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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 도보후기☞/☆ 강화도의 산&길

[강화도 나들길 르포 1] 7코스 갯벌보러 가는 길 18km

by 맥가이버 Macgyver 2011. 11. 5.

[강화도 나들길 르포 1] 갯벌보러 가는 길

  • 글·신준범 기자 
  • 사진·이경호 기자 
‘나’를 낮추기 위해 ‘들’어서야 닿을 수 있는 갯벌
        7코스 갯벌 보러 가는 길 18km
 
▲ 강화 나들길 7코스의 하이라이트인 갯벌 제방길. 갯벌을 따라 하염없이 걷는 행복한 고독을 누릴 수 있다.

“남학생들! 여학생 뒤에 가서 서야지! 아침 안 먹었니!”


화도버스정류장에 내리자 쩌렁쩌렁 마이크 소리가 초등학교 담장 밖까지 울린다. 가을운동회를 준비하는 것 같은데 누가 잘하고 누가 요령 피우는지도 마을에 중계되고 있었다. ‘도보여권 기념도장 받는 곳’ 간판이 있는 편의점에서 도보여권과 안내지도를 준다. 아기자기한 여권에 7코스 출발 도장을 찍는 게 소꿉놀이마냥 유치하면서도 한편으로 재미있다.


‘강화 나들길’은 지난해까지 8개, 130여 km의 걷기 코스가 개발되었다. 올해 개통한 교동길과 개발 중인 석모도와 서도면(주문도, 볼음도)의 길까지 보태면 조만간 13개 코스가 된다. 나들길이라는 이름에는 가족이나 좋은 이들과 함께 소풍하듯 즐겁게 나들이 올 수 있는 길이 되었으면 하는 염원과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나들길을 개발한 김은미씨는 “걷기는 사람을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일원임을 느끼게 한다”며 “이런 걷기를 통해 인간이 가진 오만을 내려놓게 된다”고 걷기의 의의를 설명한다. 그렇게 ‘나’를 낮추고 ‘들’어서는 길이라는 데나들길의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나들길은 걷기코스라고 만만히 봤다간 녹초가 된다. 대부분의 코스가 15km가 넘고 긴 곳은 23km에 이른다. 길이 편하다고 해도 하루에 20km 이상 걷는 것이 만만치는 않다. 출발 여권에 도장을 찍고 7코스 기점인 화도초등학교를 출발한다. 출발한 지 20분 만에 길을 헤맨다. 무심결에 찻길을 버리고 왼쪽 골목으로 접어든 게 화근이었다. 마을 주민에게 묻자 자신 있게 길을 알려주는데 잘못된 것이었다. ‘나들길’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이가 많고, 안다고 알려줘도 잘못된 정보이기 쉽다. 등산할 때도 길을 물었을 때 엉뚱한 곳을 알려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의는 아니지만 확실치 않은 정보를 대충 알려주기 때문이다. 지도와 나침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산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자기 독도능력만큼 믿을 수 있는 건 없다.


▲ 내리마을에서 갯벌로 이어진 숲길. 7코스는 마니산 둘레의 갯벌과 숲을 잇는 코스다.

그러나 나들길은 얘기가 다르다. 성공회 내리성당을 지나면서부터 미로 같은 골목길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산적해 있다. 표지기나 화살표의 위치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어 잘못 갔다 되돌아오기 일쑤다. 지도는 가야 할 큰 방향만 표시하고 있어 거미줄 같은 골목길에선 발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짧은 ‘알바’를 몇 번 하고 나니 골목 갈림길만 나오면 일행이 신중해진다. 흩어져 표지기를 확인한 다음에야 같이 이동한다. 강화도 나들이에 함께한 이는 아이더 검단산점의 안명선(38), 김우천(32)씨다. 


길 냄새를 맡느라 곤두선 오감을 푹신한 숲길이 무장해제시킨다. 흙냄새와 온갖 풀 냄새가 구수한 청국장 냄새처럼 슬금슬금 다가온다. 경직된 몸에 힘이 스르륵 빠지며 이제야 제대로 걷기가 시작되는 기분이다. 한동안 숲을 걷자 굳어 있던 사람들의 표정에도 여유가 생기며 목소리에 장난기가 어린다.


숲을 지나자 대형 펜션단지가 나온다. 강화도는 펜션의 섬이라 해도 좋을 만큼 펜션이 널렸다. 새 건물이다 싶으면 10집 중 9집은 펜션이다. 가격은 저렴하지 않아서 비수기 평일이라 손님이 없는데도 10만 원 이하의 방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현지인의 말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은퇴한 이들이 이곳에 펜션을 짓고 안정된 수입으로 노후를 보내러 오는 이들이 많단다. 그러나 보기보다 일이 많고 여간해선 안정적으로 좋은 수입을 얻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 1 7코스 기점인 화도초등학교. 원점회귀 코스라 승용차나 버스 모두 이용에 불편이 없다. 2 화도초교에서 성공회 내리성당으로 이어진 논둑길. 벼가 황금빛으로 익을 때면 제법 운치있을 듯하다.

숲길로 들어서는 찰나 날카롭게 개 짖는 소리가 걸음을 멈칫하게 한다. 다닥다닥 붙은 철창 안에 갇힌 영양탕용 개들이다.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듯 전력을 다해 공격적으로 짖는다. 개들도 자기들이 죽을 거란 걸 안다. 그래서 사람이 두려워서, 살아남기 위해 악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한 명씩 걸어야 하는 작은 동네 숲길을 나오자 다른 세상이 기다린다. 갯벌이다. 새장을 막 나온 새가 창공을 향해 날아가듯, 가뿐한 걸음으로 제방길을 걷는다. 바다는 낮고 잠든 듯 고요하고 서해 특유의 회색빛이다. 생의 격동기를 다 흘려보낸 이의 관조의 눈빛처럼 차분하다. 사람 한 명 없는 갯벌을 제왕처럼 강력한 햇살이 점령했다. 시선이 닿는 저 끝까지 그늘은 없다. 우산이 양산으로 유용하게 쓰인다.


둔덕 같은 낮은 산 숲길을 지나니 다시 갯벌과 논의 경계를 이룬 제방길이다. 편의점이 있으면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여유를 부릴 텐데 나들길에는 갯벌, 논, 산뿐이다. 핑크색 데크에서 도시락을 먹는다. 벙커처럼 갯벌 쪽으로 구멍을 작게 만들었는데 이는 철새들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갯벌을 두고 마니산을 넘다
보초서는 군인들과 짧은 얘기를 나누고 돌아서자 북일곶돈대(北一串墩臺)다. 돈대는 옛날 해안 초소다. 흙이나 돌로 쌓은 작은 해안 성이라 볼 수 있다. 이곳 돈대는 조선 숙종 때 지은 것인데 풀이 높아 제대로 안을 둘러보기 어렵다. 군부대 옆 숲길로 내려서자 다시 갯벌이다. 지금껏 마주쳤던 갯벌은 손자들이었는지 스케일이 다르다. 사막처럼 넓게 바다와 뻘의 경계를 지우며 드리웠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갯벌이 넓은데 40%는 이미 개발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한켠에는 갯벌 보호를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강화도 갯벌은 천연기념물 419호다.


갯벌센터에서 오랜만에 알바를 하고 다시 되돌아온다. 갯벌센터에 들르지 말고 직진했어야 하는데 센터에서 도로를 따라 가고 말았다. 일행은 이름 때문에 해산물을 팔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갯벌 견학센터 같은 곳이다. 어두운 목조건물은 철새 관찰을 위한 탐조대다. 망원경으로 보니 백로가 먹이를 찾는 모습이 보인다.


억새길을 지나자 다시 갯벌의 바다다. 햇살에 반짝이는 갯벌은 곰보빵 같다. 자세히 보면 숭숭 난 구멍들이 빼곡하다. 멀리 조개잡이 하는 주민들이 점처럼 보이고 그들이 지나간 발자국이 생의 먼 길처럼 하염없이 뻗어 있다. 하늘에선 연신 보잉기 같은 커다란 여객기들이 인천공항 방향에서 떠올라 창공 속으로 사라진다. 지평선 너머까지 제방길이 닿아 있지만 걷는 이는 우리뿐이다. 갯벌의 점이 되어 풍경에 동화된다.


▲ 강화 갯벌은 조개, 게, 어류가 풍부한 철새들의 중요한 서식지다. 7코스 갯벌에선 날이 좋으면 황홀한 노을을 볼 수 있다.

갯벌이 끝나자 348번 지방도로를 만나고 7코스의 유일한 상점인 DC마트다. 한낮의 땡볕에서 풀려난 기념으로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로 배를 채운다.


기력 보충을 했으니 제대로 땀을 흘리자며 길이 채근한다. 이제 나들길은 산으로 간다. 하늘재, 마니산과 상봉 사이의 고개인 하늘재로 간다. 산을 넘는 길이 갯벌보다 심심한건 콘크리트 임도 따라 넘는 탓이다. 볼 건 펜션밖에 없다. 고개 꼭대기까지 펜션이 점령하고 있다. 곳곳에서 산을 깎아 집을 짓는데 너무 많아 눈살이 찌푸려진다.


고개를 넘어 아침에 지났던 성공회 내리성당을 지난다. 산 너머로 기운 햇살처럼 몸의 템포도 기울며 노곤해 온다. 화도초교 앞 편의점에서 완주도장을 찍자 아침에 도보여권을 보며 느꼈던 유치한 느낌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뿌듯한 상쾌함이 몸속으로 퍼진다.


걷기 길잡이


화도초교~덕골버스정류소~성공회 내리성당~사라디펜션(흙길 시작)~348번 지방도~갯벌전망대~북일곶돈대~DC마트~하늘재~내리성당~화도초교<18.3kmㆍ6시간 30분 소요>


강화 나들길 7코스는 나들길 중에서 유일한 원점회귀 코스다. 화도초교 앞에 주차장이 있어 차를 이용하는 이들에게 편하다. 신촌에서 운행하는 버스도 있어 자가용이든 대중교통이든 접근이 편하다. 7코스는 숲과 갯벌을 모두 맛 볼 수 있지만 갯벌의 비중이 더 크다.


길 찾기 어려운 곳이 몇 곳 있으므로 마음 놓고 가다간 알바하기 딱 좋다. 화도초교를 출발해서 ‘마니산로 739번길’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는 찻길을 따라 직진한다. 맞은편 ‘강화나라사랑 부동산’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든다. 내리성당을 지나고부터 골목이 복잡해져 길 찾기가 난해해진다. 골목 갈림길에선 반드시 몇 미터 진행해 표지기나 이정표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갯벌센터 갈림길에선 갯벌센터에 들르지 말고 직진할 것을 권한다. 갯벌센터 지나 7-1코스와 나뉘는 지점에서 DC마트 방향으로 길이 꺾인다. 이후 논 사이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이곳들만 주의하면 된다.


갯벌 제방길은 땡볕이 많으므로 양산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 코스상에서 마주치는 식당이 한 군데이고 거리상 점심을 지난 후에 닿게 되므로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위험한 곳은 없으나 거리가 길어 완주가 쉽지는 않다. 코스를 핵심만 짧게 타려면 성공회 내리성당에 양해를 구해 차를 주차하고 여기서 출발, DC마트에서 걷기를 마치고 버스나 택시로 되돌아가면 된다. 코스마다 ‘도보여권 기념도장 받는 곳’이 있으며 무료로 강화도 지도와 도보여권을 배포한다. 도보여권에는 코스별 정보와 개념도, 교통편, 숙소 정보가 담겨 있으므로 받아가는 것이 좋다. 강화의 안내정보에는 20.8km로 나와 있으나 GPS로 확인한 실거리는 18.3km다.


교통(지역번호 032) 신촌에서 화도행 3100번 버스를 타면 된다. 하루(06:00~22:50)에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송정역을 경유한다. 화도에서 신촌행 막차는 21:00에 있다. 강화버스터미널에서 화도 방면 버스는 40, 42, 44번 버스가 있다. DC마트에서 걷기를 마칠 경우 해안순환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갈 수 있다. 선진버스(934-9105). 화도개인택시(937-7456). 강인택시(932-5775).


숙박(지역번호 032) 화도면에 펜션이 많다. 7코스를 따르는 348번지방도로 주변에 집중되어 있으며 일몰을 볼 수 있어 좋다. 토마토펜션(937-3020), 닮펜션(937-8466), 늘푸른펜션(937-3378), 꿈꾸는바다펜션(937-3359), 그리향펜션(010-5529-6923) 등이 있다. 식당은 DC마트 부근의 행운갯벌산낙지식당(937-8896)이 걷기 경로에선 유일하다.

 

-월간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