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만 76개 넘는 샛길 등산로… 조난사고땐 구조대도 찾기 힘들어
강동철 기자 양지혜 기자
입력 : 2013.12.25 03:15
붐비는 일반 등산로 피하려고 샛길 다니는 등산객 매년 증가
자연 파괴·산사태 위험은 물론 통신 연결 안되고 표지목 없어 구조대 요청·접근조차 어려워
2010년 3월 A(당시 54세)씨는 일행 2명과 함께 늦겨울 설악산을 찾았다.
당시 A씨는 샛길 등산로로 설악골 구간을 오르다 눈사태를 만나 조난당했다.
설악골은 당시 출입 통제 구역이었다.
휴대폰으로 구조를 요청했지만 이곳에선 전화도 터지지 않았다.
설악산은 일반 등산로에선 휴대폰 통화가 가능하지만, 나머지 지역에선 안 되는 곳이 많다.
A씨와 일행 한 명은 조난당한 지 3일 만에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같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샛길 등반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샛길 등반은 위험할 뿐 아니라 산의 생태계를 파괴하는데도 등반객들이 마구잡이로 샛길을 내고 있는 것이다.
샛길로 파헤쳐진 북한산 국립공원의 모습. 북한산의 샛길 등산로는 파악된 것만 76개에 이른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최근 찾은 서울 북한산 칼바위 능선 입구 등산로 옆 '출입 금지'라고 적힌 표지목(木)은 뜯겨 나가 있었다.
샛길을 막은 나무 울타리는 등산객들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높이였다.
울타리 너머 능선은 등산객들이 낙엽과 나뭇가지를 쳐내고 다닌 흔적이 여기저기 나 있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과 함께 샛길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50대 등산객이 유유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정춘호 국립공원관리공단 보전팀장이 "이곳으로 등산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자
이 남성은 "사람이 다니는 길인데, 왜 이렇게 깐깐하게 구느냐"며 오히려 화를 내고 사라져버렸다.
샛길이 늘어나는 것은 등산 인구 증가로 일반 등산로가 정체를 빚자
다른 사람이 없는 길로 산을 오르겠다며 등산객들이 마구잡이로 산에 길을 뚫기 때문이다.
인터넷 등산 동호회나 블로그에는 '샛길 등산 지도'까지 올리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11월까지 북한산에서 샛길 등산로를 이용해 등산하다 적발된 건수는 464건이다.
2011년 290건에서 작년 420건으로 늘어났고, 올해 또 늘어난 것이다.
북한산의 샛길 등산로는 파악된 것만 76개로 총 길이는 42.2㎞에 달한다.
공단은 매년 샛길 폐쇄 작업을 벌이지만,
샛길과 샛길 사이에 다시 길을 내는 '가지치기'가 계속돼 정확한 숫자도 파악하기 어렵다고 한다.
서울시 역시 지난달 관악산 일대의 샛길 등산로 45개 코스 15.8㎞를 2017년까지 줄이기로 결정했다.
전문가들은 샛길 등산로로 등산하는 것은 안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일반 등산로에서는 휴대폰 통신이 잡혀 조난을 당해도 쉽게 구조 요청을 할 수 있지만,
샛길로 빠지면 통신이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119에 연결이 돼도 공식 등산로 같은 표지목이 없어 접근 자체가 어려워진다.
또한 샛길 등산로는 산의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집중호우나 태풍 때 수로(水路) 역할을 해 산사태를 일으킬 우려도 크다.
서울시 관계자는 "샛길 등산로를 이용하는 것은 등산객 안전도 보장하지 못하고, 자연도 파괴하는 행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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