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에 관한 시 모음
♣ 코스모스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뚜리 울음에도 수줍어지고 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요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윤동주·시인, 1917-1945)
♣ 코스모스
가녀린 몸짓 방긋 웃는 얼굴 가을 햇살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저 신들린 미친년 (반기룡·시인)
♣ 코스모스
내 여린 부끄러움 색색으로 물들이고 온종일 길가에서 서성이는 마음 오직 그대를 향한 것이라면
그대는 밤길이라도 밟아 내게로 오실까 (목필균·시인)
♣ 코스모스
가을 하늘을 닦고 또 닦는 들녘의 코스모스 서로 화장발을 바라보고 소곤대며 웃고 또 웃고 앞가슴을 열었다가 뒷모습으로 돌아섰다가 실수하기 좋은 열 여섯 소녀의 꿈 아무에게나 웃어 주는 그 순정. (진을주·시인)
♣ 코스모스
불면 날아갈 듯 가녀린 몸매 간밤의 태풍에 행여 허리라도 다쳤나
네가 있는 강둑을 한걸음에 왔는데 거울 같은 하늘에 하늘 닮은 코스모스
내게 하는 인사말
나 괜찮아 가을이잖아 (김진학·시인)
♣ 코스모스가 피면
코스모스가 피면 철둑길에 나가 봐야겠습니다.
만난 적이 없지만 언제 헤어진 적이 없지만
까닭 없이 그리워지는 해맑은 얼굴의 소녀.
차창 밖으로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올 것만 같아
코스모스가 피면 철둑길에 나가 봐야겠습니다.
꽃 속에 묻혀 있으면 혼자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발꿈치 들고 다가와 눈으로 웃어 줄 것만 같아
햇살이 가늘어지면 코스모스가 피면
바람 부는 철둑길에 나가 봐야겠습니다. (손광세·아동문학가, 1945-)
♣ 코스모스
몸달아 기다리다 피어오른 숨결
오시리라 믿었더니 오시리라 믿었더니
눈물로 무늬진 연분홍 옷고름
남겨 주신 노래는 아직도 맑은 이슬
뜨거운 그 말씀 재가 되겐 할 수 없어
곱게 머리 빗고 고개 숙이면
바람 부는 가을 길 노을이 탄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코스모스 겨울 발목까지 잘리운 그리움은 더욱 깊숙이 뿌리내렸다 꽃잎 떨구려 마라 님 오실 그 날 흙먼지 뒤집어 쓴 미소로 맞을지라도 평생 한곳에서 님을 기다려 흔들릴지언정 쓰러지지 않겠다 (공석진·시인)
♣ 코스모스
내가 좋아했던 소녀는 긴 목 빼들고 분홍빛 포플린 치마를 입고 코스모스 핀 길을 걸었지.
가을 이슬에 행군 듯 눈동자는 맑고 한 움큼 쥘 듯한 허리는 뒤에서 안아주고 싶었지.
가지런한 이빨 드러내며 살며시 미소 지을 때면 철부지 소년의 여린 가슴은 방망이질을 했었지.
코스모스 곱게 핀 이 가을 어느 들길을 걸을 때 꽃처럼 환하게 웃는 소녀가 곧 달려나올 것만 같다. (박인걸·목사 시인)
♣ 코스모스
저 길로 오실 게야 분명 저 길로 오실 게야 길섶에 함초롬한 기다림입니다
보고픔으로 달빛을 하얗게 태우고 그리움은 하늘 가득 물빛이 되어도 바램을 이룰 수 만 있다면,
가냘픔엔 이슬 한 방울도 짐이 되는데, 밤새워 기다림도 부족하신지 찾아온 아침 햇살에 등 기대어 서 있습니다 (오광수·시인, 1953-)
♣ 코스모스
십삼 촉보다 어두운 가슴을 안고 사는 이 꽃을 고사모사(高士慕師) 꽃이라 부르기를 청하옵니다 뜻이 높은 선비는 제 스승을 홀로 사모한다는 뜻이오나 함부로 절을 하고 엎드리는 다른 무리와 달리, 이 꽃은 제 뜻을 높이되 익으면 익을수록 머리를 수그리는 꽃이옵니다. 눈감고 사는 이 꽃은 여기저기 모여 피기를 꺼려 저 혼자 한구석을 찾아 구석을 비로소 구석다운 분위기로 이루게 하는 꽃이옵니다. (조정권·시인)
♣ 코스모스
누가 저 가녀린 목덜미께로 하현달 한 토막쯤 걸어놓았나
홍역 앓던 막내 놈 불질하던 열꽃을 바람 놈이 사알짝 얹혀 논 게야
역마살로 떠돌던 햇볕 한 조각 손톱 끝에 아려오던 생살 저린 그리움도 상심한 이 계절에 꽃물 들어 내리었거니
가슴 속 깊디깊은 가장자리에 비밀한 연서 한 쪽 색실 고운 명주실로 엮어 올릴까,
속삭임도 공해란다 붉은 입술 파르르 그 속에 내가 앉아 너를 보는 오늘은. (최광림·시인)
♣ 코스모스
어릴 적 코스모스는 내 키보다 더 컸다 어머니 닮은 코스모스 삽짝에 서서 날 반겨주고 떠나올 때도 손짓으로 나를 보냈다 "잘 살아야 한데이" 어머니의 걱정에 눈시울 뜨거워지고 나는 어느새 코스모스 키를 훌쩍 넘어섰다 언제 어디에 있어도 코스모스는 울어머니꽃 해마다 코스모스 필 때 어머니도 거기 서 계실지. (이춘우·시인, 경북 영덕 출생)
♣ 칠월의 코스모스
가을까지 기다리기엔 그리움이 너무 깊어
뜨거운 태양의 시선도 뒤로 한 채
솟구치는 열정 끌어안은 칠월의 코스모스
가녀린 목 길게 드리운 곱디고운 미소는
우주를 껴안고도 남을 사랑아 (김경숙·시인)
♣ 코스모스
모든 것 휩쓸려 내려간 척박한 땅, 가뭄도, 홍수도, 태풍에도, 끄떡없이 반쯤 뿌리 뽑혀 누운 허리 굽은 몸으로도, 불평 한마디 없이 먼 산 너머로 눈길을 보낸다
하마 소식 한 줄 있을지 몰라
삶은 온통 기다림의 세월이라는 걸 겨우겨우 깨닫고 나서야 산 그림자 따라 나서는 가을 햇살에도, 아무도 없는 들길 어쩌다 만나 마주치는 눈길에도, 날려보내는 향
가장 낮은 바람에도 허리를 굽혀 흔들리는 마음 (유창섭·시인)
♣ 코스모스
코스모스처럼 명랑하게
코스모스처럼 단순하게
코스모스처럼 다정다감하게
코스모스처럼 단아(端雅)하게
코스모스처럼 가볍게
세월의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코스모스처럼 꺾일 듯 꺾이지 않으며! (정연복,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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