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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떡인다, 마산의 봄 - 통술집에서 어시장까지… 24시간 마산 기행

by 맥가이버 Macgyver 2014. 4. 17.

 

 

펄떡인다, 마산의 봄

  • 마산=글·어수웅 기자 
  • 사진·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 입력 : 2014.04.17 04:00

통술집에서 어시장까지… 24시간 마산 기행

 
동틀 녘의 마산 어시장. 나무 궤짝을 사이에 두고 ‘아재’와 ‘아지매’들이 분주한 새벽을 보낸다. 경매를 앞둔, 혹은 경매를 막 마친 생선과 해물들이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는 곳. 여행의 바다가 아니라 삶의 바다다.
아침 기차를 타고 마산으로 달렸다. 마산 어시장에서 일당 7만원의 잡부로 일하는 성윤석(48) 시인이 마산의 통술 문화를 아느냐고 도발했기 때문이다. KTX는 3시간 10분 만에 남도의 바다로 안내했고, 마산은 벚꽃의 연분홍을 지나 새순의 연두가 돋아나는 중이었다.

시집 '멍게'(문학과지성사)를 펴낸 이 자칭 '일용 잡부 시인'은 관광의 도시가 아니라 삶의 도시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마산행 결심에는 시인의 이런 편견 섞인 도발이 한몫했을 것이다. 통영이나 남해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으면서도 최근 이 관광 시·군(市·郡)의 상업화와 번잡함을 우려하는 사람이 기자만은 아닐 테니까.

'통술집'은 한마디로 다양한 제철 해산물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선술집. 요리별로 값을 받는 게 아니라 셈하다 지칠 만큼의 접시를 한 상 값에 차곡차곡 내놓는다. 물론 안주 푸짐한 선술집이 마산만의 자랑은 아니다. 해산물 흐뭇하기로야 통영의 '다찌'가 있고, 안주 진진하기로는 막걸리 한 주전자에 한 상 넉넉히 내놓는 전주의 술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시인의 야심만만한 선언처럼 마산에는 경남 지역 최대 규모의 어시장과 시인 같은 '일용 잡부'가 새벽 배달한 그 계절의 해물이 있다. 한때 전국 7대 도시의 명성을 누리던 마산은 창원과 통합되며 이제는 구(區) 수준으로 위축됐지만, 그 위축의 경험이 마산을 땀 냄새 더욱 풍성한 삶의 현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통영보다 저렴하고, 전주보다 바다 냄새 물씬한 제철 해산물의 보고(寶庫)였다.


	마산 기행

창원시립 마산박물관 송성안 학예연구사는 마산의 통술문화를 "주인과 손님 간의 암묵의 범절"로 요약했다. 안주가 뭐 나올지도 물어보면 안 되고, 가격도 물어보면 안 되는 이 독특한 주안상 문화는 한마디로 주인과 손님 간의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시스템이라는 것. 대신 주인은 신선한 제철의 해물과 요리를 내고, 손님은 주인이 요구하는 가격을 두말 않고 지불한다. 이 지역 역사문화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송 학예사는 마산의 통술집이 1960년대 오동동 거리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고급 요정에는 갈 수 없는 서민들이 특유의 '한 상 문화'를 저렴한 가격에 즐기도록 탄생했다는 것이다.

마산 문화동의 '석민 통술'에 들어가니 주인은 마침 제철인 미더덕을 내놓았다. 우리가 해물된장찌개에서 오도독 씹던 그 미더덕이 아니었다. 마산의 사내들은 된장찌개 속의 그 생명체를 미더덕 짝퉁 오만둥이라 불렀다. 생미더덕의 향은 과장 없이 경이(驚異)였다. 더덕만큼 향기로워 미더덕이라 했다던가. 강렬한 봄바다의 향이 한입 가득 들어왔다.

통술집의 통음 뒤 새벽에 이 '일용 잡부'의 삶의 현장으로 나갔다. 새벽 4시부터 준비하는 마산 어시장 경매 현장. 시인이 오토바이에 생선 궤짝을 싣고 달리면 "저기 예술가 간다"고 농 섞은 면박을 준다는 그의 일터다. 카메라를 들고 다가가자 1대9 가르마의 한 걸걸한 사내가 "서울에는 고기가 없는가베"라며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던진다.


	마산 명물 통술집의 안주 한 상.
마산 명물 통술집의 안주 한 상.
'멍게는 다 자라면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 버린다. 어물전에선/ 머리 따윈 필요없어. 중도매인 박 씨는 견습인 내 안경을 가리키고/ 나는 바다를 마시고 바다를 버리는 멍게의 입수공과 출수공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지난 일이여. 나를 가만두지 말길. 거대한 입들이여./ 허나 지금은 조용하길. 일몰인 지금은/ 좌판에 앉아 멍게를 파는 여자가 고무장갑을 벗고 저녁노을을/ 손바닥에 가만히 받아보는 시간'(시 '멍게' 전문)

경매를 앞둔 풀죽은 상어 한 마리가 자신의 나무 궤짝에서 자꾸 기어 내려온다. 흰 고무장화 신은 사내가 육두문자를 내뱉더니 달려가 머리부터 패대기를 친다. 몸으로 일하는 사내들이 있는 곳. 마산에 봄이 펄떡거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