도 그늘이 많고 길가엔 갖가지 꽃이 얼굴을 내민다.

서울 부암동 길에 있는 갤러리 카페 ‘산모퉁이’(왼쪽)와
인왕산 길 끝자락의 윤동주 시인 ‘서시’ 시비. / 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산 중턱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시내 모습이 압권이다. 청와대 파란 지붕부터 멀리 남산까지 서울 중심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 때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져 눈이 즐겁다. 그런데도 이곳은 북한산·도봉산·우면산 등 서울 외곽 산책로에 비해 찾는 사람이 적으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떠오른다.

인왕스카이웨이를 30분쯤 걸으면 널찍한 풀밭과 정자가 놓여 있는 언덕이 나온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다. 시인이 언덕 아래 하숙집에 머물던 시절 산책하던 곳이라 한다. 언덕 한편에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언덕에 걸터앉아 푸른 하늘과 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는 시인의 심정이 가슴 깊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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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이국적인 도심 속 전원마을, 부암동 길

'윤동주 시인의 언덕' 한쪽으로 서울 성곽 일부가 보인다. 서울 성곽과 관련해 조선 시대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태조가 새 도읍 한양에 외성(外城)을 쌓으려 할 때 경계를 정하지 못하던 어느 날 큰 눈이 내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북악산에서 낙산·남산·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안쪽만 눈이 녹았고, 바깥쪽 눈은 녹지 않은 채 있었다. 이를 본 정도전이 임금에게 알려 눈이 녹은 경계를 따라 성벽을 쌓았고, '눈 울타리'라는 뜻의 '설(雪)울'로부터 '서울'이라는 지명이 나왔다는 것이다.

600여년 전 어느 날 눈이 쌓여 있었을 법한 서울 성곽의 끝에 창의문(彰義門)이 서있다. 북문(北門) 또는 자하문(紫霞門)으로 불리는 곳이다. 여기부터 부암동 주택가 골목이 이어진다.

'서울 도심 전원마을'로도 불리는 부암동은 조선 시대부터 양반과 왕족이 즐겨 찾던 경승지였다. 도심에서 가까운데도 고층 건물이 없어 걷다 보면 시골의 작은 읍내나 외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경우 카페 '산모퉁이'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이 카페는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음악감독 최한성(이선균)의 집으로 나온 곳이고, 지하는 갤러리로 이용하고 있다.

부암동 길을 걷다 보면 공기가 더 맑아지는 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촌스러운 동네는 아니다. 지형만 보면 산꼭대기지만 현대적인 디자인의 집들이 눈에 띈다. 주택가 중간 중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쁜 찻집과 갤러리가 숨어 있다.

부암동 산책길의 마지막은 백사실 계곡이다. 서울 한복판이지만 도롱뇽·맹꽁이·버들치 등 멸종 위기 동물들이 사는 청정 지역이다. '백사실'은 조선 중기 명재상 백사(白沙) 이항복 선생의 별장이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계곡 입구 안쪽 흙길을 걷고 있노라면 이곳이 서울 한복판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백사실 계곡을 가로 지나면 세검정이 나오지만, 다시 계곡 입구로 나와 가파르게 경사진 주택 길을 따라 내려가는 길을 추천한다. 큰 길과 만나는 신도슈퍼 앞에서 왼쪽으로 돌아 자하문 터널 위쪽으로 올라간 뒤,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30분도 되지 않아 청와대 앞길이 나온다. 청운중학교와 경복고등학교를 지나는 길은 내리막이라 발걸음이 가볍다.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부터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까지 800m 남짓한 통인동·통의동 길은 평범한 찻길 같지만 골목 안쪽마다 작고 예쁜 카페·음식점이 즐비하다. 삼청동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어 훨씬 안락한 느낌이다. 초가을 트레킹으로 속이 출출해지면 경복궁역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삼계탕집 '토속촌', 설렁탕집 '백송' 같은 유명 음식점에 들러보자. 통인시장 안쪽에서는 예스러운 맛의 기름 떡볶이가 발길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