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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보여행 후기☞/☆ 경의선숲길

[20160602]'경의선 숲길 6.3km 전 구간 완공'이라고 해서 '경의선 숲길'을 찾아갔더니...

by 맥가이버 Macgyver 2016.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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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6월 02일(목)

 '경의선 숲길 6.3km 전 구간 완공'이라고 해서 '경의선 숲길'을 찾아갔더니...

맥가이버의 ''경의선 숲길 6.3km 전 구간 완공'이라고 해서 '경의선 숲길'을 찾아갔더니...' 이야기

 

 맥가이버의 '경의선 숲길 6.3km 전 구간 완공'이라고 해서 '경의선 숲길'을 찾아갔더니...' 코스

 

용산e편한세상→효창공원앞역→공덕역→서강대역→홍대입구역

 

 

 

 

오늘은 '경의선 숲길 6.3km 전 구간 완공'이라고 해서 '경의선 숲길'을 걸어보고자 길을 나선다.
 
얼마 전에 경의선철도 폐철길에 조성되어온 '경의선숲길'이 5년만에 완공되어
'경의선숲길 6.3km 전 구간 완공'이라는 보도를 접하였다.  
 

용산구 원효로에서 마포구 가좌역까지 경의선철도 폐철길 6.3㎞가 10만 2천8㎡ 공원으로 변신했다.

서울시는 경의선숲길 마지막 3단계 구간인 와우교(336m)·신수동(390m)·원효로(690m) 총 1천446m 공사를 마무리하고 개방한다고...

 

보도 내용만으론 용산구 원효로에서 마포구 가좌역까지 6.3km의 전 구간이 공원길로 이어졌다고 생각케 했다.

그런데 직접 가보니 전 구간이 이어져 공원길로 조성된 것이 아니라 부분부분이 끊어진 곳이 있었다.

전 구간 완공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 말이다.

일부 구간은 앞으로 수년간 공사를 진행하는 곳도 있고, 

공사를 마친 곳도 아직 정리가 덜 된 곳도 있었다.

 

☞ 맥가이버의 '경의선 숲길 6.3km 전 구간 완공'이라고 해서 '경의선 숲길'을 찾아갔더니...'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풍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또한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 '경의선 숲길 6.3km 전 구간 완공'이라고 해서 '경의선 숲길'을 찾아갔더니...'를 시작하며...

 

 

용산e편한세상아파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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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카페?

 

 

 

 

 

경의선(京義線)

 서울과 평안북도 신의주 사이에 부설된 철도.

서울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서울∼평안북도 신의주 사이에 부설된 철도로, 지금은 서울∼문산간의 46㎞만을 운행하고 있다.

[개설]
서울을 기점으로 개성-사리원-평양-신안주를 거쳐 신의주에 이르는 우리나라 관서 지방을 관통하는 종관철도(縱貫鐵道)로서 총 연장 499㎞이다.

신의주에서 압록강철교를 건너 만주로 연결되고 있으나, 지금은 남북분단으로 서울∼문산 간의 52.5㎞만을 운행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1905년 일본 제국주의가 대륙 침략의 목적으로 부설하였다.

경부선과 함께 평시에는 원료 공급, 공업 제품의 수송을 맡았으나,

전시에는 일본 군국주의의 대륙 침략 노선으로 이용되었다.

 

1896년 3월 미국인 모스(Morse, J. R.)가 경인선 부설권을 획득한 데 자극된 프랑스는

1896년 7월 친로파 대신 및 주한러시아공사 베베르(Veber, C.)의 적극적인 협력을 얻어

피브릴르회사(Fives Lile會社)의 대표 그릴르(Grille)에게 경의선 부설권을 획득하게 하였으나,

그릴르는 재력 부족으로 부설권을 상실하였다(1899.6.23.).

 

이에 우리 정부는 당시 국내에서 일고 있던 애국 계몽운동에 힘입어 반환된 경의선 부설권을

1899년 7월 8일 박기종(朴琪淙)이 주도하는 대한철도회사(大韓鐵道會社)에 특허하였다.

그러나 재력이 없던 박기종이 실패하자 정부는 외세를 배격하기 위하여 경의선·경원선을 궁내부 직영으로 하였다.

 

1900년 9월 조정은 내장원(內藏院)에 서북철도국을 두고 조병식(趙秉式)을 총재로 임명하고 서울∼개성 간의 선로 측량에 착수하게 하였다.

이때의 계획은 먼저 서울∼개성 간을 개통시키고 자금이 확보되는 대로 연장하기로 하였다.

이처럼 정부가 스스로 착공하고 있는 데도 일본과 러시아는 경의선 부설에 계속 상관하였다.

 

그러다 러일전쟁이 일어난 지 보름 뒤인 1904년 2월 21일,

일본은 서울∼신의주 간의 군용철도 부설을 위한 임시 군용철도감부(臨時軍用鐵道監部)를 설치하고

3월 4일 이 감부 소속 철도대대를 상륙시켜 불법으로 경의선 부설에 착수하였다.

그러자 그 해 3월 12일 정부는 군사상 필요하다는 일본의 강요에 못 이겨

50년간의 임대 조약을 맺고 일본에게 경의선 부설권을 물려주고 말았다.

 

철도 부설권을 빼앗은 일본은 군인과 군수 물자를 수송하기 위하여 공사를 급속도로 진행시켰다.

실제 답사를 통한 정밀한 조사를 하지 못한 채 5만 분의 1 지형도로만 위치를 결정하고 측량을 하였다.

1904년 3월 12일 용산∼개성 사이, 4월 9일 개성∼평양 사이, 6월 25일 평양∼신의주 사이의 노반공사에 착수하여

10월 28일 용산∼임진강 사이에 철도건설을 위한 임시 열차가 운행되었다.

 

1905년 1월 26일 평양∼신의주 간의 철도가 완성되었고, 3월 29일 대동강철교가 준공되었으며,

4월 28일 청천강·대령강의 두 철교를 제외한 전체 노선이 준공되어 이날부터 용산∼신의주 간에 연락 운전을 개시하였다.

그 뒤 1906년 3월 25일 가장 난공사 지역인 청천강철교가 준공됨으로써 전선에 걸쳐 열차가 운행되었다.

 

경의선 건설에는 총 733일이 소요되었으며, 하루 평균 730m의 선로를 부설한 셈이다.

큰 터널은 파지 않고 우회하였으며, 교량도 부실하여 공사비가 적게 든 반면 졸속 공사가 되었다.

특히, 철도용 부지를 무료로 강점하고 공병대를 투입하여 경비가 더욱 경감되었다.

이와 같이 군사상 목적으로 급조된 경의선은 그 뒤 대대적인 개량공사가 필요하였다.

 

철도감부는 1905년부터 4개년 계획으로 구배의 완화, 곡선의 개량, 터널 신설(19개소, 540m),

교량의 개증축(328개소) 등 개량 공사에 착수하여 1911년 11월 개량 공사의 대부분을 완공하였다.

그 결과 전선을 통하여 최급구배 100분의 1, 최소 곡선 400m의 선로로 되었으며,

1911년 11월 압록강철교의 개통으로 한국∼만주 간이 철도로 연결되었다.

 

또한, 각 열차의 운행을 만주 안동(安東)까지 연장하고,

서울 남대문과 만주의 장춘(長春) 간을 주 3회씩 직통 급행열차가 운행됨으로써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국제철도의 일환이 형성되었다.

[현황]
제2차 세계대전이 확대됨에 따라 일제는 1938년부터

대륙 침략을 위한 군수 물자 및 병력 수송을 위하여 경의선의 복선 공사를 시작하였다.

 

1943년 5월 평양∼신의주 간의 복선이 준공됨으로써 더욱 식민지 수탈과 대륙 침략에 최대로 활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남북 분단과 함께 경의선은 끊어져 국토분단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한정상회담의 결과 경의선의 복원을 합의하고

2000년 9월 18일 경의선 복구작업을 착공하였으며,

2003년 6월 14일에 경의선 연결식이 군사분계선(MDL)에서 개최되었다.

 

현재 서울역~문산역까지 길이가 52.5㎞인데, 대부분의 구간이 복선전철화 되어 있으며

2009년 서울역~문산역까지 광역전철이 개통되어 운행 중이다.

 

남북관계가 크게 진전된다면 경의선은 남북한 통일의 가교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남북한 경제교류의 통로로 작용하고,

나아가 중국, 러시아와 연결되는 새로운 물류유통로로 기능함으로써 국가경제의 발전에 새로운 전환을 가져 올 것으로 기대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의선(京義線)

총연장 499㎞로 1906년에 개통되었다.

서울에서 개성·사리원·평양을 지나 신의주까지 연결된다.

1896년 프랑스 휘브릴사(Fives Lile)가 처음으로 부설권을 얻었으나 자금 조달이 어려워 부설권을 상실했다.

 

1899년 대한철도회사가 다시 특허를 얻었다가 또 다시 실패하자 1900년(광무 4) 정부기관인 내장원(內藏院)에

서부철도국을 두고 서울-개성 간 선로 측량을 시작했다.

그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은 서울-신의주 간 군용철도를 부설하기 위해 임시군용철도감부를 설치했다.

 

일본은 이를 대륙침략노선으로 이용하기 위해 공사를 서둘렀다.

1904년 3월 용산-개성 구간의 노반공사에 착수,

1905년 평양-신의주 구간이 완공되어 용산-신의주 구간에 직통운전이 시작되었으며,

1906년 청천강·대령강 철교가 준공되면서 전구간이 개통되었다.

 

1911년 압록강철교의 개통으로 서울에서 만주까지 연결되어 우리나라 최초로 국제철도의 일부가 되었다.

1943년에는 평양-신의주 구간이 복선화되었다.

 

분단 이후 경의선 구간 중 남한은 서울-문산 간 46㎞를,

북한은 개성-신의주 간 411.3㎞(평양-개성 간 평부선 186.5㎞, 평양-신의주 간 평의선 224.8㎞)를 운행해왔다.

 

남북한은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 끊어진 경의선을 잇기로 합의하고,

그 해 9월 문산-개성 구간 연결 공사를 시작했다.

문산-개성 구간은 남쪽 2.7㎞, 비무장지대 1.8㎞, 북쪽 7.5㎞로 남북이 해당지역 철로를 먼저 복원한 후

비무장지대 철로 공사를 하는 순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이 공사는 2003년 상반기에 완공할 예정이다


[출처 : Daum 백과사전]

 

 

 

 

 

 

효창(공원앞)역 노상주차장을 거쳐...

 

효창공원앞역

 

 

 

 

 

 

 

 

 

 

 

 

 

 

새창고개 이야기를 읽어보니...

 

 

 

새창고개

 

 

새창고개


용산구 효창동에서 마포구 도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고개 부근 효창동 213번지 일대에 조선시대 선혜청의 별창고인 만리창을 이곳에 새로 지었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신창고개라고도 하였는데, 인근 마을을 새창마을이라고 하였다.
만리창의 창고 규모는 진휼청에 소속된 창고가 35문, 해서 소속 3문, 호남 소속 20문 등 모두 58문이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일본군의 혼성여단이 만리창에 임시사령부를 설치하고 청일전쟁 수행의 주요거점으로 삼았다 한다.

 

[출처 : 서울지명사전]

 

 

 

 

 

 

 

 

공덕역 부근에서는 숲길이 단절되고...공덕역 부근의 대규모 복합시설 공사 등으로 공덕역 부근은 우회를 해야...

 

 

공덕역 10번 출입구를 지나고...

 

 

 

 

경의선공유지 시민행동 베이스캠프 늘장을 들어서서...

 

 

 

 

 

 

 

 

 

 

 

 

 

 

 

 

 

 

 

 

 

 

 

 

 

 

앞에 보이는 대로(대흥로, 마포세무서-대흥역)는 신호등을 건너야...

 

대흥동 구간을 지나며...

 

 

 

 

 

 

 

 

 

 

서강대가 보이네...

 

 

 

 

 서강대역 광장을 가로 질러서...

 

 

서강대역 2번 출입구에서 서강로(서강대교-신촌)를 신호등을 이용해 건너야...

 

 

 

 

 

 

 

 

 

 

 

 

 

 

경의선(京義線)

 

길이 518.5km이다.

1896년 7월 3일 프랑스의 피브릴사(社)의 그리유가 경의철도 부설권을 얻었으나,

자금조달 관계로 공사에 착수하지 못하고, 특허기간을 넘겨 1899년 6월 30일 부설권이 소멸되었다.

이에 한국 정부는 7월 8일 대한철도회사에 경의선의 부설권을 특허하였으나, 자금·기술의 부족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1903년 2월 16일 러시아 정부에서 경의철도 부설권을 한국 정부에 요구한 바 있었고,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같은 해 2월 21일 일본인에 의해 서울∼의주 간 군용철도 부설을 위한 임시 군용철도감부(臨時軍用鐵道監府)가 설치되었으며,

이를 한국주재 일본군사령관 예하에 전속시킴으로써 군사적인 목적을 그대로 드러냈다.

 

1906년 4월 3일 용산∼신의주 간 철도가 완전 개통되었고, 같은 해 9월 1일 관리권이 군용철도에서 통감부 철도관리국으로 이관되었다.

1908년 4월 1일 부산∼신의주 간 직통 급행열차인 융희호(隆熙號)가 운행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중·일 전쟁을 계기로 복선화가 진행되었다.

경부선과 함께 한반도의 주요 종관철도(縱貫鐵道)로서 수많은 지선이 연결되어 운수 교통량은 전국 철도 중에서 가장 많아 교통상 대동맥을 이루었다.

1945년 서울∼개성 간 74.8㎞ 구간으로 단축운행되다가, 1951년 6월 12일 운영이 중단되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린 후 경의선 복원사업이 구체적으로 논의된 후,

2003년 6월 14일 연결식이 군사분계선(MDL)에서 열렸다.

2009년 서울역에서 문산까지 광역전철이 개통되었다.

 

경의선은 북한 내 여객의 60%, 화물수송의 90%를 담당하고 있어 복원이 완료되면

남북교류가 활발해지고 북한의 사회기반 시설을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남한은 중국으로 가는 물류비를 크게 줄일 수 있으며,

중국·러시아·유럽의 철도와 연결되면 그 기대효과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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