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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다리 이야기]피란시절의 추억 - 47년 만에 다시 고개 드는 추억의 영도다리

by 맥가이버 Macgyver 2013. 11. 21.

[영도다리 이야기]피란시절의 추억 - 47년 만에 다시 고개 드는 추억의 영도다리

47년 만에 되살아난다… 영도다리 이야기

  • 부산=글·김성윤 기자
    • 사진·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 입력 : 2013.11.21 04:00

     

    부산의 명물 영도다리(공식 명칭 영도대교)가 오는 27일 돌아옵니다.

    물론 영도다리는 1934년 개통 이래 늘 그 자리에 있었죠.

    하지만 영도다리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도개(跳開) 기능 즉 다리를 들어 올렸다 내리기는 1966년 중단됐습니다.

     

    부산 영도구 대교동과 중구 대청동을 연결하는, 평범한 다리에 불과하게 됐죠.

    그런데 오는 27일 영도다리의 도개 기능이 47년 만에 복원됩니다.

    매일 한 차례 정오에 다리를 들고 내리는 시간 4분을 포함, 총 15분 동안 도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영도다리의 귀환을 환영하기 위해 '주말매거진'이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영도다리를 건너 그동안 해운대 등에 묻혀 잊혔던 영도를 둘러 봤습니다.

     

    전국 어디서도 찾기 힘든 유서 깊고 독특한 볼거리와 맛집이 구석구석 숨어 있는 동네가 영도이더군요.

    영도다리와 영도의 매력을 새롭게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부산 영도(影島)를 돌아보기 위해 영도구 문화해설사협의회 황동웅 회장과 영도다리에서 만났습니다.

     

     1934년 영도다리

     

    2013년 영도다리

     

    통통배 타고 드나들던 섬

    “한적한 섬마을이던 영도에 인구가 늘어나게 된 건 1876년 일제와 강화조약으로 부산이 개항되면서부터입니다.

    국내 최초의 현대식 조선소인 ‘다나카조선소’가 여기 생겼고, 이후 많은 조선소와 철공소가 들어섰습니다.

    1890년대 영도 사람들이 뭍으로 나가려면 나룻배를 이용했습니다.

    1914년 통통배라 부르는 동력선이 등장했죠.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배편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1931년 영도다리 건설을 시작해 1934년 완공됐습니다.”

     

    영도다리는 당시 대단한 볼거리였다.

    하루 최대 7차례 다리를 들어 올렸다가 내리는 광경을 보러 인파가 몰렸다.

     

    황 회장은 “6·25 때 피란민이 다른 도시보다 부산으로 몰려든 건 영도다리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도다리는 당시 전국적으로 유명했죠.

    ‘헤어지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 가족들과 약속하고 피란길에 올랐던 겁니다.”

     

     

     

     

    영도다리는 1966년 도개(跳開) 기능을 멈추었다.

    다리를 들었다 내리는 기계가 낡았고, 교통량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영도로 들어가는 수도관이 다리 위에 놓이면서 다리를 들어 올릴 수 없게 됐다.

    27일 도개 기능이 복원되는 건 다리 옆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게 계기가됐다.

     

    임경모 부산시 도로계획과장은 “롯데건설이 영도다리 옆 시청 소유 땅을 구입해 107층 건물을 짓기로 하면서

    늘어나는 교통량을 소화하기 위해 영도다리의 기존 4개 차로를 6차선으로 확장했다”며

    “이 공사를 벌이면서 영도다리의 도개 기능도 재현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고 했다.

     

    부산에 제주 해녀가 있네

    황 회장과 영도를 더 돌아보기 위해 차를 타고 절영로를 달렸다.

    이(2)송도삼거리를 지나면서부터 절영로 오른쪽으로 바다가 펼쳐진다.

     

    ‘절영해랑길’이라고도 부르는 절영로의 이 구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어느 전망대건 풍광이 탁월하다. 발아래 해안을 따라 길이 보인다.

    ‘부산갈맷길’ 3구간에 속하는 ‘절영해안산책로’이다.

     

    절영해랑길과 절영해안산책로 사이 비탈진 언덕에 알록달록하게 칠한 집들이 정답게 모여 있다.

    행정구역으론 영선동인데,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찾아보면 이름 없이 ‘재정비촉진지구’라고 나온다.

     

    부산 사하구 감천마을이 ‘한국의 산토리니’란 별명과 함께 유명해졌지만,

    바다를 향해 급하게 떨어지는 언덕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곳이야말로 산토리니에 더 가까운 풍광이다.

    절영해랑길과 산책로가 만나는 지점쯤에 중리해변이 있다.

     

    황 회장은 바닷가 외진 길로 안내했다.

    콘크리트로 거칠게 만든 방파제 비슷한 곳에 포장마차처럼 생긴 구조물들이 있었다.

    황 회장이 “중리 해녀촌”이라 했다.

     

    “영도에는 타지에서 온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제주 분들이 많아요.

    ‘제주도민회관’과 ‘제주은행’이 있을 정도지요.

    여기 해녀촌은 제주에서 온 해녀들이 모여 있는 곳이죠.

    한때 수십 명 됐는데, 지금은 15명 정도 돼요.”

     

    (상)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영도 영선동

    (하) 영도 중리해녀촌에서 물질을 마친 해녀가 뭍으로 올라왔다.

     

    시인이자 문화공간 수이재(守怡齋) 대표 최원준씨는 “부산은 다양한 문화를 품은 도시”라면서

    “그중 영도는 부산의 문화적 다양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라고 했다.

     

    절영해안산책로 

     

     

    절영해안산책로 입구는 부산 영도구 영선동4가에 있다.

    반도보라아파트를 돌면 나온다.

    여기서 걷기 시작해도 좋지만, 영선동 마을도 괜찮다.

    절영로 영선아파트 맞은편 가파른 언덕에 형성된,

    '한국의 산토리니'라 불리는 이 동네 좁은 골목을 헤매듯 구경하며 걸어 내려가면 된다.

     

    골목 모퉁이를 돌 때마다 언뜻언뜻 바다가 보이다가 갑자기 시야가 확 터진다.

    언덕 끝자락을 따라 난 길에 서면 발아래 절영산책로와 산책로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바다가 산책로를 덮칠 듯 가깝다.

    파도가 몰려올 때마다 해변을 덮은 자갈들이 "자갈자갈" 재잘댄다.

    중리해안까지 약 3㎞ 거리다.

     

    돌탑과 출렁다리, 무지개분수 등 볼거리가 많다.

    광장을 통과하면 경사가 가쁜 철제 데크 계단이다.

    여기까지 온 평탄한 길과 비교하면 숨이 가쁘지만 조금만 참으면 75호 광장이 곧 나온다.

    1875년 만들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으나, 5자를 빼고 행운을 의미하는 차원에서 7호 광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자정'이란 누각도 있어서 일출·일몰을 보러 오는 이들이 많다.

    광장에서 1㎞만 걸으면 중리 해변이다. 제

    주 출신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중리해녀촌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