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도보여행정보☞/♡ 산행·여행 지도 & 정보

[조강봉 교수의 지명이야기 ②]'독도(獨島)'는 '돌섬'에서 유래

by 맥가이버 Macgyver 2012. 11. 26.

[조강봉 교수의 지명이야기 ②] ‘독도(獨島)’는 ‘돌섬’에서 유래

  • 글·조강봉 우리지명연구회 회장·전 동강대학교 교수
  • 사진·조선일보 DB 

 

<삼국사기>에 의하면 울릉도(鬱陵島)는 신라 지증왕 13년에 이찬 이사부가 계략으로 취한 땅이고 고려 때는 수차 여진의 침범을 막아온 땅이며, 원나라(몽고)가 소나무를 베어가는 것을 저지한 땅이다.

 

조선조엔 안무사를 두어 관리해 왔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우산무릉등처안무사(于山武陵等處按撫使)나 도감(島監)을 임명하여 국가의 부역을 피해 울릉도와 독도에 들어간 거주민들을 데려다 육지에 정착케 하는 공도화(空島化) 정책을 실시해 왔다.

또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는 1900년 10월 27일 ‘鬱陵島(울릉도)’를 ‘鬱島(울도)’로, 도감(島監)을 군수(郡守)로 개칭하고, 관할구역을 울릉전도(鬱陵全島)와 죽도(竹島·댓섬), 석도(石島·독도)로 하여 강원도의 지방관제에 편입하는 칙령(제41호)을 관보를 통해 반포하고 백성을 보살펴 왔다.


울릉도는 <삼국사기>에는 우산국(于山國) 또는 울릉도(鬱陵島)로,<삼국유사>에는 우릉도(陵島), 우릉도(羽陵島)로 불렸고,<고려사>에는 우릉도(于陵島, 羽陵島, 芋陵島)와 울릉도(蔚陵島)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무릉도(武陵島), 무릉도(茂陵島), 우산무릉(于山武陵)이라 하다가 명종(1556) 때부터는 울릉도(鬱陵島)로만 불렀다.


 
▲ 조선일보 DB

이처럼 울릉도의 명칭은 우릉(陵, 于陵, 羽陵, 芋陵)의 , 于, 羽, 芋는  같은 음을 가진 한자이므로 이들은 모두 동일지명을 달리 표기(異表記)한 지명이며, 무릉(武陵, 茂陵)의 武, 茂도 동일지명의 이표기(異表記)다.

 ‘于山武陵’은 독도를 ‘于山’으로, 울릉도를 ‘武陵’으로 구별하여 부른 이름이다.


위와 같이 다양한 울릉도의 명칭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①우릉(陵, 于陵, 羽陵, 芋陵) 계통, ②울릉(鬱陵, 蔚陵) 계통 ③무릉(武陵, 茂陵) 계통, ④우산(于山)계통의 4부류로 나뉘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①의 ‘于(·羽·芋)+陵’(우+릉)과 ②의 ‘鬱(蔚)+陵’(울+릉)의 2부류이며, 이를 옛말대로 읽는다면 ①의 ‘于(·羽·芋)陵’은 ‘우릉’이라 읽히고, ②의 ‘鬱(蔚)陵’은 ‘울릉’이라 읽히며 말뿌리(어근)는 ‘울’이다.


우리말에 ‘오르다’(登)란 말이 있다. 이를 옛말 표기법(15세기)으로 적는다면 ‘오다’가 되는데 이 말이 음성모음화되면 ‘우르다’가 되며, 말뿌리(어근)는 ‘울’이다.


<우리말사전>에서 ‘울’을 어근으로 한 낱말을 찾아보면 ‘울통불통’, ‘울겅거리다’, ‘울렁거리다’, ‘울다’ 등이 있다.

이 말들은 모두 무엇이 위로 솟거나 위로 터져 나오는 뜻이 있다. 


울릉도는 ‘망망대해에서 솟아오른 섬’


울릉도(鬱陵島)의 자연환경은 망망대해에 큰 섬이 떠 있는 형상이다.

이런 환경에서 선인들은 울릉도와 독도를 바라보면서 넓은 바다에 작은 섬이 하나 ‘솟아 올랐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이런 발상을 울릉도의 지명과 연결시키면 우릉도(于陵島), 울릉도(鬱陵島)는 망망대해에 솟아 ‘오른 섬’이라고 불렀을 것이다(마치 제주의 오름처럼).

이 ‘오른섬’이 음성모음화되면 ‘우른섬’이 되는데, ‘우’는 ‘于’자를 빌어 적지만, ‘른’에 해당하는 한자는 없으므로 비슷한 음을 가진 ‘릉(陵)’자를 취해 ‘于陵島’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한편 ‘우산국(于山國)’은 신라가 이 섬을 취하기 이전의 나라 이름이다.

‘于山’은 ‘于(陵)山’에서 ‘陵’이 탈락된 지명이다.

그런데 조선조에서 신라, 고려의 문화를 지우기 위해 울릉도를 ‘武陵’과 ‘茂陵’으로 표기하고 ‘독도(獨島)’는 ‘于山’이라 하였다.


이후 독도(獨島)는 고종황제의 칙령에서 석도(石島)라 했고, 황현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 獨島라 했다.

石은 훈은 ‘돌’이나 지방말은 ‘독’이었기에 ‘獨島’는 ‘독’이란 우리말을 그대로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獨島를 주로 송도(松島)라 했다. 松島는 일본의 <은주시청합기> (1667년)에 처음 나온 이름이다.

그런데 일본은 1905년 ‘다케시마(竹島) 고시 40호’에서 송도(松島)를 죽도(竹島)로 고쳐 지방 언론에 발표하며 자기 현의 땅이라 했다.

다케시마현(竹島縣)의 고시 40호는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보다 5년이나 늦은 일개 현(縣)의 주장일뿐이다.


송도(松島)와 죽도(竹島)는 <숙종실록>(권20)에 “本是鬱陵島(본시울릉도) 而以其産竹(이이기산죽) 或稱竹島(혹칭죽도)”라 하였듯이 울릉도가 육지에서 멀리 떨어졌고, 오랫동안 공도(空島)정책 때문에 소나무(松)와 대나무(竹)가 거목으로 자랄 수 있었기에 붙여진 이칭이다.

이 이칭을 일본인들은 소나무와 대나무가 없는 바위섬인 獨島를 松島라 했다가 다시 竹島(다케시마)로 고쳤다.


지명은 주로 그 지역의 지리적 환경에 따라 명명된다.

일본인들이 독도를 자연환경과 맞지 않는 松島와 竹島로 불렀다는 사실은 그들이 獨島와는 관련이 없는 나라였음을 증명하는 명백한 증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