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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 도보후기☞/☆ 강화도의 산&길

[20111112]석모도 나들이(전득이고개-해명산-낙가산-눈썹바위-보문사)를 다녀오다 - 4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1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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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12일(토)  
'산들섬 나들길'과 석모도 나들이(전득이고개-해명산-낙가산-눈썹바위-보문사)를 다녀오다.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산들섬 나들길과 함께 한 '석모도 나들이(전득이고개-해명산-낙가산-눈썹바위-보문사)' 코스

 

외포리선착장→석포리선착장→전득이고개→비만측정바위→해명산 정상(327m)→공개마을 갈림길→발바닥바위

→308봉→방개고개→외계인바위→새가리고개→250봉(전망봉)→발가락바위→낙가산(235m)→복주머니바위

→절고개→삼거리(마애불 갈림길)→눈썹바위(마애불)→보문사→보문사 일주문→석포리선착장→외포리선착장

 

석모도 [席毛島]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三山面)에 딸린 섬.

위치  인천 강화군 삼산면

적  42.841㎢

크기  해안선길이 41.8km

인구  2,416명(1999)


면적은 42.841㎢, 해안선길이 41.8km이다. 1999년 12월 말 현재 898세대에 2,41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강화도 외포항에서 서쪽으로 1.5㎞ 해상에 위치한다.

고려시대 말엽까지는 석모도·송가도(松家島)·어류정도 사이에 조수(潮水)가 드나들어 선박이 왕래하였는데,

주로 예성강(禮成江)과 한강을 드나드는 화물을 수급하였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교동군에 속하였다가 1910년 강화군에 편입되었다.


남동쪽 끝의 해명산(海明山:327m)과 중앙의 상봉산(316m)으로 인해 중부와 남부는 산지를 이루고,

북부와 서부의 간척지는 평지를 이룬다.

평지에서는 서해안으로 작은 시내가 흐르는데, 그 유역의 토지가 기름져 경작지 또는 취락으로 이용된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주요 농산물로 쌀·보리·콩·감자 등이 생산되며, 근해에서는 병어·새우류·숭어·꽃게 등이 잡힌다.

넓은 간석지를 이용한 굴양식이 활발하며, 삼량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한다.

지역 특산물로 섬쌀·순무·밴댕이젓갈·새우젓·천일염 등이 유명하다.


섬 중앙부의 낙가산(洛伽山) 기슭에 자리잡은 보문사(普門寺)에는

지방유형문화재 제27호인 보문사 석실(普門寺石室)과 제29호인 보문사 마애석불좌상(普門寺磨崖石佛坐像),

기념물 제17호인 보문사 향나무, 민속자료 제1호인 보문사 맷돌이 있다.

섬에서 유일한 민머루해수욕장은 썰물 때면 개펄이 드러나 자연학습장으로도 이용된다.

외포항에서 석모도 석포항 사이를 운항하는 배가 평일에는 30분 간격으로 다니고, 주말이나 휴일은 수시로 다닌다.

 

 

 

해명산 [海明山]

위치  인천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

높이  327m


인천광역시 강화군 석모도 한가운데 있는 산으로 강화의 6대산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석모도의 주봉이다.

산과 바다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산세가 험하지 않아 산행이 수월하다.

석모도를 중심으로 산이 동서로 나뉘어 있는데 동쪽의 삼산면은 넓은 갯벌 전체가 논이고, 서쪽은 염전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산자락 곳곳에는 샘줄기가 솟아나 낚시터로 이름 난 저수지가 두 곳 있는데 일년내내 물이 마르는 일이 없다.

산으로 가는 길은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10분 가량 바다를 건너면 석모도에 닿는다.

승용차를 배에 싣고 갈 수도 있다.

배에서 내려 30분 정도 걷거나 보문사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잔대기고개에서 내리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고개에서 서북쪽 능선을 타고 30분 정도 오르면 산 정상이다. 산 능선길 좌우로 억새풀밭이 있다.


정상에 서면 마니산과 매음리의 염전과 주문도가 보이고 낙가산과 상봉산,

서해바다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조망된다.

능선에는 회백색의 넓적바위인 천인대가 펼쳐져 있다.

이 산의 낙조는 특히 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능선으로 이어져 있는 낙가산에 올랐다가 하산은 눈썹바위 쪽으로 한다.

이 산의 볼거리 중의 하나인 눈썹바위는 마애십일면 관음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산만을 산행 목표로 삼기엔 산행시간이 너무 짧아 아쉽다면 낙가산 보문사를 둘러본 다음 상봉산에 오르는 것도 좋다.

이들 산을 다 돌아보아도 4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상봉산은 암봉으로 되어 있고 이 산 역시 전망이 빼어나다.


배를 탈 때는 승선자 명부를 작성해야 하므로 단체 여행일 경우 미리 명부를 작성해두는 것이 일정의 빠른 진행을 위해 좋다.

 

 

 

낙가산 [落袈山]

위치  인천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

높이  235m


강화도 서쪽 해안에 바짝 붙어 서해바다에 떠 있는 석모도에 있는 산으로 별로 높은 산은 아니지만

서쪽에 더 큰 섬이 없어 낙조가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석모도는 강화군에 딸린 일개 낙도에 불과하지만 이 산에 보문사라는

큰 절이 자리잡고 있어 절을 찾는 사람들로 석모도행 배는 항상 붐빈다.

배를 타고 섬으로 간다는 사실과 섬에 큰 사찰이 있다는 점이 특이한 매력을 주는 데다

조망이 좋은 이 산까지 있어 관광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능선은 암릉으로 이어져 산행 맛이 산뜻한 데다 중부지방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산행할 수 있는 능선이 많지 않은 터라 시원한 조망을 즐기며 산행 할 수 있다.

이 산은 석모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아니다.

산의 서북 방향으로 상봉산(316m)이 있고 남서 방향으로는 해명산(327m)이 있다.

그런데도 이 산이 회자되는 것은 보문사라는 절이 있기 때문이다.


산행은 선착장에서 내려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가 새라리고개 안부로 이어지는 계곡으로 들어서서 올라간다.

주능선에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주능선 산행으로 바뀐다.

이 산은 보문사로 가는 능선의 반대쪽에 비교적 뾰족한 느낌을 주는 봉우리로 솟아 있다.


주능선에 올라서면 서해의 섬들이며 능선상의 높은 봉우리인 상봉산이 다가선다.

능선을 따라 가다가 야트막한 봉우리를 지나 10여 분 더 올라가면 정상이다.

정상에는 너른 풀밭이 있어 앉아 쉬기에도 좋다.

정상에서는 잡목숲 지대를 지나 30여 분 가면 서쪽으로 이어진 능선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 산과 보문사는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조금 떨어져 있다.


또 한 코스는 섬의 남쪽 해안에 가까운 전득이고개에서 버스를 내려 산을 타기 시작,

북으로 긴 능선을 따라가며 섬 양쪽의 조망을 즐기기도 하고

암릉이 잇달아 나타나는 둥글둥글한 봉우리들을 하나하나 넘으면서 이 산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이 코스는 보문사까지만 3시간이 넘게 걸린다.


해명산을 지난 다음 이 산까지 능선산행과 바다조망을 실컷 즐긴 다음 보문사로 내려설 수 있다.

석모도에서 하룻밤 묵을 생각이라면 낙조를 보면서 산행 하면 내륙지방의 고산 산행과는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보문사는 신라 선덕왕 4년(635)에 희정스님이 창건한 절로 낙산사와 함께 해수관음기도도량의 하나이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석굴이 깊고 넓으며 절 뒤에는10여m에 이르는 거대한 관음보살상이 있다.

 

 

맥가이버가 꿈을 이루면 그 꿈은 또다른 이의 꿈이 된다.

맥가이버가 걸었던 좋은 길!

맥가이버가 걷고싶은 좋은 길!

그런 길을 좋은 님들과 함께 걷는 꿈!

 꿈★은 이루어진다.

 맥가이버의 '산들섬 나들길과 함께 한 석모도 나들이(전득이고개-해명산-낙가산-눈썹바위-보문사)' 이야기   

 

오늘은 산들섬 나들길의 정기도보 - '석모도 나들이(전득이고개-해명산-낙가산-눈썹바위-보문사)'에 함께 한다.

 

석모도는 이전에 두 번 다녀온 적이 있는데, 해명산과 낙가산과 상봉산을 걸으며 좌우로 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좋았다. 

 

외포리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석포리선착장에 도착하여 석모도 버스를 타고 전득이고개에서 하차하여,

전득이고개 주차장에서 뱅기님의 주관하에 간단한 준비운동을 마치고,

야생의춤님으로부터 산행코스 설명을 듣고 해명산 들머리로 이동한다.

 

오늘 해명산ㆍ낙가산 연계산행의 리딩은 강화나들길의 야생의춤님이 맡으셨다.

  

 '산들섬 나들길'과 석모도 나들이(전득이고개-해명산-낙가산-눈썹바위-보문사)를 다녀오다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풍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산들섬 나들길'과 석모도 나들이(전득이고개-해명산-낙가산-눈썹바위-보문사)를 다녀오다 - 4부를 시작하며...

 

 

▼ 14시 05분 - 삼거리 테크계단을 올라서서...

 

 

▼ 14시 06분 - 보문사를 내려다보니...

 

 

 

▼ 전에 없던 휀스

 

 

 

▼ 14시 09분 - 복주머니바위

 

 

 

 

 

▼ 14시 12분 - 절고개

 

 

▼ 14시 14분 - 눈썹바위(보문사) 방향으로 내려서고...

 

 

 

▼ 14시 18분 - 삼거리에서 마애불 방향으로...

 

 

 

 

 

 

 

▼ 14시 22분 - 눈썹바위

 

마애관음좌상

보문사가 관음 도량의 성지임을 가장 잘 상징하는 성보문화재로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리고 이곳에서는 멀리 서해바다가 한 눈에 조망되는 등 경치가 장관이다. 특히 낙조(落照) 경관은 아주 일품이어서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해와 노을을 쳐다보노라면 종종 그야말로 무아지경 불심(佛心)의 경지에 들곤 한다.

이 관음좌상은 대웅전과 관음전 사이에 있는 계단을 따라 한 10분가량 올라가면 나오는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에 새겨져 있다. 절에서부터의 거리는 약 1km가량 된다.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기 때문에 계단은 지그재그 식으로 놓았다.

이 불사를 기념하는 `관음성전계단불사공덕비'가 중간에 놓여 있다.

계단이 놓여졌다고는 하나 눈썹바위로 올라가는 길 자체가 워낙 급한 까닭에 한달음에 올라갈 거리는 못된다.

가다 보면 제법 다리에 힘도 들고 허리가 뻣뻣해지기도 한다.

이럴 때 `관세음보살'을 마음속으로, 혹은 나지막이 외우며 올라가노라면 문득 어느새 관음보살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마애관음좌상은 1928년 배선주 주지스님이 보문사가 관음 성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이화응(李華應)스님과 더불어 이곳에 새긴 것으로, 크기는 높이 920cm, 너비 330cm에 달하는 거상(巨像)이다.


크기를 척수로 환산하면 높이 32척에 너비가 11척이 되는데, 이것은 곧 관음보살의 32응신(應身)과 11면(面)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관음 좌상 약간 비스듬히 나 있는 바위면에 새겨졌는데, 위의 바위가 마치 지붕처럼 돌출되어 있어 비바람으로부터 관음부처님을 가려 주고 있다.


관음 좌상의 양식을 보면,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쓰고 두 손을 모아 정성스레 정병(淨甁)을 받쳐 든 채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얼굴에 비해 다소 크게 느껴지는 코 입 귀는 투박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서민적이라 보는 사람의 마음도 푸근해지며 정감이 간다.

또 부처님 얼굴에 빠짐없이 있기 마련인 백호(白毫)도 이마 사이에 솟아 있다.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불의(佛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싸도록 입는 통견(通肩)을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연화대좌 왼편, 그러니까 관음을 바라보아 오른쪽에는 `조불화응선사(造佛華應禪師)'가 그리고 그 반대편 위패 모양으로 새긴 구획 안에도 `화엄회상필부사왕중(華嚴會上八部四王衆)·나무화엄회상욕색제천중(南無華嚴會上欲色諸天衆)·화엄회상호법선신중(華嚴會上護法善神衆)' 등의 글씨가 세 줄로 새겨져 있다.


이 관음상은 비록 작품이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이곳이 관음 도량의 성지인 동시에 기도(祈禱) 성지임을 나타내는 상징성에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이곳에서 정성으로 기도 드리면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이 없다 하여 지금도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다.

 

▼ 마애불

 

 

 

 

 

 

 

 

 

▼ 조망하니...

 

 

 

 

 

 

▼ 14시 27분 - 이제 보문사로 내려서며...

 

 

 

 

 

 

 

▼ 14시 31분 -

 

 

 

 

 

 

 

 

 

 

 

▼ 14시 39분 - 보문사 극락보전

 

 

▼ 범종각

 

 

 

 

14시 42분 - 보문사 석실

 

 

 

나한 석상과 석굴 법당 

희정대사가 보문사를 창건한지 14년 만인 649년(신라 진덕왕 3)에 일어난 일이다. 보문사 산아래 지금의 매음리 동네 어부들이 배를 타고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갔다. 바다에 그물을 쳤다가 한참만에 걷어 올렸는데 그물이 몹시 무거웠다. 고기가 걸렸으면 그물이 당겨지고 움직일텐데 그물은 무거웠지만 요동이 없었다.


이상하게 고기는 한 마리도 걸려있지 않고 이상스럽게 생긴 돌덩이만 잔뜩 그물에 걸려 있었다. 어부들은 어리둥절하며 그 돌덩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기이하게도 그 돌덩이들은 마치 사람 모습과 똑같았다. 어부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이한 석상을 보고 놀랍기도 하고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그 석상들을 얼른 바다에 다시 던져 버리고 배를 저어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가서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기로 했다.


한참만에 어부들은 그물을 다시 걷어 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까처럼 그물이 무겁기만 하고 꿈틀거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배에 올려놓고 다시 보니 아까 멀리 떨어진 곳에 던져버린 그 석상들이 그대로 똑같이 그곳에 놓여있었다. 어부들은 매우 놀라 황급히 그물은 바다에 털어 버리고 그 날은 고기잡이를 포기한 채 서둘러 배를 저어 육지로 돌아와 버렸다.


그런데 그날 밤, 어부들은 전부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꿈을 꾸었다. 꿈의 내용은, 맑은 얼굴에 훌륭한 풍모를 한 노스님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먼 서천국(인도)으로부터 왔느니라. 나와 더불어 스물 두 성인이 돌배를 타고 이곳까지 왔는데 우리가 타고 온 돌배를 돌려보내고 물속에 있다가 그대들의 그물을 따라 올라왔더니 그대들은 두 번씩이나 우리들을 다시 물속에 넣어 버리더구나. 그대들이 알지 못하여 그러한 것이니 그 일을 허물하지 않겠노라. 우리가 이곳 동방 세계의 서쪽 바닷가에 온 것은 이 나라에 아라한의 신통을 펴기 위한 것이며 더욱 큰 뜻은 영산회상에서 베풀어진 무진법문과 중생의 복락을 성취하는 길을 전하러 온 것이다.


마을 뒤 낙가산에 가보면 우리가 오래도록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해 주기 바라노라. 의심하지 말라. 내일 곧 시행하도록 하라. 이 인연과 공덕으로 그대들의 후손들까지도 길이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니라." 노스님은 다시 앞장서 낙가산으로 어부들을 인도하여 보문사 앞에 있는 석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노스님은 이곳에 쉬게 해달라고 다시 한 번 당부하고는 어부들이 낮에 석상을 버린 바다로 사라졌다.


어부들은 새벽녘부터 일어나 간밤의 꿈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모두가 감탄을 했다. 그들은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배를 띄워 어제 삭상을 던져 버린 그 바다에 그물을 쳤다. 조금 후 그들이 걷어 올린 그물에는 어제의 그 석상 스물 두 체(體)가 그대로 따라 올라왔다. 어부들은 정성스럽게 석상을 모시고 뭍으로 올라와 물로 깨끗하게 씻고 꿈에 본 석굴로 석상 스물 두 위를 모셔갔다.


굴 앞에 다가가니 굴 안에서 경 읽는 소리가 나고 은은한 향 내음이 굴 밖으로 스며 나오고 있었다. 어부들은 형언할 수 없이 편안한 마음을 느끼면서 굴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굴 안은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다듬은 것처럼 천연적으로 된 좌대(座臺)가 만들어 져 있었다. 어부들은 스물 두 위의 석상을 그 좌대에 차례로 올려 모셨다.


그리고 어부들은 그 석상들이 돌부처님이라고 생각했다. 돌부처님을 좌대에 모시고 나니 굴 안은 엄숙하고 신비한 영기(靈氣)가 가득 찬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일제히 돌부처님 앞에 엎드려 거듭거듭 절을 하면서 돌부처님에게 소원을 이루어 주시도록 염원했다. 어부들은 돌부처님을 모시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신심이 절로 우러나서 기쁜 마음으로 동네에 돌아와 잔치를 벌이면서 하루를 경사스럽게 보냈다.


그날 밤 꿈에 그 노스님이 다시 어부들 앞에 나타나셨다. "그대들의 수고로 장차 무수한 중생들이 복을 빌어가게 될 것이다. 그대들에게 먼저 복을 줄 것이니 받은 복을 함부로 쓰지 말며 교만하거나 자비심을 버리라. 악하고 삿된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곧 복을 걷어 들일 것이니라. 그리고 그대들에게 효성이 지극하고 복덕을 갖춘 아들을 점지할 것이니라."


노스님은 이렇게 말하고 어부들에게 옥동자를 안겨 주고는 계속 말씀을 이었다. "사람들은 이 노승을 빈두로존자라고 부른다네. 우리들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두 보살님을 함께 모시고 왔으니 나와 더불어 나머지 열여덟 분은 모두 부처님의 수제자들이라네. 존자들의 이름은 스님들에게 잘 일러놓을 것이니 소원을 빌 때에는 반드시 명호를 불러야 하느니라."


어부들뿐만 아니라 보문사의 스님들도 같은 꿈을 꾸었다. 스님들과 어부들은 전부 이 신령스러움에 감탄만 할 뿐이었다. 어부들이 바다에서 옮겨 봉안한 열여덟 분의 존자들은 모두가 아라한과를 성취한 대 아라한들로 생사에 자재하여 삼천대천세계에 현몰이 자재한 대 신통을 갖추신 성인들이시다. 굴법당 좌측에 모셔진 분은 [나반존자]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독성이시다. 나반존자는 지금 천태산에서 선정에 들어 계시는데 장차 용화세계의 대좌주로 출현하시게 된다.


얼굴이 희고 눈썹이 길고 희게 표현되는 나반존자는 차와 과일을 즐기신다. 이러한 특징으로 보아 이 나반존자가 바로 빈두로존자라고 보고 있다. 신통 자재한 아라한들의 하는 일이므로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 석굴 옆에는 신령스런 샘물이 솟아오르고 있다. 그 물맛이 감미로워 불자들이 많이 마시게 되는데 아무리 많이 마셔도 탈나는 일이 없다. 그때 모셔진 스물두 분의 석상은 조금도 변함없이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마치 최근에 모신 것처럼 항상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이 느껴진다.


근래 사람들이 돌의 석질을 조사해보니 석상의 돌은 화강암같이 보이지만 우리나라 화강암이 아니라 인도에서 산출되는 돌임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 보문사 맷돌

 

보문사 맷돌과 절구

맷돌은 옛날 절의 스님들이 취사용으로 사용하던 것으로 석실 입구 오른쪽 삼성각 올라가는 계단 옆 화단에 있다.

석재는 화강암인데, 전체적으로 돌 다듬은 솜씨가 부드럽고 또한 조각도 정밀한 편이다.

둥근 모양을 한 밑부분의 주연(周緣)에는 흠이 널찍하게 파여져 있고, 맷돌질로 잘게 으스러진 음식물이 밑에 받치는 그릇에 흘러 잘 담아지도록 홈통도 적당한 너비로 파여 있다.

윗돌은 얇게 조성되었으며 역시 주연에 굵직한 테를 양각하고 그 양쪽을 파 놓아 그곳에 자루를 끼워 맷돌을 돌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맷돌은 웃돌, 곧 상대석만 남아 있는데 이 보문사 맷돌은 웃돌 뿐만 아니라 아랫돌, 곧 하대석까지 완전하여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크기도 지름 69cm, 두께 20cm나 되어 보통의 것보다 두 배 가량 된다.

이 맷돌이 이용되던 시절 보문사가 얼마나 많은 스님과 신도들로 성황을 이루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전체의 양식으로 보아 조선 시대 후기의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인천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편 맷돌 좌우에 크기가 비슷한 돌절구가 하나씩 있는데 이 역시 맷돌과 마찬가지로 취사용으로 쓰인 듯하다.

왼쪽 것은 높이 58cm, 입지름66cm, 깊이 30cm이고 오른쪽 것은 높이 53cm, 입지름 71cm, 깊이 30cm이다.

 

 

▼ 보문사 주지스님의 사인을 받는 신도들...

 

 

 

 

 

 

▼ 14시 46분 - 보문사 일주문을 향해...

 

 

 

 

 

 

 

▼ 14시 50분 - 보문사 일주문

 

▼ 15시 34분 - 뱅기님의 기지로 예정보다 일찍 석포리선착장에 도착하였으나...

 

▼ 15시 34분 - 한 발 늦은 님들과 생이별...

 

 

 

 

 

 

▼ 15시 49분 - 외포리선착장에서 다음 배로 올 님들을 기다리며...

 

 

 

 

 

 

 

 

 

 

 

 

 

 

 

☞ 이것으로 '산들섬 나들길'과 석모도 나들이(전득이고개-해명산-낙가산-눈썹바위-보문사)를 다녀오다를 마친다.

 

 

 

 2011년 11월 12일(토)  
'산들섬 나들길'과 석모도 나들이(전득이고개-해명산-낙가산-눈썹바위-보문사)를 다녀오다.
 

-▥☞ 1부[외포리 선착장→석포리 선착장→전득이고개→전망바위→230봉→비만측정바위]는 여기를 클릭.☜▥-

 

-▥☞ 2부[비만측정바위→해명산 정상(327m)→공개마을 갈림길→발바닥바위→308봉→방개고개]는 여기를 클릭.☜▥-

 

-▥☞ 3부[방개고개→외계인바위→새가리고개→250봉(전망봉)→발가락바위→삼거리(데크계단)]는 여기를 클릭.☜▥-

 

-▥☞ 4부[삼거리→낙가산(235m)→절고개→삼거리(마애불 갈림길)→눈썹바위→보문사→보문사 일주문]는 여기를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