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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 도보후기☞/☆ 염하강변일주

[20150131]염하강 일주(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김포평화누리길1코스 염하강철책길 이어걷기) - 5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15.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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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31일(토)

 맥가이버의 낭만도보 - 염하강 일주(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김포평화누리길1코스 염하강철책길 이어걷기)를 다녀오다.
 

 

 

맥가이버의 낭만도보 - '염하강 일주(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김포평화누리길1코스 염하강철책길 이어걷기)' 이야기

 

 맥가이버의 낭만도보 - '염하강 일주(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김포평화누리길1코스 염하강철책길 이어걷기)' 코스

 

대명항종점→강화초지대교 도강→초지진→퓨전궁중두부→덕진교→덕진진(덕진돈대→경고비→남장포대→공조루)→광성보(광성포대

→용두돈대→손돌목돈대→신미순의총→쌍충비각→안해루→광성돈대)→충장공 어재연장군동상→강기운 의교비→쌍철탑→강화전성

→오두돈대→화도수문개축기사비→화도돈대→용당돈대→용진진(참경루→좌강돈대)→강화 더리미포구→순국터→강화외성→갑곶교

갑곶진(갑곶돈대→대포각→이섭정→강화역사관→강화비석군→주차장)→강화대교도강→성동교차로→포내천수문→포내배수펌프장

→해병대훈련장김포CC→고양리쉼터→원머루나루(고양포)→할머니매점→쇄암리전망대쉼터→고란초삼거리→출렁다리→부래도쉼터

부래도(덕포나루)→손돌묘→덕포진 파수청터→덕포돈대→덕포진쉼터→평화누리길1코스 입구→함상공원→호동천배수문→대명항 종점

 

▼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안내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 김포평화누리길 1코스염하강철책길 안내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오늘은 '염하강 일주(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김포평화누리길1코스 염하강철책길 이어걷기)' 위해 길을 나선다.
 
‘[염하강 鹽河江] - 강화해협 or 김포강화해협
인천광역시 강화군과 경기도 김포시 사이의 해협(海峽)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강화도)과 경기도 김포시 사이에 있는 남북 방향의 좁은 해협(海峽)이다.
마치 강(江)과 같다 하여 염하(鹽河)라고 부르며 강화해협 또는 김포강화해협이라고도 한다.
폭이 좁은 곳은 200~300m, 넓은 곳은 1km 정도이고, 길이는 약 20km이다.
 
밀물 때의 최대 유속은 약 3.5m/sec로 물살이 거세고 수심이 얕아서 썰물 때에는 곳에 따라 바닥이 드러나기도 한다.
염하의 북쪽으로는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의 강물이 흘러들어 오는데,
염하 북쪽의 월곶과 남쪽 황산도 간에는 물높이(해수면 높이) 차이가 아주 커서 물살이 빨라지게 된다.
 
염하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조선시대에 삼남지방에서 서해를 북상해 온 세곡선(稅穀船)이 염하를 통해 한강으로 진입하여 한양으로 들어갔다.
염하는 교통의 요지였을 뿐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외세를 막는 군사적 요충지였는데
개항기 때에는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를 치른 격전지였다.
염하를 따라 군대 주둔지인 진(鎭)과 보(堡), 초소인 돈대 등 수많은 방어유적이 산재해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초지진(草芝鎭, 사적 제225호), 덕진진(德津鎭, 사적 제226호),
덕포진(德浦鎭, 사적 제292호), 광성보(廣城堡, 사적 제227호), 갑곶돈(甲串墩 갑곶돈대, 사적 제306호) 등이 있다.
 
염하는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북한 신의주까지 오가던 뱃길이었는데
전쟁 후 뱃길이 봉쇄되었다가 2007년부터 민간어선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염하를 가로질러 강화대교와 초지대교가 놓여 있다.
 
[출처 : 두산백과]
 
 
 
때 무작정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면 그 길을 찾아 나섰던 적이 있었다.
훗날 그 길들은 제각기 이름을 갖고 올레길, 둘레길, 나들길, 누리길 등이 되었다.
 
이미 걸었던 길들이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세상에 알려지면 다시 그 길을 찾아나서곤 하였는데...
최근 하루가 멀다하고 길이 생기다보니 그 길을 찾아 걷다보면 또 새로운 이름표를 단 길들을 만난다.
 
 
 
오늘은 지난 2011년 6월에 걸었던 '염하강(김포강화해협) 일주'를 역방향으로 다시 하게 된다.
 
염하강(鹽河江)이란 김포시와 강화도 사이의 바다를 달리 이름이고,
'염하강 일주'란 강화초지대교와 강화대교를 도강하며 '강화도 해안길'과 '김포 해안길'을 따라 걷는 것을 말한다.
 
오늘 걷는 '염하강(김포강화해협) 일주'는
강화도 해안길은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이라는 이름으로, 김포 해안길은 '김포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로 이름표를 달았다.
 그 두 길을 위 '염하강 일주 코스도'처럼 대명항 종점에서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걸어서 대명항종점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이다.
 
대명항종점에서 걷기 시작하여 찬바람을 맞으며 강화초지대교를 도강하고 대선정(시래기밥) 앞을 지나 '강화나들길 호국돈대길'을 걷고,
강화대교 도강하여 포내천배수문을 지나 '김포평화누리길1코스 염하강철책길'을 따라 대명항종점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진행했다.
 
이전에는 '염하강철책길'에 마을길이 많이 포함되었는데 오늘의 '염하강철책길'은 거의 철책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새단장을 했다.
그리고 강화나들길의 호국돈대길도 몇 군데는 이전보다는 해안길에 접해 길을 냈고 또 새로운 길을 내고 있는 중이다.
해서 '호국돈대길'에서는 간혹 기존의 이정표식과 새로난 길의 방향이 틀린 경우가 있으니 후답자는 유의하여야 할 것임.
 
오늘도 숙제를 하듯 길을 찾아가 그 숙제를 끝냈는데 또 새로운 숙제를 안고 돌아왔다.
  
오늘 걸은 거리는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17km와 김포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14km을 합하고,
두 길을 잇기 위한 강화초지대교와 강화대교의 도강거리와 강화도의 여러 진과 돈대 등의 탐방으로 6km 정도를 더하면 37km 이상일 듯...
 

08시 20분에 대명항 종점을 출발하여 휴식 없이 '염하강(김포강화해협) 일주'를 하고, 16시 24분에 대명항 종점으로 원점회귀하였다.

 
☞ 맥가이버의 낭만도보 - 염하강 일주(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김포평화누리길1코스 염하강철책길 이어걷기)를 다녀오다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풍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또한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 염하강 일주(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김포평화누리길1코스 염하강철책길 이어걷기)를 다녀오다 - 5부를 시작하며...

 

 

15시 06분 - 고란초삼거리(맥가이버 임의 명명)

 

2012년 1월에는 고란초삼거리에서 우측에 보이는 '김포첫째길' 이정표식을 발견하고 그 방향으로 한참 진행하다가 되돌아 온 적이 있었다.

 

2008년과 2010년엔 저 표식이 없어서 철책길로 갔었는데...2012년엔 저 표식을 보고 가다보니 염하강철책길과 너무 동떨어져 진행 되기에...

 

2012년 1월에는 이런 데크길이 깔리지 않았었다.

 

15시 07분 - 이전까지의 염하강따라 걷기를 할 때는 우측 타이어계단으로 내려왔었는데...지금은 철책을 따라 갈 수 있도록 했네...

 

15시 07분 - 이곳을 '고란초삼거리'라고 맥가이버 임의 명명함. - 클릭하면 확대됨.

 

 

 

 

 

15시 11분 - 이제 대명항까지는 4.7km

 

15시 13분 - 쇄암제2배수문

 

 

 

15시 15분 - 이곳 갈림길에서는 철책길을 잠시 벗어나...

 

 

15시 17분 - 

 

 

15시 18분 - 

 

15시 18분 - 

 

 

 

 

 

 

15시 20분 - 

 

클릭하면 확대됨.

 

출렁다리

 

 

 

15시 21분 - 

 

 

 

 

 

15시 26분 - 이전엔 이 철책길로 올 수 없어서...

 

15시 26분 - 쇄암제3배수문 삼거리에서...

 

김포평화누리길은 석정리 마을로 돌아가도록 했었는데...

 

▼ 지난 2012년 1월 26일에 김포평화누리길 1ㆍ2ㆍ3코스 이어걷기(대명항→애기봉입구→전류리포구→샘재)를 할 때에는 두 정자가 있었는데...

 

▼ (좌)두레정                                                                            ▼ (우)낙안정

 

15시 27분 - 대명항까지는 3.5km

 

 

15시 29분 - 부래도쉼터

 

 

15시 30분 - 우측에 있는 부래도를 볼 수 있는 덕포나루터 문이 잠겨 있어서...

 

  2008년 12월 14일(일) 염하강따라걷기를 할 때 덕포나루 통제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가 보니...

 

클릭하면 확대됨.

 

부래도[浮來島]
 

구분 : 섬
위치 : 경기도 김포시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에 위치하고 있는 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섬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며, 『해동지도』에서는 통진현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섬으로 표기되었다.
'항무이도'라고도 불린 것으로 보인다.


『통진읍지』의 기록에 의하면 현의 남쪽 23리 지점에 위치한 항무이도(項無耳島)는 둘레가 4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부래도에 대한 설명에 해당한다.

 

강화와 통진의 사이를 흐르는 염하(鹽河)를 따라 한강물에 떠내려 왔다고 하여 부래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섬 안의 산에는 성터도 남아있으며, 부락산·부렴·부렴산·부렴섬 등이 부래도의 딴 이름이다.

 

[출처 :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12, 국토지리정보원]


 

 

15시 33분 - 

 

 

15시 36분 - 

 

철책 사이로 본 부래도

 

 

부래도

 

15시 38분 - 

 

부래도

 

 

15시 40분 - 이전엔 저 빨간자동차가 있는 마을길로 지나다녔는데...

 

 

 

15시 43분 - 

 

 

15시 44분 - 이 집은...

 

2012년 1월 26일에 김포평화누리길 1ㆍ2ㆍ3코스 이어걷기(대명항→애기봉입구→전류리포구→샘재)를 할 때까지는 이런 모습이었는데...

 

15시 45분 - 

 

 

15시 48분 - 

 

15시 48분 - 

 

좀전에 지나온 집을 돌아보니...

 

15시 49분 - 누군가 쉬고간 흔적을 남기고...  

 

염하강 건너편에 손돌목돈대와 용두돈대가 보이네...

 

15시 50분 - 좌우길이 잠시 후에 만난다.

 

 

15시 53분 - 손돌묘

 

덕포진 손돌묘[德浦鎭孫乭ㅡ]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덕포진에 있는 묘이다. 


지정종목 : 사적
지정번호 : 사적 제292호
지정일 : 1981년 09월 25일
소재지 :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산 103-1
시대 : 조선
종류/분류 : 유적지
크기 : 면적 48,794㎡

 

덕포진 북쪽 해안 언덕 위에 있다.

1970년에 덕포진 내의 현 위치에 복원하였으며 1977년에는 묘비를 세우고 묘역을 단장하였다.
 
손돌은 고려시대의 뱃사공인데,
몽고가 침입하여 고려 왕이 강화도로 피난할 때 손돌의 배를 타게 되었다.
물길이 좁아 앞이 보이지 않고 세찬 물살에 배가 심하게 요동치자,
왕은 자신을 죽이려는 줄 알고 손돌의 목을 베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손돌은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우고 그 바가지를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고 말한 뒤 죽음을 받아들였다.
마침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 왕은 자신이 경솔하였음을 깨닫고
후하게 장사를 치른 뒤 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넋을 위로하였다.
 
조선 말까지 손돌의 넋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오다가 일제강점기 동안 중단되었으며 1970년부터 다시 지냈다.
1989년부터는 김포문화원이 주관하여 손돌의 기일인 음력 10월 20일에 진혼제를 지낸다. 

 

[출처 : 두산백과]

 

 

 

 

손돌공 전설을 클릭하면 확대됨.

 

☞ 손돌공 전설

 

서기 918년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여 제23대 고종에 이르기까지 314년간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고려는 많은 수난을 겪었다.

 

서기 1231년 몽고(원나라)가 침입하매, 고종은 화친을 내세워 일단 회군시켰으나,

그들이 계속 부당한 조공(朝貢)을 요구하므로 결사항전할 것을 결심하고 1232년 몽고의 2차 침략 때 강화도로 천도 하게 되었다.

 

고종은 조정을 이끌고 개경을 떠나, 사공 손돌의 배를 타고

예성강 벽란도를 거쳐 임진강과 한강 하류를 지나 강화도로 가고 있었다.

도중 현재의 대곶면 신안리와 강화도 광성진 사이의 해협이 협소하고 급류인 목에 닿게 되었다.

 

이곳은 앞이 막힌 듯이 보이는 지형으로 처음 가는 사람은 뱃길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지라,

천도 하는 고종도 심기가 불편한 나머지 뱃길도 없는 곳을 향하여 노를 젓는 사공 손돌을 의심하여

수차 뱃길을 바로잡도록 하명하였으나, 손돌이 아뢰기를

 "보기에는 앞이 막힌 듯 하오나 좀더 나아가면 앞이 트이오니 폐하께서는 괘념치 마옵소서"라고 아뢰었다.

 

고종은 마음이 초조하여, 손돌의 흉계로 의심하고 신하들에게 손돌을 죽이라고 명하였다.

손돌은 죽음에 직면하고도 임금의 안전 항해를 바라는 충성에서

바가지를 물에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면 뱃길이 트일 것을 아뢴 후 참수되고 말았다.

이후 왕의 천도 항해는 손돌의 바가지 안내대로 험한 협류를 무사히 빠져나와 목적지에 당도하였다.

 

왕은 늦게나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손돌을 후히 장사지내주고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당도 세워주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 뱃길목을 지금도 손돌의 목을 벤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 부르며,

공(公)의 기일인 음력 10월 20일 쯤이면 손돌의 원혼이 바람을 일으킨다 하였다.

이때에 거센 바람을 '손돌이바람', 이 무렵의 추위를 '손돌이추위'라 전해온다.

 

이러한 전설에 따라 매년 음력 10월 20일에 손돌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제를 지내고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는 손돌의 실화를 입증할 어떤 문헌이나 자료 등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손돌공의 묘는 물 건너로 광성진을 보이는 덕포진 북쪽 해안 언덕 위에 있다.

공의 제사는 조선조말까지 계속되어오다가 일제 강점 후 중단되었었으나 1970년 이후 계속 지내오고 있으며,

묘는 1977년 박일양(朴一陽)씨등과 면민들이 묘비를 세우고 치산(治山)하여 크게 단장하였다.

 

자료출처 : 경기도홈페이지>경기도소개>경기문화유산>향토지적재산 中

 

 

 

손돌목[孫乭項]

경기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지역에 있는 목[項].


유형 : 지명
성격 : 해협
소재지 :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정의 :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지역에 있는 목[項]

 

지형상 이 지역이 바다로 돌출해 있는데

대안(對岸)의 강화도 광성보(廣城堡)가 있는 곳도 바다로 돌출해 있어 두 지역 사이가 좁은 여울의 형태를 이룬다.

따라서 밀물 때 이곳을 흐르는 해류가 급류를 이루어 배가 건너다니기 어렵다.

 

손돌이라는 지명은 이곳에 있던 뱃사공의 이름에서 나왔는데 그에 관한 전설은 2개로 되어 있다.

 

고려 때 몽고의 난을 피해 급히 이곳에 도착한 왕이 바다를 건너고자 할 때 손돌이 아직 바람이 자지 않았으니 쉬었다 건너자고 하여

왕이 그를 모반자로 생각하여 처형을 하니 광풍이 불이 바다를 건널 수 없게 되었다.

왕이 크게 후회하여 그가 탄 말의 목을 베어 제사를 지내고 나니 바람이 잔잔하여 바다를 건널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전설은 왕이 탄 배가 바다를 건널 때 손돌이 배를 급류쪽으로 몰아 위험을 느낀 왕이

손돌의 행동을 의심하여 그를 죽이려 하자 그가 죽기 전 자기가 죽은 뒤 바다에 바가지를 띠워

그 바가지가 가는대로 배를 몰면 안전할 것이라고하여 손돌을 죽인 뒤 그의 말대로 했더니 배가 무사히 바다를 건넜다고 한다.

이에 왕이 크게 뉘우쳐 손돌의 무덤을 만들고 크게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음력 10월 20일경인데,

이때는 겨울의 북서풍이 강하게 불어 겨울의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며 이 시기에 부는 바람을 손돌풍(孫乭風)이라고 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5시 55분 - 덕포진 파수청터 앞에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져서...

 

김포 덕포진[金浦 德浦鎭]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진영. 사적 제292호.
처음 세워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66년(현종 7) 강화에 예속된 진이었다고 하며,
1679년(숙종 5) 강화의 광성보, 덕진진, 용두돈대와 함께 축성되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격전지이다.

 

유형 : 유적
시대 : 조선
성격 : 진(鎭)
건립연도 :1679년
규모(면적) : 지정면적 4만 8794㎡
소재지 :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문화재 지정번호 : 사적 제292호
문화재 지정일 :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92호. 지정면적 48,794㎡.

이곳은 돈대(墩臺)와 포대(砲臺) 및 파수청(把守廳)이 있던 곳으로,

처음 세워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66년(현종 7) 강화에 예속된 진이었다고 하며,

1679년(숙종 5) 강화의 광성보(廣城堡)·덕진진(德津鎭)·용두돈대(龍頭墩臺)와 함께 축성되었다.

 

돈대의 위치는 한성으로 통하는 바닷길의 전략요충지로서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함대와, 신미양요 때는 미국함대와 싸웠던 격전지이다.

또, 돈대와 포대의 중심부에는 파수청터가 있는데, 이곳은 포를 쏠 때 필요한 불씨를 보관하는 동시에 포병을 지휘한 장소로 생각된다.

 

1980년의 발굴조사 당시 7개의 포탄과 상평통보(常平通寶) 2개가 출토되었고, 건물터에서는 주춧돌과 화덕자리가 발견되었는데,

건물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추정되며, 둘레에 맞담을 쌓듯이 둘러친 석벽이 있었다.

또, 돈대터에서는 1874년(고종 11)에 만들어진 포와 포탄 등이 발굴되었다.

 

이곳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강화도의 광성보와 맞서 있는데, 시야가 막힌데다가 해협이 매우 좁고 물살이 빠르며 소용돌이치므로

적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고 생각된다.

 

고려 고종이 몽고병의 침략을 피하여 강화도로 가는 길에 배를 타고 이곳의 바닷길을 지나다가 위험을 느낀 나머지

사공이 흉계를 꾸몄다고 오해하여 그를 처형하였으나,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가자 잘못을 뉘우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부근에는 당시 사공이었던 손돌(孫乭)의 무덤이 있으며, 지금도 덕포진 앞의 좁은 바닷길을 손돌목이라 부르고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5시 55분 - 덕포진 파수청터

 

 

덕포진 포대

 

김포 덕포진[金浦 德浦鎭]


강화의 초지진(草芝鎭) ·덕진진(德津鎭)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통하여

수도 서울로 진입하려는 외세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한 조선시대의 군영. 


지정종목 : 사적
지정번호 : 사적 제292호
지정일 : 1981년 09월 25일
시대 : 조선
종류/분류 : 군영
크기 : 지정면적 48,794㎡
소재지 :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산 103-1 지도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92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大串面) 신안리(新雁里)에 소재하며, 지정면적은 4만 8794㎡이다.
설치된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1666년(현종 7) 이미 강화에 예속된 진이었다.

1679년(숙종 5) 강화의 광성(廣城) ·덕진(德津) ·용두(龍頭)의 여러 돈대(墩臺)와 함께 이곳에도 돈대가 축성되었으며,

1866년(고종 3) 9월 병인양요(丙寅洋擾) 때는 프랑스 함대와,

1871년 4월 신미양요(辛未洋擾) 때는 미국함대와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1980년 포대 ·돈대 및 파수청(把守廳) 터의 발굴조사에서 1874년에 만든 포와 포탄,

조선시대의 화폐인 상평통보 및 주춧돌과 화덕 등이 출토되었다.

파수청은 유구(遺構)로 보아 포대와 돈대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포를 쏘는 불씨를 보관하던 장소인 동시에 포병을 지휘하던 장대(將臺)로 추정된다.


[출처 : 두산백과]

 

 

15시 57분 - 덕포진의 다포대는 기와지붕으로 단장하고...

 

 

 

 

덕포진 나포대 지붕은 초가지붕으로...

 

 

 

 

16시 01분 - 대명항/함상공원 방향으로...

 

덕포진 가포대

 

 

 

 

김포함상공원을 살짝 당기니...

 

16시 03분 - 덕포진 쉼터

 

 

 

 

 

16시 04분 - 

 

 

16시 05분 - 

 

16시 08분 - 

 

16시 10분 - 

 

16시 10분 - 

 

 

 

 

 

16시 14분 - 

 

16시 15분 - 클릭하면 확대됨.

 

 

16시 16분 - 김포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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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함상공원

 

▼ 지난 2010년 11월 14일에 '염하강 도보일주'를 하면서 잠시 들린 '김포함상공원' 안으로 들어가 보니... 

 

 

 

 

 

16시 19분 - 김포평화누리길 입구

 

16시 19분 - 

 

16시 19분 - 대명항 종점으로...

 

16시 22분 - 

 

16시 23분 - 호동천 배수문을 지나면...

 

16시 24분 - 대명항 종점으로 원점회귀하여 오늘의 여정을 마치고...

 

 

 

☞ 이것으로 염하강 일주(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김포평화누리길1코스 염하강철책길 이어걷기)를 다녀오다를 마친다.

 

 

 

2015년 01월 31(토)

 맥가이버의 낭만도보 - 염하강 일주(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김포평화누리길1코스 염하강철책길 이어걷기)를 다녀오다.
  
-▥☞ 1부[대명항종점→강화초지대교 도강→초지진→궁중두부→덕진교→덕진진(덕진돈대→경고비→남장포대→공조루)]는 여기를 클릭.☜▥-
 
-▥☞ 2부[공조루→광성보(광성포대→용두돈대→손돌목돈대→안해루)→어재연장군동상→오두돈대→화도수문개축기사비]는 여기를 클릭.☜▥-
 
-▥☞ 3부[화도수문개축기사비→화도돈대→용당돈대→용진진→더리미포구→강화외성→갑곶진→강화비석군→강화대교]는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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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부[고란초삼거리→부래도쉼터→덕포나루→손돌묘→덕포진 포대→덕포진쉼터→평화누리길 입구→대명항 종점]는 여기를 클릭.☜▥-
 

"내가 ★을 이루면 그 꿈★은 또다른 이의 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