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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의 사람과 길] 동백꽃 기다리는 선운사 ~ 봄꽃 가득한 고인돌 유적 ~ 고창 청보리밭

by 맥가이버 Macgyver 2013. 3. 14.

[박종인의 사람과 길] 동백꽃 기다리는 선운사 ~ 봄꽃 가득한 고인돌 유적 ~ 고창 청보리밭

  • 박종인·여행문화 전문기자 
  • 입력 : 2013.03.14 04:00

봄에 홀려 걷다보니 청보리밭이네
선운사로 간다 봄이 있으니까

 
학원농장 보리밭에 아침 안개가 깔렸다. 기왕이면 거기 봄처녀가 있었으면 좋겠다.
바람결에 연분홍치마 흩날리며 봄 속으로 날아갔으면 좋겠다. /박종인 기자
봄 맞으러 가려면 전북 고창이 좋겠다. 아니, 고창에 가야 한다. 부산 대청동 관측소에 있는 진달래가 이달 23일에 피어난다. 330km 북서쪽 서울 서대문 기상청 관측소 앞 진달래에 봄이 도착하는 날이 4월 5일이다. 하루 이동 거리는 25km, 시속 1.06km다. 느리다고 방심하지 말자. 천지 사방 봄에 포위되는 거, 순식간이다. 그러니 남쪽 고창으로 가야 한다. 아직 선운사 동백은 피지 않았다. 봄을 이렇게 따라가 본다. 동백꽃 아직 안 핀 선운사~봄꽃 가득 깔린 지상 최대 고인돌유적~청보리밭.

#동백꽃 서러울 선운사

선운사는 산중(山中)에 있되 평지에 자리잡은 큰 절이다. 미당(未堂)을 서럽게 했던 동백은 아직 피지 않았다. 대웅전 뒤에는 수백년 전 심었던 산불막이용 동백이 숲을 이뤘다. 동백숲은 도솔암과 함께 선운사 나들이의 최종 목적지다. 그런데 '이상기온'으로 얼버무려진 알 수 없는 이유로 올해 동백은 4월 10일에 핀다. 예년보다 13일 늦다. 이번 주에는 발간 몽우리만 볼 수 있다. 그래도 선운사는 가야 한다. 봄이 있으니까.

사하촌 주차장에서 절집까지 이어지는 개울가 산책길을 걷는다. 화강암을 깎아 만든 선운교 주변 차밭은 새싹이 조금씩 움텄다. 나목(裸木)이 주를 이뤘지만 대지에는 봄이 충만하다. 차밭은 참새 혀 같은 여린 새싹을 준비 중이다. 여인들이 신발도 벗고 개울에서 땀을 씻는다.

산책로 끝에는 동학 전설이 담긴 마애불이 있다. 1892년 가슴속에 숨겨둔 세상을 바꿀 비결(秘訣)을 동학군이 꺼내갔다는 불상이다. 그보다 72년 전 전라감사 이서구가 비결을 꺼냈더니 "이서구가 열어본다(李書九開坼)"라고 적혀 있었다던가. 식겁을 한 이서구가 벼락을 피해 도주하는 바람에 비결은 동학군 차지가 되었다지. 봄으로 포장된 절에는 미완의 혁명이 숨어 있다. 그래서 봄나들이는 즐거우며 서럽다. 파천황(破天荒)의 기운이 계절 속에 숨어 있다. 부처님을 만나고 도솔암까지 오르면 허벅지 근육은 긴장하고 목구멍은 갈증으로 애가 탄다. 체감 계절은 봄이 아니라 여름이다.

그리고 고인돌유적지로 간다. 아, 가는 길목 왼편에 기암절벽이 나오면 접근해볼 일이다. 절벽 이름은 할매바위다. 암벽 타는 사람들이 즐겨 찾던 곳인데, 절벽 아래 등반루트를 새겨 넣은 동판을 꼭 찾아본다. 동학군이 가져간 비결처럼 수수께끼 그림과 문자가 가득하다. 예컨대 이런 것들: 나드리 쇠물푸레 아리랑할매 석포 꽃뱀 사마귀. 암벽 모르는 이들은 도무지 해석할 도리가 없다.

#고인돌유적과 오배이골

선운사에서 배어 나온 봄기운은 고인돌유적지에서 용암처럼 터져나온다. 이제나저제나 양지바른 산 중턱은 음택(陰宅)으로 쓰이곤 했다. 3000년 전에도 그랬다. 고창에는 고인돌이 1600기가 넘는다. 하나같이 양지바른 산 중턱에 몰려 있다. 그 고인돌 틈으로 후대 사람들이 묏자리를 쓰곤 했으니 시간대를 초월해 혼령들은 사이도 좋다.

친절한 직원을 만나면 고인돌박물관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고인돌유적지에서 산 너머까지 산길을 쉬이 갈 수 있는 탈것이다. 고생은 한다. 빠를 수는 있되 그만큼 근육은 긴장하니 섣불리 자전거를 탐내지 않도록 한다.

학자들은 언뜻 보면 꺼먼 바위에 지나지 않는 그들이 고인돌임을 밝혀냈다. 언덕에 산재한 바위들이 모두 옛 무덤들이다. 돌무덤에서 봄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실망은 금지다. 땅을 보며 걸으면 된다. 우리 모두가 등한시했던 사소한 존재들이 대지에 붙어 봄을 알린다. 들꽃들이다.

 
선운사 개울가에 아지랑이처럼 봄이 내려앉았다. 나목(裸木)에도 봄 냄새가 가득하고 발 씻는 여인들도 봄에 취했다. /박종인 기자

언뜻, 마음을 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파란색 무엇이 보이면 걸음을 멈추도록 한다. 무릎을 꿇고, 숨을 죽이고, 몸을 구부려 땅에 경배한다. 그래야 보인다. 꽃잎 네 개가 달린 새끼손톱만 한 꽃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 학명 베로니카(Veronica persica Poir). 2년 살다 죽는 봄꽃이다. 요절할 팔자라 베로니카는 죽을 각오를 하고 씨앗을 퍼뜨려댄다. 푸른 비단이 깔린다고 해서 중국 사람들은 이 꽃을 지금(地錦), 땅의 비단이라고 부른다. 미국인들은 새의 눈(Bird's eye)라고 부른다. 한국 이름은 큰개불알풀이다.

오오이누노후그리(オオイヌノフグリ), 큰 개의 음낭이라는 일본 이름을 따라 붙인 말이다. 열매 생겨먹은 게 진짜 개불알이다. 민망하다. 건전가요 제목 붙이듯 봄까치꽃이라고 부르자는 사람도 있다. 이 민망한 작은 것을 보려고 땀을 흘려야 할까? 흘려야 한다. 언제 우리가 겸손하게 땅에 경배한 적이 있었다는 말인가.

길은 4㎞ 이어져 운곡저수지로 이끈다. 인간이 개발해 정주하며 농사짓다가 떠난 땅인데, 이후 저수지 주변은 완벽하게 자연을 회복했다. 완벽하다 못해, 개발이 금지되고 보존해야 할 람사르협약에 등재된 자연습지로 부활했다. 인간을 조롱하는 산새 소리, 바스락대는 짐승들 기척, 습지에 웅크린 개구리 알들…. 땀은 나지만 온통 봄이다. 습지 주변 골짜기를 이곳 사람들은 오배이골이라 부른다.

 

#봄빛 처연한 청보리밭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 그래서 땅에 경배해야 보이는 봄꽃 큰·개·불·알·풀. 꽃 지름이 1㎝도 안 된다.

이번에는 남하하기로 한다. 보리밭으로 간다. 귀농한 도시인 진영호가 만든 학원농장이다. 그는 1992년 고창에 내려와 보리밭을 일궜다. 소출로는 풀칠할 도리가 없었는데 자세히 보니 보리밭 구경 오는 사람이 더 많았다. 지금은 보리밭 30만 평 찾는 사람들 뿌리는 돈이 소출 수입의 몇 배다. 그 보리밭에 봄이 충만했다.

봄날 학원농장은 텅 비었다. 이삭 출렁대는 오뉴월 청보리밭과 달리, 붉은 흙을 드문드문 드러낸 대지를 새싹들이 뒤덮었다. 처연하다. 겨울을 견딘 강인한 생명이지만 시각적으로는 무르기 짝이 없고 연하기 짝이 없다. 봄바람에 들떴던 마음, 잠시 그 연약한 생명 앞에 경건해진다.

되도록이면 봄날 보리밭은 이른 아침에 가야 한다. 황사가 되었든 안개가 되었든 연무(煙霧) 낮게 깔린 대기와 푸른 보리싹이 깔린 대지가 만나는 그 시각에 보리밭을 서성대야 한다. 노래 한 곡이 있으면 좋다. 김윤아의 '봄이 오면'. 반드시 피아노 반주 버전이어야 한다. 미친다. 김윤아는 천재고 예쁘고 시인이다.

 
미루나무 사이로 여자들이 걸어갔다. 세월도 스쳐갔다

봄이 오면
하얗게 핀 꽃 들녘으로
당신과 나 단 둘이
봄 맞으러 가야지
바구니엔 앵두와 풀꽃 가득 담아
하얗고 붉은 향기 가득
봄 맞으러 가야지

(…)

풀 무덤에 새까만 앙금 모두 묻고
마음엔 한껏 꽃 피워
봄 맞으러 가야지
봄바람 부는 흰 꽃 들녘에 시름을 벗고
다정한 당신을 가만히 안으면
마음엔 온통 봄이 봄이 흐드러지고
들녘은 활짝 피어나네

(…)

문득 보리밭 옆 미루나뭇길로 늙은 여인들이 봄나들이를 갔다. 들판에는 봄이 가득한데 세월은 끝없이 흘렀다. 겨울은 갔다.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봄의 북상 속도, 시속 1.06㎞다.

 

교통 : ①선운사: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IC에서 나와 선운사 이정표 따라 20분 인돌유적과 운곡습지: 선운사에서 나와 선운사로 따라 1.5㎞→삼인교차로에서 고창고인돌유적 이정표 따라 우회전 이후 교차로마다 고창고인돌유적 이정표 따라 움직이면 30분 거리 ③학원농장 보리밭: 고인돌박물관(www.gcdolmen.go.kr)에서 나와 우회전, 동서대로로 2.5㎞→대동교차로에서 동호해수욕장 방면 우측 방향→녹두로 6㎞→공음·무장 방면→학원관광농장 이정표 따라 우회전→왕제산로 4.4㎞→대산, 청보리밭 이정표 따라갈 것. 소요 시간 30분.

 

숙박 : 선운사 앞 햇살가득한집 펜션. 주인이 친절하고 이불이 깨끗하다. (063)562-0320, 011-9916-1940, www.sunwoonsa.com. 선운산유스호스텔(063-561-3333), 선운산관광호텔(063-561-3377) 등

 

식당 : 뭐니뭐니해도 선운사 주변에 있는 풍천장어 식당이다. 풍천은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곳을 가리키는 이곳 사투리다. 2대, 3대째 운영하고 있다는 식당이 많다. 청림정금자할매집 추천. TV 달인 프로그램에 나와 장어구이로 우승한 집이다.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IC에서 나와 선운사 앞 삼인교차로 나오기 전 왼편에 있다. (063)564-1406,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430-3

 

문의 : 고창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culture.gochang.go.kr, 문화관광과 (063)560-2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