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둘레길 완주에 참가한 자원자들이 숲길을 걷고 있다. 이들은 출발 전과 14박15일 동안 걸은 뒤의 신체변화는 현격히 차이가 났다.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고, 걷기의 매력에 빠져 있다. 이른바 전국은 걷기열풍이다. 걷기란 단어가 시대적 화두가 된 느낌이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왜 걸을까? ‘길이 있으니까 걷는다’는 철학적 응답에서부터 ‘건강에 좋으니 걷는다’는 육체적 문제까지 다양한 이유가 거론된다. 걷기는 실제로 관절·뼈·근육·신경 등 우리 신체 전체를 조화롭게 움직이는 종합운동일 뿐만 아니라 특별한 장비나 투자 없이, 시간과 장소 구애 없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유산소 운동이다. 따라서 가장 경제적인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높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운동인 것이다. 반면 걷기를 소홀히 할 경우 인체의 기능이 떨어져 각종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의학적으로 증명됐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걷기의 의학적 효과는 심폐기능 향상, 혈액순환 촉진, 심장질환 예방, 체지방 감소로 인한 비만 개선, 당뇨·고혈압·고지혈증 등 성인병 예방, 골다공증 예방, 우울증 치료, 스트레스 해소, 기억력 회복, 면역력 증가 등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걷기가 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신체에 어떤 긍정 영향을 미치며, 걷기 전과 일정 시간 걸은 후의 신체는 어떤 변화를 보일까? 이에 대한 일부 궁금증을 해소할 구체적 자료가 나왔다.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믿음을 뒷받침할 만한 신체변화를 측정한 자료다. 지난 5월 9일부터 24일까지 14박15일 동안 지리산둘레길 개통 기념으로 둘레길을 완주한 13명을 대상으로 산림청 산음자연휴양림 건강증진센터에서 ‘산림 치유’의 일환으로 완주 전과 후에 대한 신체변화를 측정한 결과를 발표했다. 스트레스지수와 심박수, 혈관나이, 자율신경균형도, 스트레스 대처능력 등 5개 분야를 측정한 수치는 대부분 ‘매우 좋아짐’이거나 ‘좋아짐’으로 나타났다.
참가자 13명 중 ‘매우 좋아짐’ 반응은 스트레스지수에 8명, 심박수에 7명, 혈관나이에 7명, 자율신경도에 5명, 스트레스 대처능력에 6명 등 모두 절반이상이 매우 좋아진 수치를 보였다. 걷기가 신체에 긍정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지리산둘레길을 하루 20km 내외씩 총 274㎞를 14박15일 동안 완주한 참가자는 10대 2명, 20대 1명, 30대 4명, 40대 2명, 50대 2명, 60대 2명 등 청소년에서 노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됐으며, 남성은 6명, 여성은 7명이었다. 이들은 산림청에서 지리산둘레길 완주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자발적으로 참가한 지원자들이다. 이들의 참가 이유는 ‘취직과 공부에 대한 진로선택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자연을 통해 인간의 삶을 배우고 싶어서’, ‘귀농해서 어떤 새로운 일을 할까 싶어서’, ‘피부병에 도움 될까 싶어서’ 등 다양했다.
▲ 산음자연휴양림 내에 있는 건강증진센터에서 ‘치유의 숲’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의 신체변화를 측정한 장면.
5개 분야 모두 ‘좋아짐’ 이상이 압도적
이들이 출발하기 전 보디체크(Body Check) 기기를 통해 스트레스·심박수·자율신경균형도 등 5개 분야를 일제히 측정했다. 이들은 14박15일 동안 하루 종일 걷는 일 외에는 하는 일이 없었다. ‘걷고 먹고 지쳐 자고’가 14박15일 동안의 일과였다.
완주를 끝마친 15일 뒤, 이들의 구체적 신체변화 지수를 다시 한 번 측정했다. 그 결과를 살펴보자. 먼저 스트레스지수다. 스트레스지수는 총 13명 중 8명이 출발하기 전보다 ‘매우 좋아짐’으로 나타났고, 3명은 ‘좋아짐’으로 바뀌어, 모두 11명이 신체에 긍정 변화를 보였다. 나빠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고 나머지 2명은 수치가 큰 차이가 없었다. 특히 A씨는 출발하기 전 스트레스지수가 52로 나와 참가자 중 높은 수치에 속하는 부류였으나, 완주한 뒤에 측정한 수치는 30으로 스트레스지수가 가장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리산둘레길 완주에 참가한 사람들의 성향이 대체적으로 고민을 가지고 있거나, 그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혹은 자신을 한 번 돌아보기 위해 참가했다고 봤을 때 그 고민이 상당부분 해결됐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수치에 별 변화가 없었던 사람은 두 팀으로 나눈 팀의 책임자들이었다. 이는 팀을 사고 없이 이끌어야 된다는 책임감이 정신적으로 계속 부담을 줬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스트레스지수와 직접 관련 있는 교감·부교감 신경의 반응을 나타내는 자율신경균형도도 ‘매우 좋아짐’이 5명, ‘좋아짐’이 5명 등 10명이 긍정효과를 보였다. 3명은 수치가 조금 좋아졌으나 좋다고 판단할 만한 정도로 올라가지 않았다. 자율신경균형도를 나타내는 우리 몸의 교감신경은 몸이 긴장상태일 때 활성화되고, 부교감신경은 몸이 쉬거나 안락한 상태일 때 작동한다. 즉 출발 전에는 적당한 긴장상태로 있어 교감신경이 올라가고 끝난 뒤에는 내려가는 반응을 일반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반면 부교감신경은 그 반대현상을 보이게 된다. C씨의 경우 출발 전에는 교감신경이 7, 부교감신경이 2로 나타났다. 매우 긴장해 있는 상태가 수치로 바로 표시됐다. 종주를 마치고 난 뒤에는 교감신경이 3으로 떨어졌고, 부교감신경은 5로 올라가는 긍정변화를 보였다.
혈관나이도 ‘매우 좋아짐’이 7명, ‘좋아짐’이 4명으로 모두 13명 중 11명이 좋아졌다. B씨의 경우 출발하기 전 30세에서 완주 후 청소년 수준인 15세로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걷기가 혈관을 깨끗이 청소해 심혈관 질환에 도움이 되는 것이 수치로 입증된 것이다.
▲ 산음자연휴양림 김선묵 산림치료사(사진 중앙)가 치유의 숲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사상의학과 연결시켜 숲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들쭉날쭉 심박수도 종주 뒤 고른 분포 보여
심박수는 참가자 13명 모두 ‘좋아짐’ 이상의 긍정반응을 보였다. ‘매우 좋아짐’이 7명, ‘좋아짐’이 6명 등으로 나타나, 팀을 인솔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은 책임자들도 부담감과 상관없이 심박수는 호전됐다. C씨와 D씨의 경우 출발하기 전 심박수가 각각 66과 102로 조금 불안한 상태였으나 완주한 뒤에는 78과 75로 완전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온 것으로 측정됐다. 전체적으로도 출발 전 들쭉날쭉하던 심박수치가 둘레길 종주를 마친 뒤에는 75 내외의 고른 분포를 보였다. 걷기가 호흡을 고르게 하여 심폐기능을 향상시키는 결과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스트레스 대처능력도 참가자 13명 중 10명이 ‘좋아짐’ 이상의 결과로 나왔고, 3명은 보통수준으로 반응했다. 스트레스 대처능력이 좋아졌다는 의미는 걷기를 통해서 고민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마음이 침착해진 상태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한다. 즉 걷기는 단순히 신체적 단련만이 아니라 무념무상의 명상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고민 해결은 되지 않아도 그 고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든지, 그 고민이 이전 상태가 아닌 발전적 기회로 생각한다든지 등의 형태로 전환된 사실을 암시하는 것과 똑 같다.
지리산둘레길 완주자 13명을 대상으로 신체의 반응을 측정한 산음자연휴양림 김선묵 산림치유사는 “이 자료가 자연 속에서 걷기를 직접 경험하고 난 뒤의 반응을 나타낸 결과라 더욱 의미 있다”며 “단순한 걷기도 신체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숲속에서의 걷기는 육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을 갖고 계신 분에게도 더없이 좋은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김 치유사는 숲 치유센터에서 하는 숲속 트레킹을 소음인·소양인·태음인·태양인 등 자신의 체질에 맞는 동작과 병행하면 더욱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숲해설가·문화해설사·산림치유사이면서 중국에서 중의학을 6년간 배운 중의사이기도 하다.
산림치유사 김선묵씨의 말대로 숲속에서의 걷기인 등산은 단순히 도심에서의 걷기보다 산을 오르는 행위를 통해 숲속의 오염되지 않은 산소를 그대로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 건강에 더욱 긍정적 효과를 주는 유산소 운동이다. 더욱이 청소년들에게 모험심과 성취감을 맛보게 하고 인내심도 길러준다. 또한 만족감과 자신감을 줄 뿐만 아니라 우울증을 해소하는 등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등산의 기초가 바로 걷기다. 걷기에 이어 등산을 꾸준히 계속 할 경우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크게 낮추고 운동부족으로 오는 만성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또 각종 장비들의 무게로 인하여 근력운동의 효과도 낼 수 있어 골밀도를 높여준다. 이는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효과까지 낼 수 있다.
걷기가 좋다는 사실은 지리산둘레길 종주자의 신체변화를 통해서 수치로 확인됐다. 숲속에서의 걷기, 즉 등산을 통해 올 여름 육체와 정신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보자.
- ▲ 지리산 둘레길 이음단 사전, 사후 건강체크 비교결과
‘치유의 숲’ 프로그램, 직접 체험해 보니…
숲길 걷기·명상 등 3시간에 신체 긍정변화 바로 나타나
우리나라에 치유의 숲이 세 군데 있다. 제일 먼저 생긴 곳이 산음자연휴양림 내에 있는 숲 치유센터이고, 다음이 장성 편백림에 있는 ‘치유의 숲’이다. 2011년 8월 25일 개장한 횡성 청태산 ‘치유의 숲’이 근래에 설립됐다. 최근 들어 치유의 숲이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는 질병에 대한 약물 투여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고, 그 대안으로 ‘자연상태로 돌아가서’ 숲에서 위안을 받고 치료를 하는 방법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치유의 숲에는 산림치유사들이 각각 2명씩 있다. 아직 정부로부터 공식 자격증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산림청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7월 1일부터 산림청이 지정한 교육기관에서 일정 교육을 이수하면 공식 산림치유사 자격이 주어진다. 현재 산림청에 소속된 산림치유사가 6명뿐이므로 앞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 산림치유사가 바로 국립 산음자연휴양림의 김선묵씨다. 그녀는 중국에서 중의학을 6년간 공부하고 온 기술을 산림에 접목시켜 ‘치유의 숲’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고 있다. 그래서 지리산둘레길 완주자의 신체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지리산둘레길 완주자들을 측정한 기계로 똑같이 테스트 받고 산음자연휴양림에서 실시하고 있는 ‘치유의 숲’을 체험해 보기로 했다.
6월 19일 오전 8시 20분 산음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출발하기 전 신체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보디체크기 앞에 앉았다. 약 5분 가까이 측정에 들어갔다. 신체적 스트레스 보통(6), 정신적 스트레스 높음(3), 스트레스 대처능력에 보통(2), 혈액순환 보통(7), 교감신경 3.1, 부교감신경 0.5, 심박수 84 등으로 나왔고, 스트레스 점수는 50점, 혈관연령은 40으로 측정됐다.
김선묵씨는 “보통 일로 찾아온 기자들이 정신적 스트레스가 매우 높게 나온다. 아마 신체변화를 측정한 후에 기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정신적 부담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나 짐작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일행과 함께 ‘치유의 숲’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먼저 숲속을 가볍게 걸었다. 일종의 숲 트레킹이다. 김선묵 산림치료사는 나무와 숲에 대해서 설명하더니 참가자 중에 소양인 체질을 지닌 사람과 관련해서 말했다.
“소양인은 음의 기운이 약해 수승화강(水乘火降)이 안 된다. 그래서 두통을 자주 겪는다. 변도 막혀 2~3일간 못 보는 사람들도 많다. 나무 중에서 참나무가 물 성분이 제일 많다. 산불이 났을 때도 참나무, 특히 상수리나무가 제일 마지막에 탄다. 줄기 속에 물을 많이 품고 있기 때문이다. 소양인은 숲 속에서 상수리나무와 같은 참나무를 자주 안고, 도토리묵 같은 음식을 많이 먹어라. 수승의 기운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소양인 참가자들은 모두 귀를 쫑긋 세워서 들었다. 고개도 연신 끄덕였다. 이어 사상의학의 다른 체질에 관해서도 설명이 계속됐다.
“소음인은 소화기계통이 약해, 위 관련 질병이 자주 걸리고 치질도 많이 걸린다. 엉덩이를 위로 올려주는 물구나무서기가 도움이 되고, 홍삼을 먹어라. 몸을 보해 준다. 숲속에서는 낙엽송을 안으면 기운을 올려준다. 태음인은 폐가 약해 땀이 많다. 바람을 조금만 맞아도 감기에 잘 걸리는 특성이 있다. 무나 배 등을 많이 먹고, 아프면 땀을 흘려야 좋다. 태양인은 발성이 좋아 목소리가 크고 노래도 잘 한다.……”
이어 등산화를 벗고 20여 분 걸었다. 정리되지 않은 산길은 돌조각 때문에 걷기 힘들 정도였으나 지압효과는 상당한 듯했다. 때로는 낙엽이 땅을 덮고 있어 푹신푹신한 느낌도 들었다.
솔가리로 땅을 덮어놓은 곳에 다다르자, 호흡과 병행한 명상에 들어갔다. 20여 분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다. 신발을 신고 내려와 다시 측정했다.
심박수 84에서 75로, 혈관연령 40세에서 38세로, 신체적 스트레스 보통 6에서 3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는 높음 3에서 높음 0.5로, 혈액순환은 보통 7에서 보통과 좋음 경계로, 모든 지수가 정상에 가깝게 나타났다. 불과 2시간 가까이 숲길을 걷고 호흡과 명상을 했을 뿐인데, 그 사이 이렇게 호전될 수 있다니. 한마디로 놀라웠다.
실제 경험을 통해서 긍정변화를 직접 살펴보니 숲이 주는 효과, 걷기가 주는 효과, 숲속에서 걷기와 명상이 주는 효과는 어떤 약보다 효과가 큰 것 같았다. 김선묵 산림치료사는 “혈압약 부작용으로 고생을 한 고혈압 환자 부부가 치유의 숲 프로그램에 자주 찾아온 뒤로는 혈압이 뚝 떨어지는 효과를 봤다”며 “이와 같이 신체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고정적으로 찾아오며, 실제 효과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치유의숲’ 예약은 전화(031774-8133)나 인터넷(www.huyang.go.kr)을 통해서 하며, 20세 이상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3월부터 12월까지 운영한다. 하루 두 차례, 오전 9~12시, 오후 13~16시에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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