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3) 부산… 그 신선동은 재개발 중… 골목 곳곳엔 아직 소설과 비슷한 풍경
입력 : 2012.11.15 04:00
나는 악다구니와 벌거벗은 여자들과 쥐들의 골목을 나와 담 위에 앉아 ( '눈보라 콘' 中)
바다의 광기처럼, 부서진 모래처럼… 그게 사랑이던가
책 읽기 좋은 계절을 맞아 '매거진 +2'는 책 한 권과 카메라 하나 들고 떠나는 '문학여행' 시리즈를 연재해 왔다. 1편 인천, 2편 강원도에 이어 부산을 소개한다. 이번 여행의 길벗들은 '한 말씀만 하소서'(박완서) '물결이 높던 날'(서정인) '눈보라콘'(천운영) '짧은 여행의 기록'(기형도)이다.
◇백 살 된 해수욕장
해마다 여름철이면 연인원 3000만명 이상의 피서객이 부산을 찾는다. 하지만 그중에 '송도 해수욕장'(부산 서구 암남동)을 찾는 이는 드물다.
"바다에는 수평선이 없었다. 거대한 파도들이 깊은 물이랑을 뒤로 끌면서 말 위에 높이 앉듯 흉흉하게 솟구치고 있었다. 하얀 포말들이 말갈기처럼 그 위에서 부서졌다. 바다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방파제를 넘보면서 사납게 출렁거렸다. … 수심이 얕아짐에 따라 물결도 얕아졌다. 파도가 백사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 놀라운 힘을 잃은 다음이었다. 그것은 다만 커다란 혓바닥을 내밀어 모래 위를 핥았다. 사람들의 발자국은 지워지고 모래는 다시금 태고의 모래밭으로 되돌아갔다." (물결이 높던 날)
'물결이 높던 날'에는 폭풍을 맞은 송도 바다가 등장한다. 거센 바람을 타고 사납게 으르렁거리다가도 백사장에서는 맥없이 부서지는 그런 모습이다. 양면적 모습을 가진 바다를 배경으로 해서일까? 소설에는 광기와 체념이라는 사랑의 이중적인 모습이 등장한다.
송도해수욕장은 1913년 부산에 살던 일본인들이 관광지로 개발하며 문을 열었다고 한다. 한창 번성하던 1950~70년대에는 백사청송(白沙靑松)을 보러 온 피서객들이 해변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며 부산의 명소는 바뀌었지만, 송도만의 매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바다는 여전히 먼 곳에서부터 힘차게 달려와 해안가에서 한차례 화려한 재주를 넘는다. 다닥다닥 붙은 낡은 건물 사이로 현대식 호텔과 아파트 몇 채가 비집고 들어간 풍경도 오랜 시간을 담은 파노라마 사진처럼 느껴진다.
- 1부산 영도의 절영해랑길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멋이 있다.
-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역동적인 바다와 땀냄새 나는 삶의 현장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 2부산역 앞 언덕배기 골목의 여유로운 풍경. 3부산 분도수녀원 내 산책로. 4일출로 인해 붉게 물든 송도 앞바다.
◇해풍을 맞는 언덕 마을
- 1)해 뜰 무렵 송도해수욕장 백사장에서 바라본 부산 앞 바다. 두껍게 자리한 구름 사이로 하늘이 조금씩 붉어지 고 있다.
- 2)부산의 명물 어묵을 넣어 말아낸 어묵국수. 3)1905년 호주 선교단이 부산 동구 좌천동에 지은 부산 진 일신여학교.
- /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부산. 나는 왜 이곳에 또 왔던가. 너무 많이 온 곳. 활기찬 곳, 이곳에선 사소한 절망을 과시할 수 없다. 이 도시는 탐미적 딜레탕트들을 경멸한다. 힘으로, 건강함으로 들끓는 도시."(짧은 여행의 기록)
부산에서 '힘과 건강함으로 들끓는 도시'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곳곳에 자리한 언덕마을일 것이다. 서로 어깨를 부딪히지 않고는 지날 수 없는 좁은 골목과 허벅지를 터트릴 듯 가파른 언덕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써가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잔교를 건너 남항동 철공단지를 나와 신선국민학교 높은 담을 따라 지금 집으로 오고 있다. 낡은 차들이 검은 연기를 쿨럭이며 겨우 올라오는 가파른 길을 어머니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사뿐사뿐 올라온다. … 나는 악다구니와 벌거벗은 여자들과 쥐들의 골목을 나와 담 위에 앉아 시시각각 다른 빛이 되는 항구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때로 선박 아래에 이는 흰 포말과 잠루(岑樓)에서 반짝이는 싱싱한 금속성 눈부심을 보기도 하고, 해안을 따라 자리잡은 상점과 술집들이 그려내는 주홍빛 소묘를 보기도 한다."(눈보라콘)
1970년대쯤의 영도구 신선동을 배경으로 한 '눈보라콘'은 소년의 성장담이다. 유명브랜드 신발을 살 수 없어 신발에 무늬를 그리는 소년은 자신이 사는 언덕마을을 벗어버리고 싶은 가난의 흔적으로 여긴다. 하지만 독자에게는 언덕마을 골목골목에서 벌어지는 시끌벅적한 삶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준다.
현재 신선동은 재개발이 한창이다. 하지만 발품을 팔며 돌아보면 곳곳에서 소설과 비슷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언덕을 따라 이어지는 집들은 파란색, 주황색, 연두색 등 다양한 빛깔로 칠해져 있다. 담벼락 없이 방문 겸 현관문인 새시 소재의 문 하나만 길가에 낸 집에는 사시사철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집과 집 사이에 있는 가파른 골목 끝에는 푸른 바다가 넘실거린다.
◇절망에서 희망을 발견한 길
소설가 박완서는 1988년 외아들이 스물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한동안 부산 분도수녀원(부산광역시 수영구)에 머물렀다. 그는 당시의 힘겨웠던 심정을 일기로 남겼고, 훗날 이를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작품으로 출간했다.
그런데 극한의 절망을 겪은 한 어머니가 희망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그린 이 이야기를 읽다보면 궁금해지는 곳이 있다. 수녀원에 있다는 산책로다. 그는 이 길을 걸으며 고통을 달래고 생의 감각을 조금씩 되찾아갔다.
"명상의 길을 따라 걷는 아침 산책은 뜬눈으로 몸부림치고 난 후의 지치고 암울한 정신에 찬물을 끼얹듯이 상쾌한 자극이 되었다. 산책길의 나무와 풀과 공기가 하루하루 조금씩 가을빛을 더해가는 것도 바다 빛깔의 변덕보다는 위안이 되었다. 녹슨 빛깔로 물들어가는 갈잎나무들 사이에서 옻나무는 어떤 꽃도 흉내 못 낼 선연한 붉은 빛을 자랑하는가 하면, 서울 같으면 실내에서나 자랄 팔손이나무가 야성인 채로 크게 자라 양산만 한 이파리를 청청하게 너울대는 그늘에서 마타리꽃이 샛노랗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공기는 또 어찌나 청량한지 체내에 침체했던 피돌기가 화들짝 깨어나는 걸 느낄 정도였다."(한 말씀만 하소서)
수녀원을 찾아가 산책로를 물으니 약 100m 남짓한 작은 길을 알려줬다. 일반인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최대한 손을 대지 않은 소박한 숲길이다. 산책로의 가을은 소설에 묘사된 것보다 한층 무르익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느낌이었다. 작가는 이 평범한 길 어디에서 그토록 왕성한 생명력을 읽어냈을까. 어쩌면 그가 본 것은 '단장(斷腸)의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신이 아니었을까.
여행 수첩
대중교통을 이용해 소개된 여행지를 둘러볼 수도 있다. 부산역 맞은편 버스정류장에서 26번을 타면 송도해수욕장에 갈 수 있다. 송도에서 9번 버스를 타면 영도구 신선동에 닿는다. 신선동에서 분도수녀원까지는 85번을 타고 서면역까지 간 뒤, 지하철을 타고 금련산역에서 내리면 된다.
승용차를 이용하려면 송도해수욕장부터 시작하면 좋다. 송도는 중앙고속도로→모라고가교→백양터널→수정터널→충무대로→송도교차로→천마로→송도해수욕장 코스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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