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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 도보후기☞/☆ 강화도의 산&길

[20111126]강화나들길과 함께 강화나들길1코스 심도역사문화길(강화터미널~갑곶돈대) 걷기-1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11.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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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26일(토)  
'강화나들길과 함께 강화나들길1코스 심도역사문화길(강화터미널~갑곶돈대) 걷기'를 다녀오다.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강화나들길과 함께 강화나들길1코스 심도역사문화길(강화터미널~갑곶돈대) 걷기' 코스

 

강화버스터미널→SK마트강화우체국→동문(망한루)→원불교 교당/회나무→성공회 강화성당→용흥궁김상용 순절비용흥궁 공원

→강화문학관→강화초교→천주교 강화성당고려궁지은행나무→돌담행복이 가득한 집관제묘(북관운묘)한옥마을강화향교

은수물 약수터→북문 해우소북문(진송루)오읍약수→송학골빨래터→대월초교→잣나무숲→산소→연미정 가든월곶리 마을회관

연미정용정리(옥개방죽)→고인돌테니스클럽→해운사 입구강화인삼센터→동락천→강화나들길 6코스 분기점강화버스터미널 

 맥가이버의 '강화나들길과 함께 강화나들길1코스 심도역사문화길(강화터미널~갑곶돈대) 걷기' 이야기   

 

 

오늘은 강화나들길의 정기도보 - '강화나들길1코스 심도역사문화길(강화터미널~갑곶돈대) 걷기'에 함께 한다.

 

강화나들길 카페에는 2년 전에 가입을 했었으나 그간에 한 번도 함께 걷기를 못하였는데 오늘 함께 걷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아름다운 강화의 길들을 '강화나들길'이 생기기 전부터 걷기를 하여 이미 여러 군데를 다녀온 적이 있다.

 

1박 2일로 걸었던 강화도 일주...

염하강일주를 하며 걸었던 2코스 호국돈대길...

동검도 일주...

강화산성 일주와 정족산성 일주를 이어서 하고....

고려산 진달래 축제에 갔다가 5코스 일부를 걷다가 하게된 내가저수지 일주...

 

그리고 마니산, 고려산, 혈구산 등은 산행으로 수차례 오르내리고...

또 적석사나 백련사, 정수사나 전등사를 찾아나서기도 하고...

석모도나 교동도를 걷기 위해 강화도 본섬을 거쳐야 했고...

 

그동안 강화도에는 이런저런 연유로 제법 많은 방문이 있었다..

 

오늘 '강화나들길1코스 심도역사문화길(강화터미널~갑곶돈대) 걷기'에 선두는 야생의춤님이, 후미는 강도사랑님이 맡으셨다.

  

 '강화나들길과 함께 강화나들길1코스 심도역사문화길(강화터미널~갑곶돈대) 걷기'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풍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강화나들길과 함께 강화나들길1코스 심도역사문화길(강화터미널~갑곶돈대) 걷기' - 1부를 시작하며...

 

 

▼ 08시 29분 - 강화버스터미널

 

▼ 강화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한용운님의 시 '나룻배와 행인'....

 

▼ 08시 44분 - 강화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강화나들길 님들이 모이고...

 

▼ 강도사랑님이 준비해오신 물품들...

 

▼ 강화나들길 1코스 '심도로 드는 길' 출발 전에 인증샷을 찍고...

 

 

 

 

 

 

 

▼ 09시 07분 - 출발...

 

 

▼ 나들길 표식

 

 

 

▼ 09시 11분 - SK마트 앞 횡단보도를 건너...

 

▼ 09시 11분 - SK마트 주차장에서 모여 강도사랑님의 안내말씀이 있고..

 

 

▼ 09시 14분 - '산들섬 나들길' 뱅기님의 시범에 따라 준비운동을 하고...

 

 

 

▼ 09시 18분 - 출발...야생의춤님, 소라새님, 마니산님

 

 

▼ 09시 23분 - 횡단보도를 건너...

 

▼ 09시 25분 - 강화우체국 앞에서...

 

▼ 동문로를 따라...

 

▼ 견자산 강화 현충탑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이네...

 

 

▼ 09시 32분 - 강화산성 동문(망한루)

 

 

강화산성 [江華山城]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
 
지정종목  사적 
지정번호  사적 제132호 
지정일  1964년 06월 10일 
소장  강화군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 3  
시대  고려 
종류/분류  성 
크기  면적 305.7㎢  
 

1964년 6월 10일 사적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1232년 고려가 몽골의 제2차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착공하였는데,

공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강화도로 천도하여 2년 후인 1234년부터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했다.

 

이 성은 내성(內城)·중성·외성이 이루어져 있는데,

내성은 현재의 강화성으로 둘레가 3,874자(1,174m),

중성은 둘레가 5,381m로 1250년에 쌓았고, 외성은 1233년에 지었다.

 

이 성들은 모두 흙으로 쌓은 토성인데, 중성의 위치는 선원면(仙源面)의 토성터인 것으로 추정되고,

외성은 강화 동쪽 해협을 따라 길이가 3만 7070자(1만 1232m)였다.

그러나 1270년 다시 개경(開京)으로 천도한 후 몽골의 요청으로 헐어버렸다.

 

조선 전기에 규모를 축소하여 다시 축성하였으나 병자호란 때 파괴되고,

1677년 강화유수 허질(許秩)이 대대적인 개축을 하면서 고려시대의 내성 규모로 돌성[石城]을 쌓았다.

 

서문인 첨화루(瞻華樓)는 1711년 강화유수 민진원(閔鎭遠)이 세웠고,

남문인 안파루(晏波樓)는 쓰러진 것을 1973년에 다시 복원했고,

북문인 진송루(鎭松樓)는 원래 문루가 없던 것을 1783년 성을 개축할 때 세웠고,

동문인 망한루(望漢樓)는 2004년에 복원되었다.

또한 암문(暗門) 4개소와 수문(水門) 2개소가 남아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남산 위에 남장대가 흐릿하게 보이네...

 

 ▼ 지난 여름(8월 18일)에 강화산성 일주를 하며 동문에서 남장대를 올려다보았을 때는...

 

▼ 09시 34분 - 동문 옆 골목길로...

 

 

 

 

 

 

▼ 강화 원불교당

 

▼ 09시 35분 - 수령 600년의 느티나무

 

 

 

▼ 09시 36분 - 강화 원불교당

 

 

 

 

 

 

 

 

▼ 09시 40분 - 성공회 강화성당

 

성공회 강화성당 [聖公會江華聖堂]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江華邑) 관청리(官廳里)에 있는 한국 최초의 성당.
 
지정번호  사적 제424호 
지정일  2001년 01월 04일 
소재지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250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개화기건축 
크기  면적 6,452㎡, 정면 4칸, 측면 10칸 

 

1981년 7월 16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1월 4일 사적 제424호로 변경되었다.

보호면적은 6,452㎡이며, 성공회유지재단 등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성베드로와 바울로성당’이라고도 한다.

 

1896년(고종 33)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 11월 15일 이곳 강화에 한국 최초의 성당을 세우게 되었다.

건립자는 한국 성공회 초대 주교인 존 코르페(C. John Corfe:한국명 고요한)이다.

 

정면 4칸, 측면 10칸 규모의 2층 건물로, 목골조를 사용하고 벽돌을 쌓아올린 기와집이며, 2층은 바닥이 없는 통층구조이다.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을 본떠 지은 것으로, 외형상으로는 불교 사찰 분위기를 풍긴다.

한국에 서양건축이 도입되던 시기의 초기 건축으로, 한국 그리스도교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순수한 한식 목조건물이면서

지붕과 내부구조는 한국적 건축양식을 많이 가미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한국 토착화를 뚜렷하게 상징하는 듯하다.

 

1910년대까지 강화 지역 선교의 중심이 되었으며 성공회 신학교인 성미가엘신학교가

이곳에 설립된 이후 성공회 한국선교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성공회 사제가 된 김희준 신부를 배출하였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09시 41분 - 용흥궁으로...

 

용흥궁 [龍興宮]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철종(1831∼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 19세까지 살던 집.
 
지정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지정번호  인천유형문화재 제20 
지정일  1995년 03월 01일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441  
시대  조선 
종류/분류  관아건축 
크기  1동 1,554㎡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었다.

강화경찰서 왼쪽 담 옆길을 따라 70m 정도 서쪽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기와집이다.

왕세자와 같이 정상법통이 아닌 다른 방법이나 사정으로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잠저(潛邸)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잠저로는 태조의 함흥 본궁과 개성 경덕궁, 인조의 저경궁과 어의궁, 영조의 창의궁 등이 있다.

대개 잠저는 왕위에 오른 뒤에 다시 짓는다.

 

용흥궁도 원래는 초가였으나,

1853년(철종 4)에 강화 유수 정기세(鄭基世)가 지금과 같은 집을 짓고 용흥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뒤 1903년(광무 7)에 청안군(淸安君) 이재순(李載純)이 중건하였다.

 

좁은 고샅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랑채를 둔 이 궁의 건물은

창덕궁의 연경당(演慶堂), 낙선재(樂善齋)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에 따라 만들어졌다.

세월이 흘러 비바람에 헐어진 것을 1974년에 보수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잠저구기비각 1동, 내전 l동, 외전 1동, 별전 1동 등이며, 팔작지붕에 홑처마 주심포집이다.

내전은 앞면 7칸, 측면 5칸이며 건평은 90㎡이다.

별전은 앞면 6칸, 측면 2칸인 ‘ㄱ’자형 집으로 건평이 95㎡이다.

 

비각은 정사각형으로 앞면과 측면이 각각 2.5m로 넓이가 약 6㎡이다.

내전의 오른쪽과 별전의 왼쪽에 각각 우물이 1개씩 있으나 사용할 수 없다.

 

별전에는 마루 앞으로 작은 정원이 있고, 별전 오른쪽에는 조금 더 큰 규모의 정원이 있었으나 잘 가꾸지 않아 화초가 전혀 없다.

별전 주변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으나, 거의 베어져 밑둥만 남아 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09시 46분 - 용흥궁을 나서고...

 

▼ 09시 47분 - 용흥궁 공원으로 가는 님들...

 

▼ 09시 48분 - 삼도직물의 기념비?

 

 

 

 

▼ 09시 48분 - 선원 김상용 순의비(순절비)

 

김상용순절비 [金尙容殉節碑] 
 

조선 중기의 문신 김상용의 우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순의비(殉義碑).
 
지정종목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인천기념물 제35호 
지정일  1995년 11월 14일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416  
시대  조선 
종류/분류  비석 
 

1995년 11월 14일 인천광역시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있다.

김상용(金尙容:1561∼1637)의 7대손 김매순(金邁淳)이 건립하였다.

김상용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로 왕을 호종하였으나

청나라 군이 이곳마저 함락하자 남문루(南門樓) 위에 화약을 쌓아놓고 불을 붙여 순국하였다.

 

김상용은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경택(景擇), 호는 선원(仙源),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590년(선조 2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였고,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광해군 때 도승지에 올랐으며,

1623년 인조반정 후 집권당인 서인(西人)의 한 사람으로 돈령부판사(敦寧府判事), 예조·이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1632년(인조 10) 우의정이 되고 1637년에 순국하였는데, 위패는 충렬사(忠烈祠)에 봉안하였다.

 

원래 순의비는 옛 남문 터에 있었으나, 1976년 강화중요국방유적 복원사업 때

현재의 위치로 비각(碑閣)을 옮겨 세우던 중 1700년(숙종 26)에

당시 강화유수였던 김상용의 종증손인 김창집(金昌集)이 세운 구비가 발견되어 신·구비를 나란히 세웠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보수중인 성공회 강화성당

 

 

 

▼ 09시 50분 - 강화문학관

 

 

☞ 여기서 '강화나들길과 함께 강화나들길1코스 심도역사문화길(강화터미널~갑곶돈대) 걷기' - 1부를 마치고...

 

 

 

 2011년 11월 26일(토)  
'강화나들길과 함께 강화나들길1코스 심도역사문화길(강화터미널~갑곶돈대) 걷기'를 다녀오다.
 

-▥☞ 1부[강화버스터미널→강화우체국→동문→원불교 교당→성공회 강화성당→용흥궁→김상용 순절비→강화문학관]는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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