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등잔봉] 화선지 위의 한국전도를 보는 듯… 한반도 지형이 한눈에
- 입력 : 2012.02.16 04:00
괴산 등잔봉
- ▲ 충북 괴산 등잔봉 기슭 절벽이 괴산호 쪽으로 머리를 내민 곳에 있는 망세루 전망대.
- 설산(雪山)과 호수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wanfoto@chosun.com
충북 괴산 등잔봉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산이다. 산행 내내 순백의 미녀 같은 괴산댐 호수를 볼 수 있으며 맞은편의 속리산국립공원 군자산을 비롯, 크고 작은 볼거리들이 가득하다. 산 이름은 옛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간 아들의 장원급제를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100일 기도를 올렸던 봉우리에서 유래한다. 등잔봉은 등산 마니아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450m로 높이도 낮지만 바로 곁에 있는 속리산국립공원 군자산의 명성에 가려져 있다. 이런 무명산에 최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인기는 한반도전망대의 수려한 경치 덕분이다.
◇괴산호와 어울린 산
등잔봉은 괴산댐 호수를 따라 벽을 이루고 선 산줄기의 봉우리다. 산 위에서 보면 휘감아 도는 호수 가운데로 툭 튀어나온 땅덩이가 보이는데 이것이 한반도 지형이다. 이렇듯 등잔봉은 산 타는 재미, 호수 곁 데크길을 걷는 재미를 모두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출발지인 주차장은 평범한 산골 풍경이다. 작은 고개에 올라서면 안내소가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시야가 터지며 심상찮은 경치의 조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겨울이고 평일이라 찾는 이 드문 산 입구를 지키는 사람은 괴산 토박이인 김영식(65)씨다. 그는 "1957년 순 우리 기술을 적용,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 괴산댐"이라 자랑한다. 달천강 상류인 이곳은 물이 깨끗해 매년 일찍 얼음이 어는데, 보통 11월 중순부터 3월까지 빙판이라고 한다. 얼음이 녹으면 산 아래의 산막이 마을에서 유람선도 운항한다고 한다.
안내소를 출발한다. 묘한 나무 한 쌍이 걸음을 세운다. 연리지(連理枝)로, 다른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 있다가 결이 통해 하나가 된 나무다. 알파벳 H자 모양의 참나무, 그 아래를 부부싸움을 한 부부가 돌면 화해를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호수 곁으로 난 길에는 이곳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시를 곳곳에 걸어놓았다. 소나무숲에는 출렁다리를 놓아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길에 잔잔한 재미를 더했다. 절벽이 호수 쪽으로 고개를 들이민 곳에 망세루 전망대가 있다. 빙판에 눈 덮인 호수는 순백의 겨울 미녀다. 화선지의 흰 여백 속에 발자국이 길게 나있어 여운을 준다. 망세루 갈림길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눈 쌓인 산길에 걸음이 조심스럽지만 조금만 고도를 높여도 드러나는 설산 특유의 백미(白美)에 속으로 점점 상쾌한 세포가 번지는 느낌이다.
- ▲ 등잔봉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괴산호 가운데로 툭 튀어나온 한반도 지형이 보인다. / 김승완 영상미디어기자
◇한반도 모양 지형
망세루에서 50분 만에 닿은 정상은 작은 산 특유의 아기자기한 분위기다. 그러나 큰 산을 능가하는 즐거움을 주는 건, 한반도 지형이다. 국내에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곳은 여럿이지만 기존의 것들과는 다른 풍경이다. 화선지 위에 그린 한국전도, 겨울이 가진 순백의 아름다움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능선을 이어간다. 하얀 여백의 소나무 속으로 햇살이 내려앉는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고요한 풍경 속, 나뭇가지에 산새가 앉자 눈가루가 햇살에 반사되어 특수효과처럼 빛을 뿌리며 내려선다. 평범한 산에서 만나는 달콤한 풍경이다. 이곳에서 '한반도 전망대'라 표기한 곳은 오히려 나무에 막혀 경치가 별로다. 천장봉 지나 삼성봉 갈림길에서 산막이 마을로 내려선다.
마을에는 식당 몇 곳과 얼어붙은 선착장이 있다. 현재 3가구가 남아 있으며 하얀집식당 이강숙(80)할머니가 이곳의 산증인이다. 강원도 횡성에서 시집와 61년째 이곳에서 살며 9남매를 길렀다. 그동안 병원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할머니는 "지금도 119 부르면 한 시간 안에 못 오는 곳"이라고 했다. 호수를 따라 이어진 데크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걸어간다. 순백의 호수가 걸음걸음마다 상쾌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것만 같다.
[여행수첩]
■ 등산 초보자와 함께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400m대 당일 산행지다. 주차장에서 출발, 등잔봉을 거쳐 천장봉 넘어 삼성봉 전 삼거리에서 큰진달래 능선을 따라 하산하면 산막이 마을에 닿는다. 550m인 삼성봉은 인근에서 가장 높은 주인 격의 산이지만, 하산 갈림길에서 500m를 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하며 조망이 없어 초라하다. 그래서 산행은 천장봉 지나 삼성봉 정상을 거치지 않고 바로 큰진달래 능선으로 하산하는 게 좋다. 산 입구에서 제공하는 등산안내도에는 '한반도 전망대'와 천장봉이 각각 다른 봉우리로 표현되어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으로 천장봉에 한반도 전망대가 있다. 한반도 전망대에서 60m 더 가면 천장봉 정상인데, 정상다운 경치가 없어 자칫 정상임을 모른 채 지날 수도 있다. 천장봉 정상에서 오른쪽 무덤 1기가 있는 산줄기를 따라가면 하산 갈림길에 닿는다. 더 짧은 코스를 원할 경우 한반도 전망대에서 진달래 능선을 따라 바로 호숫가로 내려설 수도 있다.
산막이 마을에는 민박과 식당이 있으며 얼음이 녹는 3월부터는 주차장 인근까지 유람선을 운항한다. 마을에서는 주차장까지 괴산댐 호숫가를 따라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다. 길찾기 주의할 지점은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 망세루 앞 갈림길이다. 여기서 데크길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야 한다. 등잔봉으로 이어진 오름길에는 '위험한 길'과 '편안한 길'로 나뉘는 곳이 있다. 위험한 길로 가더라도 가파르긴 하지만 암벽등반을 요하는 어려운 코스는 없다. 주차장부터 산막이 마을까지 6㎞에 3시간 정도 걸린다. 산막이 마을에서 주차장까지는 3㎞에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산막이옛길'이라는 걷기 코스다. 총 9㎞,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곳곳에 미끄러운 곳이 있으니 아이젠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스틱을 준비하지 못한 경우 안내소에서 김영식씨가 직접 제작한 나무 지팡이를 나눠준다.
■ 괴산시내버스터미널에서 외사리행 버스를 타고 외사리에서 하차하면 된다. 1일 7회 운행(07:45, 11:10, 12:30, 14:00, 15:10, 17:15, 17:50)하며 15~20분 정도 걸린다. 외사리까지 온 버스는 돌아서 괴산으로 간다. 괴산시내버스터미널(043-834-3351). 승용차로 갈 경우 내비게이션에 주차장 주소인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546-1번지'를 검색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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