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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새코스 | 군산 구불길] 세계적 철새도래지, 한국 유일의 일본식 사찰, 마지막 비둘기 열차도 여기 있다

by 맥가이버 Macgyver 2012. 3. 13.
[군산 구불길] 세계적 철새도래지, 한국 유일의 일본식 사찰, 마지막 비둘기 열차도 여기 있다
 
 
  • 글·박정원 부장 | 사진·이경호 차장대우 

 

 

         이리저리 구부러져 여유와 자유 느끼게 하는 구불길 8개 코스

길을 걸으면 역사가 보인다. 어느 곳, 어느 도시를 가도 마찬가지다. 특히 군산은 ‘구불길’을 개통하면서 군산의 역사를 고스란히 길에다 녹여냈다. 고대시대 유적인 고인돌, 1905년 개항한 군산항과 그 접안시설인 부잔교(뜬다리), 영국 BBC의 ‘세계 자연의 경이로운 순간’이란 다큐멘터리에서 아시아 지역 중 유일하게 선정된 금강하구의 세계적인 철새도래지, 최치원 선생이 묵었다는 전설이 서린 문창서원, 이완용이 한국 첫 간척사업을 벌였던 장소, 한국에서 유일한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일제시대 도시계획으로 건설된 도시, 95년의 세월을 지켜온 비둘기호 열차가 마지막까지 운행된 군산선, 6·25 전쟁 때 인민군 지휘본부가 있었던 해망굴, 소설 <탁류>의 저자 채만식 문학관이 있는 곳, 노벨문학상 후보였던 고은씨의 고향 등을 길을 걸으면서 모두 볼 수 있도록 조성했다. 한마디로 길이 유적이고 보고인 셈이다.

근대의 군산은 특히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다. 일제 수탈의 대표적 관문역할을 했던 서해 항구도시로서, 아직까지 일제시대의 은행, 세관, 금고 등의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제 도시계획에 의해 조성된 도시의 흔적을 역사의 교훈으로서 간직하며, 길로서 거듭나 보여주고 있다.

군산 구불길은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수풀이 우거진 길을 여유·풍요·자유를 느끼며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은 여행길’이란 뜻으로 만들었다. 한자로는 오래 머무를 久(구)자와 풀 우거질 茀(불)자를 차용해 사용하고 있다.


▲ 세계적인 철새도래지인 금강하구둑에서 석양이 질 즈음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떼가 엄청난 군무로 먹이를 찾으러 창공을 날아오르고 있다. / 사진 조수남씨 제공
모두 8개 코스(180여 ㎞)로 구성돼 있다. 제1코스는 비단강길로 군산역~오성산~원나포마을까지 총 18.7㎞에 이른다. 제2코스는 햇빛길이다. 백인농장을 거쳐 임피향교~채만식도선관~깐치멀마을까지 13.7㎞ 거리다. 제3 코스는 큰들길로서 깐치멀마을에서 발산리유적을 거쳐 옥산맥섬석허브한증막까지 17㎞ 정도 된다. 제4 코스는 구슬뫼길로서, 옥산맥섬석허브한증막에서 청암산~옥산저수지를 돌아 군산역까지 18.8㎞ 가까이 걷는다. 제5 코스는 물빛길로서 은파관광안내소에서 연꽃자생지~옥구읍성을 거쳐 옥산저수지를 한 바퀴 돈다.

제6코스는 달밝음길로, 은파관광안내소에서 월명호수 수시탑~진포해양테마공원을 거쳐 진포시비공원까지 15.5㎞에 이르는 길이다. 제6-1 코스는 탁류길로서, 진포해양테마공원에서 나가사키18은행 월명공원수시탑~히로쓰가옥을 거쳐 구 조선은행까지 오는 7.8㎞의 가장 짧은 길이다. 제7코스는 새만금길로서 신시도주차장에서 출발해서 월영재~몽돌해수욕장~대각산전망대~논갈림길~199봉바닷길 등을 거쳐 다시 신시도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는 37.5㎞ 코스를 말한다. 마지막 제8코스는 선유도~무녀도~장자도 등 고군산군도를 모두 잇는 길로서, 현재 한창 조성 중이며 배를 타고 가야 한다.

8코스를 빼고는 구불길 7개 코스가 모두 도시 전체로 연결돼 있어 계절별, 조망별로 원하는 코스를 선택해서 걸으면 된다.

이 중 군산의 역사를 충분히 대변할 수 있으면서 풍광면에서도 구불길의 특징을 뚜렷이 나타내는 4·6·7 코스를 (사)구불길 조도남 교육팀장과 조수남 탐사대장이 안내해 주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조수남씨는 구불길 초대 사무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지면을 빌어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들 3개 코스는 구체적으로 상세히 소개하고, 나머지 코스는 전체를 묶어서 간단히 안내하기로 한다. 이들은 구불길을 간단히 표현하면 “바다와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길”이라며 “남녀노소 누구나 취향대로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군산 구불길 조도남 교육팀장과 조수남 탐사대장이 7코스인 새만금길 신시도를 지나면서 월명봉 정상에서 발아래 펼쳐 보이는 고군산군도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앞에 보이는 섬들은 선유도·무녀도·대장도 등이다.

35년 만에 개방한 저수지… 자연생태 그대로 살아 있어

‘구슬뫼길’이라 불리는 4코스는 2010년, 35년 만에 개방한 옥산저수지(또는 군산저수지) 주변을 걷는 수변길과 인근 야트막한 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어우러진 길이다. 청정 원시림 같은 깨끗한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4코스는 사람의 손길이 한동안 닿지 않아 고라니와 같은 야생동물도 간혹 눈에 띈다. 또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예방의학의 선구자인 쌍천 이영춘 박사의 흔적을 만날 수 있기도 하다.

군산저수지 양수장관리사무소에 주차장이 있다. 그곳에 차를 주차하고 길을 나섰다. 군산 어디를 가든 ‘구불길’이라는 구불구불한 글자로 쓰인 이정표가 방문객을 안내한다. 구불길 조성에 공을 들인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구불길 조 교육팀장은 “35년 만에 개방한 군산저수지 수변길 습지를 람사습지로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며 “수변식물뿐만 아니라 수변정화식물, 저수지 주변에 서식하는 조류와 곤충 등 특이 식생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군산엔 유달리 저수지가 많다. 40개쯤 된다고 한다. 주로 농업용수로 사용됐다. 일제가 쌀을 수탈하는 집결지이기도 했던 군산은 자체적으로도 많은 쌀을 생산하며 물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저수지 둑방길을 걷기 시작한다. 아직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콧등을 시큰하게 스쳐 지나간다. 저수지의 수면은 얼어붙어 있다. 중앙에 얼지 않은 부분에만 오리떼들이 날갯짓하며 앉아 노닐고 있다. 물가엔 왕버들이 앙상한 가지만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여유로운 풍경이다.

이곳은 상수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저수지를 방풍림을 둘러싸 수십 년간 보호했다. 그로 인해 지금의 건강한 자연생태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2010년 개방 이후 등산로와 수변산책로를 조성, 시민들의 쉼터로 활용하고 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인데도 수변로와 등산로를 걷고 있는 많은 시민들과 마주쳤다. 주변엔 쉼터를 겸한 의자도 마련돼 있다.


▲ 옥산(군산)저수지 제방길을 이른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일행들이 지나고 있다.

숲은 짙게 우거졌다. 넝쿨식물들은 앙상한 가지를 더욱 길게 늘어뜨려 원시림을 방불케 했고, 초본식물인 마삭은 군산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청암산 일대의 땅을 뒤덮고 있다. 이 길은 사철 내내 시원할 것 같다. 햇빛에 노출된 길이 거의 없을 정도다.

조릿대 군락지가 나왔다. 겨울인데도 파릇파릇한 잎들을 자랑한다. 조릿대 사이로 걷는 기분은 상큼하다. 동행한 조 팀장과 조 대장은 “원래 대나무가 더 우거진 숲이었으나 최근 길을 개발하면서 많은 대나무들이 잘려나갔다”며 아쉬워했다. 이들은 “개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인간이 잘 활용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데, 길을 조성하기 위해 마구 개발한 측면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잘려진 대나무가 길옆에 방치돼 있다.

수변길이라 그런지 길은 습지에 가깝다. 봄이 오는 길목의 땅이라 반쯤 질퍽하다. 저수지 중앙엔 청둥오리들이 무리지어 노닐고 있다. 인기척을 들었는지 더 중앙으로 몰려가더니 일부는 날기 위해서 날개를 퍼덕인다. 조수남씨는 “사람들이 놀라게 하면 청둥오리는 3일 동안 먹은 걸 토해낸다”며 “곧 시베리아로 떠나기 위해 체력과 식량을 비축해 놓아야 하는 새들을 절대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귀띔했다. 그러고 보니 철새들도 이젠 한반도에서 떠날 때가 됐다. 봄이 오는 징후가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자연의 소리를 철새들도 잘 듣고 있으리라.

철새들의 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은 계속된다. 눈앞에 앙상한 가지들뿐인 왕버들 군락지가 나왔다. 새순이 돋아나올 때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황금빛 잎사귀는 무엇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산은 야트막하지만 우거진 숲에 들어온 느낌 그대로다. 철새들의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텃새들의 영역 확인 울음소리까지 다양한 새들의 소리가 들린다. 길은 수변길과 등산로로 지겹지 않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돼 있다.

조 팀장과 조 대장은 “외지에서 군산 구불길을 찾는 사람들의 숙박편의를 위해 늦어도 5월 이전에 게스트하우스를 완공해서 셔틀버스로 방문객을 실어 나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대 80명까지 수용 가능한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이리저리 구부러져 여유와 자유 느끼게 하는 구불길 8개 코스
어느덧 청암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 비석엔 115m라고 표시된 야트막한 동산이다. GPS상으로는 133m로 표시된다. 정상엔 정자가 있어 사방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북쪽으로는 금강과 새만금간척지가 저 멀리 보이고, 동쪽으로는 만경강이 흐르고 있다. 만경강 부근의 평야가 이완용이 한일합방 전 군산군수로 있으면서 한국 첫 간척사업을 한 곳이라고 한다. 만경강 그 배후지가 한국의 곡창지대인 김제평야다. 곡창지대인 만큼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젠 하산이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하산길은 제법 가파른 등산로 모양새를 낸다. 급격히 내려가는 길이다. 평지에 다다르자 다시 쉼터와 화장실이 나왔다. 편의시설은 일정한 간격마다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정비돼 있다. 그 옆엔 약간의 운동 시설과 함께 습지체험 데크 시설도 마련했다.

옥산저수지의 식물들은 왕버들나무뿐만 아니라 물오리나무, 물푸레나무, 박주가리, 양버즘나무, 밤나무, 팽나무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침수식물로는 마름, 연꽃, 자라풀, 좀개구리밥, 이삭물수세미, 나사말 등이 자라고 있다. 조류로는 천연기념물 제327호인 원앙을 비롯, 붉은머리 오목눈이, 논병아리, 벙어리뻐꾸기 등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30여 가지 이상의 곤충도 공생하고 있는 자연생태가 살아 있는 공간이 바로 옥산(군산)저수지다.

생태가 살아 있어 그런지 길도 푹신푹신하다. 솔가리들이 눈과 어우러져 밟히는 느낌이 상큼하다. 그 느낌은 곧이어 참나무와 피나무가 접붙어 자라는 연리목으로 이어졌다. 서로 휘감고 올라가는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자연의 다양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1 새만금 방조제의 야경 사진. 사진 조수남씨 제공 / 2 소나무 군락 사이로 신시도 새만금길을 지나고 있다. / 3 일행과 떨어져 옥산(군산)저수지에서 노닐고 있는 철새무리가 인기척에 놀라 하늘로 날고 있다. / 4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 촬영지로 유명한 일제시대 가옥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된 히로쓰가옥.

옥산저수지의 방풍림은 청암산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청암산엔 대나무 군락이 의외로 눈에 많이 띈다. 대나무의 싱싱함과 겨울의 하얀 백설이 어우러진 모습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형국이다. 뿐만 아니라 파릇파릇한 느낌의 대나무는 봄을 빨리 재촉하는 듯하다.

대나무에 이어 사철나무 군락지가 나왔다. 이곳에 사철나무가 있었다니…. 그러고 보니 사철나무와 대나무는 모두 난대성 식물이 아닌가. 기본적으로 군산은 따뜻한 지역인가보다. 지금은 대나무와 사철나무의 북방한계선이 많이 올라갔지만 군산엔 대형 군락을 이루고 있다. 군산시화가 바로 동백꽃이다.

군산시에서는 걷기와 오토캠핑을 함께할 수 있도록 옥산마을 갈대밭을 오토캠핑장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저수지에서도 수상레저활동을 제한적으로 허용할 방침이라고 조도남씨와 조수남씨가 전했다. 그 넓은 갈대밭 주변을 지나고 1㎞쯤 더 수변길을 돌아 원점회귀했다.

4코스 구슬뫼길의 총 길이는 19㎞에 이르나 경관 좋은 옥산(군산)저수지 중심으로 수변로와 등산로로 혼합해서 9.5㎞를 약 3시간 20분에 걸쳐 돌았다.

1930년대로 ‘시간여행’ 하는 듯

탁류길이라는 불리는 6코스는 1930년대 일제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길이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지인 군산의 원도심을 통해 근대문화유산을 탐방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출발지는 널찍한 주차장이 있는 진포해양테마공원이다. 군산 내항에 위치한 진포해양테마공원은 고려 말 최무선 장군이 최초로 화포를 이용해서 왜구를 물리친 진포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해양공원으로 다양한 전쟁무기들이 노상에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등에 참전한 해군 상륙함인 거대한 위봉함 676호의 위용도 보인다.

바로 그 옆엔 이상한 구조물 하나가 눈에 띈다. 내항의 부잔교라고 한다. 일명 뜬다리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군산항의 수위에 따라 상하로 움직여 배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다리다. 일제가 군산항을 수탈 통로이자 병참기지로 삼기 위해 건립한 다리인 것이다. 수탈이 한창 진행될 때는 쌀 200여만 섬이 군산항을 통해 실려 나갔다고 한다. 뜬다리는 당초 6개였으나 지금은 4개만 남아 있다.


▲ 1 탁류길에 나오는 한국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 2 눈 내린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걷기 코스인 월명호수길을 지나고 있다. / 3 눈 내린 겨울인데도 많은 시민들이 옥산(군산)저수지 수변길을 걷고 있다.

불과 500m 채 안 되는 거리에 새 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2011년 9월 개관한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이다. 군산의 구석기시대부터 현대까지 문화와 유적, 인물에 대한 모든 자료가 보관돼 있다. 뜻있는 군산시민들의 성원으로 건립됐다고 한다.

박물관 바로 옆에는 일제시대 세관 건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현재 한국은행 본점의 건물양식과 비슷하다. 이어 군산신흥교회 주차장을 지나 군산해양경찰서 바로 앞 야트막한 수덕산 정상으로 향한다. 수덕산은 산이랄 것도 없는 공원 같은 동산이다. 내려오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촬영한 군산서초등학교가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 앞에 있는 해망굴은 1926년 10월 개통된 길이 131m, 높이 4.5m로 구 군산시청과 수산업의 중심지인 해망동과 내항을 바로 연결하기 위해 건립한 반원형의 터널이다. 6·25전쟁 때는 인민군 부대 지휘소가 터널 안에 자리 잡아 연합군의 집중 공격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전쟁의 상흔이 벽면에 남아 있다. 현재 국가등록문화재 제184호로 등록돼 있다.

해망굴 위로는 군산시민들의 휴식처인 월명공원이 있다. 월명공원이 있는 산은 월명산 혹은 명월산이라고 한다. 군산의 산은 대부분 200m 이하의 산들이다. 200m 이상 되는 유일한 산이 오성산(203m)이다. 오성산은 1코스 비단강길에 있다.

월명공원에 올라서자마자 많은 주민들이 앉아서 쉬기도 하고, 열심히 걷기도 한다. 임도 같은 널찍한 길은 양쪽으로 벚꽃이 가로수로 자라고 있어, 벚꽃이 개화할 3월쯤이면 화사한 봄을 맞을 것 같다. 이어 수시탑(守市塔)과 삼일운동기념비(삼일탑) 등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이름을 모두 가지고 있다. 월명산에서 바로 옆 점방산으로 향한다. 점방산은 화산 혹은 봉화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옛날 봉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점방산 봉수대 사적비’라는 비석으로 그 흔적을 대신하고 있다.

산 위에는 월명호수로 불리는 저수지가 있다. 1912년 일본인들이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군산 제1 수원지로 불렸다. 식수로 사용한 저수지이기 때문에 주변 자연 상태가 잘 보존됐다. 월명호수 주변에도 생태체험장이 조성돼 있다. 이어 편백치유의 숲을 거쳐 청소년수련관으로 나오면 월명공원을 벗어나게 된다.

 

이리저리 구부러져 여유와 자유 느끼게 하는 구불길 8개 코스

다시 시내로 접어들어 일제의 도시계획에 의해 건립된 동국사로 향한다. 지금은 조계종에 등록된 절이지만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이다. 스님들이 생활하는 요사체와 대웅전이 연결된 전형적인 일본식이다. 범종과 목재·기와 등 건물의 재료들도 일본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일본식 가옥도 있다. 히로쓰가옥으로 불리는 가정집은 일본식 정원이 그대로 보존돼 있고, 다다미식 복도와 내부시설도 볼 수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들을 모두 지나친다.

이어 일제시대 한국에서 부산에 이어 두 번째로 개장했고,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근대 빵집 ‘이성당’이 군산에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프랜차이즈 대형 빵집 때문에 동네 빵집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동네 빵집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활성화한 곳이다.

이성당 빵집과 원점회귀 장소인 해양테마공원은 불과 1㎞도 안 되는 거리에 떨어져 있다. 6-1코스 탁류길은 총 10.7㎞로 3시간 15분 소요됐다. 1930년대의 군산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마치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한 길이다.


▲ 월명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새만금 휴게소와 방조제, 주차장.

서해 섬이 한눈에… “사량도 지리망산의 축소판”

7코스 새만금길은 세계 최장인 33.9㎞의 새만금방조제 중에서 비응항에서 가력도까지를 체험할 수 있는 길이다. 신시도 바닷길은 군산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부각시킬 것으로 기대되는 명소이고, 등산로와 해변이 이룬 조화를 만끽할 수도 있다. 동행한 두 사람은 7코스를 “사량도 지리망산의 축소판”이라고 강조했다.

출발지는 새만금휴게소의 주차장이다.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수백 대는 족히 주차할 수 있다. 따뜻한 봄날이 되면 상춘객들로 이 넓은 주차장이 가득 메워진다고 한다. 그리고 수백 명의 인파가 일제히 산으로, 바다 옆길로 등산과 걷기를 떠난다. 애초에는 새만금 방조제 구경 인파로 붐볐지만 요즘은 걷기길 인파로 고군산군도가 넘쳐난다고 한다.

신시도는 고군산군도의 대표적인 섬이다. 원래 신시도 주변의 섬은 모두 군산이었다. 조선 세종 때 군산도의 수군부대를 내륙의 옥구군 진포(지금의 군산)로 옮겨감에 따라 진포가 군산진이 되고, 군산도는 옛 古(고)자를 붙여 고군산이라 부르게 됐다. 그 후 고군산은 선유도와 신시도를 포함한 인근의 전체 섬을 지칭하는 명칭이 된 것이다. 현재 고군산군도는 16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섬의 군락을 가리킨다.

새만금주차장에서 신시도 월영재를 향해 출발했다. 신시도는 고군산군도 중에 가장 큰 섬이다. 출발하자마자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된다. 금방 숨이 차온다. 숨이 넘어올 즈음 새만금 방조제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잠시 숨을 돌리며 경관을 살핀다. 넓은 바다가 눈과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仁者樂山(인자요산)이고 智者樂水(지자요수)라 했던가. 그러면 바다를 보면서 산에 오르면, 어짊과 지혜를 두루 갖추게 되나.

잡념에 잠긴 발걸음은 어느새 월영(月影)재에 다다랐다. 달의 그림자가 머무는 곳이라는 뜻이 되겠다. 바다 위에 달이 걸린 형국은 한마디로 절경이 아닌가. 그곳을 지금 지나고 있다.

그 절경에 최치원 선생의 설화까지 전한다. 최치원 선생이 당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귀국한 뒤 월영재 주변에서 한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그곳에서 글 읽는 소리가 중국까지 들렸다고 군산의 옛 문헌에 기록돼 있다. 그래서 산 이름도 최치원 선생이 이곳에 머물면서 큰 깨침을 얻었다고 해서 대각산이라고 붙었다.

월영봉에 올라섰다. 정상 비석은 198m, GPS로는 214m로 나온다. 월영봉의 조망은 고군산군도의 섬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확 트였다. 선유도·두리도·무녀도·관리도·장자도·대장도·말도·명도에서 멀리는 부안군의 위도까지 보인다. 원래는 64개의 무인도가 있었으나 연륙교 건설과 간척사업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곧 선유도까지도 연륙교로 연결돼 자동차가 들어갈 전망이라고 조 교육팀장은 밝혔다.

월영봉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에 다시 동백나무 군락지가 나왔다. 제법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바로 그 아래엔 고운 최치원 선생이 머물렀다는 터에 ‘고운초당(孤雲草堂)’을 건립해 놓았다. 일종의 도보객의 쉼터로 마련된 공간이다.


▲ 1 도심의 산 위에 있는 월명호수. / 2 신시도 월영봉을 지나 대각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고군산군도의 간척지가 중간에 훤히 내려다 보인다. /3 신시도 199봉 정상에서 석양이 내릴 즈음 서행 고군산군도의 섬들과 일몰을 담았다.
미니 몽돌해수욕장을 거쳐 다시 대각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칼바위 능선이 연이어 있지만 사방 조망은 가능하다. 발아래 보이는 겨울 쪽빛 바다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겨울 바다만의 특징이다.

드디어 대각산 정상에 도착했다. 주변에 보이는 섬들의 위치를 대략 확인하고 한숨을 돌리는 여유를 가진다. 봉우리 두 개를 거쳐 오느라 체력도 상당히 소진된 상태다. 이젠 능선은 없고 해변길로 돌아서 간다. 신시도 중에 햇빛을 가리는 유일한 숲길이란다. 사람들 발길이 뜸해서 그런지 꿩도 인기척에 날아 가고, 파도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진 길이다.

마침내 기다리던 서해 신시도의 일몰이 다가오고 있다. 사진기자는 바쁘게 움직인다. 조금 더 좋은 장면을 잡기 위해 199봉까지 뛰어오르고 있다. 원래 구불길은 능선 옆으로 우회해서 간다.

일몰은 주변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옅은 분홍색으로 물든 바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짙은 색으로 변해갔다. 이윽고 수평선에 고개가 걸리더니 뚝하고 떨어졌다. 갑자기 어둠이 밀려오는 듯했다. 부리나케 새만금휴게소로 향해 달려갔다.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7코스 새만금길은 원래 37.5㎞지만 주요 포인트만 연결시켜 8㎞를 3시간 54분에 걸쳐 돌아왔다.

군산 구불길은…

8개 코스 총 180여 ㎞로 구성… 바다와 산·호수 모두 거쳐

군산 구불길은 총 8개 코스로 연결돼 있다. 제1 코스는 총 18.7㎞에 이르는 비단강길이다. 이 길의 가장 큰 특징은 아시아 최대의 철새도래지에서 철새들의 군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가창오리의 군무는 영국BBC 다큐멘터리팀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조류학자인 러시아 학자까지 와서 감탄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가창오리는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곳이 경북 달성군 가창면 낙동강변이라고 해서 가창오리란 이름을 가지게 됐다. 북한에서는 수컷 얼굴의 노란색과 녹색의 무늬가 태극무늬를 닮았다고 해서 태극오리로 불린다. 영어명 ‘Baikal Teal'은 ‘바이칼오리’란 뜻으로, 여름에는 바이칼호수에서 짝짓기를 하여 개체수를 늘린다고 해서 붙었다. 겨울에는 한반도로 이동해 월동한다. 기온과 먹이 등에 따라 전남 해남군 고천암호 및 서해안 지역에 위치한 저수지에 소규모로 분산되기도 한다. 이 가창오리의 군무는 한반도에서 3월까지 볼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장면이다.

구불길 안내서에는 1코스를 ‘비단강길은 여러 명소 중 금강이 주인공이다. 비단처럼 펼쳐진 금강과 인접한 채만식문학관, 금강철새조망대, 금강호관광지, 오성산 등을 둘러보면서 문학과 역사, 자연과 생태가 어우러져 여행의 재미를 더 느낄 수 있는 길’이라고 적었다.

제2코스는 13.7㎞의 햇빛길이다. 부처님이 항상 머물렀다는 불주사를 지나 망해산에 올라서 바라보는 풍경은 비단처럼 반짝이는 금강과 철새, 나포십자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장관을 연출하며, 임피향교와 채만식도선관 등을 둘러보며 역사와 문학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제3코스는 17㎞의 큰들길이다. 소비자단체가 뽑은 최우수 브랜드 쌀인 ‘큰들의 꿈’을 재배하는 풍요로운 땅 ‘큰들(대야)’을 지나며,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는 채원병 가옥, 최호 장군 유지, 발산리유적지와 낭만적인 매력을 지닌 대방산산책로 등을 걸으며 풍요와 낭만을 느낄 수 있다.

 
제5코스는 물빛길로서 18㎞에 이른다. 자연생태가 잘 보전되어 있는 옥산저수지와 백석제를 둘러볼 수 있고, 역사가 숨 쉬는 옥구토성 성곽을 걸으며 장수를 기원하는 길이다. 햇살 받은 물결이 아름다워 은파라 불리는 도심 속의 여유로운 쉼터인 은파관광지를 만날 수 있다.

제8코스는 고군산군도의 여러 섬들을 연결해 조성 중인 길이다. 아직 정확한 거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조만간 선유도 주변의 섬들이 연륙교의 완공으로 육지와 연결됨에 따라 코스와 거리가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코스가 연결되는 주요 섬은 무녀도~선유도~장자도~대장도 등이다. 물론 각 섬의 봉우리와도 연결되는 등산코스도 개설한다. 서해의 아름다운 섬을 한눈에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교통 서울에서 승용차로 서해안고속도로를 탈 경우 동군산IC로 나오면 된다. 경부고속도로로 가면 천안논산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당진상주고속도로와 서천공주고속도로로 잠시 달리다 서해안고속도로에서 동군산IC로 나오면 된다. 이후 구암로~구암교삼거리~구암3·1로를 따라 가다 경암사거리와 해망로를 지나면 진포해양테마파크가 나온다.
군산까지 가는 고속버스는 호남선인 서울 센트럴시티에서 첫차 오전 6시(월요일은 5시30분)에 출발해서 15~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우등은 1만7,900원, 일반은 1만2,200원. 2시간 30분쯤 소요.

군산시청 관광진흥과(063-450-6598)로 연락하면 매주 토· 일요일 운행하는 무료 군산시티 투어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군산 새만금 시티투어버스는 매주 수·금·토·일 4회씩 근대문화코스, 은파관광지~새만금코스, 선유도~새만금코스 등을 운행한다. 탑승료는 성인기준 5,000원. 만 6세 이하는 무료다. 문의 063-465-2240. 군산시 관광진흥과 063-450-6598. 군산구불길 사무실 063-467-9879.

숙식(지역번호 063) 군산의 토속음식은 꽃게장과 생선찜으로 알려져 있다. 군산의 꽃게장은 전국에서 제일 먼저 홈쇼핑 판매를 시작했을 정도로 유명하다. 개정면 아동리에 계곡가든(453-0608), 대가꽃게찜(453-0831) 등에서 꽃게장백반을 판매한다. 가격은 2만 원 내외. 또 전국에서 복찜을 가장 먼저 했다는 시내 중앙로의 가시리(446-4613)와 점심때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쇠고기무국집인 한일옥(446-5491 또는 010-9224-6300) 등이 있다. 군산은 이외에 짬뽕과 아귀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귀찜은 마산이 원조라고 하지만 군산에서는 자신이 원조라고 자부할 정도다.

숙박시설은 4~5월 중에 개관할 게스트하우스(문의 구불길사무실 467-9879)와 시내에 여러 모텔이 있다. 문의 군산관광안내소(453-4986), 은파관광안내소(453-4985), 진포관광안내소(445-4472), 새만금관광안내소(467-6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