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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충청 도보후기☞/☆ 괴산 산막이옛길

[괴산 산막이옛길] 산천을 휘돌아 ‘한반도’를 품었네…충북 괴산 산막이마을

by 맥가이버 Macgyver 2012. 2. 5.

[괴산 산막이옛길] 산천을 휘돌아 ‘한반도’를 품었네…충북 괴산 산막이마을

 
글·사진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산막이마을로 가는 등산로에 ‘한반도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괴산호.

달천을 막아 만든 호수로 툭 튀어나온 지형이 마치 한반도 지도 모양처럼 보인다.

 

 

“예전엔 죄인이 살던 곳이지.” 충북 괴산 산막이마을(칠성면 사은리) 들머리에서 만난 토박이 노진규씨(77)는 ‘노수신 적소(謫所·유배생활을 하던 곳)’에 꼭 들르라 당부한다. 노수신(1515~1590)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을사사화 때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마을은 이름처럼 산에 막혔다. 설상가상 물이 산 전체를 에둘러 지금도 오지로 남아 있다.

 

들머리에서 마을까지 산 허리춤을 따라 걸으면 1시간, 등산로를 따라 능선을 넘으면 3시간이 걸린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런 오지의 옛길이 이제는 사람을 모으고 있다. 괴산군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벼랑길을 걷기 좋은 산책길로 정비한 덕택이다. 주말에는 수백대의 차량이 산막이 들머리에 몰려든다. 사람들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막이옛길’을 따라 걷는다.
꽁꽁 언 달천 옆으로
나무 데크가 깔끔하게 놓였다. 들머리에서 산막이마을까지 4㎞. 괴산군은 전설을 엮어 산막이옛길 곳곳에 볼거리를 만들었다. 1960년대까지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호랑이굴’, 미녀가 누워 있는 형상의 ‘미녀참나무’, 매가 솟아오르는 모양의 ‘매바위’ 등 옛길 명소만 24가지다. 적막한 옛길을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사람들은 현재로 끄집어낸 옛이야기 앞에서 사진
을 찍고 웃음꽃을 피운다.


옛길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잘 정비된 산책로보다 등산로가 낫다. 산막이옛길 노루샘에서 등잔봉(450m)으로 올라 천장봉(437m)을 거쳐 산막이로 가는 코스다. 3시간 넘게 걸린다.

사람들은 보통 산막이옛길을 걸어 마을에 들어갔다가 배를 타고 다시 들머리로 나온다. 하지만 물이 얼어 뱃길은 끊겨 있었다. 들어갈 땐 등산로를, 나올 땐 산책로를 택했다.

노루샘에서 등잔봉까지는 계속 가파른 오르막이다. 발 아래 달천(달래강)을 댐으로 막아 만들어진 괴산호가 내려다보인다. 하얗게 얼어붙은 호수는 3월에야 풀린다. 등잔봉에 오르면 호수를 사이에 두고 서쪽의 산막이마을, 동쪽의 갈론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같은 권역이지만 두 마을은 호수를 가르면 지척, 길을 따라 돌아나가면 머나멀다. 겨울에는 주민들이 얼음 위로 건너다닌다. 관광객들은 호수 출입을 통제한다.

등잔봉에서 천장봉으로 가는 길은 편안하다. 급한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다. 천장봉 정상에 못 미쳐 ‘한반도 전망대’가 있다. 괴산호에 혹처럼 튀어나온 땅이 마치 한반도 지도 모양을 닮았다. 천장봉에서 산막이로 내려서는 길은 심한 내리막이다. 가속도가 붙어 뛰다시피 걸어야 한다. 언 땅과 무른 땅이 반복돼 더욱 불편하다. 10분 정도 걸음을 옮기면 산막이마을이다.

 

산막이마을에는 현재 4가구가 산다. 그중 3집이 토박이다. ‘하얀집’ 민박을 운영하는 이강숙 할머니(82)는 20살에 이곳으로 시집을 왔다. 당시 마을에는 20집이 넘게 살았다. 달천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 갈론마을과 왕래했다. 장마로 물이 불어나면 산막이옛길로 걸어다녔다.

1957년 괴산댐이 생기면서 산막이마을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 돌다리는 사라졌고, 옛길도 물에 잠겼다. 아이들은 책가방을 머리에 올리고 호수를 헤엄쳐 건너 학교를 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산허리의 아슬아슬한 벼랑에 새 길을 냈다. 그 사이 주민들은 하나둘 마을을 떴다. “물과 산으로 막혀 먹고살 게 없었지. 고생한 걸로 말하면 책을 내도 모자라.” 이 할머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세월이 흘러 옛길이 정비되면서 오지였던 산막이마을은 명소가 됐다. 주민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민박과 식당을 운영한다.

 

괴산군은 1960년대까지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호랑이굴’을 산막이옛길 산책로에 재현해 놓았다

.

노수신 적소는 산막이마을 안쪽에 있다. 노수신은 이곳에서 고난의 유배생활을 견디고 훗날 영의정에 올랐다. 그렇지만 ‘죄인’이 머물던 산막이마을은 수백년 동안 오지를 면치 못했다. 산막이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노수신의 10대손인 조선후기 선비 노성도(1819∼1893) 덕분이다. 그는 조상의 자취를 따라 산막이마을을 찾았다가 마을을 둘러싼 달천의 비경에 반해 ‘연하구곡’이라 이름지었다. 괴산댐이 생기면서 연하구곡은 모두 물에 잠겼지만 적소 주변은 빼어난 절경이다.

산막이마을만큼은 아니지만 건너편 갈론마을도 오지로 꼽힌다. 다시 산막이 들머리로 걸어나가 임도로 5㎞ 이상 들어가면 갈론마을이다. 임도는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다. 매스컴에 오지마을로 소개되면서 갈론마을을 찾는 발길도 부쩍 많아졌다. 집집마다 ‘민박’ 표지판이 걸렸다. 원래 ‘칡이 많고, 은거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의 갈은(葛隱)마을이었으나 언제부턴가 갈론(葛論)마을로 불리고 있다. 마을 위로 갈은구곡과 군자산 등산로가 연결된다.

기왕 ‘오지여행’에 나섰다면 갈론마을 선착장을 찾을 것. 겨울에는 배가 다니지 않아 한가하다. 대신 오지 ‘캠핑’족들이 찾아온다. 그들과 함께 괴산호 앞에 작은 텐트를 쳤다. 텐트 밖은 온통 하얗게 얼어붙은 호수. 괴산호 건너 산막이가 가깝고도 멀다. 산이 막고 물이 가른 덕택에 세월을 잊고 남아 있는 오지마을의 겨울이 깊다.

 


◆ 여행길잡이

●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괴산IC에서 빠진다. 19번 국도를 타다가 괴강삼거리에서 좌회전해 34번 국도를 탄다. 산막이옛길 이정표를 보고 외사리 정류소 삼거리에서 우회전, 다시 괴산수력발전소 앞에서 우회전하면 산막이옛길 들머리다. 내비게이션에는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546-1’을 친다. 이곳에 차를 세우고 옛길을 걷는다. 주차비는 2000원, 옛길 입장료는 따로 없다. 대중교통은 괴산버스터미널에서 외사동행 버스를 탄다. 괴산수력발전소에서 내려 15분쯤 걸으면 옛길 들머리다.

● 4월부터 11월까지는 옛길 입구 차돌바위선착장에서 산막이마을까지 배가 다닌다. 편도 어른 5000원이다. 겨울에는 얼어붙은 괴산호를 걸어 주민들이 마을을 오간다. 호수를 걸어서 건너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관광객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 산막이마을 주민들이 민박과 식당을 운영한다. 민박은 하룻밤에 10만~15만원선. 식당에서는 국수, 파전, 백숙, 올갱이된장국 등을 판다. 여느 관광지와 비슷한 맛과 가격. 산막이마을 건너편 갈론마을에는 초가집 민박이 있다. 오지캠핑을 즐기는 이들은 갈론마을선착장(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산5-5)을 주로 이용한다. 전기시설, 화장실 등이 전혀 없기 때문에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산막이·갈론 권역인 비학봉마을 센터에 양해를 구하면 폐교된 갈론분교 운동장에서 캠핑을 할 수 있다. 폐교된 칠성초등학교 외사분교를 리모델링한 비학봉마을 센터(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152)에서는 일반 숙박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