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의 사람과 길] 歷史의 흔적 위, 가을이 내려온다 - 충남 예산
박종인·여행문화 전문기자
충남 예산
- 2대에 걸쳐 제왕을 만들었다는 남연군묘.
단풍이 휩쓸고 간 명산대처들과 달리 이제야 가을이 내려앉고 있는 땅이다.
웬만한 곳에서는 당일 여행이 가능하고 화려한 자연과 함께 사연 담긴 역사도 구경할 수 있는 여행지다.
코스는 이렇게 잡는다.
남연군묘→대흥향교→봉수산 자연휴양림→추사 고택
◇권력, 남연군묘
그 옛날 덕산면 서원산에 절이 하나 있었다.
가야사(伽耶寺). 금탑(金塔)이 있을 정도로 흥성했던 절이었다.
수덕사보다 더 컸다. 헌종 10년(1844년)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가야사에 불을 질렀다.
화재의 참상을 볼 수가 없던 산속 미륵석불은 무거운 몸을 돌려버렸다.
이 미륵불은 지금 절의 반대 방향, 북쪽 산봉우리를 향해 서 있다.
선친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려는 대원군에게 지관이 물었다.
"자자손손 복을 누리길 바라시오, 아니면 자손 2대까지 황제가 나오기를 바라시오."
"2대까지 황제가 되게 해주시오."
2대 발복 명당에는 가야사 대웅전 석탑이 서 있었고, 그게 화재를 부른 연유다.
경기도 연천에 있던 선친 묘는 긴 상여 행렬에 실려 이곳으로 옮겨졌다.
1844년이다. 19년 뒤 이하응의 아들이 왕이 됐다. 고종(高宗)이다.
1907년 손자가 황제에 올랐다. 순종(純宗)이다.
남연군묘는 덕산도립공원 안에 있다.
쉼터에서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얕은 야산인 묫자리를 360도 산줄기가 에워싸고 그 사이에 너른 들판이 출렁인다.
풍수지리를 몰라도 막연하게 명당이라는 느낌을 주는 풍광이다.
권력의 흔적 한가운데 내려앉은 가을을 즐긴다.
◇대흥향교 은행나무
남연군묘에서 나와 예당저수지 쪽으로 길을 가면 대흥향교가 나온다.
2대로 끝난 권력과 1000년을 살아 있는 생명체를 비교할 수 있는 곳이다.
마을 시멘트 포장길 끝에 있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포인트다.
가지를 부러뜨리거나 베면 반드시 화(禍)가 있었다는 나무다.
자세히 보면 큼직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은행나무 중간에서 자라고 있다.
두 나무 가지가 얽힌 연리지(連理枝) 이야기는 곳곳에 있지만,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게 이토록 긴 세월 몸을 빌려줬다는 이야기는 드물다.
지금쯤 노랗게 물들어 있을 나무 그늘 아래에서 또 가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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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막 가을이 내리고 있는 봉수산 휴양림. 산을 넘는 태양빛에 가을이 빛난다. /박종인 기자
◇빛나는 가을, 봉수산 휴양림
향교에서 길 따라 10분만 더 남쪽으로 가면 봉수산 자연휴양림이 나온다.
길 왼편으로는 예당저수지가 보인다.
휴양림 길섶에 '의좋은 형제'공원이 있다.
"…의좋은 형제가 살았는데, 아우의 끼니를 걱정한 형이 밤에 볏단을 아우 집 앞에 놓고 갔더라….
아우는 아우대로 형을 걱정해 밤에 자기 볏단을 형 집 앞에 놓고 갔더라…."
무한 반복되는 이 덕행이 훗날 공덕비가 발견되면서 사실로 드러났고, 그곳이 바로 이곳 대흥면이다.
기분 좋은 이야기를 들으며 휴양림으로 들어가면, 거기에 찬란한 가을이 있다. 차량도 통행할 수 있다.
유명 휴양림들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제법 땀을 내게 하는 예쁜 산책로가 인상적이다.
되도록 오후 시간에 가면 산 너머에서 떨어지는 태양빛에 빛나는 가을을 즐길 수 있다.
◇文香을 듣는다, 추사 고택
남연군묘에서 묻혀왔던 권력의 냄새는 추사 고택에서 털어버린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태어나고 묻힌 곳이다.
김정희는 벼슬에 오른 뒤 당쟁에 휩쓸려 결국 제주도와 함경도로 유배를 당한다.
그 불우한 말년에 그는 학문과 서예에 정진했다.
그는 선친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과천의 한 절에서 살다가 71세에 죽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무덤은 그가 태어난 집 바로 옆 언덕에 있다.
200년이 채 안 된 시대에 그가 이 집에서 사랑을 했고 학문을 했고 화장실을 갔고 잠을 잤다.
고택 옆 백송공원에는 추사가 청나라에서 가져와 심은 백송(白松)이 서 있다.
1811년에 씨앗을 심었으니 심은 사람과 연대가 정확하게 남아 있는 흔치 않은 나무다.
순식간에 와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가을의 꼬리, 여기 예산 땅에 아직 남아 있다.
여행수첩
(서울 기준)
1. 남연군묘: 서해안고속도→당진상주고속도로 당진분기점 대전 방향
→고덕IC 덕산, 고덕 방면→예덕로→가야사, 남연군묘 이정표
2. 대흥향교: 남연군묘에서 나와 45번 국도로 예당국민관광지 방면으로 50분.
길섶에 작은 이정표가 나오고 그 뒤로 마을 안길이다. 봉수산 휴양림은 가던 방향으로 10분.
3. 추사 고택: 봉수산 휴양림에서 나와 45번 국도 좌회전→21번 국도 우회전
→예산역 지나 발연삼거리에서 좌회전→이후 추사 고택 이정표.
●먹을곳: 수덕사 앞 사하촌 산채정식 추천.
●투어버스: 매주 토요일 예산 주요 관광지를 버스로 순례.
예산시외버스터미널 출발. 20~40명 예약. 무료(입장료 제외). (041)339-7314
●예산군청:www.yesan.go.kr/culture, (041)339-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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