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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싶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조선의 중심 '종로 뒷골목'… 계단 없어 휠체어 답사도 OK <2>보신각~동대문 '종로 뒤안길'

by 맥가이버 Macgyver 2016. 12. 21.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조선의 중심 ‘종로 뒷골목’… 계단 없어 휠체어 답사도 OK

<2>보신각~동대문 ‘종로 뒤안길’


입력 : 2016-08-09 18:06 ㅣ 수정 : 2016-10-18 21:56

 

서울시는 2014년 근현대 서울의 추억과 발자취가 담긴 유·무형 자산을 발굴·관리하는 ‘미래유산 보전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이맘때 ‘미래유산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시민들과 미래유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시는 미래유산 발굴보존 사업이 가능한 한 민간 주도로 진행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번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역시 서울신문, 문화지평과 함께 시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오는 9월 3일 장충단비, 국립극장,

장충체육관, 한양성곽, 족발 골목 등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가는 ‘장충단 성곽길’ 프로그램을 예약할 수 있다. 

▲ 종로 뒤안길은 미래유산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이다. 시민들은 미래유산을 만날 때마다 인증동판 앞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위부터 이문설농탕, 낙원떡집, NH농협 종로지점(옛 조선중앙일보 사옥), 서울 중심점 표지석, 구하산방.


지난 7월 9일 오전 10시 보신각 앞에 한 무리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빨간색 손수건을 하나씩 목에 두르거나 손목에 묶고 2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출발을 기다리는 이들이었다. 

이번 역사탐방로는 보신각부터 동대문까지다. 일직선으로 뻗은 대로가 아니라 잘 다녀 보지 않은 뒤안길이다.
보신각 길 건너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에서 인사동을 거쳐 종로 뒷골목을 헤집는 코스다.
답사로는 발밑으로는 광화문역에서 동대문역으로 달리는 지하철 5호선과 거의 겹친다.
단 한 번도 대로로 나가지 않고 동대문까지 뒤안길만 누비는 오리지널 골목 답사다. 

서울 종로 뒤안길 답사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뒷골목에 숨어 있는 수많은 근현대 역사 이야기와 미래유산을 만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답사로 전체가 평지로 이뤄져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도 무리 없이 동행할 수 있는 ‘무장애 답사로’란 점이다.
이 답사로는 이날 해설을 맡은 박광규(55)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개척한 코스다. 

박 해설사는 “큰길에는 큰 역사가 존재하고 뒷골목에는 소소한 것만 있을 것이란 선입견을 날려 버리는 대단히 의미 있는 뒤안길”이라며
“특히 계단이 단 한 층도 없는 완벽한 무장애 코스로 장애인과 함께 역사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답사길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답사팀 안전은 손안나 해설사가 맡았다.

이날 답사에도 어김없이 이경윤 나눔마켓 대표가 가장 먼저 나왔다.
장애인 콜택시를 타려고 일찍 서둘러야 해서 두 시간 전에 도착했다.
어릴 적 소달구지에 깔린 사고 때문에 전신마비로 이동장애를 가진 이 대표는
노원구 하계동 미성아파트 지하상가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답사 활동을 했을 것이다.
이날은 무장애 코스라서 그런지 그의 표정이 유난히 밝다.
이 대표는 “이 코스를 두 번째 가 볼 기회를 얻어서 행복하다”며
“길 끝 창신동 골목길 ‘장가네 보리밥집’에서 쓱쓱 비벼 먹는 비빔밥이 일품이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눔마켓은 책을 기증받아 온·오프라인을 통해 염가로 파는 책방”이라며
“기증은 책 종류와 수량에 관계없이 어떤 책이든 가능하다”고 깨알 같은 광고를 빼놓지 않았다.
박 해설사의 해설이 시작되자 모두 시선을 모으고 귀를 쫑긋 세웠다.

▲ 서울미래유산 ‘지하철 수준점’이 있는 보신각 앞에서 2차 답사 출발에 앞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날 기온은 33도. 시민 2명이 추가되는 등 30여명의 열정적인 답사객이 참여했다.

▲ 1960년 유원석씨가 인수해 현재는 2대인 전성근씨가 운영하고 있는 ‘이문설농탕’ 앞에서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박광규 서울미래유산해설사. 이문설농탕은 원래 1904년 공평동에서 ‘이문옥’으로 문을 연 이후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다가 유씨가 인수해 2011년 지금 자리로 이전했다.



“보신각 안 잔디밭에는 서울미래유산인 ‘지하철 수준점’이 있습니다.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하려고 기준을 잡은 것인데요. 앞으로 놓일 모든 지하철의 높이를 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박 해설사가 손으로 지하철 수준점을 가리켰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사방 25㎝ 정사각형 표지석 한가운데 직경 7㎝, 길이 12㎝ 놋쇠 못이 박힌 수준점은
높이가 20㎝밖에 되지 않아 한여름에는 잔디에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보신각이 보물 제2호로 지정된 문화재인 이유로 무작정 들어가 가까이 들여다보기가 어렵다.
박 해설사가 이해를 돕고자 아이패드를 꺼내 근접해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자 그때야 시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답사에 나온 배현철(40·두루EDS 대표)씨는 “보신각 앞에서 숱하게 약속도 하고 그 앞을 지나쳤지만,
이 안에 지하철 수준점이란 게 설치돼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고 했다. 

지하철 수준점은 1970년 5월 도심 교통난을 해소할 대책을 마련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당시 양택식 서울시장이 지하철을 도입하면서 같은 해 10월 설정한 일종의 기준이다.
우리나라 해발 기준점(수준원점)은 어디일까.
인천 앞바다를 기준으로, 수준원점 시설물은 인하대 교정 안에 있다.

박 해설사의 해설을 토씨 하나 놓칠세라 꼼꼼하게 받아 적는 답사객이 있다.
1회차 때 대한문 앞에서 출발하는 답사단 무리를 보고 2회차 때 무작정(?) 참가한 김청길(74)씨다. 김씨는 파워블로거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문화와 답사 관련 포스트를 2200여개나 올렸단다.
김씨는 “일전에 대한문 앞에 갔다가 역사 탐방단이 출발하는 걸 보고 다음번 참석을 다짐했다”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앞으로 계속 나올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무임 승차’를 공언한 것이다. 

▲ 종로 갈매기살구이 골목 담벼락에 붙어 있는 서대문 한 한약방의 오래된 광고지. 조루증, 회춘 등의 단어가 이채롭다.

▲ 서울의 새 명소로 변모하고 있는 익선동 한옥마을 가운데 있는 거북이슈퍼. 젊은이들이 가게를 열면서 골목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 종로구 인사동5길 25에 있는 하나로빌딩 1층 로비에는 서울 중심점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에는 ‘1층 로비에 있는 네모꼴 화강석은 서울의 한복판 중심지점을 표시한 지표석으로 대한제국 건양원년(1896)에 세워진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보신각에서 길을 건너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 쪽으로 인사동 랜드마크 중 하나인 ‘동헌필방’이 보인다.
창업자 이동하씨가 1966년부터 반세기 동안 한자리에서 운영하고 있다.
원래 남계양행이라는 양판점이었다.
건물 자체가 1930년대 지어진 등록문화재감이다.
그런데 동헌필방만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동헌필방 앞에는 1926년 지어진 건물이 있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일제강점기 민간 3대 신문 중 하나였던 조선중앙일보의 사옥이었다.
박 해설사는 “동아일보와 함께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워 보도한 신문”으로
“여운형이 사장이었는데 정간을 당한 후 그 다음해 폐간됐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는 자유당 중앙당사, 1970년부터는 농협중앙회 사옥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NH농협 종로지점이다.
건립 당시 모습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돼 건축사적 측면에서 보존 가치가 있다.
서울 근대건축물과 미래유산이다.
이들 건물은 자칫 옛 도시계획에 의해 멸실될 위기에 있었으나 상위법을 바꿔 운 좋게 살아남았다.
그래서 종묘에서부터 직선이던 골목이 이들 건물을 피해 종로 쪽으로 살짝 굽었다.
여기서 시민 한 분이 추가로 무임 승차성 답사에 나섰다. 

종로 뒷골목은 서울미래유산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이미 지나온 열차집, 동헌필방, NH농협 종로지점 이외도 이문설농탕, 구하산방, 서울중심점, 허리우드극장,
낙원악기상가, 낙원떡집, 유진식당, 피맛골 등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건물과 랜드마크가 즐비하다.
마치 ‘미래유산 종합선물세트’ 같다. 

부모와 참가한 백은솔(9)·은채(7) 자매는 이문설농탕 벽면에 붙어 있는 서울미래유산 동판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인증 사진을 찍었다.
자매는 “답사가 약간 힘들지만 견딜 만해요”라며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이라 어린이들에게는 다소 버거울 수 있었는데,
이들 자매는 양볼이 발갛게 달아 올랐지만, 군소리 한마디 없이 동대문까지 완주했다.
이인선(52)씨는 “과거의 길을 오늘 걸으며 미래를 생각해 본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체험”이라고 말했다.

▲ 1920년 조성된 익선동 한옥마을. 100년 된 골목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 해설사의 해설을 빼곡히 받아 적고 있는 김청길씨.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답사기를 사진과 함께 기록으로 남기는 열정을 보였다.



앞서 가던 박 해설사가 태화빌딩 앞에 멈춰 섰다. ‘서울 3대 요정’ 중 하나인 명월관 별관 태화관 자리다.
태화관 전엔 매국노 이완용이 살았고, 매국 친일파들이 을사늑약, 경술국치 등을 모의했던 장소다.
1919년에는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자리다.
그 직후 총감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자수를 한 탓에 3·1 운동은 구심점을 잃고 실패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태화관 건물은 매국과 독립, 진정성과 모호성이 뒤섞인 역사의 아이러니를 품은 장소다. 

태화빌딩 옆 건물인 하나로빌딩에도 깜짝 놀랄 만한 미래유산이 숨어 있었다.
‘서울 중심점 표지석’이다. 1층 로비 한쪽에 사방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채 보존돼 있는 표지석에는
‘1층 로비에 있는 네모꼴 화강석은 서울의 한복판 중심지점을 표시한 지표석으로 대한제국 건양원년(1896)에 세워진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윤정배(48)씨는 “지금껏 서울 중심점이 남산에만 있는 줄만 알았는데 종로에, 그것도 빌딩 1층 로비라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답사자 중에 누군가 “지난 1회차 답사 때 들렀던 도로원표가 서울 중심인 줄 알았다”며 거들었다.

박 해설사는 “이 중심석은 조선시대 서울이 확장되기 전 당시 기준점이고,
지금 사용하는 중심점은 2008년 최첨단 GPS 측량을 해 지정한 곳으로 남산정상 N타워 인근에 있다”고 설명했다.
답사단은 어느덧 익선동 한옥마을로 접어들었다.
100년 전인 1920년 당시만 해도 생소했을 법한, 도시형 한옥집단지구로 형성된 한옥촌이다.
지금은 카페와 술집, 레스토랑 등이 들어선 서울의 명소다.
익선동 골목 끝은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고, 고기 누린내로 진동하는 갈매기살 구이집이 즐비하다.
고깃집 담벼락에는 ‘조루증을 치료하고 회춘시켜 준다’는 한약방 광고지가 세월의 때를 묻힌 채 붙어 있다.
익선동 골목에는 과거가 현재와 공존하고 있다.

종묘 앞을 지나면서 남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멀리 세운상가가 보인다.
1960년대 획기적 도시개발의 표본이자 근대 건축 1세대 김수근의 작품이다.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가서 실패한 도시계획의 표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섭씨 33도 한증막 같은 날씨 속에 강행군한 답사팀은 어느덧 서울미래유산인 한국기독교회관을 지나 동대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국기독교회관은 1969년 준공돼 1974년 민청학련사건 인사 석방 운동 전개, 1978년 동일방직 노조원 생존권 보장 농성,
1980년 5월 서강대생 김의기 투신 자살 등 민주화 운동 성지로 손꼽히고 있다.
종로꽃시장에서 길이 좁고 복잡해 답사팀은 두 패로 갈렸지만 다시 만났다.
박 해설사는 한양도성박물관 앞에서 동대문을 바라보면서 폭염 속 2시간 30분 동안의 답사를 폭염만큼 뜨거운 박수로 마무리했다.

“점심은 장가네 보리밥집 가요.”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