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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교황 방문 예정된 해미읍성 투어]순례길 따라 걸으면 참혹의 흔적도 치유의 시간으로…

by 맥가이버 Macgyver 2014. 4. 17.

[8월 교황 방문 예정된 해미읍성 투어] 순례길 따라 걸으면 참혹의 흔적도 치유의 시간으로…

  • 서산=정상혁 기자 
  • 입력 : 2014.04.17 04:00

8월 교황 방문 예정된 해미읍성 투어


	8월 교황 방문 예정된 해미읍성 투어

신념은 때로 고약하다. 목숨이 불가하다. 지난 10일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에 닿았을 때, 성문 앞 벚꽃은 봄바람에 모조리 참수 중이었다. 신유박해와 기해박해,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천주교 신자 수천명이 학살당한 곳이다. 오는 8월 17일, 교황이 이곳을 찾는다. 천주교 대전교구가 주최하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하기 위해서다. 관광객의 발길도 잦아지고 있다. 해미읍성의 봄을 순례하는 사람만 평일 1500명, 주말 5000명에 이른다.

◇참혹의 현장을 산보하다

서울 광화문에서 승용차로 2시간쯤 달려 해미읍성에 당도한다. 동서남북 네 개의 문을 따라 둥글게 구획된 읍성은 얼핏 공원 같다. 정문인 진남문(鎭南門)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탁 트인 평지다. 우리나라 성(城)은 강을 끼거나 산턱에 쌓은 게 대부분이지만, 해미읍성은 평지성(平地城)이다. 둘레 1800m. 최근 복원된 깔끔한 건물을 내려다보며 성둑 위를 천천히 걸으면 30분이면 한 바퀴를 다 돈다. 길은 완만해도, 역사는 독하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 243년간 이 지역 12개 군·현의 군권을 장악한 곳이며, 이순신 장군이 군관으로 10개월간 머물기도 한 전초기지였다. 국사범을 독자적으로 처형할 권한도 갖고 있었다. 1790년대부터 약 100년간 천주교 신자가 무던히 죽어나간 이유다.

 
지난 10일 오후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 성둑을 한 관광객이 걷고 있다. 성곽의 높이는 5m 정도로, 위에 오르면 아찔하지 않으면서도 주위 풍광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대개 참혹의 흔적은 산 것에 있다. 진남문 서쪽의 은행나무가 그렇다. 1491년 축성 당시 심어진 걸로 추정되는 이 수나무는 이파리 하나 없이 가지만 소스라쳤다. 이 은행나무가 과거의 절규를 은유한다면, 옥사(獄舍) 앞 호야나무는 그 자체로 흉터다. 호야나무는 충청도 말로 회화나무를 가리키는데, 나희덕 시인이 '해미읍성에 가시거든'이란 시에서 "하필 형틀의 운명을 타고난 회화나무"라 탄식한 그 나무다. 옥에 가뒀던 교인을 꺼내 머리채를 철사로 묶어 동쪽 나뭇가지에 매달아 고문했다고 전해진다. 동쪽 가지는 1940년 태풍에 잘려나갔고, 속부터 썩어간 나무는 2004년 몸통의 절반을 긁어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어찌 그가 눈멀고 귀멀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관광객에서 순례자로


	8월 교황 방문 예정된 해미읍성 투어
해미순례성지에 있는 ‘자리개돌’ 앞에서 관광객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팔·다리가 묶인 천주교 신자들은 이 돌다리에 그대로 패대기쳐 져 죽었다. /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점심을 해결할 겸, 성문을 나선다. 진남문을 나서자마자 상가며 음식점이 잔뜩 도열해있고, 시장(市場)이 지척이다. 메뉴 고민할 까닭이 없지만, 푸짐한 식사가 죄스러워 정문 앞 문 연 지 햇수로 15년 됐다는 '읍성뚝배기'로 향한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이 식당엔 흘러간 옛 연예인들이 사진으로 늙어가고 있다. 가마솥에서 고았다는 곰탕에 밥을 만다.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허리 숙여, 삭은 마늘과 깍두기를 얹어 씹는다. 약속이나 한듯 다른 이들도 같은 의식(儀式)을 반복한다.

졸음을 떨치려 곧장 걷기로 한다. 읍성에서 표지판을 따라 난 산책로를 15분쯤 걸어가면 해미순례성지가 나온다. 2003년 기념성전이 들어선 이곳은, 말 그대로의 살육의 현장을 증거한다. 신념을 지키려면 죽어야 했고, 대부분 그렇게 했다. 성지 안 기념관엔 신원이 확인된 순례자 132명의 이름이 대리석 판에 새겨져 있다. 해미 지역 최초의 순교자인 이언민 마르티노 같은 순교 성인도 있지만, 그저 김이나 박처럼 성(姓)만 남은 이름이 대다수다. 교수·참수·자리개질·생매장 등 죽음의 방식은 여럿이었다. 기념관 안 유해 참배실엔 무명(無名)의 뼛조각과 치아가 낱개로 진열돼있다. 기념관 맞은편 웅덩이에서 건져올린 것들이다. 웅덩이의 이름은 진둠벙(죄인 둠벙). 수많은 신도가 팔이 묶인 채 거꾸로 처박혔다. 둠벙엔 기도하는 신도의 청동상과 함께 연잎 몇 개가 떠 있다. 보이진 않아도, 깊은 뿌리를 가진 것들이다.

◇다시, 회복의 시간

산책로를 따라 다시 15분쯤 걸어 해미읍성에 당도한다. 입장료가 없어 문 닫을 때까지 맘껏 드나들 수 있다. 무거운 마음을 덜어주는 건, 역시 풍경이다. 해미읍성에서 가장 높은 청허정(淸虛亭)에 오른다. '잡생각이 없어 마음이 깨끗하다'는 뜻의 정자다. 옛 문인들이 시를 읊던 곳이라 하니, 100여개 돌계단을 올라 정자에 앉으면 천수만에서 불어오는 온갖 바람을 맞을 수 있다. 청허정 뒤편엔 소나무 100여그루가 빼곡한 숲이 나온다. 군수물자를 자급자족하기 위해 심은 것으로 짐작되나, 경치는 더없이 청량하다. 길섶에 핀 기린초, 수선화 같은 작은 풀꽃을 보며 내리막길을 걸으면 곧 유채밭이 나온다. 좀 더 밑엔 옛 민가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초가집 두 채가 있다. 해미읍성역사보존회가 위탁 운영하는 이 민속가옥엔 삼베를 짜거나 다듬이질을 하는 할머니, 왕골돗자리를 펴놓고 윷놀이를 돕는 할아버지가 사람들을 반긴다. 애들이 특히 좋아한다.

이날 천주교 신자가 지난해 대비 1.5% 늘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8월엔 해미 지역 순교자 3인에 대해서도 시복(諡福)이 이뤄져 복자품에 올려진다. 다시 옥사에 들른다. 마당 가운데 형틀이 두 대 놓여 있다. 유치원에서 소풍 나온 꼬마들이 곤장을 치운 뒤, 형틀 위에 배를 대고 십(十)자로 눕는다. 봄볕에 데워져 따스한 나무 위에서 아이들이 킬킬댄다.

여행정보

버스를 타고 해미읍성에 가려면 서산공용버스터미널에서 내려 해미행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15~20분 정도 소요되고, 배차 간격은 10분 정도다.

해미읍성 앞엔 여러 음식점이 있지만 특히 '읍성뚝배기'(041-688-2101)에서 파는 소머리 곰탕과 '영성각'(041-688-2047) 짬뽕이 유명하다.

해미읍성은 입장료 무료, 연중무휴다. 해미순례성지 역시 입장료는 따로 없고, 매일 오전 11시 미사를 연다. 문의: 해미읍성 관리사무소(041-660-2540) 해미순례성지(041-688-3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