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선자령길] 흙빛 하나없는 순백의 산하늘과 맞닿은 설원을 걷다…평창 선자령
- 입력 : 2013.01.17 04:00
한국의 대표적 설국(雪國), 평창. 그중에서도 설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선자령(1157m)을 꼽는다. 푸른 하늘과 세찬 바람, 그리고 순백의 눈과 양 떼들의 목장이 있는 곳이다. 하늘의 산이고, 바람의 산이고, 눈의 산이다. 세찬 바람을 뚫고 순백의 눈을 헤치며 푸른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여말선초(麗末鮮初) 정도전은 '하늘이 낮아 재(嶺) 위는 겨우 석 자의 높이로구나'라고 노래했다. 또 조선 전기의 강희맹은 '어제 일찍이 큰 재(大嶺)로부터 왔더니, 회오리바람에 의지하여 만리를 양각(회오리바람) 속에 돌아서 온 것 같구나'라는 시를 읊었다. 높고 바람이 세찬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 설국(雪國)을 이룬 평창 선자령에서 백두대간 위로 길게 뻗은 능선과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한반도 등줄기인 백두대간의 중간에 있는 선자령은 겨울 산행지로 인기다. 설경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겨우내 통제구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 산을 평창 숲해설가 안향기씨와 함께 올랐다.
대관령휴게소에서 안씨를 만났다. GPS를 보니 해발 814m. 이미 웬만한 산 정상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선자령 정상이 1157m이니 표고 차가300여m밖에 안 된다. 초보 산행객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인근 선자령 등산로 입구엔 커다란 안내판이 있다. '선자령(순환등산로) 5.8㎞'라고 쓰여 있다. 어림잡아 원점 회귀해도 11㎞ 남짓 되겠다.
주변은 온통 설원이다. 흙빛은 찾아볼 수가 없다. 눈 위를 걷는 발자국이 때로는 '뽀드득뽀드득', 때로는 '사각사각'정겨운 소리를 낸다. 며칠 전 내린 눈이라 사람이 밟은 정도에 따라 소리도 달라진다. 이정표는 눈에 덮여 반밖에 안 보인다.
순백 세상에 사철 푸른 나무가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안씨가 "주목 군락지"라고 소개했다. 주목과 구상나무의 차이는 이파리를 만져보면 알 수 있단다. 주목 이파리는 손으로 살짝 만져보면 부드럽다. 반면 크리스마스트리로 자주 쓰는 구상나무는 찌르는 느낌이다. 곧이어 전나무 군락까지 나온다. 이 나무들의 공통점은 사시사철 푸름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대관령옛길 이정표가 보인다. 강원도 관찰사 정철이 걸으며 '관동별곡'을 쓰고,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한양으로 오가던 그 길이다. 청운의 꿈을 안은 영동 선비들이 아흔아홉 굽이를 넘어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정취가 서린 길이기도 하다. 선자령 등산로가 대관령옛길과 살짝 겹치고 바우길 제2구간과도 중복된다.
12세기 고려 시인 김극기가 '대관(大關)'이라 처음 불렀다고 하고, 대관령(大關嶺)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16세기경이라고 한다. 큰 고개이자 험한 요새의 관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 등산객들이 선자령 올라가는 길에 있는 자작나무· 일본잎갈나무 숲을 걷고 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산죽(山竹)이 눈 위로 고개를 뾰족이 들고 있다. 안씨는 "산죽은 겨울에 눈이 내려도 살기 위해 고개를 위로 뻗는데,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일수록 키가 크다"고 했다. 바람이 세찬 지역이라 눈이 날려가서 그런지 산죽의 키는 그리 크지 않다.
선자령 올라가는 겨울 등산로는 눈이 덮여 있어 원래 뭐가 있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숲 전문가인 안씨가 자세히 설명을 했다. "3~4월에 오면 선자령 야생화로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라며 "특히 이 구간은 개방된 지 4년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바람꽃, 얼레지, 할미꽃, 동이나물, 현호색, 복수초, 중외무릇 등 야생화가 끝없이 펼쳐진다"고 소개했다.
샘터와 양떼목장 울타리를 지나치자 선자령 정상 주변에 있는 풍력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쉬익~ 쉬익~" 하고 들린다. 선자령 정상보다 바로 아래 있는 임도(林道)의 주변 산세 조망이 더 좋다. 북쪽으로 황병산, 서북쪽으로 오대산, 서쪽으로 계방산, 남쪽으로 발왕산 등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 강릉과 동해도 어렴풋이 보인다. 발아래엔 백설의 대관령목장이 이색적이고 목가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선자령 정상은 평지다. 선자령은 원래 대관산, 보현산, 만월산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선자령으로 이름이 바뀐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들이 아들을 데리고 와서 목욕하고 놀다 하늘로 올라갔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하산길은 전망대로 잡았다. 동해가 멀리 보이고, 강릉 방면으로 가파른 사면이 계속된다. 가파른 사면은 세찬 바람을 그대로 능선 위로 올려 보냈다. 바람이 세니 체감기온이 떨어진다.
국사성황당으로 가는 사거리가 나온다. 강릉 보광리에서 올라온 대관령옛길로 연결되는 길이다. 임도는 등산로 입구로 연결되지만 살짝 방향을 틀어 성황당으로 향했다. 국사성황당은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강릉단오제 첫날에 제(祭)를 지내는 곳이다. 산신각에는 김유신 장군이, 성황당에는 범일국사가 각각 산신으로 모셔져 있다. 안씨는 "성황당은 계곡의 음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거의 1년 내내 굿이나 신내림을 벌인다"며 "민속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라고 했다. 국사성황당에서 선자령 등산로 입구까지는 1㎞ 남짓 된다. 그대로 내려오면 원점회귀 산행을 마치게 된다.
여행 수첩
대관령휴게소~선자령등산로 입구~양떼목장~풍해조림지~야생화군락지~샘터~자작나무숲~너덜지대~철쭉군락지~선자령 정상~전망대~무선표지소(기지국)~KT중계탑~국사성황당~기상청 구름물리선도센터~대관령휴게소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의 실제 거리는 11.8㎞.시간은 5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횡계 가는 고속버스를 타면 된다. 횡계읍에서는 택시를 타고 대관령휴게소에 내린다. 택시비는 8000원 정도. (033)335-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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