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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좋은 시 모음

말하는 나무 / 김백겸

by 맥가이버 Macgyver 2012. 2. 6.

 

                                                   

 

 

 

 

 

 

말하는 나무 / 김백겸

 

 

 
높이와 넓이의 한계가 없는 에덴에 사는 생명나무가 있었다
 
마루에 누워 하늘의 구름을 보는 아이야
너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나는 이웃집 도지사관사의 주인처럼 부와 권력을 달라고 말했으나
생명나무는 침묵을 했다
말씀이 없었으므로 부와 권력은 내 앞을 지나가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높이와 넓이의 한계가 없는 죽음에 뿌리내린 생명나무가 있었다
 
심장에 힘이 넘치는 청년아
네가 원하는 꿈이 무엇이냐
나는 성춘향을 얻은 이도령처럼 사랑에 성공하고 싶다고 말했으나
생명나무는 침묵을 했다
말씀이 없었으므로 사랑은 내 앞을 지나가
다른 남자에게로 시집을 갔다
 
높이와 넓이의 한계가 없는 모든 상징의 원본인 생명나무가 있었다
 
머리의 지식으로 무거운 중년아
네가 원하는 욕망이 무엇이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나는 묵묵부답으로 불편한 심기를 전했다

천둥 같은 침묵이 말씀을 했다
네 목숨이 내 몸에서 나간 한 잎의 깃털임을 모르겠느냐
너의 꿈과 욕망이 내 마음의 파문이자 그림자이다
번개가 치면서 물질 속에서 불타고 있는 내 정신의 정체가 드러났다 

                                                   

 

 

   

 

 

 

 

 

 

 

 

 

 

 

 

 

 

자작나무 / 김백겸

 

 

숲 속 자작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흰 눈이 내리고 햇빛이 찬란하게 비친 동지가 지난 어느 날 

자작나무는 성스러운 세계목이 되었다

구름 위의 하늘과 대지의 지하를 오르내리는 샤먼의 경배에 의해

온 우주의 소리와 빛을 보고 듣는 천수관음이 되었다

 

숲 속에 자작나무는 전에는 그냥 평범한 나무였다

 

봄이 오면 새 잎을 피우고

가을이 오면 흰 가지로써 바람에 온 몸을 내 맡기는

뿌리에 온 몸의 생명을 내려보내 부활의 시간을 기다리는

목숨의 명령에 복종하는 노예였다

 

숲 속에 자작나무는 어느 날 불멸의 환상을 품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질서를 믿기 시작했고

흰 몸과 푸른 잎들은 신의 마음으로 타고 있는 불길임을 자각했다

흰 몸과 푸른 잎들이 불사조처럼 날아가

빛과 하나가 되는 존재임을 믿기 시작했다

 

숲 속에 자작나무는 그 때부터 마음에 빛을 내기 시작했고

신의 모습을 본 모세처럼

숲의 운명을 나무들에게 빛의 침묵으로 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